외출 (2disc) - 할인판
허진호 감독, 손예진 외 출연 / 엔터원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저는 이 영화를 아주 좋게 봤습니다.

때문에 왕창 씹어대는 국내 여론을 이해 할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막연히 일본에서는 히트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대단한 반응이었던걸로 읽었습니다.

그 이유가 욘사마의 지명도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조금만 차분한 마음을 갖고

조용히 사색하듯 세심하게 보면 모든 것이 이해됩니다.

물론 슬롯모션으로 진행된 침대씬이 쪼까 껄쩍지근하기는 했습니다.^^

보다 자연스런 방법이 없었을까.....

 

아래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때문에 망설이다가 올립니다.

스포일러가 싫으신 분들은

읽지 마시고 만약 이런 스포일러가 '외출' 디브디의 확산에 문제가 된다면

알라딘 담당자분은 제게 메일을 보내 삭제를 권해 주세요.

얼른 삭제하지요. 

제가 아래를 올리는 것은 '외출'을 초 치고자 함이 아니고 너무 괜찮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두번 봤을까요. ㅋㅋ.. 그리고 허진호 감독의 차기작이 기대됩니다.^^

 

영화 <외출>은 개봉 전부터 일본 아줌마 부대가 야단법석을 떨었다 하기에 나 또한 호기심을 가졌다. 도대체 어떤 영화일까. 영화를 보기 전에 이런 저런 영화평들을 찾아서 읽었는데 그 종합적인 느낌은 허 감독의 전작 <봄날은 간다>에 비해 좀 뜨뜻미지근하다 였다.

확실히 뜨겁든가, 아니면 미지근하든가. 이도저도 아니고 어떤 이는 뜨겁다, 어떤 이는 미지근하다하니 어느 쪽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 하여간 내 눈으로 직접 봐야 뜨신지 미지근한지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추석 전전날. 식구들 선물을 산다며 대구로 진출한 나. 마음이 콩밭에 가 있어서 그런가 선물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영화 먼저 보기로 하였다.

남자는 무대 조명 감독이었다. 출장을 간 아내가 교통사고로 삼척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 후배에게 일을 맡기고 눈발이 흩날리는 낯선 밤길을 착잡한 마음으로 달렸다. 그렇게 달려온 것은 남자만이 아니었다. 여자 또한 남편의 사고소식에 서울에서 불원천리 달려왔다.

그들은 서로 배우자가 사실은 학창시절부터 좋아하던 사이였다는 것을 알고 몹시 괴로워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배우자들은 둘 다 혼수상태인지라 물어 볼 수도 따질 수도 없었다. 그저 당사자들이 깨어나기만을 기다리며 하루 이틀 시간이 흘렀다.

그들은 병원 지척의 한 모텔에 임시거처를 마련하였는데 공교롭게도 같은 층이었다. 목례만 하고 지나치는 것도 하루 이틀, 사고피해자 문상이며, 보험사직원과의 면담 그리고 우연한 마주침 등 자꾸만 조우해야 하는 '어색함'은 어느 밤 바닷가 횟집에서 소주잔을 부딪치며 단숨에 날려버렸다.

여자가 취기를 빌미로 농담처럼 '우리 사귈래요?'하고 말한 후,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서로 피식 웃었지만 그들은 웃음과 동시에 서로에 대한 경계를 풀었다. 그리고 깨어나지 않는 배우자들을 기다리며 보내는 지루한 시간들을 핑계 삼아 그들은 조금씩 가까워졌다.

동병상련의 아픔을 가진지라 그 누구보다 상대방의 처지가 이해되는 그들. 어느 날 파도소리 쏴아쏴아 바닷바람을 많이 맞아서인가 여자는 무얼 하고 싶으냐는 남자의 말에 호텔 행을 제의했다.

이러면 똑같아지는데. 남편 아닌, 아내 아닌 사람과 그토록 열정적일 수 있는 서로의 배우자들에 비하면 우리네 하룻밤이야. 혼수상태로 누워있는 각자의 배우자들을 생각하면 착잡했지만 그들은 서로 탐색했고 과연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조상들의 말은 사실이었다.

바야흐로, 대놓고 서로 좋아지기 시작하는 찰나, 남자의 아내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 정성껏 간호하는 남자를, 지나치는 복도에서 우연히 남자네 병실의 창문을 통해서 보게 된 여자는 한없이 외로워졌다.

내 쉴 곳은 여기뿐인가. 남편의 병실로 돌아온 여자는 깨어나지 않는 남편의 가슴에 얼굴을 모로 대고 외로운 마음에 잠이 들었다. 그 모양을 병원 주차장에서 역시 창문을 통해서 바라보던 남자 역시 쓸쓸한 한숨과 함께 자꾸만 땅을 발로 툭툭 차대었다.

끝내, 여자의 남편은 깨어나지 못한 채 사망하고 남자의 아내는 애인의 죽음에 통곡하였다. 통곡은 남자 부부의 헤어짐으로 이어졌고, 더 이상 여자는 볼 수 없었다. 다만 아내와 함께 살던 집을 정리하던 남자의 짐 한 편에 '트리얀'이 곱게 놓여 있었다. 여자가 마음을 열기 시작할 때 잘 키우라며 사준 '트리얀'은 남자마음의 편린인 듯 무럭무럭 자라서 길게 잎을 늘어뜨리며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다시금 조명 일을 시작한 남자는 바빠졌고 성공적인 콘서트 끝의 스산한 뒷정리를 하던 중 벚꽃처럼 흩날리는 사월의 눈발에서 하나의 잊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슬며시 미소 짓는다. 그렇게 흩날리던 눈발은 '백년만의 폭설'이 되어 온 도시를 뒤덮어 버렸고 매스컴은 연일 호들갑을 떨어댔다.

남자는, '겨울은 싫어하지만 눈은 좋아한다'던 여자가 문득 보고 싶어졌다. '백년만의 폭설'은, 남자와 여자가 그들의 만남을 두고 더 이상 '아주 오래전이나 아주 나중이었으면 어땠을까'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듯이 온 천지를 덮고 또 덮으며 쌓이고 또 쌓였다.

남자와 여자는 재회하여 폭설이 쌓인 밤길을 달리면서 영화는 끝이 났는데.. 영화를 다 본 나의 느낌은 '뜨듯'도 아니고 '미지근'도 아닌 '따스함'이었다. 백년만의 폭설이 내 마음 어딘가에 내려앉은 것 같기도 했고, 화면 가득 울려 퍼지던 파도소리가 며칠이 지나도 귓가에 쟁쟁했다.

때문에 사실은, 추석 지나고 내가 살고 있는 소도시의 극장에서 한 번 더 보았다. 한 번 더 보니 <외출>의 느낌이 이전보다 훨씬 더 좋게 다가왔고 장면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독과 대화를 하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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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9-12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보고 책을 읽었는데 책의 느낌이 더 좋더군요. 배우의 연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폭설 2006-09-12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책은 못 봤는데 김형경씨의 문장이라면 충분히 그럴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marine 2006-10-01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평론에 비하면 인상적으로 본 영화였어요 흥행작인 "봄날은 간다" 와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이상하게 혹평을 받더라구요

폭설 2006-10-01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마린님......외출을 좋게 보셨다니 반가워요. ^^ 봄날은 간다도 그렇고 외출도 두번보니 더 좋더군요.^^ 마린님 즐거운 추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