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기록해야 할 내용이 있긴 하지만, 일단은 최근의 일을 먼저 기록으로 남긴다.

 지난 2월 12일, 파르티잔 산악회의 시산제 산행이 있었다. 나도 파르티잔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1기 선배님들께서 서울에서 차를 몰고 시산제 진행 산에까지 찾아 오시는 걸 보면, 우린 산악회가 그냥 하는 등산 모임은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여튼 이번 시산제는 남덕유산에서 치르기로 결정이 났고, 우리는 그에 맞춰 산행을 준비했다. 하지만 우리가 잡은 산행 코스는 다른 사람들이 전혀 찾지 않은 등산로로, 우리 대장님이 앞장서 눈길을 헤쳐가야했다.(이걸 전문 용어로 뭐라 했는데, 들어도 기억하지 못하는 걸 보면, 내 삶에 딱히 중요한 것 같진 않다. 하긴, 나는 절대로 눈길에 앞장서 산행하지 않을 것 같다.) 허리 높이만큼 쌓인 눈을 헤쳐가며 걸어가야 한다는 건,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몹시-이것도 측정불가능한 어떤 영역을 지칭하는 말이다.-힘들 것 같다. 뒤에 따르는 사람들도 힘들어 지친 걸 보면, 앞장선 사람의 입장이랴 더 말해 무엇하랴.

 

 나는 시산제도 시산제이지만, 나의 제자와 함께 하는 산행이어서 더 뜻깊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반장. 왜 3학년 때 반장이 아니냐고? 내가 3학년 담임에서 잘렸으니까~~ㅋㅋㅋ  이래 저래 어려움이 없지 않았지만, 그 시절의 분위기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물론 반장의 희생이 컸음은 내가 잘 안다. 나는 자율 학습도 학부모와 학생의 동의 하에 다 자율로 해줬으니까. 그러니 학교 측에서는 좀 못 마땅했을 수도 있다. 그걸로 우리 반을 핍박하는 어리석은 사람도 있었다.) 특히 이 녀석과는 독서 토론 동아리를 하면서 꽤 많은 경험을 공유하지 않았던가. 어떻게 성장할지 잘은 모르지만, 함께 읽고 토론하고 글을 쓰면서 공유했던 삶의 가치나 방향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믿는다.(어쩌면 이것도 무리한 기대일 수도...)

 

 시산제. 나는 시산제 때마다 3가지의 바람을 드러냈지. 그런데 돌아보면 하나도 틀리지 않게 다 들어주신 것 같다. 내 바람이 소박했나? 이래 물으면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 올해도 역시 나는 소박한 바람 셋만 말씀드렸다. 그런데 대강의 대원들 바람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힘들어서 이제 사진으로 이야기해야겠다.

 

 

 

 덕유산 산행 초입 부분이지 싶다. 나는 여기서 `우와~ 여기 넓고 좋네. 시산제 딱이네~~!!` 했지. 하지만, 우린 여기서 약 2시간은 더 눈길을 헤쳐가야 했다. 왜냐고? 산행 시작 20분 정도 돼서 찍은 곳이 여기거든~ㅋ

 

 

 찍사와 넘 거리가 멀었나? 앞에서 잠깐 쉬고 띡은 사진이 시산제 사진이구먼. 내가 이 사진을 고른 건, 대현이 때문. 대현이는 산악회 회장님도 지냈지만, 나와 동갑이다~ㅋㅋ

 

 시산제 상차림이 이렇게 소박하게 차려진다.

 

 

 파르티잔. 좀 무섭긴 한데, 이런 깃발도 붙고... 대장님이 왼쪽에 서 계시네.

 

 

 파르티잔이라고, 빡센 사람만 있는 것은 아임~~!! 이런 처자, 아줌씨, 언니, 누님 들도 다 있다는 거~~~

  시산제 때 참석한 모든 대원이 보이남요? 우린 이래 갖고 산신님께 기원한답니다.

 

  서울서 내려오신 선배님께서 산신을 부르는 식을 거행하고요.

 

 뭔지는 모르지만, 저는 이렇게 묵념을 올리고 있네요.

 

이렇게 모든 대원이 산에 기원하는 절을 올리지요.

 

 

산악회 대장님이 술을 한 잔 올리는데, 사실, 술을 따르는 우리 하선배님의 표정이 더 좋습니다.

 

  제가 좀 좋아하는 사람입니다.(산악회 기수로는 선배인데, 인생으로는 후배죠. 그래서 마 00야 래 부럽니다.) 웃기기도 하고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참 따뜻한 후배입니다.

 

 

 저와 제 제자가 잔을 올리는 군요.

 

 

 간절했습니다.

 

 

  제 바람은....

 

 캬, 이렇게 줄줄줄....

 

 

 혼자 독 사진~ㅋ

 

  시산제 단체 사진 촬영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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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2012-02-28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돈이닷..ㅋㅋ 제가 아는 오○○도 보이네용! 시산제때마다 소원하던 일이 다 이뤄졌다니 신기해요. ㅎㅎ 이번에도 간절히 바라던 일 모두 이뤄지시길 바래요. ^^
 

알라딘에 몹시 오랜만에 글을 쓴다. 기록한다는 것은 생각과 삶을 정리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기록하지 못했다는 것은 정리할 만큼의 생각과 삶이 없었다는 것일 수도 있겠고(정리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생각과 삶이 정리할 수 없을 지경으로 복잡다단했다는 것일 수도 있겠다. 물론 다른 경우도 있겠지. 게을렀다거나, 몹시 바빴다거나. 나는 어느 경우일까? 여튼 이렇게 앉아 무언가를 기록하며 정리하겠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네 가지 경우는 아니란 말씀!

 

 한동안은 마음살을 심하게 앓았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바람보다 더 자주 변하는 것이어서 나도 잘 갈피를 못잡았다. 그만큼 뒤뚱거린 생활이었다. 그 마음살에서 거리를 두고 싶어 나의 동굴로 숨어들거나 생활의 근거지를 옮겨도 보았지만, 결국엔 관계를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동굴은 소싯적처럼 낭만적이지 않았고, 쓸쓸하지도 않았으며, 그저 삭막한 고통만 덩그러니 앉아 있을 따름이었다. 새로운 생활의 근거지 역시 내 생활의 근거지가 되지는 못했다. 하여, 나는 또 나의 현실로 돌아왔고, 여기서 길을 모색하기로 했다.

 

 잠깐 생활의 근거지를 옮겼을 때도 아예 의미가 없지 않았다. 슬뫼와 볕따신 곳에서 볕바라기를 하며 보낸 그 포시라운 순간은 잊힐 것 같지 않다. 슬뫼를 데리고 나의 고향, 구복으로 갔다. 그날은 바람이 무척 고요했으며, 볕에서는 봄내음이 물씬 났다. 이미 시장통 할머니는 여린 쑥을 내다 팔고 있었고, 우리는 그것으로 쑥국을 맛나게 끓여 먹기도 했다.

 나의 고향 마을 볕 바른 곳에 산소가 있다. 정말 하루 종일 볕이 들 정도로 환한 곳이다. 설 연휴에도 찾아보지 않았던 터라, 좀 마음이 쓰여서 슬뫼와 찾아 나섰다. 슬뫼에게는 증조부모 묘소에 들렀다가 할아버지 산소에 들렀다. 지난 해 이장을 하면서 평장을 하고 작은 비석을 세웠다. 고향 앞바다가 훤히 내다보이는 볕바른 곳이다. 한때는 우리 식구들 입에 들어가는 푸성귀를 재배하던 밭이기도 해서 제법 넓다. 나는 올봄 그곳에다 편백이며 호두며, 백일홍을 심어보겠다고 터를 잡아 둔 참이었다. 슬뫼한테 ``슬뫼야, 할아버지한테 세배하자.``했더니 엉덩이를 치켜들며 절을 한다. 이만큼 큰 게 대견하기도 하면서, 나의 아버지가 손주를 안아 보시지 못한 데에 대한 회한은 또 어쩔 수 없다.

 간단한 성묘를 마치고 고향 앞 바다에 떼를 지어 날으는 갈매기 구경을 한창 즐겼다. 끼룩끼룩끼룩. 비릿한(나에게는 결코 부정적이지 않다.) 바닷 내음과 갈매기와 흔들리는 파도와 뱃소리와 검게 그을린 바닷사람의 얼굴을 볼작시면, 내 콧등은 어김없이 시큰거린다.(11년을 산 고향 동네이지만, 내 정서와 가치관은 이미 이때 정리되었지 싶다. 그만큼 내 삶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공간이다.) 그러고보니, 작년에 우리 학교 작가 초청 강연회를 하면서 소설가 한창훈 선생님을 모시기도 했다. 순전히 바다와 연관된 나의 관념과 그의 작품 경향 탓이기도 했음을 고백해야겠다.

 

 이렇게 여유롭게 지난 시간을 보냈나, 회상하면서 그런 반감 비슷한 의문이 든다. 몸보다 정신적으로 몹시 바빴던 것 같은데, 앞에 쓴 걸 다시 보니 무척 여유롭다. 하지만 일들도 무척 많았다. 당장 어제는 3시간의 긴 회의를 열차까지 타고 가서 했고(집에 들어오니 자정 가까운 시간이었다.), 우리 지회 직무 연수 건으로 두 차례 회의를 해야 했다. 지회 일도 무언가를 맡았으므로(사실, 나는 새로운 집행부를 꾸린 김진수 지회장님한테 힘을 주고 싶은 마음이 커서 결의했다. 저렇게 마음을 내신 마당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음 마음이 내 현실-육아-보다 앞섰다.) 지회 이런 저런 일에 또 몸과 마음을 내야 했다. 직무 연수 기획안을 내면서 또 얼마나 내 몸과 정신을 괴롭혔나. 그리고 햇귀 총회를 준비하면서 내 마음은 얼마나 분주했나. 정말이지 햇귀 소식지에 글을 썼지만, 육아를 하기 위해 육아 휴직을 한 건지, 일을 도맡기 위해 휴직을 한 건지, 그 목적이 불분명할 때가 있어, 그 경계가 모호해서, 나 스스로 한심스러울 때가 있는 요즘이다.

 

 오늘 저녁, 슬뫼가 잠을 잘 자다가 경기 비슷한 증세를 보였다. 상황을 지켜보다가 주00 선생님한테 전화를 드렸다. 어디 어디 침을 놓아주라는 말을 들었지만, 집에 침도 없거니와, 그 어디 어디가 어디 어디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결국, 가까운 한의원으로 가보라는 말씀을 듣고, 옷도 입히지 않은 채 이불을 싸매고 한의원으로 갔다. 그 사이 애기 엄마는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나도 운전을 좀 급하게 했다. 한의원에서는 경기는 아닌 것 같고 약간의 체기가 있는 것 같으니까 그에 적합한 처방을 내렸다. 근데, 내 몸도 스스로 걱정이 되었기 때문에 진맥을 받아 보기로 했다. `하도 기가 차는 일이 많다.`는 핑계로 받아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기가 멈춰 있네요, 이런 말씀을 들어야 했다. 비장과 위장의 기능이 현격히 저하되어 있으며, 몹시 신경을 쓰는 상황이며, 그러니 하루에 2끼를 먹어도 배고픔을 못 느낀다는 거였다. 내가 갖고 태어난 체질적 성향과 지금 몸이 드러내는 증상은 전혀 다르다는 거였다. 결국, 나도 침을 맞고 처방을 받아와야 했다.

 

 최근 들어 건강에 대한 염려가 많다. 그래서 위와 대장 내시경 검사를 예약해두고 있다.(정00 선생님의 `같이 갈까?`하는 말은 두고 두고 고맙게 남을 것 같다.) 활동도 활동이지만, 육아도 육아이지만, 내 건강을 살피지 않으면, 이 모든 게 허사일 수 있다는 생각이 최근 부쩍 들었다.(아마, 이건 아버지와의 경험에서 온 것일 수도 있겠다.)

 

 오늘 한의사 선생님의 말로 마무리해야겠다.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몸이 맛이 간 것 같아요)

 

 그래도 몸은 스스로 챙겨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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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8 2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1년 2명 뿐이던 남성 육아휴직자는 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2002년에도 78명에 그쳤다. 이후 2003년 104명, 2004년 181명, 2005년 208명, 2006년 230명, 2007년 310명, 2008년 355명 등으로 서서히 증가하던 남성 육아휴직자는 2009년 502명, 지난해 819명으로 큰 폭 증가한데 이어 올해는 1000명을 돌파했다. 

- 펌.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11215111423§ion=03

 

  저 위의 기사는 언제적 이야기일까? 조금만 유심히 들여다보면 이미 추론이 가능할 거다. 그렇다, 2011년 12월 어느날의 신문 기사 가운데 한 부분이다. 놀랍지 않은가? 2001년, 21세기, 뉴 밀레니엄이라고 엄청난 엄살을 떨었던 그 해에도 남성 육아 휴직자는 단 둘이었다. 그리고 10년 만에 1000명을 돌파했다는 기사다.

 나는 이 기사를 읽고 내가 단위를 잘못 헤아렸나 좀 헷갈려서 다시 확인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천 단위. 그것도 앞 자리가 2도 아니고 1인 천 단위. 그걸 확인하고도 많이 의아했다. `아니, 이것 밖에 안 돼?` 남녀 공동의 육아 태도에 관한 글이나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는데, 고작 이거야?

 스스로 `에이, 고작 이거야?`하는 물음 뒤에는 이 세상 남자에 대한 탓 보다 남성의 육아 휴직을 은연중 용납하지 못하는 사회 구조에 대한 차가운 시선이 깔려 있다. 내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해보면, 육아 휴직을 하고픈 마음이 커도 현실적으로 그게 전혀 가당치 않은 이야기라는 걸 느끼곤 한다. 그게 경제적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고, 직장의 고용 문제와 직결되는 거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여기서 굳이 남녀의 육아 태도의 문제, 남녀 성 역할의 문제까지 끌고 들어와서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법적으로 남성의 육아 휴직이 보장되어 있지만, 기업 프렌들리한 이 사회에서는 참으로 쉽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이다.(기업의 문제에서 법과 현실의 괴리는 이미 확인된 바가 아닌가? 하지만 4월과 12월 이후, 새로운 고용 문화, 기업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일말의 기대를 하는 건 나만의 일은 아닐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오늘 육아 휴직서를 제출했다. 휴직인 가운데도 이러 저러하게 공무원으로서의 품위를 훼손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약서와 휴직의 기간을 담은 휴직서가 전부였다. 내가 그간 10년 동안 해온 일자리를 잠깐 쉬는 것이 달랑 두 장의 종이로 결정된다는 것이 싱거웠지만, 한편으로는 휴직의 절차가 까다롭지 않아서 좋구나, 하는 양면적인 반응들이 내 안에서 일었다.

 

 나는 3월2일부터 8월 19일까지, 한 학기 동안 육아 휴직에 들어간다. 주위 동료들은 `아니, 샘 왜 육아 휴직 들어가요?`, `샘, 정말 대단해요. 남자가 애를 보겠다는 게`, `샘, 애 봐 줄 사람이 없어요?` 등 좀은 다양한 반응들이 있었는데, 대강 정리하면 그렇다. `애를 봐줄 사람이 없어서 휴직을 하는가?` `육아 휴직 하는 남자, 참 대단해요.`

 

 꽤 전부터 우리 집 서가에 꽂혀 있던 책을 뽑아 들었다. 제목은 `젖병을 든 아빠, 아이와 함께 크는 이야기`(이강옥, 돌베개)  내가 갖고 있는 책이2000년에 출판된 책이니, 아마 2002년인가 그 무렵에 구입한 걸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내 나이, 스물여섯 그 무렵. 결혼이니 육아니 별 생각이 많지 않을 무렵, 나는 왜 이 책을 샀던 걸까?

 

 아쉽게도(이렇게 말하지만 그 무게는 온전히 전달될 것 같지 않다.) 나는 나의 아버지와의 기억이 거의 없다. 어느 가을 무인도에 동네 사람들이 해치(추수 후에 동네 주민들이 다함께 한 판 노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곤 했다.)를 가서 찍은 아빠와의 사진이 있지. 아마도 그게 내 6살 무렵이지 싶다. 다른 사진도 있긴 하지만, 앞에서 말한 기억 말고는 정말이지 함께 한 순간의 기억이 내게는 전혀 없다.(새벽 뱃일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김치 국밥을 가마솥에 끓여 나만을 깨워 함께 먹었다는 이야기 어디선가 전해 들었지만, 그 따뜻한, 기억하고픈 그 순간이 내게는 남아 있지 않다.)

 

 이것이 내가 지금껏 살아온 과정에서 경험한 가장 깊은 상실감이었다. 어린 나이에 이 상실감을 표현할 길을 찾지 못했고, 그렇다고 남들처럼 엇나가는 길을 걸을 수도 없었다. 아버지가 없는 집안의 장남이라는 것은 어린 나이에서도 충분히 자각이 가능한 위치였으며, 그러한 자각은 나의 위치와 역할을 강제하는 측면이 강했으니까.

 

 그래, 나는 나의 큰 상실감을 무엇으로 보상받고 싶었다. 그 첫째는 내가 누리지 못한 아버지와의 경험과 사랑이었지. 그래서 나는 총각 시절에도 `남성의 육아 휴직`을 꿈꾸었고, 앞에서 말한 책을 구입하는 것으로까지 이어졌다. 이제서야 저 책이 내 현실의 무게에 맞게 이어졌고, 펼쳐들었다. 10년만의 일이다. 내 꿈을 이루게 한 나의 아내나 슬뫼에게 무척 고마운 일이다.

 

 한 학기의 휴직으로 뭐 자식과의 관계에서 큰 걸 경험하겠다고 너무 호들갑 떠는 것은 아닐까, 그런 경계가 생긴다. 하지만 자식과의 관계에서 소중하지 않은 그 순간이 존재했던가? 특히 아내가 8일 가까이 캄보디아로 여행을 떠난 사이, 나와 슬뫼가 오롯이 느낀 관계를 생각한다면, 그 6개월의 육아 휴직은 나와 슬뫼의 사이에 엄청난 잔 물결을 남길 것이며, 그것으로 각자의 생에 추억이거나 기억을 안겨줄 것 같다. 나는 지금 그런 생각만으로 가슴이 벅차며, 만나게 될 경제적 어려움 정도는 아이와 함께 느끼고 누리게 될 행복한 시간에 비하면 그리 무겁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 또 나에게 새로운 생이 펼쳐진는 셈이다. 긴장되고 설레고 약간은 걱정되지만, 그것보다 우리의 사랑, 그 순간이 충만하게 채워질 수 있길, 간절함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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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2-02-07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결정 하셨네요~.
휴직 기간 동안 좋은 추억 만드시면 충만하게 채워가시길 바랍니다.^^

햇귀 2012-02-07 15:19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먼 데서 지지와 격려를 받으니까 더 힘이 나네요~ㅋ

아내가 했던 만큼 잘 할 수 있을까,
혹, 내가 아이를 더 망가뜨리는 것은 아닐까, 염려도 있답니다~ㅋㅋㅋ

뭐 그렇다 하더라도,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의 여유를 생각한다면,
이런 결정을 할 수 있는 것도 저한테는 큰 복이라는 생각을 하고요.
 

`배움의 공동체`와 수업의 혁신1)


Ⅰ. 배움의 공동체에 대한 이해

1. 철학적 원리

가. 공공성 - 공공적인 사명과 이를 담당하는 교사의 책임은 학생 한 명 한 명의 배울 권리를 실현하는 것

  나. 민주주의 - 학교 교육의 목적은 민주주의사회의 건설. 여기서 민주주의는 존 듀이가 정의한 것처럼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

  다. 탁월성 - 스스로 최선을 다하여 최고를 추구한다는 의미. 이것은 `발돋움과 점프가 있는 배움`으로 실현가능.


2. 선결과제

  가. 교실에서의 배움을 개인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하여 공동체적인 실천으로 재구성하는 일

  나. 학교를 교사들이 공동으로 함께 성장하는 장소로 개혁하는 일.

  다. 학부모와 시민이 교사와 협력하여 교육활동에 참가하고 자신도 성장하는 학교를 건설하는 일.

  라. 학교의 자율성을 학교 내부에서부터 수립하여 학교 조직의 구조와 교육행정과의 관계를 민주화하는 일.

  마. 학교를 자율적인 `전문가 조직`으로 재조직하는 일. 성찰이나 반성에 기초한 실천적인 견식을 행사하는 `반성적 실천가`로서의 전문가

  바. 수업의 사례연구를 중심으로 한 교내연수를 정착시키는 일.


Ⅱ. 배움을 중심으로 한 수업창조

1. 대화적 실천으로서의 `배움`의 재개념화

  가. 수업을 지식이나 기능을 획득하고 축적하는 활동으로부터 지식이나 기능을 표현하고 공유하는 활동을 전환하는 일.

  나. 수업에 `매개된 활동`을 조직하는 일 - 교재나 도구로서 교실에서 준비된 `대인관계`, `사물`

  다. 협동적인 활동을 실현하는 일 - 다른 사람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의존성`과 스스로의 아이디어를 아낌없이 제공하는 새로 배우는 `호혜적 배움`으로 성립

  라. 표현하고 공유하는 활동으로 전환


                        <대화적 실천으로서의 배움>

       배움의 세 가지 차원       수업에서의 차원         배움의 의미


        대상과의 만남과 대화 ---  작업적인 활동 -----   활동적인 배움

        타자와의 만남과 대화 ---  소집단 활동   ------  협동적인 배움

        자기와의 만남과 대화 ---  표현과 공유   ------  표현적인 배움


 2. 수업에서의 교사의 역할

  가. 듣기

  나. 연결짓기

    - 교재와 아이들, 이 아이와 저 아이, 오늘 수업과 내일 수업, 지시과 지식, 어제 배운 것과 오늘 배울 것, 교실에서 배우는 것과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 아이들의 현재와 미래

  다. 되돌리기


Ⅲ. 수업 사례를 중심으로 한 교내연수

1. 수업 연구의 절차와 방법

  가. 관찰위치 - 교실의 옆면에서, 가능하면 앞방향의 측면에서

  나. 무엇을 볼 것인가

    - 학습자에의 대응

    - 듣는 것을 중심으로 교실 만들기가 진행되고 있는가

 

2. 수업 사례를 중심으로 한 교내연수

  가. 수업공개를 통한 사례연구의 축적

  나. 사전연구보다 수업 후의 성찰에 충실할 것

     - 배움의 창조를 목적으로 한 수업 연구에서는 `어디에서 배움이 성립하고 있으며 어디에서 배움이 박히고 있는가를 중심으로 연구해야 할 것이며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면밀하게 연구하는 것이 중심과제가 된다.

  다. 자신의 주제를 가질 것


3. 연구협의회의 개선

  가. 이야기 대상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어디에서 배우고 어디에서 주춤거리고 있는가?`라는 사실에서 찾는 일

  나. 이야기 과정에서 참관자는 수업자에의 `조언`이 아니라 그 수업을 관찰하고 스스로 배운 것을 이야기하고 그 다양성을 교류하며 함께 배우는 일

  다. 이야기하는 장에서 모든 참가자는 최소한 한마디는 반드시 발언해야 하며, 목소리 큰 사람이나 지도적인 인물에 지배되지 않는 민주적인 토의를 실현

  라. 사회자의 역할 최소화


1) 배움의 공동체 연구회 대표 손우정의 글을 요약. 2011년 전교조 부산지부 공립서부지회 `새학교 만들기를 위한 중급 직무연수`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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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귀 2012-02-06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 몇 년 사이 교육과 수업에 대한 성찰적 논의들이 적극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사토 마나부 교수의 배움의 공동체와 혁신학교의 현장 실천들이 교육의 새로운 모델로 이야기되고 있다. 부산에서도 몇몇 학습 소모임이 꾸려져서 이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다.
 

  지난 한 달간 나는 긴 휴가를 받은 느낌이었다. 물론 사이 사이 일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내가 시간을 배열하고 사건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주체적인 한 달을 보낸 느낌이다. 또한 한없이 게으르게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 게으름이 지겨워지면 책을 읽었고. 지난 한 달간 읽은 책의 목록은 이랬다.

 

 2012년 새 해가 밝고 제일 먼저 읽은 책이다. 법조계의 내밀한 이야기를 기대하며 펼쳤다가, 저자의 내밀함을 엿보는 것으로 빠진 책. 기대와는 달랐지만 저자의 성찰에 감복하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 진솔함이 무척 고맙다.(사춘기 시절, 진솔함을 좀은 쉽게 여겼다. 있는 그대로, 경험한 대로,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게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들 수록 진솔함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내 모습을 볼 때, `이렇게 가면을 쓰고 사는 게 잘 사는 일인가?`하는 의구심이 든다. 살면서 페르소나 같은 게 아예 없으면 안 되겠지만, 어찌됐든 진솔함을 향한 내밀한 성찰은 이어져야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교사 그만뒀습니다`는 문장을 생각했지만, ㅋㅋ 검사와는 제법 무게감이 다르게 느껴졌다.

 

 

 이 책은 방학 전에 학교 도서관에서 빌렸다. 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한 20년 전 쯤인 것 같은데, 폐가제로 운영되던 내 중학교 도서실에서 빌려 읽었었지. 그때 읽으면서도 강가에 앉아 있는 싯다르타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강`의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궁금해하기도 했었고.(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 옆에는 태봉천 이라고, 그리 넓지 않은 하천이 흘렀다.)

 이 소설에 의하면 싯다르타는 강의 소리를 통해 세계의 단일성을 깨닫게 된다. 너와 내가 하나이고, 악과 선이 하나이고, 미와 추, 젊음과 늙음이 모두 하나라는 이야기인데, 꽤 철학적이다. 그러니 판단보다 관조가 이 세상의 숙제를 향한 의미있는 태도일 수 있겠다 싶은데, 아직 체화되기에는 그 경지가 높아 보인다. 또한 <모든 진리는 그 반대도 진리이다.>는 깨달음은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내 주위엔 불교 공부에 관심을 둔 이가 좀 있다. 종교적 의미보다 철학적인 공부에 좀 가까운 편인데, 나 역시 기회가 되면 불교 공부를 해보고 싶다.

 

 최규석의 신작 만화다. 우화의 형식을 빌어왔는데, 현실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실로 날카롭다. 최규석의 만화는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쥬>, <대한민국원주민>, <습지생태보고서>, <사이시옷>, <100도씨>를 읽었는데, 하나같이 `애매한` 느낌이었다. 이번에 읽은 <지금은 없는 이야기>는 알듯 말듯 `애매함`의 극치였다. 사실, 이 말은 이 세상에 분명 존재하는 이야기인데, `지금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내 바람 사이의 간극 때문에 생겨난 것일 수도 있고. 그러니 이 책의 제목은 극명한 반어적 표현에 가까운 느낌이다.

 정말 <지금은 없는 이야기>의 이야기가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

 

 

 

  이 역시 만화다. `사람을 그리면 사람이 소중해지고, 꽃을 그리면 꽃이 소중해지고, 돌멩이를 그리면 돌멩이가 소중해진다`고 말하는 천상 그림쟁이 박재동 화백의 책.

 몇 해 전 겨울, 부산에서 이름 꽤나 알려진 선생님들과 함께 제주도 해안길을 걷는 운이 있었다.(그때는 지금처럼 올레가 개발되기 전이었다.) 이상석, 조향미, 노영민 등 글을 써서 알려진 분들이신데, 우리는 길 위에서 시낭송회도 열고 그랬다. 나는 1정 연수 때문에 조금 늦게 합류를 했는데, 내 합류 직전까지 이 책의 저자 박재동 화백이 일행과 함께 했단다. 오돌또기 행사 때문에 제주도에 내려온 차에 이상석 선생님과의 돈독한 친분으로 합류하게 되신 모양이다. 그런데 걷다가 쉬다가, 조금 여유만 생기면 스케치북 같은 것에 그림을 슥슥 그리더라는 이야기, 노영민 샘한테서 전해들었지. 거기서 그림쟁이의 냄새가 물씬 났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순간 순간, 존재하는 모든 것을 그리고 싶어하는 화백의 열정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렇게해서 그려진 것들이 따숩게 우리들한테 오는 느낌. 이 책은 이 세상을 향한 낮지만 따뜻한 저자의 시선을 느끼게 해준 책이다.

 

 살까 말까, 읽을까 말까, 좀은 망설였던 책이다. 이유는 송경동의 치열함이 진지함이 진솔함이 인간됨이 나를 무척 부끄럽게 하기 때문이었다.

 김진숙, 85호 크레인, 희망버스. 특히 희망버스는 `나꼼수`와 함게 작년을 대표하는 키워드가 아닐까 싶다. 몇 해 전 언론을 도배했던 촛불시위보다 밀도감이 있었으며, 파괴력이 컸으니까. 그 희망버스의 주도적 기획자. 그저 사람이 사랍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는 일 외는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는 시인의 상상력에 시작된 그 일. 그 일이 그룹의 회장을 청문회장으로 불러들이고, 국민들에게 비정규직, 정리해고의 문제를 삶의 위기로 느끼고 스스로 나설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운 혁명가.

 사실, 이 책은 희망버스에 할애한 양은 극히 적다. 오히려 자기가 살아온 과정, 만난 노동자, 삼성에서 의문으로 죽어간 꽃다운 청춘에 대한 이야기 많다. 다행이다. 내가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려줘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전혀 시적이지 않다.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이것과 저것이 난무하는 난잡한 세상. 그런데 그 세상을 그려보인 시인의 문체는 극렬한 사실주의에 가까우면서도 문체는 지극히 시적이다. 서정이 세상과 화자의 조화와 합일을 추구한다고? 안타깝게도 송경동의 글에서는 그게 빗나간다. 하지만 송경동의 글은 충분히 서정적이며 사실적이다.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다.

 

 

 집에 대한 고민으로 이 책을 골랐다. 나는 아파트가 주거공간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에 집에 대한 생각이 좀 많다. 내가 사는 집은 어떠해야 하는가? 나는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가?

 읽다 보니까 집에 대한 이야기는 극히 적고 자기 마음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집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시작해서 내 마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로 이어지는 구조.

 나는 넓은 집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 사는 평수도 충분하다고 여기며, 다만 중요한 것은 배치나 정리라고 여기는 편인데, 저자 역시 나의 생각과 같았다. 그리고 마음 역시 그러하다는 것. 마음도 정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인데, 필요없는 것, 규모가 큰 것 등은 버려야 한다. 그런데 집은 그리 할 수 있겠는데, 마음의 문제는 역시나 아직 먼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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