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달간 나는 긴 휴가를 받은 느낌이었다. 물론 사이 사이 일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내가 시간을 배열하고 사건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주체적인 한 달을 보낸 느낌이다. 또한 한없이 게으르게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 게으름이 지겨워지면 책을 읽었고. 지난 한 달간 읽은 책의 목록은 이랬다.
2012년 새 해가 밝고 제일 먼저 읽은 책이다. 법조계의 내밀한 이야기를 기대하며 펼쳤다가, 저자의 내밀함을 엿보는 것으로 빠진 책. 기대와는 달랐지만 저자의 성찰에 감복하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 진솔함이 무척 고맙다.(사춘기 시절, 진솔함을 좀은 쉽게 여겼다. 있는 그대로, 경험한 대로,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게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들 수록 진솔함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내 모습을 볼 때, `이렇게 가면을 쓰고 사는 게 잘 사는 일인가?`하는 의구심이 든다. 살면서 페르소나 같은 게 아예 없으면 안 되겠지만, 어찌됐든 진솔함을 향한 내밀한 성찰은 이어져야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교사 그만뒀습니다`는 문장을 생각했지만, ㅋㅋ 검사와는 제법 무게감이 다르게 느껴졌다.
이 책은 방학 전에 학교 도서관에서 빌렸다. 아주 오래 전, 그러니까 한 20년 전 쯤인 것 같은데, 폐가제로 운영되던 내 중학교 도서실에서 빌려 읽었었지. 그때 읽으면서도 강가에 앉아 있는 싯다르타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강`의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궁금해하기도 했었고.(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 옆에는 태봉천 이라고, 그리 넓지 않은 하천이 흘렀다.)
이 소설에 의하면 싯다르타는 강의 소리를 통해 세계의 단일성을 깨닫게 된다. 너와 내가 하나이고, 악과 선이 하나이고, 미와 추, 젊음과 늙음이 모두 하나라는 이야기인데, 꽤 철학적이다. 그러니 판단보다 관조가 이 세상의 숙제를 향한 의미있는 태도일 수 있겠다 싶은데, 아직 체화되기에는 그 경지가 높아 보인다. 또한 <모든 진리는 그 반대도 진리이다.>는 깨달음은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내 주위엔 불교 공부에 관심을 둔 이가 좀 있다. 종교적 의미보다 철학적인 공부에 좀 가까운 편인데, 나 역시 기회가 되면 불교 공부를 해보고 싶다.
최규석의 신작 만화다. 우화의 형식을 빌어왔는데, 현실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실로 날카롭다. 최규석의 만화는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쥬>, <대한민국원주민>, <습지생태보고서>, <사이시옷>, <100도씨>를 읽었는데, 하나같이 `애매한` 느낌이었다. 이번에 읽은 <지금은 없는 이야기>는 알듯 말듯 `애매함`의 극치였다. 사실, 이 말은 이 세상에 분명 존재하는 이야기인데, `지금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내 바람 사이의 간극 때문에 생겨난 것일 수도 있고. 그러니 이 책의 제목은 극명한 반어적 표현에 가까운 느낌이다.
정말 <지금은 없는 이야기>의 이야기가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
이 역시 만화다. `사람을 그리면 사람이 소중해지고, 꽃을 그리면 꽃이 소중해지고, 돌멩이를 그리면 돌멩이가 소중해진다`고 말하는 천상 그림쟁이 박재동 화백의 책.
몇 해 전 겨울, 부산에서 이름 꽤나 알려진 선생님들과 함께 제주도 해안길을 걷는 운이 있었다.(그때는 지금처럼 올레가 개발되기 전이었다.) 이상석, 조향미, 노영민 등 글을 써서 알려진 분들이신데, 우리는 길 위에서 시낭송회도 열고 그랬다. 나는 1정 연수 때문에 조금 늦게 합류를 했는데, 내 합류 직전까지 이 책의 저자 박재동 화백이 일행과 함께 했단다. 오돌또기 행사 때문에 제주도에 내려온 차에 이상석 선생님과의 돈독한 친분으로 합류하게 되신 모양이다. 그런데 걷다가 쉬다가, 조금 여유만 생기면 스케치북 같은 것에 그림을 슥슥 그리더라는 이야기, 노영민 샘한테서 전해들었지. 거기서 그림쟁이의 냄새가 물씬 났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순간 순간, 존재하는 모든 것을 그리고 싶어하는 화백의 열정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렇게해서 그려진 것들이 따숩게 우리들한테 오는 느낌. 이 책은 이 세상을 향한 낮지만 따뜻한 저자의 시선을 느끼게 해준 책이다.
살까 말까, 읽을까 말까, 좀은 망설였던 책이다. 이유는 송경동의 치열함이 진지함이 진솔함이 인간됨이 나를 무척 부끄럽게 하기 때문이었다.
김진숙, 85호 크레인, 희망버스. 특히 희망버스는 `나꼼수`와 함게 작년을 대표하는 키워드가 아닐까 싶다. 몇 해 전 언론을 도배했던 촛불시위보다 밀도감이 있었으며, 파괴력이 컸으니까. 그 희망버스의 주도적 기획자. 그저 사람이 사랍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는 일 외는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는 시인의 상상력에 시작된 그 일. 그 일이 그룹의 회장을 청문회장으로 불러들이고, 국민들에게 비정규직, 정리해고의 문제를 삶의 위기로 느끼고 스스로 나설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운 혁명가.
사실, 이 책은 희망버스에 할애한 양은 극히 적다. 오히려 자기가 살아온 과정, 만난 노동자, 삼성에서 의문으로 죽어간 꽃다운 청춘에 대한 이야기 많다. 다행이다. 내가 알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려줘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전혀 시적이지 않다.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 이것과 저것이 난무하는 난잡한 세상. 그런데 그 세상을 그려보인 시인의 문체는 극렬한 사실주의에 가까우면서도 문체는 지극히 시적이다. 서정이 세상과 화자의 조화와 합일을 추구한다고? 안타깝게도 송경동의 글에서는 그게 빗나간다. 하지만 송경동의 글은 충분히 서정적이며 사실적이다.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다.
집에 대한 고민으로 이 책을 골랐다. 나는 아파트가 주거공간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에 집에 대한 생각이 좀 많다. 내가 사는 집은 어떠해야 하는가? 나는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가?
읽다 보니까 집에 대한 이야기는 극히 적고 자기 마음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집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시작해서 내 마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로 이어지는 구조.
나는 넓은 집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 사는 평수도 충분하다고 여기며, 다만 중요한 것은 배치나 정리라고 여기는 편인데, 저자 역시 나의 생각과 같았다. 그리고 마음 역시 그러하다는 것. 마음도 정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인데, 필요없는 것, 규모가 큰 것 등은 버려야 한다. 그런데 집은 그리 할 수 있겠는데, 마음의 문제는 역시나 아직 먼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