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여행자 몽도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진형준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우연한 발견, 르 클레지오

 르 클레지오. 프랑스의 유명 소설가. 2008년 노벨 문학상 수상.

 한 달 전만 하더라도 나는 르 클레지오의 존재 자체를 몰랐다. 부산에서 큰 인문학 행사를 하고, 기조 발제자로 온다는 내용의 공문을 내가 접수했으면서도 그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내 관심 밖의 일이었으니 당연한 일.

 그런데 우연한 일로 그와 나가 닿는 일이 생겼다. 우리 학교 한 선생님의 `몽도`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이었다. 나는 `모모`는 알고 있었는데, `모모`보다 `몽도`라니. 호기심이 동했다. 그리고 바로 구입했다. 그의 소설집 `어린 여행자 몽도`

 지금 그 소설집은 온통 띠지로 붙어 있다. 소설, 이렇게 읽기는 처음이다. 내가 띠지를 붙인 곳은 감각적 표현이 넘쳐나거나, 도저한 자연의 세계에 대한 묘사가 있는 부분이 주다. 가끔은 지극한 동심이 표현된 곳도 있다. 읽으면서, `우와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수 있지?` 놀란 부분이 그만큼 많았다는 거다. 언어의 마술적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 과감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린 여행자 몽도>의 매력

 누가 그랬다. 좋은 산문은 시가 된 산문이라고. 클레지오의 이 소설은 충분히 시적이다. 몽롱한 꿈같으면서도 서사도 탄탄하다. 각각의 단편을 읽고 나면, 이야기의 결 사이에 스며있는 몽환감에 한 편의 꿈을 꾼 것만 같다.

 그런데, 왜 그의 이 몽환적인 소설이 매력적일까? 앞에서 언급한 표현의 탁월함 말고.

 그것은 이 소설의 배경이 인간의 저 근원에 자리잡은 공백한 공간, 이상적 공간, 내밀히 꿈꾸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과 우승열패만이 존재하는 세상, 살기가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 눈 뜨고 출근하면 생각하거나 꿈꿀일 없이 일에 휘둘리다 늦은 밤 퇴근하고 쓰러져 자는 삶. 혹은 그것도 얻지 못해 이리 저리 방황하는 삶. 그럼에도 이들은 역시나 인간. 근원적으로 사람답게 살고 싶은 꿈을 갖고 있는 사람. 세상에 적응하며 파도타기 하듯 곡예를 부리지만, 마음 저 바닥에는 사랑을 꿈꾸고,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 나날들을 그리고들 있지 않겠나. 다만, 현실 논리에 갇히고 묻혀 적극적으로 추구할 수 없을 뿐!

 그런데 이 소설은 그런 공간을 충분히 드러내 보이고, 다시금 우리의 저 깊숙한 내면 세계를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으니 흡인력이 있어 보인다.

 소설집 <어린 여행자 몽도>는 8편의 중단편을 모아 놓았다.
 어린 여행자 몽도, 륄라비, 신이 사는 산, 물레, 바다를 본 적이 없는 소년, 아자랑, 하늘을 만나는 소녀, 목동들. 이 가운데 몇 작품만 언급을 하고 이 글을 마쳐야겠다.

`어린 여행자 몽도`

 `어린 여행자 몽도`에서 몽도는 10살 남짓의 소년, 고아다. 바다를 끼고 있는 어느 마을에서 살고 있으며 집시나 처지가 비슷한 어른들과 친구로 지낸다. 시멘트로 된 방파제에 혼자 앉아 바다, 방파제와 친구가 되어 지낸다. 특히, 움직이지도 못 하고 한 군데 처박혀 있어야 하는 방파제가 무척 심심해할 것 같아 쉼없이 배와 바다와 고래와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준다. 꼬마는 방파제도 그의 이야기를 좋아할 것이라 믿는다. 방파제가 얌전히 있는 것은 이야기가 좋아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몽도는 해변에 앉아 일출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클레지오는 몽도가 바라보는 일출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의유당의 `동명일기`의 일출 장면 묘사와 비교가 돼서 기록으로 남긴다.

네 시 삼십 분 경이면 하늘은 맑은 잿빛으로 물들었고, 바다 위로는 구름만 몇 점 떠 있을 뿐이었다. 해는 금방 떠오르지 않았지만, 밝아지는 불꽃 같은 것이 서서히 솟구칠 때쯤이면 몽도는 수평선 너머에 벌써 해가 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먼저 창백한 햇무리가 하늘 위로 펼쳐지면 수평선을 떨리게 만드는 야릇한 진동을 마음 깊이 느낄 수가 있었다. 그것은 마치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공을 들이는 것과 같았다. 이윽고 둥근 원판이 수면 위로 나타나 한 다발의 빛을 눈 속으로 곧장 던져 보내면 바다와 대지가 같은 빛깔로 물드는 듯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최초의 색과 최초의 그림자들이 형성되었다. 그렇지만 거리의 가로등들은 창백하고 피곤한 듯한 빛으로 여전히 불을 밝히고 있었다.  - 32쪽

 

  몽도가 일출 장면을 좋아하는 것처럼, 클레지오 역시 빛에 대한 관심이 많아 보인다. 이 소설집 곳곳에 빛의 여러 가지 면에 대해 감각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있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몽도`에서도 몽도가 우연히 베트남 여인이 사는 집을 발견하게 되고, 집을 감싸고 있는 햇빛에 반해서 `황금 햇살의 집`이라고 이름 붙인다. 그리고 그 여인과 가깝게 지내게 되고, 과자를 얻어 먹으며 이런 대화도 나눈다. 

  어느날, 몽도는 해변에서 한 노인을 만난다. 글을 모르는 몽도는 그 노인에게서 글을 배우게 되는데, 노인의 알파벳 설명이 무척 특이하다. 가령, A는 뒤쪽으로 꼬리를 접고 있는 커다란 파리처럼 생긴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O는 까만 하늘의 보름달 이야기를 하며, N은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런 설명 끝에 몽도(MONDO)는 자기의 이름을 풀이하게 되는데, `산이 있고, 달이 있고, 초승달에 인사하는 사람이 있고, 그리고 또 달이 있네요.`

 몽도는 혼자 해변에 앉아서 자신이 만난 사람들을 떠올리며 조용히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지탕, 코사크, 이다, 조인에 대해 생각하고 그들을 떠올리며 나직이 이야기를 하는데, 그들은 몽도가 보내는 생각과 이야기를 파동으로 감지한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고개를 갸웃할 뿐이다. 그래도 몽도는 만족한다. 그들이 파동으로 감지한다는 것은 몽도의 동심에 대해 공감하고 이해하며 동경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랬던 몽도가 공무원같아 보이는 사람에게 잡혀간다. 뭐 보호시설 같은 곳에 수용이 된다. 그리고 곧 몽도는 거기서 탈출해서 어디론가 사라지고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그러자 막 여름이 시작된 도시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추위를 느낀다. 그 전처럼 환하거나 따뜻한 밝은 빛의 이미지가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더 많은 것이 변했다. 

모든 것이 이미 전 같지 않았다. 얼마가 지난 어느 날, 지탕이 길거리에서 마술 쇼를 펼치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코사크는 이제 코사크가 아닌, 한 명의 주정뱅이에 불과했다. (중략) 일요화가는 하늘을 그리는 데 실패하고는 바다와 죽은 자연만을 그려댔으며, 공원의 작은 소년은 빨간색 세발자전거를 도둑맞았다. - 85쪽

   몽도의 사라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다들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소리와 어둠 한 가운데, 목동들

 중편 `목동들`을 읽고는 사막에 가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느꼈다.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는 공간. 그래서 더욱 생의 기운이 넘쳐나는 곳. 뜨거운 태양빛이 부서지는 소리와 바람에 몸을 뒤척이는 모래 알갱이들의 울림. 새로운 변화들을 감시하는 동물들의 예민한 시선들의 부딪힘. 침묵의 분주함이 넘쳐나는 공간으로서의 사막이 이 소설의 배경이다.

 클레지오는 사막의 소리를 아래와 같이 표현하고 있다.      

소리가 한꺼번에 울렸다. 소리는 밤에 더욱 강하고 더욱 뚜렷했다. 대지는 추위에 떨며 소리를 냈고, 흥얼거리는 거대한 사막, 이야기를 건네는 거대한 포석이 되었다. 곤충과 전갈, 다족류 벌레와 사막의 뱀도 이빨을 갈았다. 때때로 바다의 소리, 대양의 물결이 무섭게 으르렁대며 해변의 모래까지 왔다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따금 바람이 약간의 물보라와 함께 바다의 목소리를 이곳까지 싣고 왔다. (중략) 온 땅과 하늘이 소리를 질렀다. - 281~ 282쪽

  어둠 외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곳에서의 울림이란, 그 벅참이란 과연 어느 정도일까? 상상만으로도 가닿을 수나 있을까? 저 마음 깊숙이서 무한으로 울려나는 공명, 그 소리가 존재하는 곳이 사막이 아닐까? 저 소리, 덮여지고 무뎌진 생의 태초에 지녔을 저 소리, 그 소리를 듣는다면, 그 순간이 카이로스의 시간이지 않을까?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저 소리에 취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충만한 시간, 카이로스를 경험했다. 주인공 소년 역시 사막에서 목동과 함께 한 시간이 카이로스의 시간이었을 것은 분명하다.

 또 좋았던 것은 `경험`에 관한 거였다. 주인공 소년은 도시를 떠나 사막 한 가운데서 목동들과 어울려 삶을 산다. 거기서 같이 사냥하고 추위에 떨며 두려움을 이겨낸다. 이것은 위험이 따르며 이런 삶은 소비되지 않는다. 주인공 내면 세계에 형언할 수 없는 변화를 불러오고 잔상으로 남게 마련이다. 이것이 체험과 구별되는 경험이다.

 <오늘의 교육> 11, 12월 호에서 엄기호는 `경험의 죽음, 교육의 죽음`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그에 의하면 경험과 체험은 아주 다른 차원이다. 경험은 무정형성, 예측 불가능, 우연성, 만남, 시간의 정지와 재정의, 위험으로 정리될 수 있다면, 체험은 소비와 스케줄로 이야기된다. 결국, 그는 현대 교육의 문제를 진단하면서 교육이 죽은 이유를 경험이 죽은 데서 찾고, 그 경험을 복원하고, 경험을 경험답게 할 수 있는 어른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의미있는 경험을 `목동들`의 등장 인물들은 해내고 있다. 그러면서 이 등장 인물의 내면에는 잔잔한 파동같은 것이 잔상으로 남았을 것이다. 

  희망의 노래, 몽도

 결국, 클레지오의 소설집 <어린 여행자 몽도>가 매력적인 것은 어쩌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 안타까워 하는 것, 그래서 언젠가는 되찾고 싶은 것들을 아름다운 문체로 그려보이기 때문이다. 경험의 한 복판에서 온갖 위험에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어린 등장 인물을 통해, 그들의 순수함과 근원적 아름다움을 깨달 수 있으니, 읽는 내내 행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난 한 주는 `순수한 언어로 표현된 밝은 희망의 노래`를 흥얼거릴 수 있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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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2011-12-03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른 읽고 싶어요~ 기대돼요 ^^

2011-12-05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2-05 1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