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에 몹시 오랜만에 글을 쓴다. 기록한다는 것은 생각과 삶을 정리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기록하지 못했다는 것은 정리할 만큼의 생각과 삶이 없었다는 것일 수도 있겠고(정리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생각과 삶이 정리할 수 없을 지경으로 복잡다단했다는 것일 수도 있겠다. 물론 다른 경우도 있겠지. 게을렀다거나, 몹시 바빴다거나. 나는 어느 경우일까? 여튼 이렇게 앉아 무언가를 기록하며 정리하겠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네 가지 경우는 아니란 말씀!
한동안은 마음살을 심하게 앓았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바람보다 더 자주 변하는 것이어서 나도 잘 갈피를 못잡았다. 그만큼 뒤뚱거린 생활이었다. 그 마음살에서 거리를 두고 싶어 나의 동굴로 숨어들거나 생활의 근거지를 옮겨도 보았지만, 결국엔 관계를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동굴은 소싯적처럼 낭만적이지 않았고, 쓸쓸하지도 않았으며, 그저 삭막한 고통만 덩그러니 앉아 있을 따름이었다. 새로운 생활의 근거지 역시 내 생활의 근거지가 되지는 못했다. 하여, 나는 또 나의 현실로 돌아왔고, 여기서 길을 모색하기로 했다.
잠깐 생활의 근거지를 옮겼을 때도 아예 의미가 없지 않았다. 슬뫼와 볕따신 곳에서 볕바라기를 하며 보낸 그 포시라운 순간은 잊힐 것 같지 않다. 슬뫼를 데리고 나의 고향, 구복으로 갔다. 그날은 바람이 무척 고요했으며, 볕에서는 봄내음이 물씬 났다. 이미 시장통 할머니는 여린 쑥을 내다 팔고 있었고, 우리는 그것으로 쑥국을 맛나게 끓여 먹기도 했다.
나의 고향 마을 볕 바른 곳에 산소가 있다. 정말 하루 종일 볕이 들 정도로 환한 곳이다. 설 연휴에도 찾아보지 않았던 터라, 좀 마음이 쓰여서 슬뫼와 찾아 나섰다. 슬뫼에게는 증조부모 묘소에 들렀다가 할아버지 산소에 들렀다. 지난 해 이장을 하면서 평장을 하고 작은 비석을 세웠다. 고향 앞바다가 훤히 내다보이는 볕바른 곳이다. 한때는 우리 식구들 입에 들어가는 푸성귀를 재배하던 밭이기도 해서 제법 넓다. 나는 올봄 그곳에다 편백이며 호두며, 백일홍을 심어보겠다고 터를 잡아 둔 참이었다. 슬뫼한테 ``슬뫼야, 할아버지한테 세배하자.``했더니 엉덩이를 치켜들며 절을 한다. 이만큼 큰 게 대견하기도 하면서, 나의 아버지가 손주를 안아 보시지 못한 데에 대한 회한은 또 어쩔 수 없다.
간단한 성묘를 마치고 고향 앞 바다에 떼를 지어 날으는 갈매기 구경을 한창 즐겼다. 끼룩끼룩끼룩. 비릿한(나에게는 결코 부정적이지 않다.) 바닷 내음과 갈매기와 흔들리는 파도와 뱃소리와 검게 그을린 바닷사람의 얼굴을 볼작시면, 내 콧등은 어김없이 시큰거린다.(11년을 산 고향 동네이지만, 내 정서와 가치관은 이미 이때 정리되었지 싶다. 그만큼 내 삶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공간이다.) 그러고보니, 작년에 우리 학교 작가 초청 강연회를 하면서 소설가 한창훈 선생님을 모시기도 했다. 순전히 바다와 연관된 나의 관념과 그의 작품 경향 탓이기도 했음을 고백해야겠다.
이렇게 여유롭게 지난 시간을 보냈나, 회상하면서 그런 반감 비슷한 의문이 든다. 몸보다 정신적으로 몹시 바빴던 것 같은데, 앞에 쓴 걸 다시 보니 무척 여유롭다. 하지만 일들도 무척 많았다. 당장 어제는 3시간의 긴 회의를 열차까지 타고 가서 했고(집에 들어오니 자정 가까운 시간이었다.), 우리 지회 직무 연수 건으로 두 차례 회의를 해야 했다. 지회 일도 무언가를 맡았으므로(사실, 나는 새로운 집행부를 꾸린 김진수 지회장님한테 힘을 주고 싶은 마음이 커서 결의했다. 저렇게 마음을 내신 마당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음 마음이 내 현실-육아-보다 앞섰다.) 지회 이런 저런 일에 또 몸과 마음을 내야 했다. 직무 연수 기획안을 내면서 또 얼마나 내 몸과 정신을 괴롭혔나. 그리고 햇귀 총회를 준비하면서 내 마음은 얼마나 분주했나. 정말이지 햇귀 소식지에 글을 썼지만, 육아를 하기 위해 육아 휴직을 한 건지, 일을 도맡기 위해 휴직을 한 건지, 그 목적이 불분명할 때가 있어, 그 경계가 모호해서, 나 스스로 한심스러울 때가 있는 요즘이다.
오늘 저녁, 슬뫼가 잠을 잘 자다가 경기 비슷한 증세를 보였다. 상황을 지켜보다가 주00 선생님한테 전화를 드렸다. 어디 어디 침을 놓아주라는 말을 들었지만, 집에 침도 없거니와, 그 어디 어디가 어디 어디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결국, 가까운 한의원으로 가보라는 말씀을 듣고, 옷도 입히지 않은 채 이불을 싸매고 한의원으로 갔다. 그 사이 애기 엄마는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나도 운전을 좀 급하게 했다. 한의원에서는 경기는 아닌 것 같고 약간의 체기가 있는 것 같으니까 그에 적합한 처방을 내렸다. 근데, 내 몸도 스스로 걱정이 되었기 때문에 진맥을 받아 보기로 했다. `하도 기가 차는 일이 많다.`는 핑계로 받아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기가 멈춰 있네요, 이런 말씀을 들어야 했다. 비장과 위장의 기능이 현격히 저하되어 있으며, 몹시 신경을 쓰는 상황이며, 그러니 하루에 2끼를 먹어도 배고픔을 못 느낀다는 거였다. 내가 갖고 태어난 체질적 성향과 지금 몸이 드러내는 증상은 전혀 다르다는 거였다. 결국, 나도 침을 맞고 처방을 받아와야 했다.
최근 들어 건강에 대한 염려가 많다. 그래서 위와 대장 내시경 검사를 예약해두고 있다.(정00 선생님의 `같이 갈까?`하는 말은 두고 두고 고맙게 남을 것 같다.) 활동도 활동이지만, 육아도 육아이지만, 내 건강을 살피지 않으면, 이 모든 게 허사일 수 있다는 생각이 최근 부쩍 들었다.(아마, 이건 아버지와의 경험에서 온 것일 수도 있겠다.)
오늘 한의사 선생님의 말로 마무리해야겠다.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몸이 맛이 간 것 같아요)
그래도 몸은 스스로 챙겨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