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뫼와의 생활은 잘 보내고 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마산 엄마 집에서 보내다 왔다. 고향 밭에다 편백, 두릅, 금목서, 생강나무(여기서 생강이 난다고 생각하시면 안 된다. 어느 해 4월 통도사 극락암에 갔다가 노랗게 핀 생강나무 꽃이 잊히지 않아서 심어봤다. 향이 알싸한 게 꼭 생강냄새같았다.) 천리향, 호두나무를 심었다. 나무를 심고 오니 바람이 제법 거세게 부는데, 녀석들이 땅에 굳건히 발디디고 있을지 걱정이 된다.

 

 언젠가 `나무를 심어야지` 생각이 들었다. 슬뫼를 낳고 슬뫼가 커가면서 그 생각은 더 명확해졌다. 마침 땅도 여유가 생겼다. 생각과 조건이 갖추어졌으니 실행만이 남았다. 이것 저것 마련이 되면 후딱 해치워야 한다는 게 나의 평소 생각이다. 때를 놓치면, 또 무한정 게을러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원래 사람이란 그렇지 않나.(나만 그런가?) 또 조건을 갖춰놓고 게을러지면, 그 밭은 엉뚱한 나무로 덮여질 가능성이 컸다.

 같이 나무를 심었던 제매한테도 한 말이지만, 2, 30년이나 지나야 지금의 나무 심기가 갖는 의미가 밝혀질테다. 그냥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할 수 있은 것만큼만 하는 것일뿐. 그저 기대되고 설레는 건, 언제까지가 될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내가 심은 나무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그 과정을 순간 순간 들여다보고 확인할 수 있다는 것. 꼭 슬뫼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다만, 그 시간이,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이 남아 있으면 더없이 좋겠다는 생각인데...

 

 아직도 슬뫼와 보내고 있는 시간이 경이롭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그럼, 물론, 확실히!! 집안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고,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고, 온갖 일을 해도 별 불평 불만이 생기지 않을 만큼, 내가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꽉 찬 느낌. 햇살 바른 운동장에서 공놀이를 하며 깔깔 넘어가는 녀석을 보며, 나의 원기도 회복이 된다. 

 

 그러다가 어제는 내가 눈물바람이 되어 버렸다. (이런 것까지 써야 하나, 망설여지지만, 모든 언어는 기록될 수 있다니까, 나는 나의 언어로 기록한다.)

 3년째 외벌이로 생활을 하고 있다. 첫 2년은 내가 직장을 다녔고, 지금은 역할을 바꿔, 아내가 일을 하고 내가 살림과 육아를 책임지고 있다. 그 사이 빚도 제법 졌지. 아내가 일을 나가고, 내가 아기를 키우면서 그동안 낸 빚도 다 바닥났다. 내 수입보다, 그것의 절반이 넘도록 적자를 봤으니, 그 사이 쌓인 우리의 빚은 꽤 많다. 하지만, 진실로, 나는 그 빚이 많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우리의 실력으로 다 해결가능한 범위였고, 지금은 단지 아기를 키우는 과정에서 생겨난 우리의 희생. 아니, 아기를 위한 우리의 최선의 노력, 배려로 나는 이해하고 있었다. 아기를 키우면서 경제적으로 곤란함을 겪어서는 절대 안 된다. 어차피 부모 품에서 자식을 키우기로 결심을 했다면, 경제적 곤란함, 빚 정도는 감내해야 할 부모의 과제라고 여겼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집안에 경제적으로 곤란을 겪을 때마다 해결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어제 저녁에 울고야 말았다. 생활비 통장에 잔고는 별로 없고, 나갈 돈은 뻔히 보이는데, 반찬거리를 살 수 있는 여지가 없었다. 슬뫼에게는 3끼째 같은 반찬을 먹이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이 끼니가 같은 반찬 마지막이야.`하는 각오로 저녁 상을 차렸다. 오만둥이 된장찌개(슬뫼는 된장찌개를 무척 좋아한다. 그냥 둘러마신다.). 그 상을 차리면서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른다. 버섯, 애호박, 두부... 아쉬운 게 눈에 선하다. 아니나 다를까, 슬뫼는 질려버린 눈치다. 구운 김만 장에 찍어 먹고, 밥은 손도 되지 않는다. 그 잘 먹던 된장도 밀어낸다. 그리고 뒤로 벌러덩 나자빠져 울어재낀다. 억지로 밥을 먹이다가 겨우 한 숟갈 먹이고 또 넘어간다. 점심도 많이 먹지 않았는데(슬뫼는 한끼 적게 먹으면 반드시 그 다음 끼에 엄청 먹는다. 아님 간식으로 배를 완전 채우거나) 안아서 거실을 빙빙 돌고, 베란다로 나갔다가, 복도로 나갔다가, (이런 날, 먹일 간식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거실에서 쓰러져 잠들었다. 아직도 홀쭉한 배를 만지며, 이 상황이 너무 기가 차서 눈물이 났다.

 

 할 수 없이 날이 밝고 여동생한테 전화를 해서 돈을 빌렸다. 곧장 부산생협으로 차를 몰았다. 슬뫼가 좋아할 만한 것들로 장을 봤다. 지금껏 장 본 것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이 샀다. 냉장고를 꽉 채웠다. 없어보니 있어야 할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커서 과소비를 하게 된 것도 같다. 그런데, 그 없는 순간이 내겐 정말 아쉬운 순간이었다. 나만 아쉬우면 되는데, 아기에게 느껴지는 미안함, 죄책감은 또 뭐란 말인가.

 

 이렇게 글로 정리하면서도 부끄러운 건,

 나보다 훨씬 상황이 어려운 분들이 많으실텐데...

 

 자식 하나에 매몰되어 세상의 어려움을 지나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

 

 그래도 어떡하랴, 지금은 내 자식이 내 세상의 전부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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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회에서 해마다 12월 31일과 1월 1일 1박 2일 동안 집시 여행을 떠난다.

20여년 전, 그러니까 산악회 초창기 대원들이 2, 30대일 때, 떠나는 시간에 대한 회한 같은 걸로

여행을 시작한 셈인데, 이제 산악회 연례 행사 같은 걸로 굳어진 것 같다. 이제는 일몰에 대한 회한보다 가족 여행 같은 느낌으로 정착한 분위기다.

 

이번 집시 여행은 거제도에 딸린 지심도에서 있었다.

 

 지심도로 들어가는 배를 탔다. 아내는 슬뫼한테 보이는 풍광을 들려주는 것 같다.

 

 

 지심도의 끝. 바다...는 바다의 모든 것으로 내게 달려오는 느낌이다. 이해가 될 것 같으면서도 저 멀리 물러서 버리는. 캄캄한 근원같은 것.

 

 

 이렇게 노니는 그림은, 언제 봐도 아름답다!

 

 

  그날 밤, 새해 맞이 행사 같은 걸 했다. 초를 밝히고 한 해를 보낸 느낌이나 새해를 맞는 각오 등. 나는 무슨 얘기를 했던가?

 집시 여행의 끝은 광주 망월동이다.

 거제에서 광주까지 먼 길. 눈이 와서 우려가 됐지만, 다행히 무사히 도착.

 원래 적막한 곳에서, 눈도 적막하게 내렸다.

  봉분조차 없는 무덤.

  시신을 찾을 수 없었다는 데서 광란의 80년도가 떠오른다.

 

  마지막 사진은 지심도에서 단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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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직 이후 제법 단순한 생활을 지내고 있다. 생활의 중심은 슬뫼를 돌보는 것이고, 바깥 활동은 `햇귀`를 중심으로 해나가고 있다. 그리고 생활을 좀 더 활력있게 하고픈 마음에 텃밭 농사를 시작했다. 매일 나가서 돌볼 정도는 아니고 2주에 한 번 정도 들여다볼 계획이다.

 

 대체로 아침 7시 30분쯤 슬뫼와 함께 일어난다. 어디 매인 몸이 아니어서 그런지 몸이 그리 무겁지 않고 하루의 시작이 평안하다. 슬뫼가 먹을 찬거리 한 두가지를 뚝딱 만들어서 - 슬뫼가 된장찌개를 무척 좋아한다. 미더덕을 넣고 끓여주면 미더덕도 쪽쪽 빨아 먹는다고 열성이다. - 아침을 먹이고 나면, 안방과 거실 청소를 시작한다. 그 사이 슬뫼는 장난감으로 혼자서 논다. 청소는 진공 청소기를 사용하기보다 가급적 물걸레로 닦는 편이다.(나는 물걸레가 지나가고 난 뒤의 상쾌함이 좋다.) 청소 뒤엔 설거지가 기다리고 있다. 주방 정리와 씽크대 청소까지 마치고 나면, 대충 슬뫼가 간식을 찾는다. 간식은 토마토, 딸기, 배 등의 과일과 핫도그, 찐빵, 두유, 우유 등 적절하게 안배해가면서 먹이는 편이다. 그러면 10시쯤이 넘는다. 최근엔 바깥 햇살이 좋아 아파트 놀이터에 가거나 대천천 산책을 가거나, 점심 도시락을 챙겨서 맨발동무도서관으로 간다. 실컷 놀고 점심을 먹고 나면 낮잠 시간이 돌아오고, 슬뫼가 자는 동안 어질러놓은 장난감과 책을 정리하고 컴퓨터로 세상과 접속한다. 저녁 5시쯤 깨어나면 간단한 먹거리를 주어 놓고 저녁을 준비한다. 슬뫼가 버섯, 양파, 당근, 호박 등을 잘 먹어서 대충 아무렇게 만들어서 먹인다. 또 설거지를 하고 아내와 슬뫼가 노는 거 구경하다가 목욕(이틀에 한 번)과 양치질을 시키고 10시 30분쯤 재운다.

 

 생활은 대체로 이렇게 흘러간다. 어떤 날은 조금 더 먼 곳으로 떠나기도 하는데, 최근엔 원동에 있는 순매원에 다녀왔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원동역과 가까운 곳에 매화로 이름난 순매원이 있다. 아직 꽃이 덜 폈지만, 햇살이 좋아 슬뫼와 둘이서 갔다. 햇살 바른 곳에 자리를 깔고 쉬었다.

 

 마침 놀러나온 누나가 있었다. 이 누나만 쫄쫄 따라다니며 잘 놀았다. (녀석은 연상의 여인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남자애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ㅋ)

 

 많이는 아니지만, 이렇게 터진 꽃잎도 있었다.

 

 슬뫼한테 간실을 주면, 무척 전투적(?)으로 먹는다. 블루베리를 줬더니, 이렇게 먹었다~

 

 덕분에 매일 슬뫼 세탁기를 돌려야 할 판이다~ㅠ (아들아, 아빠 빨래 하다가 하루 다 보내겠다.)

 

 그렇게 말을 하면, 녀석은 이런 표정이다. `어??`

 

 녀석이 드디어 두 돌이다~ㅋ 시골에서 할머니도 올라오셨다. 엄마는 바쁜 출근길이지만 맛난 반찬을 차려놓았다. 아들, 축하한다~ ^-^*

 

 

 `김치` 하랬더니 저런 자세를 취한다. 맵다는 시늉을 안 해서 다행이다~ㅋ

 

 

 며칠 더 지나 순매원 나들이에 또 나섰다. 전보다 꽃이 많이 폈고, 상춘객들로 북적였다. 평일이었는데도... 뭐라 뭐라 소리 지르면서 잘 뛰어다녔다.

 

  단호박을 쪄갔더니, 저렇게 먹고 놀기도 했다.

  햇살이 눈을 못 뜨게 만들었다~ㅋ

 

  아까 생활의 활력을 위해서 텃밭 농사를 시작했다고 했지.

 양산 덕계에 10평 남짓 땅을 얻었다. 주00 선생님이 10년 가까이 300평의 땅을 지으셨다는데, 올해부터 몇몇 선생님들이 함께 팔을 걷어 부쳤다. 상추, 쑥갓, 대파, 감자를 우선 심었다.

 

  밭에 거름을 넣는 사이, 슬뫼는 이렇게 놀았다.

 

 주 선생님의 늦둥이 해인이다. 슬뫼랑 잘 어울린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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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뫼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기와 지내다보니 스트레스가 별로 없다. 평화로운 산책도 3시간 가까이 즐길 수 있고(물론 슬뫼와 함께다.) 잠깐이지만 낮잠도 잘 수 있다. 제일 신경이 쓰이는 일은 슬뫼를 챙겨 먹이는 일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 전에 학교에서 받던 나의 스트레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낮잠을 잘 자던 슬뫼가 자지러질 듯 울어 넘어간 일이 있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우는 모습을 보며, 나는 많이 무서웠다. 꼭 신들린 듯한 느낌. 저러다 혹 잘못 되면 어쩌나, 무서웠다. 아는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증상을 말씀드렸다. 이래 저래 하라, 는 말은 들었지만 대체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어서 결국 옷도 제대로 입히지 않고 이불로 싸맨 채 가까운 한의원으로 향했다. 소아과나 이비인후과를 생각하지 않은 우리 부부도 좀 웃긴다. 여튼 한의원에 가니까 좀 안정이 됐다.( 그 뒤에 알고 보니 슬뫼는 결막염을 앓았다. 이비인후과에 먼저 갔어야 했던 것이다.) 한의원에 간 참에 나도 진맥을 받아 보았다. 한의사 샘 말씀이 `남자가 기가 이렇게 허해서 어쩝니까?`였고, 나는 아주 독한 침을 맞아야 했다.

 

 며칠 전에 부모보다 먼저 저승길을 앞세운 아이 이야기를 들었다. 순간, 나는 두 가지 공포에 떨었다. 하나는 슬뫼가 나보다 먼저 잘못되는 일이었고(살다보면 충분히 이런 일도 있을 수 있으니까.) 다른 것은 내가 우리 어머니보다 먼저 잘못되는 일이었다. 두 가지 경우 모두 예측 가능한 일이며, 그게 현실이 되었을 때를 생각하면, 아...

 

 슬뫼와의 육아 경험을 쓰려고 시작했다가 이상하게 흘렀다.

 근데 확실히 최고의 효는, 부모보다 오래 이 세상을 사는 것, 부모님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드리는 것.

 (그런 점에서 최근 나의 건강에 많은 관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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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휴직을 하고서 첫날을 보냈다. 아내는 2년만에 복직을 하고서 가람중학교로 출근을 하고, 나는 이제 하루 종일 어디 기댈 곳없이 오롯이 슬뫼와 지내야 했다. 그 전에도 물론 `오롯이` 슬뫼와 보낸 날이 없지 않았지만, 오늘과는 좀 달랐다. 그때는 sos를 치면 달려와줄 아내라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책임을 지고 슬뫼를 지켜내야 했다. 슬뫼가 갑작스레 아파도 내가 병원을 찾아 나서야 했고, 슬뫼가 갑자기 뭘 먹고 싶다고 해도 내가 준비를 해내야 할 판이었다. 새삼, 아내가 그동안 지켜온 자리가 슬뫼에게는 `전부`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개학을 앞둔 날이면 늘 잠을 설쳤다. 만나게 될 아이들에 대한 기대, 함께 근무하게 될 선생님들에 대한 생각, 내 수업에 대한 갖가지 계획과 고민들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지. 어제는 아내가 잠을 많이 설치는 듯했다. 나는 별 걱정없이 잘 자고 싶었는데, 아내의 뒤척임이 전해져서 깊게 잠들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냐 하면, `슬뫼 아침 뭐 해 먹이지? 몇 시에 일어나지? 일어나서 뭐 하고 뭐 하고 또 뭐해야지` 뭐 이런 생각들이었다. 개학 전날의 나와는 너무나 다른 생각이었고, 별 부담스럽지 않은 고민이었다.

 슬뫼가 평소에는 아침 7시 30분 쯤에 일어난다. 하지만 이날 만큼의 상황을 알았던지, 아침 9시 30분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그 덕에 아침 잠이 많은 나도 잠을 길게 잘 수 있었다. 일어나서 칭얼대던 슬뫼에게 밥을 해먹였다. 오랜만에 한 밥은 죽에 가까운 진밥이 되어 버렸고, 쑥국은 그런대로 먹어줄 만했다. 그리고 슬뫼가 좋아하는 두부를 계란에 묻혀 구웠는데, 아기가 먹기게는 좀 짠 듯했지만, 슬뫼는 밥을 먹기 전에 두부 부침을 후딱 해치웠다. 그러고는 밥을 좀 먹었다. 내 기대만큼 먹지 않는 슬뫼르 보며 속이 좀 상했다. 내가 한 게 맛이 없나? 컨디션이 좋지 않나? 뭘 먹는 것에서는 뒤지지 않는 먹보인데 말야.

 후딱 아침 설거지를 해치우고, 슬뫼 옷을 입히고, 계란을 삶고, 토마토를 데쳐서 먹기 좋게 자르고, 고구마를 삶아 챙겨서 `맨발동무 도서관`으로 향했다. 가까운 동에 있는 지역 도서관이다. 슬뫼와는 이곳에 몇 번 와 본 터라 대강의 그림이 그려졌다. 계단도 오르내리고 책 한 두권 보다가 간식을 먹고, 형아 누나들 쫓아 다니며 노는 것. 그것으로 오전의 외출은 성공적일 거였다.

 도서관에 도착하고 보니, 개학을 해서 그런지 형아 누나는 거의 없고 봉사활동 하시는 아주머니들이 많다. 아주머니들한테도 슬뫼는 유명인이어서 `어, 슬뫼 왔어?` 인사를 듣고, 기분이 금세 좋아져서 여기저기 탐색을 벌인다. 소리도 지르고 뛰고 숨고 책을 뽑아 읽어 달라고 그러고. 두 시간 정도를 놀다 보니 잠이 오는 눈치다. 얼른 차에 태워 집으로 오니 그새 잠이 들었다. 이불 위에 눕혀 놓고 나는 거실 청소를 하고 저녁 거리를 고민하다 슬뫼 옆에서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다.

 저녁 6지가 넘어 아내는 거의 파김치가 되어 퇴근을 했다. 학교 이야기를 늘어 놓는데, 답답한 구석이 좀 있어서 내가 뭐라 했다. 하긴, 이제는 내 아내가 경험해야 할 것이고, 내가 뭐라 해도 별 소용이 없겠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건, 공감??

 간단히 저녁을 먹고, 너무 지쳐 보이는 아내와 함께 바람을 쐬러 나가기로 했다. 삼랑진 역 근처에 있는 `시인과 나`라는 카페. 가까운 곳에 낙동강이 흘러 강도 구경할 수 있다. 은은한 촛불이 밝히는 분위기도 꽤 괜찮고. 아내와는 아내가 임신해 있을 때 와 봤다. 그러니 슬뫼가 뱃속에 있었을 때 처음 찾았고, 이제는 슬뫼가 제법 사람의 꼴을 갖춰서 다시 찾게 됐다. 그곳에 이르는 길도 제법 운치가 있다. 4월 초면 벚꽃이 흐드러질 것이니까.

 그 카페에서 안온한 시간을 보냈다. 대추차와 한방차를 시켜놓고 바깥 풍경을 구경하고, 슬뫼와 손을 잡고 걸으며 카페 안을 구경했다.

 

 법륜 스님이 그러셨다. 엄마는 낳아준 사람이 아니라 길러준 사람이라고. 그러고 보면 나는 이제 아빠가 아니라 엄마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엄마로서의 첫날, 가장 큰 문제는 먹거리를 해결하는 거였다. 먹거리 때문에 아내를 타박했던 적이 많은데, 내가 직접 당사자가 되어 보니, 결코 만만찮은 거였다. 아~~ 이렇게 나에게 과업으로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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