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휴직을 하고서 첫날을 보냈다. 아내는 2년만에 복직을 하고서 가람중학교로 출근을 하고, 나는 이제 하루 종일 어디 기댈 곳없이 오롯이 슬뫼와 지내야 했다. 그 전에도 물론 `오롯이` 슬뫼와 보낸 날이 없지 않았지만, 오늘과는 좀 달랐다. 그때는 sos를 치면 달려와줄 아내라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책임을 지고 슬뫼를 지켜내야 했다. 슬뫼가 갑작스레 아파도 내가 병원을 찾아 나서야 했고, 슬뫼가 갑자기 뭘 먹고 싶다고 해도 내가 준비를 해내야 할 판이었다. 새삼, 아내가 그동안 지켜온 자리가 슬뫼에게는 `전부`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개학을 앞둔 날이면 늘 잠을 설쳤다. 만나게 될 아이들에 대한 기대, 함께 근무하게 될 선생님들에 대한 생각, 내 수업에 대한 갖가지 계획과 고민들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지. 어제는 아내가 잠을 많이 설치는 듯했다. 나는 별 걱정없이 잘 자고 싶었는데, 아내의 뒤척임이 전해져서 깊게 잠들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냐 하면, `슬뫼 아침 뭐 해 먹이지? 몇 시에 일어나지? 일어나서 뭐 하고 뭐 하고 또 뭐해야지` 뭐 이런 생각들이었다. 개학 전날의 나와는 너무나 다른 생각이었고, 별 부담스럽지 않은 고민이었다.
슬뫼가 평소에는 아침 7시 30분 쯤에 일어난다. 하지만 이날 만큼의 상황을 알았던지, 아침 9시 30분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그 덕에 아침 잠이 많은 나도 잠을 길게 잘 수 있었다. 일어나서 칭얼대던 슬뫼에게 밥을 해먹였다. 오랜만에 한 밥은 죽에 가까운 진밥이 되어 버렸고, 쑥국은 그런대로 먹어줄 만했다. 그리고 슬뫼가 좋아하는 두부를 계란에 묻혀 구웠는데, 아기가 먹기게는 좀 짠 듯했지만, 슬뫼는 밥을 먹기 전에 두부 부침을 후딱 해치웠다. 그러고는 밥을 좀 먹었다. 내 기대만큼 먹지 않는 슬뫼르 보며 속이 좀 상했다. 내가 한 게 맛이 없나? 컨디션이 좋지 않나? 뭘 먹는 것에서는 뒤지지 않는 먹보인데 말야.
후딱 아침 설거지를 해치우고, 슬뫼 옷을 입히고, 계란을 삶고, 토마토를 데쳐서 먹기 좋게 자르고, 고구마를 삶아 챙겨서 `맨발동무 도서관`으로 향했다. 가까운 동에 있는 지역 도서관이다. 슬뫼와는 이곳에 몇 번 와 본 터라 대강의 그림이 그려졌다. 계단도 오르내리고 책 한 두권 보다가 간식을 먹고, 형아 누나들 쫓아 다니며 노는 것. 그것으로 오전의 외출은 성공적일 거였다.
도서관에 도착하고 보니, 개학을 해서 그런지 형아 누나는 거의 없고 봉사활동 하시는 아주머니들이 많다. 아주머니들한테도 슬뫼는 유명인이어서 `어, 슬뫼 왔어?` 인사를 듣고, 기분이 금세 좋아져서 여기저기 탐색을 벌인다. 소리도 지르고 뛰고 숨고 책을 뽑아 읽어 달라고 그러고. 두 시간 정도를 놀다 보니 잠이 오는 눈치다. 얼른 차에 태워 집으로 오니 그새 잠이 들었다. 이불 위에 눕혀 놓고 나는 거실 청소를 하고 저녁 거리를 고민하다 슬뫼 옆에서 스르르 잠이 들고 말았다.
저녁 6지가 넘어 아내는 거의 파김치가 되어 퇴근을 했다. 학교 이야기를 늘어 놓는데, 답답한 구석이 좀 있어서 내가 뭐라 했다. 하긴, 이제는 내 아내가 경험해야 할 것이고, 내가 뭐라 해도 별 소용이 없겠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건, 공감??
간단히 저녁을 먹고, 너무 지쳐 보이는 아내와 함께 바람을 쐬러 나가기로 했다. 삼랑진 역 근처에 있는 `시인과 나`라는 카페. 가까운 곳에 낙동강이 흘러 강도 구경할 수 있다. 은은한 촛불이 밝히는 분위기도 꽤 괜찮고. 아내와는 아내가 임신해 있을 때 와 봤다. 그러니 슬뫼가 뱃속에 있었을 때 처음 찾았고, 이제는 슬뫼가 제법 사람의 꼴을 갖춰서 다시 찾게 됐다. 그곳에 이르는 길도 제법 운치가 있다. 4월 초면 벚꽃이 흐드러질 것이니까.
그 카페에서 안온한 시간을 보냈다. 대추차와 한방차를 시켜놓고 바깥 풍경을 구경하고, 슬뫼와 손을 잡고 걸으며 카페 안을 구경했다.
법륜 스님이 그러셨다. 엄마는 낳아준 사람이 아니라 길러준 사람이라고. 그러고 보면 나는 이제 아빠가 아니라 엄마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엄마로서의 첫날, 가장 큰 문제는 먹거리를 해결하는 거였다. 먹거리 때문에 아내를 타박했던 적이 많은데, 내가 직접 당사자가 되어 보니, 결코 만만찮은 거였다. 아~~ 이렇게 나에게 과업으로 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