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코 인생, 그물코 사랑 - 도법 스님의 생명평화 이야기
도법 지음 / 불광출판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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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시인과 스님, 삶을 말하다>를 읽었다. 김용택 시인과 도법 스님의 문학적, 사상적 자서전의 성격을 지닌 책이었다. 김용택의 삶의 내력에 대해서는 그의 시나 산문, 인터뷰 등을 통해 대강 알고 있었지만, 도법 스님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최근의 조계종 사태로 `화쟁위원회`가 언론에 오르내린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도법이라는 법명을 본 게 기억이 났다. 그런데 <시인과 스님, 삶을 말하다>를 읽으면서 도법 스님의 삶의 내력을 조금이나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새만금, 생명평화 순례와 도법 스님이 연결이 됐다. 그 뒤로 자연스럽게 도법 스님에게 관심이 갔다. 맨발동무 도서관에서 스님과 관련된 책 3권을 빌렸다.

 

 <그물코 인생 그물코 사랑>은 도법 스님이 그간의 수행과 실천을 통해 정리한 종교적, 사상적 결정체를 쉽게 풀어쓴 책이다. 그것은 다음 아닌 생명평화였다. 스님은 종교의 존재 이유를 생명평화에서 찾는 듯 보였다. 아니, 인간의 존재 이유가 생명평화에 있는 것이었다.

 

 스님은 현재 종교의 역할이나 실상에 대해 꽤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다. 주로 불교의 폐단에 대한 지적을 많이 하시지만,(교회 종지기를 하셨던 권정생 선생님은 기독교, 아니 왜곡된 종교에 대한 비판을 많이 하셨지) 실상은 진리는 간데 없고 우상만 남은 종교 일반에 대한 비판으로 읽혔다. 스님의 말씀은 불교(진리)를 제대로 믿고 따르면 세상이 이렇게 혼탁하지 않을 텐데, 하는 거였다.

 

 스님은 수행자의 삶을 살면서 청정도량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쉼없이 해왔다. 그것은 진리 실험의 길이기도 했는데 대표적으로 선우도량과 화엄학림이었다. 선우(善友)는 좋은 친구라는 의미로, 부처님도 좋은 친구를 굉장히 중시했다고 한다. 깨달음을 향한 수행가의 전부라고 말할 정도였다니, 스님 또한 좋은 도반과 함께 진리를 찾아나서고자 했던 것이다. 화엄학림은 불교 경전의 본류라 할 수 있는 `화엄경`을 학문적으로 공부하고자 만든 학회 정도다. 스님이 보기에 불교는 참선 중심으로 흘러 경전에 대한 연구는 뒷전이었다. 부처의 말씀, 곧 진리는 경전에 담겼는데, 그걸 공부하지 않는 참선은 헛것에 가까웠을 것이다. 하여, 스님은 화엄경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되고, 후에 스님의 생명평화 사상의 근본으로 삼았던 것이다.

 

 스님은 개인의 완성과 사회의 완성이 별개가 아니라고 말했다. 경전에 상구보리 하화중생 上求菩提 下化衆生이라는 말이 있는데, 위로는 법(진리)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한다는 의미다. 그만큼 불교에서는 세상을 바로 세우는 일에도 관심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큰 스님 중심의 신비주의나 참선 중심의 상구보리만 부각되는 것 같아 스님은 그게 안타까웠을 것 같다.

 

 스님은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통일적 관점으로 생명평화경을 썼다. 아니, 썼다, 라고 하기 보다, 들은 것을 옮겨 적었다고 하는 게 옳겠다. 그간의 공부와 실천으로 진리의 길을 탐색한 결정체이니, 그것은 만들어졌다기보다 진리가 그렇게 말했다고 보는 게 맞겠기 때문이다.

 

 사람은 행복해지기 위해 믿고 기도하고 보시를 한다. 하지만 행복해지기보다-행복하다고 느낀다면 그건 착각에 가까울 가능성이 크다.- 세상은 폭력과 부패와 분열과 대립의 도가니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를 믿는 신자 수가 얼마나 되길래 세상은 갈 수록 진리와 멀어지는가? 문제는 진리를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님은 `구체적 사실과 진실인 실상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으로 삶을 살아왔다.`고 말한다. 그게 불행의 씨앗이라는 것이다. 지식과 언어를 전도몽상, 관념적이고 추상적으로만 다룰 뿐, 실상에 대한 성찰이나 참회가 없었다고 지적한다.

 

 실상은 뭔가? 우리 존재의 실상은? 스님은 명쾌하게 말한다. 상호의존성과 상호변화성이라고. 인드라망 세계관을 말씀하시며 세상의 모든 존재는 그물과 그물코의 관계에서 보듯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관계란다. 그러니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 불일불이 不一不二가 존재의 실상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상호의존성에 입각한 존재의 실상을 믿기보다 자기중심적 세계관에 빠져 있다. 그러니 대화보다 일방적 견해 표현에 익숙하며, 자기를 내세우는 일에 보다 적극적이다.(그런 점에서 소위 진보적 운동을 하는 이들에 대한 문제 지적 또한 잊지 않고 있다. 깊이 반성할 일이다.) 상호변화성은 머물러 있는 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진리다. 과거는 존재하지 않고, 미래도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 존재하지 않으며, 지금 당장의 현재만이 의미있는 순간이다. 그래서 지금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며, 지금 만나는 사람이 가장 소중한 사람이며, 그 사람에게 지극한 정성을 다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일인 것이다. 또한 세상 만물은 흘러 변화하는 것이므로 집착할 일도 없어진다. 소유욕, 명예욕도 실상의 진리에 비추어 보면 크게 무게를 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세상은 이런 진리의 실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너보다 나가, 달관보다는 집착이 강화된다. 여기서 반생명적 폭력이 일상화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스님은 생명평화경을 통한 백배서원을 통해 생명평화의 길을 열어가고자 한다.

 

 내가 이 생명평화경에 이끌린 것은 마음이 부대끼는 날이 많은 나를 보면서부터였다. 답답하고 화가 나고, 하지만 이런 날이 많아서는 숨을 쉴 수 없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던 것이다.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너무 쉽게 받는 내 모습이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로 바라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지금 스님의 생명평화경을 통한 백배서원을 날마다 올린다. 생명평화경에는 불교, 기독교, 천도교의 사상을 모두 담고 있으니 어느 종교 하나에 편향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모든 선지자가 `진리가 그대의 삶을 자유롭게 한다.`고 했다. 이 생명평화경은 삶을 자유롭게 할 진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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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동의 실크로드 스케치기행 1
박재동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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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박재동 일행은 바리데기를 영화로 만들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실크로드 답사길에 오른다. 장선우 감독도 함께 했다 하니, 진짜 영화로 만들 계획이었던 것 같긴 하다. 이후에 무슨 사정이 생겼었는지 모르지만, 아직 영화로 만들어지지는 않은 모양이다. 장선우 감독과 박재동 화백의 영화상에 대한 논쟁, 환타지적 요소의 강화냐, 사실적 요소의 부각이냐, 하는 논쟁의 결론이 사뭇 궁금한데 말이다.

 

 일행은 `북경-서안-난주-돈황-투르판-쿵나스 임장-나라치-터커쓰-투르판-룬타이-(타클라마칸 사막)-민풍-호탄-카슈가르-카슈쿠르간-훈자-길기트-이슬라마바드-라호르-델리`로 이어지는 실크로드를 답사하게 된다. 익숙한 지명도 몇 있긴 하지만, 다수가 생소하다.

 

 박재동 화백은 답사길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스케치했다. 사진이 대세인 요즘, 풍경을 스케치한 걸 보는 묘미는 좀 색달랐다. 직설적이지 않고 시적이었다고 할까. 흔들리는 차 안에서, 낙타 위에서, 조용히 앉아서, 낮이나 밤이나 새벽이나... 언제 어디서든 그리고 싶은 마음이 일 때, 화백은 그렸다. 대단한 열정이 아닐 수 없다.(최근에 나온 손바닥 아트라는 책에서도 느꼈다. 아주 오랜 시간 이 열정을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은 부단한 자기 노력의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그의 그림만 시적인 게 아니다. 그의 글이 시보다 더 시적이었다면, 과장일까?

 

 실크로드 하면, 나는 대초원, 호수, 사막을 먼저 떠올린다. 율두스 초원. 어디가 처음이고 어디가 끝인지 가늠할 수 없을 것 같은 공간. 주먹만한 별들이 하늘을 빼곡히 채우고 있을 것만 같은 곳. 새는 날고 말은 뛰고 사람은 걷는, 삶의 건강함이 살아 있을 것만 같은 곳. 그런데... 화백이 본 율두스 초원은 쫄아들고 있었다. 아마도 몽골도 살기 위해, 세계화라는 이름 아래, 세계 자본의 투기바람 속에 황폐화되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가 6,70년대 그랬던 것처럼, 개발의 과정에 놓여 있겠지. 하지만 사람이 살기 위해 선택한 것이라면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초원의 훼손이 먼 타국인인 나에게는 아쉬운 일이지만, 그 지역의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결과 아니겠는가. 다만, 바라는 건, 시간이 흐른 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안타까워하며 아쉬워하는 것처럼, 몽골인, 유목민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 좋겠다는 거다. 어째튼 어려움을 지혜롭게 헤쳐나가길 바란다.

 

 바양 블라크 호수. 사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이 바양 블라크 호수는, 실은 호수가 아니다. 강이 곧바로 흐르지 않고 열여덟 번이나 구비치며 맴돌아 아예 호수라고 부르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설산을 배경 삼아 넓게 구비치는 강 호수의 모습이 아름답다. 저녁 노을이 반사되어 비친다면, 그게 곧 바리데기와 무장승이 행복하게 사는 천국이 아니겠는가.

 

 사막은 언젠가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다. 아마도 삶의 기운이 빠졌을 때였겠지. 시인 유치환도 `생명의 서`에서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 사막으로 가자`고 노래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똑같은 모래 풍경을 보며 여행한다는 것은 좀 지겨울 것 같기도 하다. 다만, 그곳에서의 밤만큼은 황홀하겠지.

 

 하나 기억해두고 싶은 내용이 있다. 일행이 옥의 나라 호탄에 이르게 되는데, 이 호탄이란 곳이 우리 나라와 인연이 있다. 전남 해남 미황사 창건 설화와 관련되는데,

 

  아주 아주 옛날, 남도의 바닷가에 낯선 배 한 척이 도착했다. 그 배에는 금으로 반든 사람과 불경이 실려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내려 황소의 등에 조심스럽게 실어 운반했는데, 가는 도중에 황소가 더 이상 가지 않고 한 자리에 누워버렸다. 황소가 누운 자라에 절을 세웠는데, 그 절이 바로 미황사다. 그리고 그 배는 멀리 우전국에서 왔다 한다. 

 

 여기 우전국이 바로 호탄인 것이다. 이 이야기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는 아주 오래 전부터 중동과 교역이 활발했다. 우리가 국사 교과서에서 얼핏 봤던 `색목인`도 중동인을 가리킨다. 그리고 경주 석상 가운데 중동인의 모습을 한 것도 제법 있다. 이런 정황을 봐서, 우리 민족이 단일 민족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거꾸러 거슬러 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바양 블라크, 율두스 초원을 여행할 때는 우리의 5,60년대의 정서가 환기가 되었고, 타클라마칸을 건너 호탄과 이슬람권을 여행할 때에는 저 시간의 끝을 탐사하는 것 같았다. 여행의 끝에서는 `우리의 시작은 어디였지?`하는 어리둥절함이 잠깐 남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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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가 캠핑이란 것에 발을 들여놓았다. 전에는 캠핑이라 했을 때, 짐 많음, 텐트, 큰 차, 장비... 좀은 복잡하고 귀찮은 것이라 생각됐는데, 어쩌다가, 정말 어쩌다가...

 

 두번의 캠핑을 가봤는데, 생각보다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슬뫼가 노는 모습만 봐도 보람이 있고, 또 나 역시 지그시 산에 눈길을 두고 느리게 호흡할 수 있었으니. 새벽에 저 멀리 산사에서 들려오는 범종 소리를 들을 때에는 `실상`에 보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도 같았으니까.

 

 앞으로도 여러 이유로 캠핑을 다닐 것 같아, 차곡차곡 정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첫 캠핑은 고성 상족암 캠핑장. 선착순이라 좀 편한 듯 하지만 아침 일찍 가도 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다. 바로 앞이 예쁜 바다란 것 말고는 좋은 점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여튼 우리의 첫 캠핑은 이렇게 텐트를 치고서 시작했다.

 

 

 캠핑장에서의 하루는 멈춰버린 시간을 사는 것 같다고 느껴졌다.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느릿느릿. 아이들이 이렇게 노는 장면을 보면, 나는 심호흡을 하며 고요함에 빠져든다.

 

 

 고성은 공룡이 유명하지. 우리 텐트 바로 앞에 이런 공룡 조형물이 있다. 공룡의 공격성과 대비되는 아기들의 여유~ㅋ

 

  앞에서 말했듯이 캠핑장 바로 앞이 예쁜 바다다. 맨발로 물에 다가서는 슬뫼. 잔뜩 기대하고 있는 얼굴이다.

 

 

  손을 잡고, 안고 느릿느릿 시간을 보낸다.

 

 

 

 공룡 발자국이 선명한 상족암에 들러 바닷물에 발도 담그고. (신기한 건, 이 바닷물에 발을 담가도 끈적끈적한 소금기가 거의 없다. 신기해~)

 

  이제 두번째 캠핑. 배내골 오토캠핑장으로 떠났다. 여기는 예약을 해야 하고 전기도 들어온다. 물론 전기를 사용하기 위한 장비가 있어야 하고.

 우린 일찍 도착해서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기로 했다. 소스는 이미 집에서 완성. 면만 삶으면 됐다. 아내와 슬뫼는 일단 면을 한 번 씹어보고 시작한다.

 

 

 처음 만들어 먹는 스파게티. 소스도 아내가 손수 만들었는데, 맛이 좋았다. 담에도 부탁~~ㅋㅋ

 

 

 텐트 안에서 본 슬뫼. 신불산 안에 위치한 캠핑장이라 공기 좋고, 시원했다. 녹음은 말해 무엇하랴.

 

 

 

 두 녀석은 된장국을 퍼 먹으며 재미나게 놀고 있다. 뭐든 놀이가 되는 신기한 세상.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캠핑의 마지막은 새벽 범종 소리를 선물해온 석남사에서.

 

 종 소리와 새 소리가 가슴에 많이 남은 캠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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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2-07-09 0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미국에선 캠핑을 꽤( 솔직히 몇 번,,ㅋㅋ) 다녔는데 한국에선 한 번도 캠핑을 가 보지 못했네요, 올리신 사진을 보니까 저도 캠핑을 떠나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솔뫼가 참 귀엽네요, 오동통 하면서,,,^^엄마와 함께 스파게티 면을 씹어보는 모습도~~~.^^

햇귀 2012-07-09 15:19   좋아요 0 | URL
반가워요~ ^-^
사진은 이미지 조작이죠~ㅋ
대체로 캠핑장이 시끌벅적해요~ㅠ 우리 나란 유행을 심하게 타잖아요. 지금은 캠핑이 유행처럼 되어 버린 것 같아요. 물론, 저희 가족도 그 유행에 편승한 거겠지요.
그래도 일상에서 경험하지 못한 걸 겪을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인 것 같아요. 기회가 되면, 이웃해서 캠핑하는 것도 재밌겠군요~

프레이야 2012-07-09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햇귀님 좋은 여행사진과 이야기에 추천 누르지 않을 수가 없네요. ^^
슬뫼가 무척 귀여워요. 슬뫼는 무슨 뜻인가 궁금하기도 하구요.
배내골도 그렇고 캠핑장 이름을 보니 제가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같아요.
고성(당항포던가요?) 공룡박물관 쪽은 예전에 가본 적이 있는데 캠핑장은 몰랐네요.
전 캠핑은 한번도 안 해봤는데 해보고 싶어요. 캠핑카 그런 것도 타보고 싶고.

햇귀 2012-07-09 15:23   좋아요 0 | URL
슬뫼가 귀엽다니, 고마워요~ㅋ
자식 이름 짓는다는 게, 좀 웃겨요. 부모 욕심이 자식의 이름에 투영되더라구요.
그래도 어쩔 수 없다는 심정으로 지었는데, `슬기롭게, 산처럼`이란 뜻을 담았어요.
슬기라는 게, 자신의 정체성을 아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늘 깨어있는 상태이기도 하구요.
또 산은... 제가 산을 좋아해서..ㅋㅋ
 

 아는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주말 밭을 조금 일구기로 했던 게 지난 2월 말이었지요. 그 뒤로 감자며 상추며 대파 등을 심었고, 또 고추, 방울 토마토, 피망 등을 더 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심을 때에는 갖가지 생각이 없지 않았어요. 풀만 뽑아주면 얻어 먹을 게 있겠지? 시간이 지나기만 하면 이 녀석들은 알아서 잘 자라줄 거야. 약을 안치고 시간이 흐르면 유기농이 생겨나겠네?

 

 이제 몇 가지 작물은 수확기~

 오늘은 늦은 저녁, 아주 오랜만에 밭을 찾아가봤답니다. 우와~ 이건 뭐 풀밭인지 감자밭인지 고추밭인지 상추밭인지... 밭의 정체를 전혀 알 수 없었답니다. 팔을 걷어부치고 잡초부터 쫍았어요. 지나가는 할머니 두 분이 우리 밭의 아주 조그만 피망을 보시더니, `지 할 건 다 했네.`하시더군요. 저는 그 말을 조금 더 곱씹어 보았습니다. 이 가문 날, 피망은 제 할 만큼 다 자랐는데, 결국엔 밭 주인이 제 할 짓을 못 해서 요롯게 적게 자랐다고 이해가 되더군요. 하긴, 크게 틀린 말은 아닙니다. 제가 심은 상추, 토마토, 가지, 대파, 감자 등은 정말 볼 품이 었었으니까요.

 

 사람이나, 식물이나

 찾지 않으면 쑥대밭이라는 말,

 오늘도 경험적으로 이해하고 넘어갑니다.

 

 그런데 정말이지 사람을 찾아간다는 건 쉽지가 않군요.

 조금더 저를 단련하고 수행해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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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5 0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올해엔 산악회 정기 산행에 자주 따라나선다.

 산에 오르는 맛을 이제서야 조금 알 것 같다.

 

 벌써 오래 전이 되어 버렸다. 5월 13일, 거창 단지봉에 올랐다. 1,300m 이상의 높이였다.

 

 

 

 거창 중촌리 마을 어귀에서부터 올랐는데, 이 마을엔 민들레가 지천이었다.

 

 

 길인지 길 아닌지 분간이 쉽지 않았지만, 일단은 오르고 본다.

 

 아직 나무빛은 조금 짙은 연두색이었다.

 

 

 

 땀도 제법 흐르고 가파르기도 해서 다리도 좀 당기기도 했다.

 

  단지봉 능선길에 붙었다. 여기가 아마도 탈의산 정상이지 싶다.

 

 

 이런 나무에는 꼭 신이 살 것만 같다.

 

 단지봉 정상, 나의 왼편으로는 합천 가야산이 내다보이고, 오른편으로는 수도산이다.

 

 

 하늘과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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