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15일 부산북구공동육아조합에서 캠프를 열었다.

북구 공동 육아 조합은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한 `쿵쿵`과

초1~4의 학생들이 방과후 활동을 하는 `징검아` 두 기관이 합쳐 있다.  

조합 터전 앞에 물맑은 대천천이 흐르고 어떤 날엔 백로가 와서 한가한 모습을 보인다.

터전 주변으로 야트막한 돌담집이 몇 채 있고,

하루 종일 볕이 들어 오래 전엔 `양달리`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으니,

지형적으로도 편안하고 따뜻한 곳이다.

이런 곳에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가져간다.

 

 

 징검아의 동글이 샘 지도에 따라 단체 놀이로 캠프를 시작했다.

 이때 아이들은 `아마`의 지도에 따라 따로 놀고...

 (아마는 엄마 아빠의 준말로, 자원봉사를 하는 부모다.)

 어찌나 신나게 놀았던지, 나는 허리를 삐끗하고야 말았다~ㅋ

 

 

 장기자랑 시간! 징검아 아이들이다. 노래를 화음을 넣어가며 부르는 모습이 대단했다.

 

 

  쿵쿵 아이들의 장기자랑.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슬뫼는 처음엔 이렇게 어리둥절 하더니, 신나게 놀았다~ㅋ 엄마 아빠들의 즐거운 안줏감이 되어준 슬뫼였다~ㅋ

 

 

 

 이제 어른의 장기자랑. 동동이방하고 무슨 방 엄마 아빠들~ㅋ

 

 

 또 다른 방 부모님들은 아이들을 위해 동화 구연을 준비해오셨다~

 

  또 어떤 방 부모님은 연극을 준비했다. 대단한 열정이다.

 

 

  좀더 클로즈업 하면 이런 꼴~ㅋ

 

 

 

 아이들은 이렇게 집중해서 구경하고~

 

 

 

 마지막으로 다같이 춤을 추면서 뒤풀이로 고고씽~

 

 

 

 아마들이 아이들을 보고, 우리는 팔자 좋게 이렇게 건배~!!

 

 

오~~ 분위기 있게 나왔는데~ㅋㅋ

난 아픈 허리를 참아가며 새벽 5시 30분까지 어울렸다.

다른 분들은 아침 빗소리를 들으며 해장을 하셨다는...

그러고도 전부 치우고 설거지도 했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도 남았다~

 

 

 캠프에 함께한 엄마, 아빠, 아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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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선생님이 <교육개혁 100인 위원회>와 관련한 도움 요청 메일을 보내왔네요.

국민들의 뜻을 모아 대선 캠프에 정책 협약을 요청할 로드맵을 가지고 있답니다.

선택지 11개 가운데

`이 교육 정책이 우선 시행되면 좋겠다`는

3개의 정책을 고르시면 됩니다.

30초만 시간내시면, 교육의 희망을 만들 수 있어요.

꼭 투표해주시고, 널리널리 알려도 주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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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투표는 로그인 없이 30초 안에 가능합니다.

 

2. 국민들이 참여하는 투표입니다.

    엄마 아빠들의 참여로 우리 아이들의 교육이 조금이나 달라질 수 있습니다.

 

3. 2011년, 교육을 대선의 중요한 화두로 삼기 위해

   <2012년 교육개혁 100인 위원회>를 발족했습니다.

 

4. 1년 간의 논의 과정을 통해 68개의 교육정책이 발표되었고

    그 중 100인 위원들이 모여 '11개 핵심 교육 정책'을 투표로 결정했습니다.

 

5. 이제 이 11개 핵심정책을 온라인 '국민투표'를 통해 순위를 정하고

    대대적인 여론을 만들어 ‘교육은 대선의 화두!’를 천명하고자 합니다. 

 

6. 향후 그 투표 결과와 협의된 정책을 가지고

    대통령 후보들과의 면담 및 협약식을 추진하려고 합니다.

 

7. 홈피에 링크(배너)걸기, 메일, 카페, 블로그, 각종 SNS(페이스북, 카카오톡, 트위터 등) 등에

   많이 홍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8. 투표기간은 2012. 07. 01 - 07.30 입니다.

 

 

  전달 또 전달로 기적을!

 교육을 바꿀 작은 행동! 3초 투표하기!> http://j.mp/Kyfzd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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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길 - 도법스님 생명평화 순례기
김택근 지음 / 들녘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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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 사는 일이 무척 신비롭게 느껴진다. 행과 불행 사이를 외줄타기하듯 하는 게 삶이라고 말했던 한 지인의 말도 떠오르고,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무척 고심스런 밤을 보냈다가도 그러고도 삶이 이어지는 우리네 삶이 그렇다. 그래, 사는 것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지어냈든, 혹은 그것과 상관없이 나에게로 오는 그 무엇이든, 그런 것들을 받아 안으며, 때로는 힘에 부쳐 고민하며. 하여, 삶은 살아진다는 말보다 살아낸다는 말보다, 살아간다는 말이 더 적실한 시간이다.

 

 아내는 법륜 스님을 좋아한다. 법륜 스님의 말씀을 나누는 가정법회도 성실히 다녔으니, 그 정성은 기특하다. 나도 안다. 아내가 법륜 스님을 찾아가고 법문을 듣고 즉문즉설을 경청하게 된 계기가 어쩌면 나에게서 비롯한 것일 수도 있다는 걸.(근데 이렇게 말하면서도 결국엔 본인의 문제일 것이다, 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걸로 동네 아주머니들은 나에게 은근히 타박을 준다. 왜 아내 고생시키냐는 뉘앙스다.

 

 나는 도법 스님을 좋아한다. 도법 스님에 대해 좀 알게 된 게 아주 최근의 일이지만, 내가 도법 스님의 스타일을 좋아한 것은 오래전부터 분명했다. 앉아서 말하는 것보다 몸으로 밀고 나가는 게 좋다.(그렇다고 법륜 스님을 폄훼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법륜이든 도법이든 결국 진리는 하나다. 법은 하나다. 다만 내 스타일이 그렇다는 것일 뿐이다.)

 

 서른 중반까지 살아오면서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겁니까?`하는 물음 꽤 오래 담고 살았다. 질문이 너무 포괄적이라 답도 없기 쉽지만, 어째튼 나는 내 삶이 헛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삶이 충실했으면 좋겠다, 내가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는 헛된 바람같은 걸 늘 품고 살았던 것 같다. 그래서 여기 저기 기웃대며 지냈다. 공부를 해보겠다고 나선 적도 있고, 현장 실천에서 길을 찾겠다고 나선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길의 끝까지는 가본 적이 없다. 가다가 실망하고 되돌아섰다. 끝까지 가보지 못했다는 것은, 내 끈기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이게 길이 맞나?`하는 회의도 없지 않았음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강길을 걷는 운을 얻었다. 그 시작이 금강 걷기였다. 노00, 황00, 김00, 그리고 내가 함께 걸었다. 물뿌랭이 마을에서 시작한 금강의 시작에서부터 군산 앞바다까지 천리길을 걸었다. 나는 그 길에서 많은 걸 얻었다. 함께 한 사람에게서 오는 절대적 인간애. 자연이 가져다주는 자연 치유의 능력. 걷는 게 곧 자유일 수 있다는 깨달음. 반대로 잃어가는 것에 대한 아픔도 많았다.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길이 사람의 길이 아닐 수 있다는 막연한 깨달음 같은 것이었다.

 

 걸어보면 안다. 사람의 길은 갈 수록 좁아진다는 걸. 속도에 밀리고 편의에 밀리고 욕심에 밀린다. 그럼에도 사람의 길은 계속해서 탐색되어야 한다. 속도에 치여 죽어가는 뭇생명들에 대한 연민, 도심지 소비를 지탱해주는 농촌의 무한한(언젠가는 그렇지도 않겠지만) 희생, 경쟁보다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지혜, 자신의 실상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슬기, 연민에 바탕은 자비심의 실행.

 

 이 책을 읽고는 우리 사는 현실에 절망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스님은 절망을 말하지 않는다. 그 절망을 이겨낼 수 있는 길은, 우리가 모두 사람의 길을 찾아나서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아.. 사람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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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는 스승님으로 모시고 싶은 분이 몇분 계신다. 그 가운데 한 분이 노영민 선생님이시다. 나와는 강길을 걸으면서 깊은 인연을 맺었다고 믿는다. 금강 천리길, 영산강, 낙동강, 제주도 해안길. 선생님과 함께 길 위에 서서 많은 이야기 들었다. 때로는 위로를 받았고, 때로는 호통을 들었다.(물론 선생님은 호통친 일이 절대 없으시지만, 어리석은 나는 채찍으로 받아들였다.) 함께 노래 부르며, 시를 읊으며 눈물 흘린 일도 있다. 그러면서 삶은 더 깊어져갔다.

 

 이런 인연이 있는 선생님이 첫 시집을 내셨다. 꼬박 20년 가까이 써오신 시다. 이상석 선생님은 대한민국에서 시 낭송을 가장 잘 하는 사람으로 노영민을 꼽는다. 들어보면 속이 다 시원하다. 나긋나긋 읽는 게 시낭송이 아님을, 노영민의 시낭송을 들어보면 안다. 말이 곧 시가 되는 몇 안되는 사람. 일같이 시를 쓰신다는 사람. 그런 분이 20년 세월이 지나서야 늦둥이를 보신 셈이다.

 

 함께 강을 걸었다는 인연으로, 함께 당 후원 관련으로 징계를 받았다는 인연으로, 함께 근무했다는 인연으로. 그런 인연이 모여 선생님의 출판 기념회를 기획하고 준비했다. 판흐름, 먹거리, 시극, 악기 연주, 시낭송, 음악 준비, 이야기 판... 세상에나 몇 경험해보지 못한 출판기념회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느낌이 풍성한 출판기념회는 처음이었다.

 

 

 시집의 발문을 쓰신 이상석 선생님. 시집에 실린 시도 시이지만, 발문도 인상깊다. 다른 시집과는 달리 알아먹게 써주셨다. 대단한 통찰이다 싶다. 해야 할 말을 맞춤한 자리에 부려쓰는 것, 이상석 선생님의 글을 읽어보면 알게 된다. 이상석 선생님이 쓰신 <못난 것도 힘이 된다> <사랑으로 매긴 성적표>를 추천한다. 

 

 

 우리는 좌석 45개를 준비했는데, 한 70분 가까이 오셨다. 무슨 인연으로 오셨을까?

 

 

 예쁜 자리에 오랜 인연이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무척 예쁘다. 그렇지, 인연이란 게 이런 거지. 인연이란 진리의 다른 말이야. 모든 존재가 그런 상태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원리가 곧 인연법인 거야. 모든 존재가 그런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그렇게 하도록 이끄는 인연. 어쩌면, 우리 선생님, 이런 인역 덕에 이 좋은 시를 쓰셨는지 몰라.

 

 

 

 꽃으로 축하해주는 제자. 역시 제자로부터 감사와 존경을 받는 선생님의 표정은, 딴데서 보는 것과는 달라.

 

 

 

 본인 시 읽어주는 사람 여럿 있었고, 본인 시를 노래로 만들어 불러주는 사람도 있었고, 분위기 띄우려고 악기 연주해주는 친구도 있었고, 본인의 시를 극으로 바꿔 무대에 올린 후배도 있었는데, 이제 시인 이야기 들어봐야지. 어째 어째 시가 됐는지, 어째 어째 살았는지... 그럼, 격정적이지는 않았으되 치열하게, 여유는 있었으되 부지런히, 우리 선생님 그렇게 사셨을 거라, 시를 통해 짐작할 뿐.

 

 

 

 출판 기념회를 총괄 기획한 선생님. 뒤풀이 흥에 겨워 사랑가 한 자락 부르신다.(내 혼례식에서도 이랬다~ㅋ) 아무렴, 잔치에 노래 빠지면 곤란하지.

 

  

 

 눈물도 흘렸고, 가슴도 먹먹했고, 그리고 이렇게 재미도 있었다. 

 

 노영민 시인, 두번째 시집이 벌써 기다려진다.

 그날도 이렇게 예쁘고 아름다운 자리, 함께 만들면 좋겠다. 

 

 

 이번에 출판하신 시집의 표지다. 선생님의 학교 학생이 직접 그렸다고 한다. 시가 많아 아직 다 읽지는 못했다. 조만간 읽고서 리뷰 남기는 것으로 선생님에 대한 예를 갖춰야겠다. 이번에는 일단 이렇게라도 출판 기념회 후기를 정리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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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부처
도법 지음 / 호미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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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종교에 관한 관심이 많이 생겼다. 몇해 전에도 종교에 대한 관심으로 성당에서 세례까지 받았었다. 그런데 그때와 지금은 좀 다르다. 그때는 어딘가에 의지할 의지처를 찾았다면, 지금은 진리에 대한 궁구가 크다. 그게 그거일 수 있지만, 이제는 어느 특정 종교에 대한 믿음을 찾지 않는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다.

 

 하느님은 예수 이전에도 싯다르타 이전에도 존재했었다. 우리 선조들이 돌을 던지며 복을 기원하던 서낭당에도, 당산 나무에도, 장독대 정한수에도 하느님은 존재했다. 예수와 싯다르타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러 온 전령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예수를 믿니, 싯다르타를 믿니 하는 것은 어쩌면 헛것일 가능성이 크겠다. 하여 나는 하느님, 곧 진리를 믿기로 했다. 다만, 그게 뭔지 몰라 헤매고 있긴 하지만...

 

 이 책은 도법 스님이 출가 수행자에게 들려주는 부처님의 생애를 담고 있다. 탄생- 출가 - 고행 - 수행 - 열반의 과정을 쉽게 설명했는데, 부처님의 깨달음, 곧 진리의 내용을 접할 때마다 탄복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보고 듣고 말하는 느끼는, 바로 지금 여기, 견문각지 見聞覺知하는 그 순간순간 상황상황을 온전하게 살아가라.`는 가르침이나,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말라.`는 말은 무지몽매에 가까운 나에게 감로수와 같았다.

 

 부처님은 `삼계개고 아당안지 三界皆苦 我當安之`라고 했다. `인생의 세상 살이가 고통이니 내가 그것을 마땅히 편안하게 하겠다`는 의미다. 이것은 부처님의 상구보리 하화중생과 비슷한 의미로 개인의 수행에만 머물지 않겠다, 세상을 사람 살 수 있는 곳으로 변화시켜 보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그것은 신비로운 행적이나 고행주의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진리로 가능한 것이다. 예수님도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진리가 그대의 삶을 자유롭게 한다. 진리의 정신대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다. 그 삶이 평화롭게 자유롭고 행복하다.`` 붓다도 마찬가지다. ``진리에 귀의하고 자신에 귀의하여 진리의 정신에 따라 주체적으로 동체대비의 삶을 살라. 그대의 삶이 평화롭다.``

 

 부처님이 모든 생명은 고통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 고통의 뿌리는 자아의식이다. 자아가 없는 것도 이상하지만, `나`가 고정불변의 실체라고 믿을 때 생겨나는 자기중심성은 평생 달고 다녀야 하는 그림자 같은 존재이기도 하지만 또한 극복해야할 망상같은 것이기도 하다. 어째튼 부처님은 이 자아의식의 욕망을 정확히 겨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게 곧 수행의 대비원력이고 마음가짐이라고 했다.

 

 대체로 알고 있었던 내용이 많았지만, 실천의 문제는 또 다른 거였다. 앎과 삶의 간극이 너무 선명해서 부끄럽기도 했지만, 다시금 기둥 하나 세울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성찰하고 참회하며 수행하라는 가르침을 마음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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