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부처
도법 지음 / 호미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종교에 관한 관심이 많이 생겼다. 몇해 전에도 종교에 대한 관심으로 성당에서 세례까지 받았었다. 그런데 그때와 지금은 좀 다르다. 그때는 어딘가에 의지할 의지처를 찾았다면, 지금은 진리에 대한 궁구가 크다. 그게 그거일 수 있지만, 이제는 어느 특정 종교에 대한 믿음을 찾지 않는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다.

 

 하느님은 예수 이전에도 싯다르타 이전에도 존재했었다. 우리 선조들이 돌을 던지며 복을 기원하던 서낭당에도, 당산 나무에도, 장독대 정한수에도 하느님은 존재했다. 예수와 싯다르타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러 온 전령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예수를 믿니, 싯다르타를 믿니 하는 것은 어쩌면 헛것일 가능성이 크겠다. 하여 나는 하느님, 곧 진리를 믿기로 했다. 다만, 그게 뭔지 몰라 헤매고 있긴 하지만...

 

 이 책은 도법 스님이 출가 수행자에게 들려주는 부처님의 생애를 담고 있다. 탄생- 출가 - 고행 - 수행 - 열반의 과정을 쉽게 설명했는데, 부처님의 깨달음, 곧 진리의 내용을 접할 때마다 탄복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보고 듣고 말하는 느끼는, 바로 지금 여기, 견문각지 見聞覺知하는 그 순간순간 상황상황을 온전하게 살아가라.`는 가르침이나,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말라.`는 말은 무지몽매에 가까운 나에게 감로수와 같았다.

 

 부처님은 `삼계개고 아당안지 三界皆苦 我當安之`라고 했다. `인생의 세상 살이가 고통이니 내가 그것을 마땅히 편안하게 하겠다`는 의미다. 이것은 부처님의 상구보리 하화중생과 비슷한 의미로 개인의 수행에만 머물지 않겠다, 세상을 사람 살 수 있는 곳으로 변화시켜 보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그것은 신비로운 행적이나 고행주의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진리로 가능한 것이다. 예수님도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진리가 그대의 삶을 자유롭게 한다. 진리의 정신대로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다. 그 삶이 평화롭게 자유롭고 행복하다.`` 붓다도 마찬가지다. ``진리에 귀의하고 자신에 귀의하여 진리의 정신에 따라 주체적으로 동체대비의 삶을 살라. 그대의 삶이 평화롭다.``

 

 부처님이 모든 생명은 고통을 받고 있다고 했다. 그 고통의 뿌리는 자아의식이다. 자아가 없는 것도 이상하지만, `나`가 고정불변의 실체라고 믿을 때 생겨나는 자기중심성은 평생 달고 다녀야 하는 그림자 같은 존재이기도 하지만 또한 극복해야할 망상같은 것이기도 하다. 어째튼 부처님은 이 자아의식의 욕망을 정확히 겨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게 곧 수행의 대비원력이고 마음가짐이라고 했다.

 

 대체로 알고 있었던 내용이 많았지만, 실천의 문제는 또 다른 거였다. 앎과 삶의 간극이 너무 선명해서 부끄럽기도 했지만, 다시금 기둥 하나 세울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성찰하고 참회하며 수행하라는 가르침을 마음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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