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동의 실크로드 스케치기행 1
박재동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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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동 일행은 바리데기를 영화로 만들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실크로드 답사길에 오른다. 장선우 감독도 함께 했다 하니, 진짜 영화로 만들 계획이었던 것 같긴 하다. 이후에 무슨 사정이 생겼었는지 모르지만, 아직 영화로 만들어지지는 않은 모양이다. 장선우 감독과 박재동 화백의 영화상에 대한 논쟁, 환타지적 요소의 강화냐, 사실적 요소의 부각이냐, 하는 논쟁의 결론이 사뭇 궁금한데 말이다.

 

 일행은 `북경-서안-난주-돈황-투르판-쿵나스 임장-나라치-터커쓰-투르판-룬타이-(타클라마칸 사막)-민풍-호탄-카슈가르-카슈쿠르간-훈자-길기트-이슬라마바드-라호르-델리`로 이어지는 실크로드를 답사하게 된다. 익숙한 지명도 몇 있긴 하지만, 다수가 생소하다.

 

 박재동 화백은 답사길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스케치했다. 사진이 대세인 요즘, 풍경을 스케치한 걸 보는 묘미는 좀 색달랐다. 직설적이지 않고 시적이었다고 할까. 흔들리는 차 안에서, 낙타 위에서, 조용히 앉아서, 낮이나 밤이나 새벽이나... 언제 어디서든 그리고 싶은 마음이 일 때, 화백은 그렸다. 대단한 열정이 아닐 수 없다.(최근에 나온 손바닥 아트라는 책에서도 느꼈다. 아주 오랜 시간 이 열정을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은 부단한 자기 노력의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그의 그림만 시적인 게 아니다. 그의 글이 시보다 더 시적이었다면, 과장일까?

 

 실크로드 하면, 나는 대초원, 호수, 사막을 먼저 떠올린다. 율두스 초원. 어디가 처음이고 어디가 끝인지 가늠할 수 없을 것 같은 공간. 주먹만한 별들이 하늘을 빼곡히 채우고 있을 것만 같은 곳. 새는 날고 말은 뛰고 사람은 걷는, 삶의 건강함이 살아 있을 것만 같은 곳. 그런데... 화백이 본 율두스 초원은 쫄아들고 있었다. 아마도 몽골도 살기 위해, 세계화라는 이름 아래, 세계 자본의 투기바람 속에 황폐화되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우리가 6,70년대 그랬던 것처럼, 개발의 과정에 놓여 있겠지. 하지만 사람이 살기 위해 선택한 것이라면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초원의 훼손이 먼 타국인인 나에게는 아쉬운 일이지만, 그 지역의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결과 아니겠는가. 다만, 바라는 건, 시간이 흐른 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을 안타까워하며 아쉬워하는 것처럼, 몽골인, 유목민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 좋겠다는 거다. 어째튼 어려움을 지혜롭게 헤쳐나가길 바란다.

 

 바양 블라크 호수. 사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이 바양 블라크 호수는, 실은 호수가 아니다. 강이 곧바로 흐르지 않고 열여덟 번이나 구비치며 맴돌아 아예 호수라고 부르는 곳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설산을 배경 삼아 넓게 구비치는 강 호수의 모습이 아름답다. 저녁 노을이 반사되어 비친다면, 그게 곧 바리데기와 무장승이 행복하게 사는 천국이 아니겠는가.

 

 사막은 언젠가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다. 아마도 삶의 기운이 빠졌을 때였겠지. 시인 유치환도 `생명의 서`에서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 사막으로 가자`고 노래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똑같은 모래 풍경을 보며 여행한다는 것은 좀 지겨울 것 같기도 하다. 다만, 그곳에서의 밤만큼은 황홀하겠지.

 

 하나 기억해두고 싶은 내용이 있다. 일행이 옥의 나라 호탄에 이르게 되는데, 이 호탄이란 곳이 우리 나라와 인연이 있다. 전남 해남 미황사 창건 설화와 관련되는데,

 

  아주 아주 옛날, 남도의 바닷가에 낯선 배 한 척이 도착했다. 그 배에는 금으로 반든 사람과 불경이 실려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들을 내려 황소의 등에 조심스럽게 실어 운반했는데, 가는 도중에 황소가 더 이상 가지 않고 한 자리에 누워버렸다. 황소가 누운 자라에 절을 세웠는데, 그 절이 바로 미황사다. 그리고 그 배는 멀리 우전국에서 왔다 한다. 

 

 여기 우전국이 바로 호탄인 것이다. 이 이야기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는 아주 오래 전부터 중동과 교역이 활발했다. 우리가 국사 교과서에서 얼핏 봤던 `색목인`도 중동인을 가리킨다. 그리고 경주 석상 가운데 중동인의 모습을 한 것도 제법 있다. 이런 정황을 봐서, 우리 민족이 단일 민족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거꾸러 거슬러 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바양 블라크, 율두스 초원을 여행할 때는 우리의 5,60년대의 정서가 환기가 되었고, 타클라마칸을 건너 호탄과 이슬람권을 여행할 때에는 저 시간의 끝을 탐사하는 것 같았다. 여행의 끝에서는 `우리의 시작은 어디였지?`하는 어리둥절함이 잠깐 남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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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그만뒀습니다 - 국민참여재판 1호 검사 오원근의 버릴수록 행복한 삶
오원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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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연말에 사두었다가 새해에 곧장 읽었다.

몇 년 전에 일반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혹은 그들이 말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법조계의 비리나 문제점들을 밝힌 <불멸의 신성가족>을 읽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는 `우와~ 얘네들 TV나 신문에서는 억수로 무게잡고 있는 척 하더니, 겉과 속은 다르네.`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을 주문하면서도 <불멸의 신성가족>처럼 법조계의 문제를 다루지 않았을까, 앞선 책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더 내밀한 부분, 예를 들면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의 문제점을 검사의 입으로 들려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제목이 <검사, 그만뒀습니다>이니 충분히 그럴만 했다. 특히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 검사를 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고 하는 저자가 아닌가!

그러나 읽어가면서 내 기대가 무참히 무너졌다. 좀더 신랄한 검찰청 내부의 이야기를 기대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삼성의 문제를 거론했던 김용철 변호사가 당한 아픔과 상처만 봐도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이야기를 자신의 입으로 거론한다는 게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생을 거는 일은 아닐까. 실망 이전에 기대를 접는 게 어쩌면 현명했겠다.

 

대한민국에서 검사는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전직 대통령도 죽이지 않았는가. 맘에 들지 않는 정치인을 감옥에 가둘 수도 있지 않는가. 그렇지만 이들은 그 누구로부터 감시와 견제를 받지 않는다. 한쪽에는 봐주기, 부실, 축소 수사를 하고 반대쪽에는 과잉, 표적, 보복 수사를 하면서 국민의 원성을 사도 그들은 염치를 모른다. 아, 염치를 모르는 검찰 지도부가 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검사를 `그만 둔` 저자 오원근 때문이다. 검사는 대한문 앞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에 조문을 하면서 검사직을 떠날 것을 다짐했다고 한다.

 

그는 부당한 검사 권력에 대한 소극적 저항으로 사표를 썼지만,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다른 데 있어 보인다. 버릴수록 행복해지는 삶의 진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릴 적 몹시 가난하게 자랐다. 아버지는 경제적 능력이 없었고, 어머니는 행상으로 생계를 이었다. 아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상처도 입고 나름의 의지도 세웠다. 각고의 노력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법조인이 되었다. 성인이 되고 높은 지위에 올랐음에도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어머니는 여전히 좌판을 깔아놓고 장사를 하고 있다. 이제는 그 모든 것들이 인연이란 걸 어렴풋이 깨달았다. 어머니, 아버지의 삶은 자식인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그분들의 팔자라는 깨달음.

이런 깨달음은 그저 주어진 게 아닐 것이다. 살아온 연륜에서 온 것도 있겠고, 정토회의 깨달음의 장이나 100일 출가를 통한 영적인 성숙도 한몫했겠지.

저자는 정토회 100일 출가에 나선다. 100일 출가라... 곱씹을수록 그 시간의 끝없음에 놀랍다. 하나에서 백까지 헤아리기는 쉽지만, 100일은 어쩌면 삶을 많이 변화시킬 수 있는 시간일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3일 동안 만배를 하고 100일 출가에 들어간다. 그 100일 동안은 다른 스님과 같은 생활을 했겠지. 그 사이 어떤 깨달음 같은 게 있었는지(100일이라고 어떤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꼭 아니지만) 드러나 있지 않지만, 그런 영적인 삶을 살겠다는 자세를 보이는 것만으로도 대단해 보였다.

 

농사를 짓지 않고서야 한 생을 살았다고 말하지 말라는 문장을 어디선가 봤다. 농사는 그저 하는 육체적 노동은 아니다. 생명의 씨앗을 뿌리고 키우고 기르고 수확하는, 생의 처음부터 종결까지를 다스리고 몸으로 다가가는 일이다. 그런 일을 하지 않고 삶을 살았다고 말하지 말라는 언설은 좀 과한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분명 살아간다는 일과 농사의 전 과정은 통하는 면이 있어 보인다.

저자는 농사에 대한 애정이 대단히 강하다. 그래서 변산공동체에 가서 생활도 해보고 간단한 농사 정도는 짓고 있다. 이러면서 땅이나 자연이 주는 영험한 힘을 몸소 깨닫는 거겠지. 이 책에서도 농사를 향한 저자의 마음이 간절히 읽힌다.

그리고 저자는 자연을 사랑한다.(이것은 자연보호 할 때의 사랑과는 다르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아이들을 자연과 가까운 곳에 두려고 노력했다. 캠핑이 그 노력의 첫째인데, 호텔방처럼 모든 게 갖추어져서 편안함같은 것은 없지만, 자연의 그 거침 가운데 새로운 에너지가 생성되고 움직이고 있음을 깨치고 있었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자연이 우리 인간에게 제공하는 건강한 기운을, 자식들로 하여금 마음껏 누리게 하지 못하는 것은 커다란 죄악이다. 아이들은 그 기운을 흠뻑 받으며 자라야만 건강하고 원만한 인격체로 자랄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 192쪽

 

 저자는 누구나 마다않을 검사를 버렸다. 그리고 행복을 얻었다. 그의 행복의 근원은 자연, 농사, 불교(100일 출가)였다, 이것은 모두 자연스러움과 관련되는 일이다. 누군가 `정의란 무엇입니까?`라고 저자에게 물은 일이 있는데, 저자는 `자연스러움`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렇다. 저자는 검사직을 떠나면서도 정의를 추구했고, 그것은 자연스러움에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우리보다 더 넓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 집에 다녀와서는 ``우리도 30평 넘는 집으로 이사를 가자``라고 한다. 아내와 나는 아이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조용히 무시한다. 우리는 행복의 척도는 결코 돈의 많고 적음이나 집의 크기에 있지 않다는 것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행복은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소박한 삶에 있다. - 202쪽

 

 어깨에 힘을 빼면서 보다 자연스러워진 오원근. 그것으로 보다 행복해진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꽤 전에 봤던 정호승님의 시 한편이 떠올랐다.

 

 산사로 가는 길

                                  정호승

 

산사에 오르다가

흘러가는 물에 손을 씻는다

물을 가득 움켜쥐고

더러운 내 손이 떠내려간다

동자승이 씻다 흘린 상추잎처럼

푸른 피를 흘리며 계곡 아래로

나는 내 손을 건지려고 급히 뛰어가다가

소나무 뿌리에 걸려 나동그라진다

떠내려가면서도 기어이 물을 가득 움켜쥔

저놈의 손을 잡아라

어느 낙엽이 떨어지면서 나뭇가지를 움켜쥐고

어느 바위가 굴러가면서 땅을 움켜쥐고

어느 밤하늘이 별들을 움켜쥐고 찬란하더냐

산사의 종소리가 들린다

관 밖으로 툭 튀어나온 부처님의 발을

다시 관 속으로 고요히 밀어넣는

저 저녁 종소리를 들으며

움켜쥔 것은 모두 놓아버리고

손이여

물속에서도 풍경소리 울리는

한마리 물고기가 되어 바다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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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 - 아이를 행복하게 하는 좋은 엄마의 필독서
문은희 지음 / 예담Friend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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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1개월이 된 남자 아이 하나를 둔 아빠다. 아내는 2년 동안 육아에 전념하고 있고, 내년 3월이면 아내와 나의 역할 교대가 있다. 내가 육아 휴직을 하는 거다. 며칠 전엔 우리 나라 남자 육아 휴직자가 1,000명이 넘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그 수의 대다수가 공무원이거나 공기업의 직원일 것이다. 나 역시 별 어려움없이 육아 휴직을 결의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직업이 갖고 있는 엄청난 메리트 덕임을 잘 안다. 이런 나를 두고 부러워하는 여성 직장 동료들이 있다. 나는 그들이 무엇을 부러워하는지 잘 안다. 그래서 다른 직종에서도 남편들이 육아 휴직하는 걸 눈치보지 않고, 제도적으로 완벽히 보호받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고, 그런 걸 완전히 보장할 수 있는 정치적 권력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육아 휴직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긴 했지만, 육아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집에 육아 관련 서적이 많지만, 왠지 내 마음을 끌지는 못했다.(나는 내가 선택한 도서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냥 몸으로 놀아주기만 하면 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와 희망만으로 육아를 선택한 거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육아 휴직에 관한 걱정이 늘기 시작했다. 육아는 단순히 아기를 기르는 행위만은 아닐 것이다. 그 속에 담긴 여러 가지 의미와 정서의 호응을 생각한다면, 육아를 하겠다는 사람의 마음 가짐이나 육아 태도가 무척 중요할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껏 아내가 해왔던 것만큼의 육아 태도를 내가 견지할 수 있을지, 아기-우리 아기 이름은 슬뫼이다.-에게 오히려 혼란을 불러오는 것은 아닐지, 염려했다.

 

우연히 한겨레 21 잡지를 넘기다가 하단에 자그맣게 난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이 책과 관련한 기사였다. `오호~ 기대가 되는 걸`하는 생각이 우선 들었고, 곧바로 주문에 들어갔다.(나는 대체로 책을 추천하는 사람이나 언론을 많이 의지하는 편이다. 내가 좋아하는 언론사에서 추천한 책에 대한 신뢰가 좀 높은 편이다. 물론 실패할 때도 잦다.) 책을 구입하면서 `그봐, 육아에는 엄마의 책임이 그만큼 큰 거야. 그러니까 당신, 잘 해!!`이런 말을 아내에게 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던 것 같다. 책을 읽고, 곧바로 아내에게 읽으라고 들이밀어야지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이 책은 나의 수중에 있다. 왜 그럴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육아의 책임이 전적으로 `엄마`에게만 있다고 읽지는 않았다.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고 했지만, 실은 엄마 아빠의 잘못된 육아 태도가 아이를 아프게 하는 것이다. 표현으로는 `엄마`라고 되어 있지만, 그것은 육아 주체 모두를 포함하는 의미로 읽혔다는 말이다. 그러니 여기서의 `엄마`는 아기의 육아 주체, 엄마와 아빠를 모두 포괄하는 것이라 여긴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말하는 포함단위나, 공감능력, 어릴 적의 상처 등은 `엄마`의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기에 그렇다.

 

이 책의 저자는 박사 과정을 영국에서 밟았는데, 박사 학위 논문에 `포함 단위`라는 개념이 있었단다. 하지만 논문 지도 교수는 그것을 끝까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것은 문화적인 차이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 나라 어머니들은 자식이나 남편을 모두 스스로에게 귀속시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자식이 잘 되어야 내가 잘 된다거나, 자식의 실패를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는 경향 등이다. 문화적으로 자유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서방 세계에서는 이런 우리의 인식의 경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겠다. 우리는 집단주의, 가족주의의 세례를 받은 민족이 아닌가.

그런데, 육아에서는 이런 포함 단위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부모의 실패를 자식의 성공으로 보장받으려는 것도 이런 포함 개념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교육이나 선행 학습 등의 성행도 자식을 진정 사랑한다는 것을 가장한 부모 스스로의 자족적 행위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왜? 자식의 성공이 곧 나의 성공이니까.

여기서 내가 좀 의아했던 것은 포함 단위의 개념이 우리 나라의 어머니들에게만 내면화되어 있다는 걸까? 하는 거였다. 당장 나만 봐도, 나는 나의 어머니를 포함하고 있다. 나의 행복이 곧 어머니의 행복이라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나의 어머니가 나를 포함했듯, 나 역시 나의 어머니를 포함하고 있는 거다. 이게 독립된 나로서의 삶에 때로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지만 어떻게 벗어날 수 없다. 그저 주어지는 상황에 따라 적절히 대처한다는 것일 뿐. 여기에는 다분히 문화적 기제들이 작용하고 있다. 내가 자라온 환경의 가부장적 태도들, 나의 성공을 위해 헌신한 어머니의 노력들. 이런 세례를 받고 성장한 나 역시, 아들 슬뫼에게 어떤 포함의 그물을 던져 놓을지 알 수 없다. 이 책을 통해 포함 단위의 위험성을 자각했으니, 조금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그런데 이 포함단위의 문제가 거의 생래적인 것에 가까워서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다. 그래서 수양이 필요한 거겠지.)

 

아직 슬뫼는 말을 거의 하지 못한다. `엄마, 이거 이거` 정도가 뚜렷하다. 그래도 사람의 말귀를 알아듣는 눈치다. 내가 하는 말은 슬뫼가 잘 알아듣는데, 슬뫼가 하는 말은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대화의 형식은 성립하는 것인데, 소통이 이뤄지지 않으면 좀 문제가 될 것 같다. 상대의 말을 알아듣는데, 자신의 말을 상대가 알아주지 않으면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그래서 아기와 부모의 공감 능력이 무척 중요한 거다. 내용은 뚜렷이 잘 몰라도 느낌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 그게 공감아닌가. 아기는 내용의 전달이나 이해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감정, 상태 등을 공감받으면 대체로 안전함을 느낀다. 그런데 부모의 공감 능력이 단시간에 생겨나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을 공감하는 능력이 과연 있나? 리더쉽 연수나 아빠 연수에서 기술적인 부분을 배우긴 했지만, 아직 내면화의 단계는 아닌 것 같다. 사실, 그게 어디 배움으로 해결될 문제인지도 잘 모르겠다.

 

육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뭘까를 꼽으라면, 나는 부모의 육아 태도라고 말할 것이고, 육아 태도를 결정짓는 핵심 기제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부모의 어릴 적 경험이라고 말할 것 같다. 사실 육아 태도만이 아니라 인간 관계를 맺는 법, 화를 내는 법, 대화를 하는 법 등,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삶의 태도 중 많은 부분들이 나의 어릴 적 경험과 상처에서 비롯한 게 많겠기에 그렇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보라고 권하고 있다. 자신의 상처가 해소되어야 건강한 육아가 가능하다는 말씀인데, 전적으로 공감이 됐다. 사실,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자신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아픔과 상처를 떠올리며 그 상황에 들어간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와 진실한 태도가 요구된다. 어떻게 나의 불우한 과거를 남한테 드러낼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저자는 그렇게 하는 용기가 자녀의 육아에 무척 중요한 것이라 말하는 것 같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나의 아내가 생각났다. 가끔 아내는 자신의 어린 시절 상처에 대해 나에게 말해줄 때가 있다. 남편인 나에게도 그런 아픔을 드러낸다는 게 그리 쉽지 않은 일 같은데, 아내는 참 용기가 있는 사람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를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아내는 행복하게 살고 싶어하는 욕구가 굉장히 큰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행복한 삶을 위해 스스로를 돌아보고 그것을 치유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아내가 이런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요가나 정토회 법회, 명상의 힘이 큰 것 같다.

나는 대체로 아내에게 어릴 적 시골에서의 따뜻한 기억들 중심으로 이야길 했던 것 같다. 돌아보면 나에게도 무수히 많은 상처가 있었을 텐데, 그게 아직 나에게 확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가끔 갑갑증 같은 걸 느낄 때가 많은 걸 보면, 나 역시 해소되지 못한 어떤 커다란 아픔이 있겠다는 느낌 같은 것은 있다. 7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으니, 그 상처가 오죽하겠는가. 어릴 때 `젊잖다`(젊지 않다는 말의 준말이다.)는 말을 자주 들었으니, 어린 마음에 얼마나 많은 상처가 있겠는가. 며칠이 지나면 명상 기간에 들어간다. 그 기간만큼은 나의 어릴 적 아픔과 상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이것은 나를 위한 것이면서 나의 주변 사람을 위한 것일테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부모의 역할에 초점을 두고 읽었다. 부모 모두 포함 개념을 이해하고 자식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혜안을 길러야 하며, 부모 모두 아기와 공감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하며, 부모 모두 스스로의 상처를 돌아볼 줄 알고 그것을 치유하며 육아에 임해야 한다는 거였다.

그렇지만, 어찌 육아가 부모의 일로만 묶일 수 있는가. 부모가 건강한 육아를 책임지기 위해서는 그것을 둘러싼 제반 여건들이 조성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앞에서 언급했듯이 남편의 육아 휴직을 교묘하게 막아서고 있는 사회적 풍토, 공동 육아 시설의 열악함, 출산과 육아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는 주택의 문제, 육아가 오롯이 엄마의 몫이라고 여기는 가부장적 문화 등.

 

결국,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육아를 불가능하게 하는

우리 사회의 미개함이 아이를 아프게 하는 것은 아닐지 반성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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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애가 쓰는 인간의 조건 - 어떤 ‘삶’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김진애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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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주간지에서 이 책의 출판 소식을 접했다. 나는 책의 제목이나 책의 내용에 대한 대략적인 언급보다 저자 `김진애`에 더 마음이 쏠렸다. 김진애라... 지난 해에 학교 학생들과 함께 운영한 독서 토론 동아리에서 <젊은 날의 깨달음>이란 책을 읽었는데, 거기서 김진애를 처음 만났다. 책의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자신의 전공인 건축과 자신의 삶 이야기를 하면서 도전의 의미와 실패의 가치에 대한 말씀을 하신 것 같다. 젊은 시절부터 유학이나 공부,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그러면서 일하는 여성이 경험하고 이겨내야 할 우리 사회의 구조적 편견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아, 사실 나는 김진애의 글을 읽으면서, `와~~ 대단한 남자네.`라고 생각했다가, 거의 다 읽을 무렵, 여자란 걸 알았다. 이것 역시 내가 갖고 있는 편견의 투영이겠다.)

 

 김진애와의 만남은 `4대강 공사`와 관련한 신문 기사를 통해서 더 이어졌다. 비에 무너진 강 제방 옆에 아주 걱정스런 눈빛으로 서 있던 모습은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녀는 4대강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헤치고 질타하는 내가 아는 유일한 정치인이었다. (4대강 관련해서 꾸준히 문제 제기를 하고 항의를 했던 이로 나는 김진애와 관동대학교 토목 교수님을 기억한다.) 그녀는 공부하고 배운 학문적 지식을 양심의 잣대에 비추어 현실에서 목소리를 내고자 한, 실천적 지식인의 모습이었다. <나무의 죽음>, <신갈나무투쟁기>를 쓰면서 자연의 위대함에 귀기울이게 했던 수많은 독자를 배신한 차윤정과는 격이 다른 `성찰적 실무자`였다. 그래서 나는 김진애같은 이가 공공의 영역에서 제 목소리를 내고 실천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권력을 쥘 때, 이 뒤틀린 사회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것 때문에라도 2012년 4월은 무척 중요하다.

 

 이런 그녀가 최근에 새 책을 냈다. 나는 김진애라는 이름 때문에 당장 이 책을 구입했고, 어젯밤 내처 읽고 말았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김진애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아, 이렇게 따뜻한 사람이 있나, 소위 속물적 시선으로 엄청난 학벌을 가졌으면서도 어떻게 저렇게 희생적으로 살아갈 수 있나, 대체 어떻게 한결같이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보편적 인류애의 모습을 견지할 수 있나, 그녀의 삶은 어떻게 선택되었던 것인가?

 

 그녀는 이런 나의 물음에 한나 아렌트가 쓴 `인간의 조건`을 인용해가며 자신의 삶을 선택한 기준들에 대해 술회해나가고 있다. 이것은 지극히 김진애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누구나 한번쯤 읽어볼 가치가 있어 보인다. 이유는 우리도 매 순간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하는 본원적 물음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나 아렌트가 말한 `활동적 삶`을 인간의 조건으로 여기며, 이 인간의 조건이 더욱 나빠지는 현실적 문제에 대해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이 활동적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인간의 근본 활동인 노동, 작업, 행위가 무척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노동은 생의 아주 기본적인 욕구, 먹고, 입고, 자고 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수단 정도 될 것이다. 그리고 작업은 인간의 유한성으로 생겨난 작용으로, 후대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위한 어떤 노력 등으로 정리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예술 작품을 만든다거나 건축물을 만든다거나 이명박처럼 저렇게 강을 파헤쳐 뭇 생명들을 죽인다거나. 그리고 행위는 아렌트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 것인데, 말과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이 이루어지는 그 과정 혹은 그것 전체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녀가 현실적으로 인식하기에는 노동은 위기이고, 작업은 폭력적이며, 행위는 실종되었다. 노동의 위기는 노사관계의 폭력적 구조, 엄청난 실업률, 산업 구조의 극단적 양극화 등으로 이야기될 수 있겠다. 폭력적인 작업은 이미 말했듯이 4대강 사업, 청계천, 원자력 발전소 건설 - 아이고, 어째 말하는 것마다 가카하고 연결되냐? - 등이 예가 되겠다. 행위의 실종은 날치기, 밀어붙이기 등으로 말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그녀의 눈으로 보나, 우리의 눈으로 보나, 지금, 현재는, 인간의 조건이 엄청난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이 세가지 인간의 조건 가운데 행위를 무척 중요하게 여겼다. 아까 말했듯이 행위는 사람의 말과 행동으로 이뤄지는 모든 작용을 포함하는데, 그러니까 소통 그 자체일 수 있는데, 이 소통의 원활함 여부에 따라 노동, 작업의 문제가 개선될 수 있다고 믿었던 듯하다. 그런데 소통은 곧 정치다. 이에 따르면, 정치는 노동과 작업과 행위의 문제를 보다 개선하기 위한 어떤 작용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 김진애는 정치에 뛰어들게 된다. 정치로 인간의 조건을 지키며 살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결국, 경제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정치가 문제인 것이다!!!

 

 결국, 김진애는 어떠한 삶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인간의 조건`이 기준이 되어왔다. 노동과 작업과 행위가 온전할 수 있는 것, 인간이 인간의 조건을 지키며 살 수 있는 것,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 이것이 김진애가 선택한 모든 것의 기준이었고, 그의 미래이다.

 

 나는, 이런 김진애가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 무척 다행스러우며,

 이런 김진애가 2012년에도 달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더 나아가, 이런 김진애가 세상을 바꿀 위치에서 권력을 집행할 수 있길,

 그 마음이 크다.

 

 덧>

   노무현 대통령과 김진애의 인연에 대한 글에서 울컥했다.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영예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노무현 대통령을 아직도 마음 속에 대통령으로 두고 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한 김진애의 평가가 인상깊다.

  내가 좋아하는 국회의원을 내가 좋아하는 책의 저자가 칭찬한다는 게,

  나로서도 뿌듯한 일이었다.

  김진애의 롤 모델이라는 이정희 의원을 나 역시 좋아한다는 것,

  김진애를 빌어 말할 수 있어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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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양음악 순례
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 / 창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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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이 책을 읽은 지 제법 흘렀지만, 마음의 울림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름다움은 아름다운 것으로 표현될 때 온전할텐데, 아무래도 나의 언어로는 불가하다. 괜히 내 말을 보탰다가는 이 아름다움에 불경스런 일이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음이 자꾸만 울컥거려 좀체 글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좀 가라앉을 필요가 있었다. 책을 읽고 리뷰 몇 줄 남기는 게 훌륭한 책을 세상에 내보인 저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잡았다.

 

 서경식은 재일조선인 2세, 자이니치이다. 그의 두 형은 서승, 서준식으로 한국의 민주화 운동 관련으로 옥고를 치러야 했고, 서경식은 그런 어두운 역사적 배경을 안고 우울한 시절을 버텨낸다.(나의 서양 미술 순례를 읽는 내내, 나는 그 우울감이 무거웠다.) 어쩌면 그의 우울은 태생적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일본에서는 일본인이 아니어서, 한국에서는 재일조선인이어서 경험할 수밖에 없는 생래적(生來的) 우울감!

 

 서경식의 이 책은 음악의 계급성, 잘츠부르크 음악제, 윤이상, 말러의 키워드로 읽혔다.


 음악의 계급성 - 음악은 불가사의한 존재다


 서경식은 어렸을 때, 클래식 음악에 반감을 가졌다고 한다.


 어릴 적 나는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반감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중산계급이라는 표지(標識)고 교양있는 가정의 표지였다. 바꿔 말하면 그것은 `일본인`이란 표지고 재일조선인인 내게 클래식음악이란 손에 넣을 수 없는 사치스런 장난감 같은 것이었다.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고 걸어가는 유복해 보이는 여자아이를 보면 돌이라도 던져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 43쪽


 음악(예술)은 다분히 계급적 속성을 내포하고 있다. 오페라의 시작이 르네상스 말기(1597년) 피렌체로 모여든 귀족들에게서 시작되었다지 않는가. 우리의 경우도, 궁중음악에서부터 민요까지만 해도 향유 계급은 천차만별이었다. 서양의 경우 지금도 그런가는 잘 모르지만, 지금 우리 나라에 수용되어 향유되는 클래식 음악만 봐도 그 사정을 확인할 수 있다. 브람스에서부터 트로트까지. 국립극장에서부터 라디오 감상까지.


  그런데 서경식은 클래식과 자본주의 중산계급의 세계를 등식으로 묶던 공식을 해제한다. 계기는 아마추어 합주단의 단골 구경꾼이 되면서다. 노동자, 교사, 두부가게 주인 등이 연주하는 음악이 전문가가 담지 못하는 진심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음악은 불가사의한 존재다.`라고 말한다.


 모차르트는 궁정과 귀족의 비호를 받았기에 수많은 명작을 작곡할 수 있었지만 그 곡들은 귀족사회의 가치관을 훨씬 뛰어넘는 세계를 창조하지 않았는가.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음악은 어쩐지 불가사의하지 않은가. - 69쪽


잘츠부르크 음악제 - 보수의 반격


 서경식은 이 책에서 잘츠부르크 음악제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그 덕에 음악제의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어서 새로웠다. 여기서 알게 된 잘츠부르크 음악제에 대한 내용을 대강 정리하면 이렇다.


 잘츠부르크음악제는 1차 세계대전 뒤 전쟁으로 황폐해진 예술의 재건과 진흥, 평화와 우애의 메시지 발신, 그리고 생활이 곤궁한 음악가와 예술가의 구제 등을 목적으로 (중략) 나찌는 1938년 오스트리아 합병 이전부터 음악제에 간섭을 하기 시작했고, 병합이 결정적인 단계에 접어들자 또스까니니와 발터 등이 음악제를 떠났다. (중략) 전쟁이 끝난 직후 잘츠부르크는 미군이 점령했으나 음악제는 열렸다. 전쟁 전의 음악제에서 중심적인 존재였던 푸르트벵글러와 그의 숙적 카라얀은 모두 비(非)나찌화 심사를 받게 되고 음악제에 금방 복귀할 순 없었다. (중략) 푸르트벵글러는 1947년에야 복귀했으나 (중략) 카라얀은 푸르트벵글러 사후 1956년이 되어서야 마침내 음악제 예술감독으로 취임했고 1960년에 그 자리를 떠난 뒤에도 잘츠부르크음악제의 `제왕`으로 군림하게 된다. (중략) 이 시절에 유럽 각지의 부유층들이 모여든 호화로운 사교장이 됐고, 입장료도 비싸 음악제의 재정은 아주 윤택했다. (중략) 1989년 카라얀의 급사로 잘츠부르크음악제의 카라얀시대엔 종지부가 찍혔다. (중략) 1992년에 벨기에인 제라르 모르띠에가 예술감독에 취임해 개혁을 시작했다. 모르띠에는 음악제를 호화로운 사교장에서 진지한 예술적 투쟁의 장으로 바꾸었던 것이다. (중략) 예술제는 실로 정치와 예술이 상극(相剋)하는 장이고, 예술에서 정치적 투쟁이 벌어지는 장이다.(101쪽-103쪽)


 이런 흐름으로 변모했던 음악제에서, 저자는 `보수파의 반격`을 현장에서 목격한다. 2010년 리까르도 무띠가 지휘하는 빈 필의 공연을 마치고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관객들 앞에 섰다. 그는 실험적이고 도발적인 신세대 연출가와 연주자들의 경향에 맞서 전통적인 오페라를 수호하겠다고 공언한 적도 있다. 이것을 목격한 저자는 `관객 동원력을 다소 희생하고라도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기획을 실현하면서 현대음악에도 활동의 장을 제공해온 모르띠에의 이념에, 관객 동원력을 중시하는 상업주의가 승리했음을 의미한다.`고 평했다. 이 무렵부터 음악제의 관객의 연령대가 높아지고 공연은 고급화되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보수파의 반격에 불길함을 느꼈다. 소련이 망한 것은 민족주의를 넘어서지 못한 국수주의, 그러니까 보수화의 물결과 무관하지 않다. 이념으로서의 사회주의는 사망선고를 받았고, 현실은 권위주의적 권력자가 통치하는 초국가일 뿐이었다. 저자가 무띠가 앞장선 음악제의 보수화에 불길함을 느끼는 것은 소련의 패망에서 느낀 어떤 회한과 관련있을 것 같다.


분열된 존재 - 윤이상, 말러, 그리고 서경식


 윤이상은 1967년 동백림 사건으로 납치, 수인이 되는 정치적 수난의 삶을 살게 된다. 그의 예술적 투쟁이 정치적 투쟁과 무관하지 않음은 그런 수난과 무관하지가 않다. 그는 독재 정권과의 격투를 그의 예술적 영감과 원천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저자는 형들의 구원 활동을 벌이면서 윤이상 선생과 연을 맺는다.

 우리 정부는 1980년대 이후 그의 귀국을 권유했으나, 윤이상은 `동베를린 사건`에 대한 사죄와, 국가보안법 폐지, 정치범 석방 등을 선결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리고 1994년 9월 그의 고향 통영에서 `윤이상 음악제`가 기획되었다. 하지만 정부와 윤이상의 정치적 격투가 끝나지 않아 그의 고향 방문은 끝내 성사되지 못했고, 먼 타국에서 생을 마감해야만 했다. 그는 한국인이면서 한국 정부로부터 끝내 포용되지 못한 존재, 가까운 일본에서는 직접 음악제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정신적으로 보다 가까운 한국에서는 입국조차 허가되지 않았던 존재였다. 그 속에서 느꼈을 소외와 외로움은 예술적인 바탕이 되었을지는 몰라도, 인간 윤이상에게는 큰 상처가 아니었을까.


 짙은 죽음의 이미지로 가득찬 음악가 말러 역시 분열된 존재다. 나찌시절, `유대인 3M`으로 불린 마이어베어, 멘델스존, 말러는 연주를 금지당했다. 대신, 바그너와 브루크너가 게르만 정신을 보여주는 음악으로 권장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말러는 유대교도로서의 종교적 의식은 희박했고, 범게르만주의에 동화되어갔다. 학창시절 범게르만주의적인 학생운동에 참여한 적도 있다. 그렇지만 말러는 평생 자신의 출신 때문에 반유대주의로부터 위협받고 배척당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래서 그의 다음 말은 의미심장하다.


 내게는 삼중의 의미에서 고향이 없다. 오스트리아인 사이에서는 보헤미아인이어서, 독일인 사이에서는 오스트리아인이어서, 지상의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대인이어서. - 257쪽


 앞에서 언급했듯이 서경식 역시, 끊임없이 자기 존재에 대한 물음을 붙잡고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는 존재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크게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존재. 그런 그가 서양 음악 순례를 하면서 그와 비슷한 정체성의 문제를 안고 있는 윤이상, 말러에 집중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이 책은 음악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결코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음악을 순례했지만, 어쩌면 자기 존재에 대한 순례를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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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2-25 2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