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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그만뒀습니다 - 국민참여재판 1호 검사 오원근의 버릴수록 행복한 삶
오원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작년 연말에 사두었다가 새해에 곧장 읽었다.
몇 년 전에 일반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혹은 그들이 말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법조계의 비리나 문제점들을 밝힌 <불멸의 신성가족>을 읽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는 `우와~ 얘네들 TV나 신문에서는 억수로 무게잡고 있는 척 하더니, 겉과 속은 다르네.`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을 주문하면서도 <불멸의 신성가족>처럼 법조계의 문제를 다루지 않았을까, 앞선 책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더 내밀한 부분, 예를 들면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의 문제점을 검사의 입으로 들려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다. 제목이 <검사, 그만뒀습니다>이니 충분히 그럴만 했다. 특히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 검사를 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고 하는 저자가 아닌가!
그러나 읽어가면서 내 기대가 무참히 무너졌다. 좀더 신랄한 검찰청 내부의 이야기를 기대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삼성의 문제를 거론했던 김용철 변호사가 당한 아픔과 상처만 봐도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이야기를 자신의 입으로 거론한다는 게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생을 거는 일은 아닐까. 실망 이전에 기대를 접는 게 어쩌면 현명했겠다.
대한민국에서 검사는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전직 대통령도 죽이지 않았는가. 맘에 들지 않는 정치인을 감옥에 가둘 수도 있지 않는가. 그렇지만 이들은 그 누구로부터 감시와 견제를 받지 않는다. 한쪽에는 봐주기, 부실, 축소 수사를 하고 반대쪽에는 과잉, 표적, 보복 수사를 하면서 국민의 원성을 사도 그들은 염치를 모른다. 아, 염치를 모르는 검찰 지도부가 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검사를 `그만 둔` 저자 오원근 때문이다. 검사는 대한문 앞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에 조문을 하면서 검사직을 떠날 것을 다짐했다고 한다.
그는 부당한 검사 권력에 대한 소극적 저항으로 사표를 썼지만, 보다 본질적인 문제는 다른 데 있어 보인다. 버릴수록 행복해지는 삶의 진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릴 적 몹시 가난하게 자랐다. 아버지는 경제적 능력이 없었고, 어머니는 행상으로 생계를 이었다. 아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상처도 입고 나름의 의지도 세웠다. 각고의 노력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법조인이 되었다. 성인이 되고 높은 지위에 올랐음에도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어머니는 여전히 좌판을 깔아놓고 장사를 하고 있다. 이제는 그 모든 것들이 인연이란 걸 어렴풋이 깨달았다. 어머니, 아버지의 삶은 자식인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그분들의 팔자라는 깨달음.
이런 깨달음은 그저 주어진 게 아닐 것이다. 살아온 연륜에서 온 것도 있겠고, 정토회의 깨달음의 장이나 100일 출가를 통한 영적인 성숙도 한몫했겠지.
저자는 정토회 100일 출가에 나선다. 100일 출가라... 곱씹을수록 그 시간의 끝없음에 놀랍다. 하나에서 백까지 헤아리기는 쉽지만, 100일은 어쩌면 삶을 많이 변화시킬 수 있는 시간일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3일 동안 만배를 하고 100일 출가에 들어간다. 그 100일 동안은 다른 스님과 같은 생활을 했겠지. 그 사이 어떤 깨달음 같은 게 있었는지(100일이라고 어떤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꼭 아니지만) 드러나 있지 않지만, 그런 영적인 삶을 살겠다는 자세를 보이는 것만으로도 대단해 보였다.
농사를 짓지 않고서야 한 생을 살았다고 말하지 말라는 문장을 어디선가 봤다. 농사는 그저 하는 육체적 노동은 아니다. 생명의 씨앗을 뿌리고 키우고 기르고 수확하는, 생의 처음부터 종결까지를 다스리고 몸으로 다가가는 일이다. 그런 일을 하지 않고 삶을 살았다고 말하지 말라는 언설은 좀 과한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분명 살아간다는 일과 농사의 전 과정은 통하는 면이 있어 보인다.
저자는 농사에 대한 애정이 대단히 강하다. 그래서 변산공동체에 가서 생활도 해보고 간단한 농사 정도는 짓고 있다. 이러면서 땅이나 자연이 주는 영험한 힘을 몸소 깨닫는 거겠지. 이 책에서도 농사를 향한 저자의 마음이 간절히 읽힌다.
그리고 저자는 자연을 사랑한다.(이것은 자연보호 할 때의 사랑과는 다르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아이들을 자연과 가까운 곳에 두려고 노력했다. 캠핑이 그 노력의 첫째인데, 호텔방처럼 모든 게 갖추어져서 편안함같은 것은 없지만, 자연의 그 거침 가운데 새로운 에너지가 생성되고 움직이고 있음을 깨치고 있었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자연이 우리 인간에게 제공하는 건강한 기운을, 자식들로 하여금 마음껏 누리게 하지 못하는 것은 커다란 죄악이다. 아이들은 그 기운을 흠뻑 받으며 자라야만 건강하고 원만한 인격체로 자랄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 192쪽
저자는 누구나 마다않을 검사를 버렸다. 그리고 행복을 얻었다. 그의 행복의 근원은 자연, 농사, 불교(100일 출가)였다, 이것은 모두 자연스러움과 관련되는 일이다. 누군가 `정의란 무엇입니까?`라고 저자에게 물은 일이 있는데, 저자는 `자연스러움`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렇다. 저자는 검사직을 떠나면서도 정의를 추구했고, 그것은 자연스러움에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우리보다 더 넓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 집에 다녀와서는 ``우리도 30평 넘는 집으로 이사를 가자``라고 한다. 아내와 나는 아이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조용히 무시한다. 우리는 행복의 척도는 결코 돈의 많고 적음이나 집의 크기에 있지 않다는 것을 굳게 믿기 때문이다. 행복은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소박한 삶에 있다. - 202쪽
어깨에 힘을 빼면서 보다 자연스러워진 오원근. 그것으로 보다 행복해진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꽤 전에 봤던 정호승님의 시 한편이 떠올랐다.
산사로 가는 길
정호승
산사에 오르다가
흘러가는 물에 손을 씻는다
물을 가득 움켜쥐고
더러운 내 손이 떠내려간다
동자승이 씻다 흘린 상추잎처럼
푸른 피를 흘리며 계곡 아래로
나는 내 손을 건지려고 급히 뛰어가다가
소나무 뿌리에 걸려 나동그라진다
떠내려가면서도 기어이 물을 가득 움켜쥔
저놈의 손을 잡아라
어느 낙엽이 떨어지면서 나뭇가지를 움켜쥐고
어느 바위가 굴러가면서 땅을 움켜쥐고
어느 밤하늘이 별들을 움켜쥐고 찬란하더냐
산사의 종소리가 들린다
관 밖으로 툭 튀어나온 부처님의 발을
다시 관 속으로 고요히 밀어넣는
저 저녁 종소리를 들으며
움켜쥔 것은 모두 놓아버리고
손이여
물속에서도 풍경소리 울리는
한마리 물고기가 되어 바다로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