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애가 쓰는 인간의 조건 - 어떤 ‘삶’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김진애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1월
평점 :
품절


 어느 주간지에서 이 책의 출판 소식을 접했다. 나는 책의 제목이나 책의 내용에 대한 대략적인 언급보다 저자 `김진애`에 더 마음이 쏠렸다. 김진애라... 지난 해에 학교 학생들과 함께 운영한 독서 토론 동아리에서 <젊은 날의 깨달음>이란 책을 읽었는데, 거기서 김진애를 처음 만났다. 책의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자신의 전공인 건축과 자신의 삶 이야기를 하면서 도전의 의미와 실패의 가치에 대한 말씀을 하신 것 같다. 젊은 시절부터 유학이나 공부,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그러면서 일하는 여성이 경험하고 이겨내야 할 우리 사회의 구조적 편견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아, 사실 나는 김진애의 글을 읽으면서, `와~~ 대단한 남자네.`라고 생각했다가, 거의 다 읽을 무렵, 여자란 걸 알았다. 이것 역시 내가 갖고 있는 편견의 투영이겠다.)

 

 김진애와의 만남은 `4대강 공사`와 관련한 신문 기사를 통해서 더 이어졌다. 비에 무너진 강 제방 옆에 아주 걱정스런 눈빛으로 서 있던 모습은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녀는 4대강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헤치고 질타하는 내가 아는 유일한 정치인이었다. (4대강 관련해서 꾸준히 문제 제기를 하고 항의를 했던 이로 나는 김진애와 관동대학교 토목 교수님을 기억한다.) 그녀는 공부하고 배운 학문적 지식을 양심의 잣대에 비추어 현실에서 목소리를 내고자 한, 실천적 지식인의 모습이었다. <나무의 죽음>, <신갈나무투쟁기>를 쓰면서 자연의 위대함에 귀기울이게 했던 수많은 독자를 배신한 차윤정과는 격이 다른 `성찰적 실무자`였다. 그래서 나는 김진애같은 이가 공공의 영역에서 제 목소리를 내고 실천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권력을 쥘 때, 이 뒤틀린 사회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것 때문에라도 2012년 4월은 무척 중요하다.

 

 이런 그녀가 최근에 새 책을 냈다. 나는 김진애라는 이름 때문에 당장 이 책을 구입했고, 어젯밤 내처 읽고 말았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김진애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고 말았다. 아, 이렇게 따뜻한 사람이 있나, 소위 속물적 시선으로 엄청난 학벌을 가졌으면서도 어떻게 저렇게 희생적으로 살아갈 수 있나, 대체 어떻게 한결같이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보편적 인류애의 모습을 견지할 수 있나, 그녀의 삶은 어떻게 선택되었던 것인가?

 

 그녀는 이런 나의 물음에 한나 아렌트가 쓴 `인간의 조건`을 인용해가며 자신의 삶을 선택한 기준들에 대해 술회해나가고 있다. 이것은 지극히 김진애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누구나 한번쯤 읽어볼 가치가 있어 보인다. 이유는 우리도 매 순간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하는 본원적 물음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나 아렌트가 말한 `활동적 삶`을 인간의 조건으로 여기며, 이 인간의 조건이 더욱 나빠지는 현실적 문제에 대해 정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이 활동적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인간의 근본 활동인 노동, 작업, 행위가 무척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노동은 생의 아주 기본적인 욕구, 먹고, 입고, 자고 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수단 정도 될 것이다. 그리고 작업은 인간의 유한성으로 생겨난 작용으로, 후대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위한 어떤 노력 등으로 정리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예술 작품을 만든다거나 건축물을 만든다거나 이명박처럼 저렇게 강을 파헤쳐 뭇 생명들을 죽인다거나. 그리고 행위는 아렌트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 것인데, 말과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이 이루어지는 그 과정 혹은 그것 전체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녀가 현실적으로 인식하기에는 노동은 위기이고, 작업은 폭력적이며, 행위는 실종되었다. 노동의 위기는 노사관계의 폭력적 구조, 엄청난 실업률, 산업 구조의 극단적 양극화 등으로 이야기될 수 있겠다. 폭력적인 작업은 이미 말했듯이 4대강 사업, 청계천, 원자력 발전소 건설 - 아이고, 어째 말하는 것마다 가카하고 연결되냐? - 등이 예가 되겠다. 행위의 실종은 날치기, 밀어붙이기 등으로 말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그녀의 눈으로 보나, 우리의 눈으로 보나, 지금, 현재는, 인간의 조건이 엄청난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이 세가지 인간의 조건 가운데 행위를 무척 중요하게 여겼다. 아까 말했듯이 행위는 사람의 말과 행동으로 이뤄지는 모든 작용을 포함하는데, 그러니까 소통 그 자체일 수 있는데, 이 소통의 원활함 여부에 따라 노동, 작업의 문제가 개선될 수 있다고 믿었던 듯하다. 그런데 소통은 곧 정치다. 이에 따르면, 정치는 노동과 작업과 행위의 문제를 보다 개선하기 위한 어떤 작용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 김진애는 정치에 뛰어들게 된다. 정치로 인간의 조건을 지키며 살 수 있기를 바랐던 것이다. 결국, 경제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정치가 문제인 것이다!!!

 

 결국, 김진애는 어떠한 삶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인간의 조건`이 기준이 되어왔다. 노동과 작업과 행위가 온전할 수 있는 것, 인간이 인간의 조건을 지키며 살 수 있는 것,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 이것이 김진애가 선택한 모든 것의 기준이었고, 그의 미래이다.

 

 나는, 이런 김진애가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 무척 다행스러우며,

 이런 김진애가 2012년에도 달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더 나아가, 이런 김진애가 세상을 바꿀 위치에서 권력을 집행할 수 있길,

 그 마음이 크다.

 

 덧>

   노무현 대통령과 김진애의 인연에 대한 글에서 울컥했다.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영예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노무현 대통령을 아직도 마음 속에 대통령으로 두고 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한 김진애의 평가가 인상깊다.

  내가 좋아하는 국회의원을 내가 좋아하는 책의 저자가 칭찬한다는 게,

  나로서도 뿌듯한 일이었다.

  김진애의 롤 모델이라는 이정희 의원을 나 역시 좋아한다는 것,

  김진애를 빌어 말할 수 있어서 기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