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젠가 그젠가 누가 물었다.  

- 아이티가 어디 있는 나라야? 
- 중남미 어딘가 있을껄. 왜? 

그때까지도 난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몰랐다.  

어제 한 시사프로에서 아이티 현장중계 하는 것을 봤다. 그 리포터는 "신은 참 불공평하다"고 말했다. 이 말은 최빈국 아이티가 겪고 있는 계속되는 허리케인의 피해, 그리고 이번 지진 피해에 대한 아주 인간적인 아픔과 절망을 담고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절반의 진실이다.

미국에 노예로 끌려간 흑인들이 세운 최초의 독립국가 아이티는 풍요로운 땅으로 못 사는 나라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끊임없는 외세의 개입과 내부 군부쿠테타로 이미 국가는 인민의 삶을 보호할 수 없는 지경에 빠져있었다고 한다. 그 한 예로 지난 몇 년간의 허리케인으로 아이티에서는 1천 여명 이상의 사상자가 났지만 인근 나라 쿠바에서는 불과 다섯 명만이 죽었다.  이번 지진 피해의 경우에도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최소한의 안전도 보장되지 못하는 주거환경이 한 몫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재난은 국제정치의 문제, 빈부격차와 불평등의 문제가 빚어낸 인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세한 내용을 담은 기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자연에 대한 두려움은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오늘이 지나면 내일 해가 뜰 것을 철석같이 믿고 생활한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저녁이면 돌아갈 집이 있으리란 것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일상에 대한 믿음은 어쩌면 삶의 전제조건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하루아침에 부서져버리는 것을 목격한 사람,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파괴되기 쉬운 것인지를 깨달은 사람에게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이며 무슨 의미일까. 인류가 재난과 폭력에 대한 이해를 시작한 지, 트라우마란 말이 만들어진 지 불과 100년도 되지 않았다.   

이 책에서 어떤 답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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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불매운동에 대해

불매운동에 대해서가 아니라 불매운동이 불러온 알라딘 서재에서의 일들에 대해서 뭔가 말을 해야겠다고, 글을 써야겠다는 그러지 않고 있으니 마음이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차에 아래 두 분의 글을 읽고 이게 내 마음 같아서 굳이, 나까지 보텔 필요가 없겠다 싶어졌다. 좀 비겁한 거 같지만 내 맘을 나보다 잘 드러내준 두 분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여기 글을 올리기 시작한 지 곧 일년이 되어가는데 그때까지도 뭔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그때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여울마당 님의 접습니다 
딸기 님의
알라딘 불매운동에 대해
 


내가 밥벌이 하는 직장에서 신년 특별기획으로 현장 인권활동가들이 권하는 한 권의 책에 대한 추천사를 실었다. 이미 읽어본 책도 있지만 생전 처음 들어본 책도 있다. 교정을 보고 편집을 하며 나 또한 책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래 책은 현장 인권활동가들이 뽑은 책들이고 그 밑의 글은 내가 잡지에 끄적인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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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움직이는 책읽기

새해를 책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지난해 말 인권재단 사람의 계열사(?)쯤 되는 도서출판 사람생각에서 『쫄지 마, 형사절차!』란 책을 냈는데 예상보다 잘 나갑니다. 형사소송법이 많이 바뀐다고 하여 쉬운 해설서 하나 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눈 적은 있지만 실제 기획에 들어가고 이렇게 뚝딱 형사절차 매뉴얼로 나오게 된 데는 2008년 촛불집회 영향이 컸습니다. 그러니 누구 말마따나 이 책이 잘 팔리는 것은 물론 이 책의 탄생에도 이 정부의 기여한 바가 큽니다.  

금서목록이 그렇듯 베스트셀러 목록도 그 시대를 어림하게 해줍니다. 교보문고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베스트셀러 1위는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입니다. 한 달에 10만부씩 120만부가 팔렸다고 하니 1만부를 목표로 ‘대박’을 염원하는 저희랑 차원이 다르지요. 불황에는 소설이 장사가 된다는 게 출판계 통설이라지만 베스트셀러 2위인 하루키의 소설 『1Q84』는 계약을 하면서 미리 인세를 10억 원이나 주었다고 하니 이 동네의 양극화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어떤 이는 현재 팔리는 책의 80%를 10여 개 출판사가 내고 있는데 향후 5년 내에 그 수가 반으로 줄어들 것이라 전망합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온갖 사회문제들이 출판계에서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을 테죠. 

소설이 지난해 유독 잘 팔렸다면 경제·경영 분야로 분류되는 자기계발도서들은 여전히 잘 팔렸습니다. 그 중 베스트셀러 9위를 차지한 『넛지』란 책이 있습니다. ‘팔꿈치로 쿡쿡 찌르다’라는 뜻의 넛지(nudge)는 자유주의적인 개입, 부드러운 간섭이라고 합니다. 이를 행동경제학의 선택 설계이론이라고 하는데 책에서는 구체적인 예로 암스테르담 화장실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디서나 남자 화장실 소변기는 골칫거리인가 본데 암스테르담의 한 화장실에서 소변기 주변이 지저분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경고(CCTV 설치)나 캠페인(남자가 흘려야 할 것은 …), 또는 어떤 인센티브도 통하지 않았지만 소변기 안에 파리 모양의 스티커를 붙여놓는 것만으로 새어나가는 소변량을 80%나 줄었다는 것이지요. 이것을 가리켜 넛지라 한답니다. 이 책의 흥행요인 중에는 세계금융위기 이후 ‘모든 인간은 합리적으로 경제활동을 한다’는 주류 경제학의 대전제에 대한 반성이 작동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실제로 미국 오바마 대통령도 즐겨 읽었고 이 책의 필자 중 한 명은 오바마 정부에 스카우트되기도 했습니다.

사실 어떻게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키고 그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하는 것은 인권운동에서도 오랜 화두가 아닐까 싶습니다. 인권운동은 기업처럼 인센티브를 줄 수도, 정부처럼 경고나 금지를 할 수도 없으니 말이죠. 그런 점에서 『넛지』는 인권활동가들도 한번 고민해봄직한 주제가 아닐까요?

요즘 책이란 무엇이고 글을 읽고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자문해봅니다. 한 후배가 선물한 노무현의 유고집 『진보의 미래』를 읽으며 든 생각이기도 하고(그는 왜 대통령을 그만두고 나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까지도 책을 쓰고자 했을까요?), 한 온라인 서점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하자 불로거들이 이에 항의하며 벌이는 불매운동을 지켜보며 든 고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독일의 과거청산 문제를 다룬 『더 리더(The Reader)-책 읽어주는 남자』란 소설입니다.

우리 나이로 열일곱 살에 서른여섯 살 한나라는 여자를 만나 사랑하게 된 주인공 미하엘은 데이트를 할 때면 그녀의 요구로 책을 읽어줍니다.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 한나를 법대생이 된 미하엘은 나치 전범재판에서 보게 됩니다. 재판 과정을 지켜보며 미하엘은 피의자인 그녀가 문맹임을, 그리하여 나치의 명령문을 읽지 못해 최소한 실정법에서는 무죄임을 알게 되지만 한나는 자신의 문맹이 밝혀지는 것이 꺼려 혼자 죄를 뒤집어쓰고 미하엘 또한 고심 끝에 한나의 침묵에 동조합니다. 감옥에 갇힌 한나와 그녀에게 책을 읽어 그 녹음테이프를 보내주는 미하엘. 한나는 가석방을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미하엘은 그녀의 유품을 받기 위해 교도소에 갔다가 그녀가 글을 깨치고 가장 먼저 아우슈비츠 생존자의 증언을 담은 책을 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같은 이름의 영화에서는 목매달기 위해 한나는 다름 아닌 이 책들을 딛고 올라섭니다). 

옛 어르신들은 “모든 걱정근심이 글로부터 나온다”고 한탄하면서도 손주들에게 글을 가르쳤습니다. 어릴 적 “소설을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는 말을 자주 듣고 자랐더랬지요. 둘 다 좋은 의미로 해석하자면 글이 가진 성찰의 힘을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반면 글이란 태생적으로 권력 지향적이고, 어쩌면 권력 그 자체가 아닌가 싶습니다. 인터넷과 블로그의 등장으로 넓어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글을 쓰는 사람도, 책을 내는 사람도, 그것을 분배하고 유통하는 사람도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판적인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비판적 사유, 글의 민주주의는 저의 오랜 고민이기도 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생활에서 인권을 만나고 인권을 통해 일상을 변화시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일상에서의 작은 변화와 실천을 강조하기는 쉽지만 정작 거기에 주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같습니다. 올 한 해 『사람』은 여기에 좀 더 힘을 기울이려 합니다. 2009년은 인권과 관련된 책들이 참 많이 나왔던 해였습니다. 인권활동가들이 생각하는 입문서와 고전은 무엇인지, 활동가들이 권하는 한 권의 책을 보고 올해 독서계획을 잡아보시는 것은 어떨지요?

읽고 나눠야 할 책은 서점과 도서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도 있음을 1600일을 넘게 싸우고 있는 기륭 해고 노동자들과의 만남에서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들의 삶과 투쟁에서 우리가 무엇을 읽어야 할지, 해피엔딩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함께 머리와 어깨를 맞댔으면 좋겠습니다.

앞서 소개한 『넛지』는 삼성경제연구소가 추천하고 이명박 대통령이 여름휴가 때 탐독한 뒤 참모들에게 선물했다고 하여 유명세를 탔습니다. 기억하시겠지만 그 여름휴가 무렵은 쌍용자동차 공장 위로 최루액 봉지가 투하되고, 헬기에서 줄을 타고 내려온 경찰특공대가 파업 노동자들을 ‘사냥’하던 때였습니다. 새해에는 책이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섣부른 믿음을 더욱 경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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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10-01-09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어떤 잡지에 쓰신 글인가요?

나무처럼 2010-01-09 17:05   좋아요 0 | URL
허락도 없이 먼댓글을 달아서 실례가 아니었는지...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이란 격월간지예요. 소규모 인디 잡지라고들 하지요^^

딸기 2010-01-12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례라니, 무슨 그런 말씀을!!! 우리 친하게 지내요~~ (멋대로 엉겨붙는다;;)
 

잡지 마감을 끝내고나면 한 2박3일 어디 유배지나 독방에 있다가 온 거 같다. 인터넷을 접속하면 그야말로 '뉴스'가 눈에 들어온다. 

이 나라에 법이란 것이 얼마나 웃긴 것인지(또는 슬픈 것인지), 다름 아닌 법치를 목놓아 외치는 이 정권이 얼마나 법을 희롱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두 개의 뉴스가 눈에 들어온다.

우선 이건희가 사면됐다. 그것도 단 한 명 사면 심사를 거쳐 이명박이 사면했다고 한다. 과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누가 감히 삼성 총수를 사면할 수 있단 말인가. 이건희 스스로 사면장을 썼고(거기에 조중동이 약간 거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명박은 그저 도장을 꾹 찍었을 뿐이다.  예전에도 이렇게 단 한 명의 사면이 있었는지 모르겠다. 기억 나는 건 고종황제가 김구를 사면했다는 이야기. 이번과 다른 건 황제가 사면한 게 아니라, 황제를 사면해드렸다는 사실... 

장례식장에서 소란을 피우면... 민폐다. 다음 날 좀 쪽팔리고 그렇다. 요절한 사람의 장례식장에서는 흔히 고성이 오가고 주먹이 오가고 상이 뒤엎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누가 누구를 고소하고 고발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죄하라고 소리친 국회의원이 장례식방해죄로 기소되었다고 한다. 그 국회의원은 상주 중 한 명이었다. 상주가 장례식을 방해하다니... 병원 영안실마다 범죄자들이 숱한데 검찰과 경찰은 도대체 뭘 하는지 모르겠다.  

2009년만큼 '법치'란 말을 많이 들었던 때가 없었던 거 같다. (잠시 노태우 때 '범죄와의 전쟁'이 떠오른다.) 용산참사부터 해서 쌍용자동차 파업, 철도노조 파업, 미네르바, 정연주, 미디어법... 어느 것 하나 법을 둘러싼 전쟁이 아니었나. 그런데 그 가운데 힘없고 약한 사람들만 나자빠졌다. 아니, 그런 줄 알았는데 그 사이 '법'도 나자빠졌나보다. 그 대미를 위에 두 가지 사건이 장식한 건 아닌가.  

'법치'가 옆에 있다면 한 대 쥐어박고 싶고, '법'이 옆에 있다면 힘들었지, 하며 술 한잔 따라주고 싶은 연말이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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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끔 들르는 파란여우 님 블로그 대문에 걸린 사진입니다. 
인자하면서도 유머스러울 것 같은 오웰의 표정... 
그의 작품 속의 낙관주의가 스며든 것 같은...

 



 

제가 좋아하는 오웰의 사진입니다. 
표정은 안 웃긴데 머리스타일이^^
담배 물고 글쓰기는 너무 부럽죠.
저도 몇 해 전만 해도 이렇게 물고 썼는데..
요즘 사무실도, 집도 다 금연이라... 작업실이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어떤 사람이 "요즘은 담배 끊는 사람보다 아직도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더 독하다"고 합디다.
담배 하면...
화양연화에서 양조위가 담배 물고 저렇게 타이프를 하는 장면이 떠올라요.
담배 하면 떠오르는 배우가 주윤발하고 양조위인데 저는 양조위가 더 좋거든요.
무간도에서도 그렇고.
또 김수영 시인의 담배 사진도 좋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안타깝게 담배를 문 김수영의 사진은 복사가 안 되어서....
-> 링크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fabiano&folder=29&list_id=8877629&page=1

그러고 보니 오웰과 김수영과 양조위가 서로 닮은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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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광장이란 무엇일까.  
그건 최인훈의 소설 광장처럼 공간을 넘어서 그 무엇이 아니었나.
우리는 한 번이라도 온전히 광장을 가져본 적이 있는 걸까.
어제 처음으로 '광화문 광장'을 거닐며 든 생각이다.   

그리고 오늘 저녁에서야 읽은 경향신문의 칼럼이 무릅을 탁 치게 했다. 광장조례을 잘 만들자는 서명운동을 독려하는 글인데, 나도 서명을 했지만 이런 서명으로 광장이 우리에게 올 거 같지는 않다(내가 너무 패배적인 걸까). 그래도 하도 성질이 나 추운 길을 가다 말고 또박또박... 


[문화와 세상]스노보드, 세종대왕, 광장 알박기 
 반이정 미술평론가


“이건 또 뭐냐!” 13일 폐막한 ‘서울 스노우잼’ 가설무대 공사가 한창이던 지난 주, 우연히 무대 뒤편을 지나던 내 입에서 튀어나온 탄식이다.

이번 행사와 무대 설치에 쏟아진 비난 여론을 요약하면 이렇다. 교통체증 유발, 주변 조망권 침해, 지방선거용 전시행정, 안전 불감증의 산물. 야당의 공식 비난논평도 비슷하며, ‘광화문 광장은 세계 최대의 중앙분리대’라는 뼈있는 유행어를 남긴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까지 국가적 상징성과 역사적 문화성을 훼손시켰다며 문제삼았다. 이쯤 되면 내가 가설무대에서 받은 불쾌감은 대략 정당화되는 듯하다.

그러나 이 글의 목적은 이 전례 없는 이벤트가 과연 그토록 욕먹어 마땅한지 되묻는 데 있다. 그럼 가설무대로 일그러진 나의 인상(혹은 시민의 보편적 불쾌감)은 어찌 해명될 것인고? 일단 요 몇 년 사이 도심 경관 위로 끊임없이 반복되는 ‘아시바 올리고 공구리 치기’로 시민사회가 느끼는 공사 피로증이 작용했을 게다. 한편 토목사업으로 정치적 재미를 본 전직 시장이 대통령이 되고 보여준 독단과 무능에 실망한 국민이, 그와 유사한 노정을 되밟는 현직 시장에게 ‘무얼 하든 꼴 보기 싫다’며 완고히 마음을 닫았으리라. 반사 불이익!

하지만 냉정히 보자. 광화문 일대는 항시 과도하게 엄숙한 공간이었다. 광장 뒤편으론 조선시대 궁궐이, 그 뒤론 어느 시대건 국민 절반의 신임도 못 얻은 정치지도자의 관저가 있다. 광장 좌우로 비천상을 부조로 새긴 과도하게 웅대한 세종문화회관과 맞은편엔 항시 경찰이 대기 중인 금단의 땅, 미 대사관이 놓였다. 그 사이에서 도전적인 익스트림 스포츠가 펼쳐졌다. 광화문의 경관이 조장한 육중한 공기 위로 가볍게 솟아오른 스노보더의 묘기가 그 어떤 역사성을 훼손한단 말인가?

나는 오세훈 시장이 그간 감행한 관제 행사 가운데, 스노우잼 행사가 ‘본의 아니게’ 제일 실험적 시도였으리라 추정한다. 고스란히 드러난 철근구조를 흉하다며 욕하지만 엉터리 민화 이미지 따위로 가림막을 두르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또 역사성 훼손 운운하는 건 낯간지럽고 손쉬운 비난 같다. 우리 국민은 역사와 전통 앞에선 대체로 약하다(사극에 열광하는 국민성!). 정작 역사 왜곡의 오용 사례로 따지면 비난의 경중부터 다시 따져야 한다. 고작 3일짜리 이벤트에 분개하면서, 왜 영구적으로 광화문 한복판에 ‘알 박은’ 황금빛 세종대왕 좌상 제막엔 관대할까? 민족이 낳은 위인이어서? 성공한 무신 동상 뒤로 군인 정치가 박정희가 자신의 과오를 은폐했듯, 성군 세종 동상 뒤에서 철 지난 정치적 실익을 계산하는 이는 없을까? 세종의 업적을 후대가 기리는 예우로, 고작 시대착오적 미감의 육중한(20t) 키치풍 동상 제막만이 능사는 아닐진대.

나는 황금빛 세종 좌상을 볼 때마다 만수대의 조악한 황금빛 김일성 입상이 연상된다. 광화문 광장을 거대한 영묘(靈廟)처럼 꾸민 것이 스노우잼 가설무대보다 위험한 발상은 아닐까? 역사적으로 광장은 교활한 위정자에겐 대중 동원과 정치선전의 장이었다. 그래서 광장을 홀로 장악하길 원했고, 군중이 자율로 모이는 건 저지했다. 변형된 광장공포증이요, 저 혼자 알 박겠다는 심보다. 광화문과는 사정이 다르나 알 박기 문제는 시장 허가로만 행사가 열리는 서울광장이 가장 심각하다. 서울시장의 광장공포증을 치유할 ‘서울광장 사용 조례개정운동(openseoul.org)’이 진행 중인데, 추가 서명인이 시급히 필요하단다. 괜히 한시적 스노쇼 무대에 열 받지 말고, 광장을 영구히 빼앗는 몰상식에 분개하자(필자도 서명했다).

<반이정 미술평론가>

  200907062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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