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에 죽은 전태일의 유서와 세기를 건너 뛴 2003년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두산중공업 배달호의 유서와 지역을 건너뛴 한진중공업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민주당사에서 농성을 하던 조수원과 크레인 위에서 농성을 하던 김주익의 죽음의 방식이 같은 나라.

세기를 넘어, 지역을 넘어, 업종을 넘어, 국경을 넘어 자자손손 대물림하는 자본의 연대는 이렇게 강고한데 우린 얼마나 연대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의 연대는 얼마나 강고합니까? 비정규직을, 장애인을, 농민을, 여성을, 이주노동자를 외면한 채 우린 자본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소름 끼치고, 아무리 치가 떨려도 우린 단 하루도 그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연대하지 않음으로 깨지는 겁니다. 맨날 우리만 죽고 천날 우리만 패배하는 겁니다. 아무리 통곡을 하고 몸부림을 쳐도 그들의 손아귀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억장 무너지는 분노를,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이 억울함을 언젠가는 갚아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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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스님 같은 종교인의 목숨을 건 단식도, 비정규직 기륭전자 김소연 분회장의 눈물겨운 단식도 아닌 노동운동가 김진숙의 단식이 어제 경향신문 1면 탑 기사였다.   

나는 감히 그가 쓴 김주익 열사 추도사가 <전태일평전>만큼 한국의 중요한 역사적 문건이자 명문 중의 명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어제 신문을 펴보며 좀 불편했다. 겨우 보름 단식한 노동운동가의 단식이 1면 탑이라니...

하지만 김진숙은 자신의 복직을 위해 출근투쟁을 벌이다가 한진중공업의 1000여 명의 구조조정  소식을 접하고 그 자리에서 단식을 시작했다고 한다. 작년 쌍용자동차 싸움을 떠올리며 몸서리쳤을 김진숙이 떠오른다. 그가 단식을 시작하며 다졌을 각오가 나는 두려워진다.  

누가 한 50일쯤 굶어야, 서울에서 대전쯤은 삼보일배를 해야, 망루에서 화염병을 던지고 대여섯 명은 죽어나가야 신문에 난다면 그 사회에서 신문을 봐야 할 필요가 무엇이겠는가. 반성을 한다. 뒤늦게 경향 편집진에 고마움을 전한다.  

기사를 읽으며, 관련된 다른 매체의 기사를 찾아 읽으며 짐작컨대 아마도 김진숙의 단식은 노동의 가치회복과 연대의 절박함에서 비롯된 것 같다. 이미 닳고 닳은 식상한 이야기. 김진숙은 단식으로 단 하나의 요구조건도 받아내지 못하리라. 그러나 노동과 연대는 2010년 올해 나의 화두가 될 것 같다. 그게 그의 단식의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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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연대를 구하는 사람들...
    from 그냥 머물고 싶은 공간 2010-01-28 17:56 
    아마도 SBS뉴스였을 겁니다. 우리나라 선박 수주가 작년에는 중국에 밀려 세계 2위 였는데 2010년은 다시 조선강국으로 활기차게 나아간다며 조선업체에 대해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뉴스를 보내더군요.... 그래서 저는 그런 줄만 알았습니다. 워낙 조선업이 잘 나간다는 이야기가 매년 들리다보니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힘들어도 일자리도 없어 떠도는 사람들보다는 낫겠지 하는 생각도 사실 했구요... 그러다가 프레시안에서 김진숙씨 글을 접하게 되었습
  2. 어떻게 연대해야하나요.
    from 기우뚱하다 내 이럴줄 알았지 2010-01-29 00:31 
      알약을 안 먹었다면......  알라딘을 몰랐고, 사회문제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설명해주는 친구가 없었다면, 내게 알량한 공명심이나 평균적인 도덕심이 없었다면. 여러가지 가정을 해본다. 차라리 몰랐다면 더 좋았을 것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알고난 후가 엄청나게 불행해진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더 행복하다고도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자꾸 스물스물 기어들어오는 정체모를 즐거움과 개인적인 일과 작은 실천 사이의 자족감,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않
 
 
순오기 2010-01-28 0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이런 나라에서 살고 있으니 참으로 심란하네요.ㅜㅜ
그런데 접힌 부분 펼치기가 안 되네요.

나무처럼 2010-01-28 01:15   좋아요 0 | URL
앗.. 다시 고쳤는데, 지금은 어떨지... 접힌 부분은 김주익 열사 추도사 전문이예요.

순오기 2010-01-29 00:49   좋아요 0 | URL
예~ 지금은 보이네요. 김주익 열사 추도사~

머큐리 2010-01-28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진숙의 단식이 아무것도 움직이지 못할 거라는게 가슴아파요... 연대를 희망하는 사람은 저렇게 힘든데...정작 연대의 대상들은 움직일 생각이 없는 것 같아서 더 답답합니다.

무해한모리군 2010-01-28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진숙님은 제게는 최고의 명연설가입니다.
오늘 아침에 녹색평론 김종철님의 글을 읽으니 행복하게 즐겁게 살아라, 의무로 하지마라, 자기희생 아니다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또 이 글을 읽으니 이런 아픔에 공명하지 못하면 사람이겠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카스피 2010-01-28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글픈 세상입니다 ㅡ.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