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녀를 앞에 둔 채 온몸이 마비되어 멀거니 서 있었다. 말을 해보려고 입술과 목을 움직여보았지만 단 한 음절의 말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나는 두렵고 아찔한 기분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내 입에서는 가까스로 "네"라는 말이 새어나왔다. 눈이 달린 귀라야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시위를 지나치게 당기면 활과 화살이 부러져 과녁을 맞히지 못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도 내 감정에 사로잡혀 눈물과 한숨만 터져나올 뿐 목소리는 제 풀에 사그라져버린 것이었다. (단테가 그토록 흠모하던 베아트리체를 만났을 때)-2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