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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간 화가 ㅣ 풀빛 그림 아이 21
안토니 보라틴스키 그림, 모니카 페트 글, 김경연 옮김 / 풀빛 / 2002년 3월
평점 :
나는 가을바다를 좋아한다. 겨울바다, 봄바다도 좋아한다. 여기서 여름바다를 떠올리는 것은 아찔한 일이다. 내가 본 여름바다는 언제나 인파에 북덕거리고 쓰레기와 소음에 뒤덮혀 있기 때문이다. 할 수 있다면 나는 여름바다도 제대로 감상하고 싶다. [바다로 간 화가]의 그림 속에 나오는 아름다운 그 여름바다를 보고 싶다.
아름다운 바다가 있고, 바다를 사랑한 늙은 화가가 있기에 나는 계절이 바뀌어 마음에 허기가 질 때면 버릇처럼 이 책을 편다. 마치 늙은 화가가 그림 속에 있는 바닷가 집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나도 이 그림책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모니카 페트가 지은 책을 보면 그림책을 어린이의 전유물로 여길 수 없다. 모니카 페트는 <행복한 청소부>, <생각을 모으는 사람>을 썼는데 어린아이부터 어른들까지 폭넓은 독자층을 두고 있다. 모니카 페트의 글에는 보라틴스키의 그림이 잘 어우러진다. 보라틴스키의 그림이 없는 모니카 페트의 글이 잘 연상이 안 될 만큼 두 사람의 글과 그림이 호흡이 잘 맞는다. 깊은 생각을 자아내는 글과 수더분한 붓의 텃치와 깊은 색감이 아주 좋은 책이다.
내가 가진 책에는 [세상에 자신의 꿈과 만나는 행운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아]라는 늙은 화가의 말에 분홍색 형광펜이 그어져 있다. 도시에서 그림을 그리던 화가가 바다를 만나고 나서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바다로 가면서 한 말이다. 노인과 꿈. 이 세상에 이 두 낱말이 만나는 것만큼 아른다운 일이 있을까. 꿈을 좇아 바다에 간 화가는 바다를 그렸다. 비오는 바다풍경, 맑은 날의 풍경, 밀물과 썰물. 방파제와 이끼 낀 갈대모자를 쓴 집, 조개, 파도 거품과 함께 실려오는 갈색 바닷말, 모래사장의 말오줌나무까지 마음껏 그렸다.
비록 가난하여 바다에 더 오래 머물 수 없었지만 도시에 돌아온 후에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바닷가를 배경으로 하는 집을 그렸고 바다를 너무나 그리워한 화가는 이 그림 속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고달프고 팍팍한 세상살이 중에 펼쳐 볼 수 있는 <바다를 배경으로 한 집> 그림같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