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04년 8월 31일

"매일 첫 수업은 신문읽기로"

 

첫교시를 알리는 수업종과 함께 교실에 들어선 순간 신문잉크 냄새가 난다. 학생들은 저마다 책상에 신문을 펼치고 관심이 가는 기사를 찾느라 손놀림이 분주하다. 잠시 뒤 모두 신문 속 세상에 빠져들어간다. 올해로 개교 26년째를 맞는 경기도 안성시 발화동 안성종합고등학교(www.asc.hs.kr·교장 변권훈) 전교생 1100여명 가운데 진학반 500여명의 하루 수업은 언제나 이렇게 신문 읽기로 시작한다.

 


4년 전 인문계 과정을 개설하면서 학교는 학생들의 대학 진학을 돕기 위한 학습방법 개발을 놓고 고심해야 했다. 수학능력시험·논술·심층면접 등 대입에 필요한 시험은 단순 암기나 주입식 교육 방법으론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데 공감했기 때문이다.
수능의 경우 지문 내용을 이해하고, 문제에 담긴 출제자의 의도부터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독해력이 해결의 열쇠다. 논술·구술고사도 학교에서 가르치기엔 만만치 않은 데다 따로 시간을 내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결국 정규 교과 시간을 할애해 학생들에게 신문을 읽히는 방안이 나왔다.
"교과목처럼 신문을 읽음으로써 독해력을 기를 수 있고, 사설과 칼럼 등 논리적인 문장을 접할 수 있어 논술에도 도움이 되므로 고민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었죠. 무엇보다 풍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기에 교사들이 모두 공감했어요."
이 학교 변 교장의 말이다.


문제는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였다. 전체 교사 회의 끝에 몇 가지 운영 규칙을 마련했다.
정규 수업시간 1교시를 신문 읽기 시간으로 정하고, 전교생이 신문만 읽는 방법을 택했다.
신문 선택은 학생 자율에 맡기되 논조를 비교할 수 있도록 두 가지 이상 신문을 돌려봤다. 집에서 보는 신문을 가지고 수업하면 빼먹는 학생도 생기므로 전교생이 공동 신청해 학교로 배달시켰다. 단체 구독하는 신문은 NIE면을 정기적으로 내는 중앙일보 400부를 포함해 50여부에 이른다.


신문을 읽은 다음엔 학생 스스로 기사나 칼럼을 써보고 그날의 주요 화제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NIE 노트'를 작성한다. NIE 노트는 국어과와 담임교사 담당 과목의 수행평가 자료로 활용한다.


토요일마다 일주일 동안의 주요 이슈를 주제로 정해 시사 찬반토론회도 열었다. 찬반토론 참여자는 일주일 전에 뽑아 자료를 준비시키고, 교사는 토론이 원활하도록 사회자 역할을 맡았다. 장소 사정으로 토론회에 참석하지 못한 학생들은 학교 방송을 통해 지켜본다.


한달에 한번씩은 전교 시사경시대회도 열어 학생들이 시사 지식을 적극 학습하도록 동기를 부여했다.
신문 읽기 프로그램은 시행한 지 일년이 지나며 효과를 보이기 시작했다. 전국 규모의 국어경시나 논술경시대회에서 무더기로 입상하는가 하면, 수능 언어·탐구영역 등에서 기대 이상의 점수를 받아 많은 학생이 명문대에 입학할 정도로 학력 수준이 높아졌다. 2002년 서울대 주최 국어경시대회에서 일등을 한 이 학교 졸업생 이정분(서울대 국어교육학과 2학년)양은 "꾸준히 신문을 읽고 시사토론을 한 경험 덕에 경시대회에서 일등을 했고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다"며 "신문을 열심히 읽는 것만큼 글쓰기에 더 좋은 학습방법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안성종고 입학생들은 중학교 때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그리 많진 않았다. 그런데 신문 읽기 학습의 첫 대상이었던 졸업생들이 이듬해 서울 소재 명문대에 상당수 합격하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 학교는 NIE를 도입하며 관행적으로 해오던 보충수업도 접고, 교육방송 청취를 통한 보완 수업을 시행함으로써 신문과 방송 등 미디어활용교육을 입체화했다.


"신문 읽기 프로그램을 시작해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기까지는 교사들이 모두 확신을 가지고 적극 참여한 열정이 밑바탕이 됐다"고 윤치영(생물·연구부장) 교사는 밝혔다.
안성종고는 한글신문 읽기에 더하여 곧 영자신문 읽기를 통한 영어수업도 진행할 예정이다. 벌써부터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한달 동안의 해외 어학연수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시골의 작지만 큰 학교, 안성종고의 학생과 교사들은 오늘도 신문잉크 냄새를 맡으며 공교육에 신문활용교육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있다.


안성=이태종 NIE 전문기자 
taej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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