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 학교 가기 싫을 때 쓰는 카드 - 2단계 문지아이들 8
수지 모건스턴 지음, 김예령 옮김, 미레유 달랑세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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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선생님이란 낱말을 아이들은 어떤 느낌으로 받아들일까? 예전에 난, 초등학생 일적에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었고  중학교 다닐 적에는 중학교선생님이, 대학 신입생 때는 교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한 적이 있다. 그 숱한 장래희망 중에 '선생님'이 되고싶은 마음은 늘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 아이들을 만나 물어보면 선생님이 되고싶다는 아이는 드문 것 같다. 요즘 세대의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선생님의 의미는 그만큼 퇴색했다는 뜻일 것이다. 학교선생님 외에도 학원선생님들, 학습지 선생님까지. 그들 주변에 선생님이 너무 많이 존재하는 것이 그 원인일까 싶다.

아이에게 선생님이 많이 있다는 건-그만큼 강요를 많이 당한다는 말과도 통할 것 같다. 선생님들은 언제나 가르치고 외우게 하고 시험을 내는 존재이니까. 지식이나 능력은 향상될지라도 아이들 마음은 그만큼 스트레스를 받는 셈이다.

"학교가기 싫을 때 쓰는 카드-조커"이 책에 등장하는 노엘선생님을 만나고 나서 나는 한동안 흥분상태에 있었다. 내 수업에 대해 조금씩 탄력을 잃어가는게 아닐까하며 전전긍긍하던 차에 이 책을 봤기 때문이다. 내게 주어진 짧은 시간 안에 아이들에게 좀 더 많은 것을 전해 주고 싶었고 영향력을 끼치고 싶어 수업안을 요모조모 짜며 발버둥을 치는 나에게 노엘선생님은 멋진 한 수를 가르쳐 주신 것이다.

새학기라면 으례히 몸까지 굳어질 정도로 아이들은 긴장한다. "올 한 해에는 어떤 선생님을 만나게 될까? 호랑이처럼 무섭지 않고, 덜 때리고 깐깐하지 않았으면....."새 교실, 새 친구, 새 책 등 새로운 것에 적응해야 하는 부담감에 잔뜩 위축되어 있을 때  좋은 선생님을 만난다면 그 해는 정말 운이 좋은 거다. 노엘선생님을 담임으로 만난 것은 그야말로 일생일대의 큰 행운에 속할 것이다. 선생님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닌, 선물을 주는 사람이라고 자기를 소개한다. 프랑스에서는 산타를 노엘이라고 한다지 아마.

선생님이 주신 선물은 조커 카드이다. 그리고 이 조커카드는 특별한 카드이다.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을 때 쓰는 조커" "방학기간을 연장하고 싶을 때 쓰는 조커" "벌을 받고 싶지 않을 때 쓰는 조커"등등 이다.  얼마나 기막힌 카드인가? 어른이 되면 자신의 학창시절은 몽땅 잊고 마는지 아이들에게 언제나 모범적인 것만 강요하지만 바르고 모범생다운 행동만 하고 살 수 없는 것이 아이들이다. 이런 학생의 속내를 잘 보듬어 주는 카드이다. .

조커카드를 통해 노엘선생은 아이들에게 인생을 가르친다. 삶은 성실하게 묵묵하게 열심히 살아도 가끔은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온다는 걸 알게 한다. 마치 푸쉬킨의 싯귀처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내가 열심히 산다고해서 늘 형통하기만 할 만큼 인생은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란 걸 나도 동감하는 바이다. 그러나 마냥 슬퍼하고 노할 것이 아니라 이럴 때야 말로 조커카드를 쓰야할 때이다. 분명히 어제 숙제를 했는데 안 갖고 와서 혼나야 할 때는 "숙제한 것을 잃어버렸을 때 쓰는 조커"를 쓰야하는 것이다.

인생에는 항상 조커가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은 때가 있음" 알려줄 때는 엄숙한 그의 목소리를 듣는 듯 했다. 책을 읽는 조커, 운동하는 조커,  사랑하는 조커, 결정을 내리는 조커 등.....우리 인생에는 많은 조커들이 있고 그 조커들은 항상 제 때에 쓰야함을 일깨워 준다.

노엘선생님의 인생이 아이들에게 본이 될만큼 또는 부러워할 만큼 행복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이들에게 진지한 것을 가르쳐주신 멋진 선생님이다. 그의 삶을 인정하지 못하는 교장선생님같은 존재는 우리 삶에 항상 존재한다. 내 수업의 교장선생님은 "꽉막힌 학부모"일 때가 가끔있다. 좀 더 창의적이 수업을 할라치면 "아이들을 좀 더 엄하게 다뤄 달라"는 요구를 할 때가 있었다. 주 1회의 비싼 수업료를 생각하면 일사천리로 강의를 해 주길 바라는 모양이다. 아이들의 어눌한 발표나 활기찬 웃음이 시간을 허비하는 걸로 보이는가보다. 주입식으로 지식을 넣기 보다는 아이들이 깨닫는 수업을, 또 공부를 즐겁게 하게 하는 것이 가장 큰 소득일텐데........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외면당한 노엘선생님에게 주는 아이들의 선물이 아름다운 피날레를 장식하고 있다. "행복하고 명예로운 은퇴생활을 위한 조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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