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중국 정치 - '성공의 역설'과 중국적 사회주의의 미래
서진영 지음 / 폴리테이아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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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세 가지 얼굴


현대 중국은 세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고대 융성했던 문화를 가졌던 대국 하나는 1인당 GDP $8,261로 세계 75위에 연평균 성장률 6~7%를 기록하는 경제 중진국 그리고 또 하나는 ‘중국식 사회주의’라는 이념을 추구하는 공산주의 국가로의 중국이다. 첫째는 자신의 국가만이 세계의 중심국이며 모든 것을 이끌어 나간다는 오만을 나았으며 둘째는 과거에 비해 초라한 경제적 위상에 초라함과 열등감을 나았으며 마지막은 독특한 정치체제를 나았다. 

세개의 중국 모두 중국의 모습이다. 세 가지 모습은 복합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현대 중국에 나타나고 있다.


중국을 이끈 두 이데올로기


현대중국을 대표하는 두 사상은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으로 대표된다.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당의 승리를 통해 현대 중국을 건국한 건국자로써 공산주의에 대한 믿음이 확고했으며 모두가 그 자체로 평등한 순수한 사회주의의 이념을 추구하였다. 그는 인민들의 자발적인 노력을 통해서 지식인 없이 생산량이 증대되고 모두가 풍요로움을 누리는 사회주의가 도래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를 순수 사회주의라고 부르며 현대 중국에서도 급진 좌파로 분류되는 사상가들은 마오쩌둥 시대의 정치,경제 체제를 더 옹호한다.

덩샤오핑은 선택적 사회주의라고 부를 만하다. 그는 사회주의의 이념이 모두가 잘 사는 사회라고 인식했으며 그러한 사회는 일부 자본주의적 체제를 수용함으로써 가능하다고 믿었다. 자본의 축적과 분업을 통한 생산량의 극대화 지식인층의 장려 부분적 사유재산의 도입으로 그는 현대 중국이 추구하는 경제사상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허나, 이는 자본주의를 넘어서 사회주의가 도래하기 위한 자본축적의 단계를 지나고 있는 것으로 엄밀히 말하면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있는 상태이다.


‘분배가 먼저냐 성장이 먼저냐’를 두고 흔히 자본주의 국가에서 논쟁이 일듯이 현대 중국사는 순수한 형태의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것이 옳으냐 아니면 덩샤오핑이 추구한 형태의 사회주의가 옳으냐로 갑론을박이 일었다. 결과적으론 덩샤오핑의 경제기조가 선택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너무나도 커져버린 빈부격차에 마오쩌둥 시대를 향수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 것도 사실이다.


중국의 당 국가 제도


중국의 정치는 ‘당에서 시작해 당으로 끝난다.’고 한다. 형식상 공산당은 중화인민공화국에 속한 한 개의 당이지만, 당의 영향력이 너무나 막강하여 국가를 전부 통솔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 대표 입회 기관은 전국대표대회로 5년마다 개최되며 매년 중앙위원회가 대신하여서 개최된다. 9~10월 사이에 개최되는 전국대표대회는 공산당의 가장 큰 행사 이다.

국가에서 입법기구 역할을 하는 것이 전국인민대표대회인데 이는 매년 3월사이에 개최된다. 보통 전국대표대회에서 입안된 법안이 그대로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상정된다. 전국대표대회에서 통과되었다면 거의 전부가 그대로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통과된다. 이는 전국대표대회에서 서기 혹은 그에 걸맞은 위치에 있는 인물들이 그대로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똑같은 위치의 역할을 그대로 겸직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또 대학 혹은 기업 등에 당에서 파견한 인사가 핵심 지휘를 맡는다. 다른 것이 아닌, 인사와 재정의 권한이 당에서 파견된 간부에게 주어지는데 사실 대학의 총장이나 기업의 CEO나 모두 당에서 파견된 인사에 영향과 명령을 받는다고 보면 된다. 심지어 인민해방군 또한 국가 중앙군사위원회 소속이나 그 위에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국가 중앙위원회를 통제하고 있는 형태이기에 당의 총 서기가 군대 통솔권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사실 쉽게 말하면 공산당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국가의 주요직을 그대로 다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쉽다. 그렇기에 중국의 정치는 ‘당에서 시작해서 당으로 끝나는 것이다.’ 무엇을 하든 당에서 결정된 것이 그대로 국가의 정책이 되고 그대로 시행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초급 단계론


중국의 경제사상 기조는 ‘사회주의 초급 단계론’으로 설명된다. 사회주의 초급 단계론 이란, 현 중국은 마오쩌둥의 공산당 혁명으로 사회주의 국가를 이룩했으나 아직 사회주의의 초급단계에 있는 상황으로 자본의 지속적인 축적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는 덩샤오핑 집권시기 자오쯔양이 주장한 내용으로 덩샤오핑의 서구식 자본주의의 부분적 도입을 하게 되는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다만, 중국의 사상은 '모든 부 = 사회와 인민들의 부'이며 사유재산은 먼저 부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먼저 부자가 된 것이지 그게 그 사람에게 귀속되는 부가 아니다. 중국 사회주의의 영도이전에 먼저 자본축적이 뛰어난 사람들이 자본 축적을 해 놓는다는 의미다.


어찌되었든 중국은 공산당의 영도로 보다 완벽한 사회주의의 이행을 해 나가고 있는 단계로 공산당의 주도아래 사회주의 국가 건립은 중화인민공화국의 건립 모토인 만큼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될 부분으로 보고 있다. 다른 것은 정보가 공개되고 권위주의가 약화됨에 따라 규제가 완화되었음에도 공산당에 대한 비판은 절대적으로 엄금하는 것이 여기에 있다. 국가의 주요 건립 이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부는 개인에게 귀속되며 상속세 등의 세금은 다만 다음세대에게 불공정한 경쟁이 될 수 있으므로 국가가 제재한다는 형식의 자본주의 국가와는 다른 면이다. 중국에서는 토지도 개인이 소유하지 못 한다. 다만, 국가가 장기간 임대 해주었을 뿐이다.


‘성공의 역설’과 정치개혁 논쟁


민주주의는 경제적 성장을 통한 의식의 성장을 통해서만 이룩된다. 새뮤엘 헌팅턴은 구체적으로 일인당 GDP 3,000$ 이상일 때 사람들이 사회에 자유를 요구한다고 이야기 했다. 대표적인 국가가 한국인데 과거 권위주의 정부 아래에서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시민들의 의식이 성장하였고 결국 독재에 항거하여 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하였다. 

중국은 개혁,개방을 통해 경제적 성취를 지속적으로 이루어 나감에 따라 마찬가지로 시민들의 권리와 자유에 대한 요구가 늘어가고 있다. 이 점이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의 실패와 다른 점인데, 소련과 같은 멸망한 공산주의 국가들은 공산주의가 자유주의 진영에 비해서 일반 시민들의 먹거리와 생활을 개선해주지 못 함에 따라 내부적으로 멸망했다면 중국은 경제적 성취가 체제를 버리게 만들게 된 것이다. 그야말로 성공의 역설인 것이다.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개개인의 권익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개인의 주장을 관철하고자 하는 욕구가 증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것이 공산당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져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를 도입하자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는 의문이 든다. 


일단 새뮤얼 헌팅턴이 제시한 일인당 GDP 3,000$을 지나 중국은 1인당 GDP $ 9,000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나 직접적으로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았다. 

보수파들은 지금의 사회주의 당국가제도를 그대로 유지하자고 주장하고 있으며 급진파들은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를 중국에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도파들은 지금의 공산당 주도 체재를 유지하되 베트남처럼 당내 민주주의를 더 강화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총 서기의 선출이나 당 간부의 선출에서 좀 더 인민들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개개인의 권익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요구가 커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급진적으로 공산당에 대한 부정으로 곧 바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다소 의문이 든다. 오늘도 천안문 광장에는 모택동의 초상화가 크게 걸려있다. 


출처: http://pjw1307.tistory.com/164 [타가의 투자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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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야나 비룡소 클래식 13
김재민 지음, 바드리 나라얀 그림 / 비룡소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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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 왕자의 영웅기


라마야나는 라마왕자의 영웅기이다. 스리랑카, 티베트,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인도 문화권에 속하는 나라들에게는 가장 인기 있는 이야기 중에 하나가 바로 라마왕자의 이야기 라마야나이다. 전형적인 영웅 서사기의 형태를 띄고 있는데, 비범한 탄생을 맞이해서 아버지의 또 다른 아내 즉, 둘째 부인(라마는 첫 째 부인의 소생이다.)의 모함에 의해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자신의 왕위에서 물러나 14년간 숲을 배회하게 되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아 거기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이상적 인간의 모습을 라마는 보여주었다. 


왕국의 음모와 시련


아요디야 왕국은 다샤라타왕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다샤라타 왕은 자식이 없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는데 자식을 낳고자 아그니 신에게 제사를 지내 축복을 받아 네 명의 자식을 갖게 된다. 첫째 부인 카우살리야 사이에서 나온 것이 라마. 둘째 부인 카이케이로부터 나온 것이 마지막 셋째 부인 수미트라로부터 나온 것이 락슈마나와 사트루그나 였다.

첫 째 라마는 천상의 신 나랴야타의 헌신이었는데 이는 브라흐마(세상의 창조신)의 은총을 받아 어떤 신도 제거할 수 없는 은총을 받은 라바나를 인간의 형태로 태어나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브라흐마는 라바나를 축복할 때 그 어떤 신과 아수라도 라바나를 이길 수 없는 축복을 내려주었는데, 그만 원숭이와 인간은 깜박하고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들의 힘이 미약하여 차마 라바나에 미칠 것이라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카이케이의 시녀 만타라는 카이케이를 꾀어 바라타가 왕위에 올라야 함을 카이케이에게 설득하였다. 일전에 아수라들과의 일전에서 카이케이는 다샤라타의 목숨을 구한 적이 있다. 이 때 다샤라타는 카이케이에게 무슨 소원이든지 두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약조를 하였다. 이는 크샤트리아였던 왕의 맹세였던 만큼 어떤 일이 있어도 되돌릴 수 없는 굳은 맹세였다. 만타라는 카이케이를 꾀어 다샤라타에게 두 가지 맹세를 받을 것을 이야기 한다. 

카이케이는 라마가 왕위를 물려받은 다음 날 아픈 척 연기를 하여 다샤라타 왕에게 옛날의 약조를 떠올리게 한다. 다샤라타는 카이케이에게 무슨 옜 말을 기억하며 무슨 일이든지 자신이 들어주겠다고 약조한다. 카이케이의 두 가지 부탁은 첫 째, 곧바로 라마를 왕위에서 폐위하고 바라타에게 왕위를 상속할 것. 둘 째, 라마를 14년간 숲속에 유배시킬 것이었다. 카이케이의 꾐에 넘어간 것을 눈치 챈 다샤라타는 자신이 잘 못 한 것을 깨달으나 크샤트리야의 약조를 어길 수 없었던 왕은 이를 그대로 이행한다.

다샤라타는 자신의 명을 어기고 왕위에 오르기를 라마에게 간청하나 선왕의 명을 어길 수는 없다며 라마는 선왕과 카우살리야 그리고 카이케이에게 14년간의 유배를 떠나게 된다. 이 때 부인 시타와 락슈마나도 라마를 따라 나선다. 


라마 – 14년 유배


라마는 단다카 숲에 14년간 유배되는 시련을 당하게 되었다. 라마의 빼어난 용품과 성품에 반한 슈르파카나는 라마를 단다카 숲에 유배된 라마를 꾀고자 유혹한다. 라마는 슈르파카나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고 이를 지켜보던 화가 난 락슈마나는 칼로 슈르파카나의 코를 베어 버린다. 라바나의 여동생이었던 슈르파카나는 이에 앙심을 품고 라바나를 찾아간다.

라바나에게 시타의 아름다운 미모를 이야기하면서 시타는 라마 같은 인물이 아닌 라바나와 같은 영웅에게 어울린다면서 라바나를 꾄다. 이내 시타를 납치할 계획을 세운 라바나는 꾀를 낸다. 자신의 수하인 마리차로 하여금 황금사슴으로 변신해 라마 일행을 유혹하게 한다. 황금사슴을 보고 반한 시타는 라마로 하여금 황금사슴을 잡아달라고 라마에게 부탁한다. 숲의 위험성을 알고있던 라마는 락슈마나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시타와 떨어지지 말라 락슈마나에게 당부한 뒤 황금사슴을 사냥하러 떠난다. 황금사슴 마리차는 라마에게 사냥 당한 뒤 라마의 목소리로 변장해 시타와 락슈마나를 부른다. 

라마가 위험에 처한 걸로 생각한 시타는 락슈마나에게 서둘러 라마를 구하러 가기를 청한다. 찝찝한 마음이 들지만 시타의 청을 거절할 수 없었던 락슈마나는 시타 주변에 결계를 친 뒤 이 밖으로 절대 나와서는 안된다고 한 뒤 라마를 찾아 목소리가 난 방향으로 향한다. 시타 홀로 남게 되었고 라바나는 브라흐민으로 변장해 시타에게 탁발한다. 직접 음식을 자신에게 간청해 결계의 밖으로 시타가 나오게 유혹한 뒤 라바나는 시타를 납치해 자신의 왕국으로 도망하게 된다. 독수리 자따유는 이를 발견하고 라바나를 저지하나 결전 도중 상처입고 추락한다.

락슈마나와 조우한 라마는 꾀임에 속은 것을 깨닫고 서둘러 돌아오지만 시타는 납치당한 이후였다. 시타를 납치당한 라마는 망연자실한 채 이성을 잃어버리지만, 이내 락슈마나의 도움으로 이성을 되찾고 라바나를 추적한다. 죽음 직전의 자따유를 만난 라마는 라바나의 행방을 유추하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 원숭이들의 왕국 끼슈낀다로 향하게 된다.


원숭이 왕국 끼슈낀다 


끼슈낀다 왕국에 이른 라마는 원숭이 왕 수그리바가 자신의 형 발리와 오해가 생기어 죽을 운명에 처한 것을 알게된다. 

발리는 라마에게 자신은 잘 못한 것이 없으며 이는 다르마(선에 의해 움직이는 운명)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따지지만 라마는 발리가 왜 라마에게 죽는 것이 다르마를 따르는 일인지 차례차례 설명하고 발리는 이를 이해했다면서 죽는다. 발리의 장례는 성대하게 치루어지고 수그리바가 끼슈낀다 왕국의 왕위에 오르게 된다.

라마를 도와 시타의 행방을 탐색하던 끼슈낀다 왕국의 원숭이들은 이내 라바나가 남쪽 랑카에서 자리를 잡고 시타를 납치했음을 알게 된다. 라마와 끼슈낀다 왕국의 원숭이들은 랑카를 공격할 계획을 같이 세우게 된다. 원숭이 장군 하누만은 몸집을 부풀려 먼저 랑카의 탐방에 나선다. 여기서 시타를 만난 하누만은 시타에게 같이 탈출할 것을 권하나 시타는 아직 하누만을 믿을 수 없어 거절한 뒤 징표를 하누만에게 주어 라마에게 전하게 한다. 

시타의 뜻을 전해 받은 하누만은 랑카의 전력을 탐색해볼 겸 포로로 잡혀 라바나의 앞으로 끌려간다. 하누만을 본 라바나는 처음에 하누만을 죽이려 했으나 사신을 죽여선 안 된다는 청에 따라 하누만의 꼬리에 불을 붙이는 형벌을 명한다. 하누만은 바람의 신 바유의 아들이었기에 누구보다 빨랐고 불의 신 아그니의 축복을 받았기에 그 어떤 불도 그를 해칠 수 없었다. 거꾸로 꼬리에 붙은 불로 랑카 주변주변에 불을 붙여 난동을 부린 뒤 랑카를 떠나 끼슈낀다로 돌아온다.



랑카에서의 결전


랑카로 가기 위해선 바다를 건너야 했다. 바다 신의 도움을 받은 라마와 끼슈낀다의 원숭이들은 바다를 건넜고 랑카에서 결전을 치르게 된다. 결전이 있기 전 라바나의 동생 비비샤나는 이는 다르마를 어기는 일이라며 라바나에게 시타를 돌려주고 전쟁을 그만 둘 것을 간청했으나 이루어 지지 않자 라마에게 항복을 청해 라마와 함께하는 중이었다. 

랑카에서의 결전에서 라마와 라바나의 싸움은 일진일퇴를 거듭하여 지루한 공방전을 계속하였다. 허나, 인드라 신의 호의를 받은 라바나의 아들 인트라지트가 락슈마나의 손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거대한 거인 쿰바카르타 또한 라마의 손에 죽임을 당하니 전세는 이미 라마에게 기운 것이나 마찬가지 였다. 쿰바, 니쿰바, 라바나의 친위대, 라바나의 왕자들 모두 라마 일행에게 죽임을 당하고 남은 것은 라바나 본인 혼자였다. 마침내 라바나는 결전을 맹세하고 라마에게 돌진한다.

숨막히는 결전 속 브라흐마의 축복을 받은 라바나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이내 라바나는 라마에게 죽임을 당했으나, 얼굴이 그 때 마다 새로 돋았다. 브라흐마의 축복이 필요함을 깨달은 라마는 브라흐마스트라를 사용해 라바나를 끝끝내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다. 라바나를 물리 친 라마는 그 자신이 천신 나가야나의 헌신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인기있는 영웅의 이야기


라마는 인도인들의 일상에서 부적의 형태로든 지갑속의 사진의 형태로든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인도인들에게 인기있는 영웅 중 하나이다. 비단 인도 뿐만이 아니다. 인도를 벗어난 인도 문화권에서도 라마와 관련된 문화유산을 흔하게 볼 수 있는 만큼 라마왕자의 이야기 라마야나는 인기있는 이야기이다.

무엇 때문에 라마야나는 인기를 얻게 되었을까? 정의와 도덕을 추구하는 이상적인 군주 자신의 남편에게 헌신하는 이상적인 아내 자신의 형(군주)에게 충성을 다하는 신하의 모습이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우리 인간은 이런 점에서 너무나 다른 문화권에 살면서도 많이 닮은 점이 존재하는데 그들이나 우리들이나 어찌 되었든 이상적으로 추구하는 인간상은 비슷한 것 같다. 


인도인의 의식과 다르마 


라마야나 속에는 인도인들의 의식이 그대로 묻어나 있다. 라마의 영웅적 면모에 대해 수 십장씩 늘어놓는 모습에서 그들의 숭배적 의식을 여성을 때리는 것을 싫어한다는 라마의 대사에서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 영웅의 모습이 서양의 기사도와 닮았다는 점도 보여준다. 무엇보다 가장 많이 드러나는 것이 모든 것은 ‘다르마’에 따라서 ‘다르마’를 어겨서는 안된다고 하는 그들의 대사에서 ‘다르마’가 정말 중요한 것임을 보여준다. 

‘다르마’는 의무,도리의 의미를 지니는데 사람으로써 마땅히 지켜야할 도덕적인 가치를 의미한다. 우리로 치면 권선징악에 해당하는 개념인데 원숭이 발리가 자신은 다르마를 어긴 일이 없는데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냐고 말하는 모습은 도덕적 행위에는 상이 비도적 행위에는 벌이 내려져야 한다는 것이 깔려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인도인들의 의식은 다른 여타 국가들처럼 보편성을 지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을 특별하게 하는 것은 라마가 나라야나의 헌신이라고 하는 점에서 나타난 ‘아바타’ 사상인데, 그들은 본질은 이 세상 건너편에 존재하며 끊임없이 헌신이 환생하여 이 세상에 나타난다고 믿는다. 그들은 라마 또한 유지의 신 비쉬뉴가 헌신한 한 형태라고 믿는다. (이것을 보면 왜 인도에는 같은 신의 이름이 수천가지가 되는지 이해가 된다. 신이 수천가지 형태로 재 탄생해 세상에 나타났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동안 다르마 다르마 다르마 이야기가 끝도 없이 나와서 다른 것은 몰라도 다르마는 절대 까먹지 않을 것 같다. 


출처: http://pjw1307.tistory.com/163 [타가의 투자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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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버닝 차이나 - 현대 중국정치의 이해
케네스 리버살 지음, 김재관.차창훈 옮김 / 심산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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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중국은 한국에겐 멀면서도 가까운 국가입니다.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를 제외한 모든 외침은 중국으로부터 유래했고, 문화적 영향력도 중국에서 받은것이 굉장히 많습니다. 중국은 청나라 이후, ‘중국식 사회주의’라는 이념아래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어 현대에까지 이르고 있는데요.


오늘은 중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도서 거버닝 차이나의 내용을 간략하게 다뤄보고자 합니다.


중국의 근,현대사


중국의 근,현대사는 쑨원의 신해혁명부터 많이들 설명합니다. 삼민주의 아래 민족주의노선이 이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중국은 당시 세계정세에 따라 자유진영의 국민당과 사회주의 계열의 공산당이 북쪽과 남쪽을 중심으로 세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북방의 군사세력들을 토벌하던 장제스와 공산당을 이끌었던 마오쩌둥이 각 당을 대표하는 인물들이었습니다. 국민당은 후기로 갈수록 숫자에서나 화력에서나 공산당을 압도했습니다. 특히, 만주사변으로 인해 국공합작이 이루어지고 난 뒤, 공산당은 절대로 국민당을 이길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압도적인 전력이 역으로 국민당의 약점으로 작용하게 되었습니다. 국민당은 부정부패에 빠져들게 되었고, 이러한 부패를 틈타 중국 공산당이 세력을 잡고 중국인민공화국을 설립하기에 이릅니다. 이때, 장제스의 일행은 대만으로 도피해 독자적인 국가를 수립합니다. 마오쩌둥의 사후, 덩샤오핑에 의해 두 국가는 수교 정상화를 이룹니다.


마오쩌둥의 공화국설립 이후, 스탈린 사망으로 소련으로부터 더 이상의 지원이 기대되지 않고 거기에 6.25전쟁으로 미국과도 완전히 척을 지게 된 마오쩌둥은 중국민 스스로 자력으로 경제발전을 이루고자 합니다. 그 스스로가 계획하고 실천하였던 대약진 운동은 철강을 주조하고, 인민공사와 같은 대규모 집단 농업체제를 구축함으로써 농업 생산력과 철강 생산력을 극대화하고자 시도했습니다. 결과는 그의 과학에 대한 무지로 참혹한 실패를 겪습니다.


대약진 운동의 실패로 정권의 일선에서 마오쩌둥은 물러나게 됩니다. 덩샤오핑과 류사오치는 이 때 정권을 잡아 경제 개방화와 사유재산을 인정함으로써 성공적으로 중국의 경제 회복을 꾀하게 됩니다. 마오쩌둥은 이들이 가는 길이 자본주의로 가는 길과 다름없다고 생각해 어린 아이들에게 교주주의 사상을 가르치고 해서파관을 꼬뚜리 잡아 문화대혁명을 일으킵니다.


문화대혁명은 근본적 사회주의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었습니다. 모든 과거의 문화유산은 부서졌고, 마오쩌둥에 의해서 육성된 홍위병들은 그들의 스승,형제들을 도륙했습니다.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당을 완전히 분해하고 인민해방군을 이끌고 자신이 다시 정권을 주도하게 됩니다. 10년간의 문화대혁명의 시기말 마오쩌둥을 보필하던 저우언라이는 덩샤오핑을 다시 복권시키고 정계에 복귀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줍니다. 마오쩌둥은 죽기 전, 화궈펑에게 모든 전권을 부임하고 사망합니다.


화궈펑은 마오로부터 정권을 물려받았지만, 국가를 경영할 그릇은 되지 못하였습니다. 정치 고단수인 덩샤오핑은 그가 배척하고자 했으나 그는 마오의 상대가 되지 못 했습니다. 11기 3중전대를 계기로 덩샤오핑은 중국 정치복권에 성공합니다. 후샤오방과 자오쯔양의 실천적 이론을 토대로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합니다. 인민공사를 해체하고, 부분적 사유재산을 인정하며 야시장을 개방해 잉여생산물을 교환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외교적으로는 미국,일본,대만과 수교 정상화를 하였고, 영국과는 담판승부를 통해 홍콩의 반환을 약속받았습니다. 연안지방은 경제특구로 지정, 빠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해주었으며 외국인들의 직접투자또한 부분적으로 허용해주었습니다.


그의 사상을 집약해주는 것은 ‘흑묘백묘론’으로 그가 꿈꾸었던 사회주의를 이루기 위해선 그 방법이 어떻게 되더라도 즉, 자본주의와 같은 모습을 보이더라도 상관없다고 덩샤오핑은 생각했습니다. 외부의 모습은 어떻게 보이더라도 그는 근본적으로 사회주의자였습니다. 더 많은 정치적 자유를 요구한 시위에 덩샤오핑은 천안문 사태를 유혈진압함으로써 중국이 가야할 유일한 길은 사회주의라고 세계에 천명하였습니다.


이후, 장쩌민, 후진타오를 지나 현재의 시진핑 국가주석까지 중국의 역사는 이어져 오고 있으며, 그들의 정치체제는 아직도 ‘중국식 사회주의’의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지배구조


중국의 사회 지배구조는 독특합니다. 중국은 그들의 믿음에 따라, 공산당 1당 주도아래, 모든 것이 이루어 집니다. 당이 모든 결정의 핵심이며, 그들의 주도 군대인 인민해방군도 당의 소속입니다. 5년마다 열리는 전국대표대회는 공산당원과 상무위원회를 선발하는 자리로 가장 중요한 자리이자, 모든 핵심적 권력이 정해지는 자리입니다. 5년마다 열리는 이 자리에서 매년 있는 사건들을 다루기 위한 대표단인 상무위원회가 이 전국대표대회에서 승인되는 것입니다.


중국은 매해 전국민인대표대회를 엽니다.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와 더불어 두개의 큰 회의로 불리는 대회로 헌법의 해석, 각종 성급단위의 행정처리등을 처리합니다. 또 이외에 당 총서기, 국가 주석, 군사위원회 주석을 선출합니다.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는 국공합작과 함께 탄생한 기구로 그 때의 전통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중국의 핵심 권력은 당의 총서기이며, 국가 주석은 그 다음의 결론을 가집니다. 당이 당군사위원회를 통해 인민해방군을 지휘하는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물론, 국방부가 있지만, 그 실권은 없습니다. 그들의 이념적 믿음은 공산당의 이상적 지휘아래 모두가 잘 사는 사회주의가 도래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 어떤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도 당에대한 비판 자체는 절대로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 점을 이해해야 중국의 행동이 이해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중국을 이끈 두 이데올로기


중국의 근,현대사는 두 명의 인물과 두 개의 이데올로기로 대표됩니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이죠. 마오쩌둥은 중국공산당을 이끈 수장으로 그 자신이 혁명의 수장이었으며, 이념적으로 사회주의에 대한 깊은 갈망을 해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일생에 있어서 계급이 발생하는 것을 극도로 혐오했으며, 사람들은 모이기만 해도 계급이 생성되기에 지속적으로 혁명을 이룩해야 한다는 계속혁명을 주창했습니다.


그는 지식이 그 자체로 계급을 형성한다고 믿었기에 지식인들을 배척해왔습니다. 그는 인민들이 힘을모아서 단합하고 인간이 의지력을 가지면 그 어떤 일도 이루어 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사회적 환경의 변화속에서 그는 순수한 사회주의의 실현과 인민들의 잠재력(?)에 대한 믿음으로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물론, 결과 자체는 참패였습니다. 그 자신의 과학지식에 대한 무지로 멀쩡한 쇠들을 모두 망가뜨렸으며, 참새들을 학살해 거꾸로 역병을 일으킨 행동은 마오쩌둥의 큰 실패중에 한 가지입니다. 허나, 그가 그 스스로의 지극히 지고지순하게 믿었던 신념아래서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이 일어난 측면또한 존재합니다.


현재는 경제학자들이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보다 더 우세한 체제라는 것을 선전할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어버렸습니다. 공산주의는 체제적으로 일인 혹은 한 당의 계획에 의해 모든 것이 움직이므로 한 명 혹은 한 집단의 잘 못된 선택으로 사회 전체가 망가질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자유-자본주의는 그렇지 않습니다. 공정한 경쟁이 보장된다면, 언제나 대안제가 존재하며 재앙적 사건의 영향이 사회 전체까지 퍼지는 경우는 지극히 제한적입니다.


덩샤오핑또한 혁명의 수장으로 그 자신도 중국 공산당의 대장정을 함께한 동지였습니다. 그는 문화대혁명의 시작과 함께 마오쩌둥에게 숙청당했으며, 노동캠프에서 노동을 하면서 자신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는 마오쩌둥과 함께한 시간동안 총 세번의 숙청을 당했으며, 그 모든 기간동안 살아남은 강인한 사람이었습니다.


대약진운동이후, 잠깐 류사오치와 정권을 잡은 기간이 있지만, 문화대혁명과 함께 다시 자리를 잃습니다. 긴 인고의 시간이 끝난 뒤, 재기한 그를 통해 중국은 완전히 새로운 체제를 맞이하게 됩니다.


덩샤오핑은 중국이 현재 처한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으로 궁핍한 것이며, 이에 대한 해결은 무엇보다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주변에 잘 사는 나라인 자본주의 국가들을 배워 그 체제들을 중국에 적용했습니다. 4개분야인 농업, 국방, 과학기술, 공업의 현대화를 목표로 서구적 자본주의의 체제를 중국 사회주의에 적용했습니다.


허나, 그는 궁극적으로 사회주의가 실현되는 것을 꿈꾼 사회주의자로 그 자신또한 마오쩌둥이 꿈군 ‘중국식 사회주의’를 실현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또 주장했습니다. 앞서 말했듯, 그는 자유경쟁, 사유재산인정, 과학기술 장려를 통해 지금의 중국 경제발전의 방향을 제시했으며, 이전과는 중국을 만들어낸 인물입니다.


마치며


중국의 오늘은 ‘중국식 사회주의’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그들에게 있어선 혁명의 완수과정으로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는 상황으로 인식됩니다. 물론, 자라나는 중국청년세대에 있어서 그런 이념적인 것은 그렇게 크게 중요한게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이 도서는 중국의 근,현대사를 압축적으로 다루고 있는 도서입니다. 물론, 그 내용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이해하기 쉬운 도서는 아닙니다. 관심있으신 분은 읽어보시면 도움되실 것 같습니다.


출처: http://pjw1307.tistory.com/155 [타가의 투자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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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경전들 - 베다 본집에서 마누 법전까지 살림지식총서 311
이재숙 지음 / 살림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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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인도는 정말 독특한 국가입니다. 동양권에서는 한국도 그렇고 중국도 그렇고 통일왕조를 오랫동안 겪으면서 동일한 문화권을 형성한 반면 인도는 지역마다 너무나 생활양식이 다릅니다. 중국은 진왕조를 겪으면서 도량형과 종교적 통합을 이루고 한국은 통일신라 시대를 겪으면서 그런 반면, 인도는 아리야 이민족들에 의해 통일왕조가 형성되었지만, 기존의 드라비다 족들과 융화하면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였습니다.

인도는 이민족들 간의 통합을 종교를 통해서 이루고자 노력을 한 듯 보입니다. 어찌 되었든, 그들은 힌두교라는 하나의 (비록 신들의 개수가 상상초월이고 해석되는 측면도 다양하지만)  종교를 통해서 단일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으니까요. 오늘은 인도의 종교의 뿌리에 관한 도서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인도의 역사

인도는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로 인더스 문명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기존의 문명을 이룬 종족은 드라비다족으로 힌두교의 독특한 문명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들이 아리야 족들의 침략을 받게 되고 문명이 희석되게 됩니다. 그들의 경전인 베다에는 유목민을 상징하는 신들이 정착민을 상징하는 신들을 정복하는 서술이 많이 나옵니다. 아리야족들의 침략을 정당화하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아리야족의 유목민족은 기존의 드라비다족의 문화와 융합하면서 하나의 독특한 문화를 이루어냅니다. 물론, 아직도 인도의 남부와 북부는 다소의 문명적 차이를 보이기는 합니다만 인도의 고대 문명은 이렇게 형성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 베다로 인도 정신문화의 뿌리입니다.

이후, 그들은 몽골인의 후손인 아크바르에 의해서 정복당합니다. 아크바르 대제에 의해서 무굴제국이 꽃 피게 되고 이때 인도 문명의 꽃이 피는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우리가 아는 타지마할, 레드포트 등 인도의 대표적인 건축물들은 모두 이때 건축되게 됩니다.

알다시피, 그다음에는 영국 제국주의의 침략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운동을 통해 인도는 기나긴 식민지 시대를 끝내고 현대의 인도 공화국이 탄생합니다. 종교적인 차이로 인도는 파키스탄과 인도로 분할되어 독립합니다.

이것이 간단한 인도의 역사입니다. 물론, 세세히 보자면, 굽타왕조, 헬레니즘 문화 등 다양한 역사가 있습니다. 


인도의 종교

인도를 여행하면서 크게 놀란 것은 뚜렷한 통일성이 나타나면서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익히 알듯이, 인도에서는 소를 신성시하는데요. 허나, 일부 지역에서는 소고기를 먹습니다. 워낙 다양한 민족들이 섞여서 대륙에서 지내다 보니 힌두교라는 하나의 종교로 통합된 듯합니다. 허나, 그 통합에서 각자마다의 해설의 차이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가장 대표적인 인도인의 종교는 힌두교와 힌두교에서 파생한 자이나교 그리고 이슬람교로 볼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는 아시아권에서 융성했지 인도 자체에서는 인구의 1% 미만만이 불교일 정도로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인도가 불교로 인해 익숙한데요. 대표적으로 불교의 순환론적 세계관과 열반 그리고 자신의 죗값을 받아 다시 환생한다는 사고관은 대표적인 힌두교 사상의 특징입니다. 인도인들은 아직도 우리가 업(業)이라 부르는 ‘카르마’에 따라서 아직도 사고합니다. 긍정적인 면은 그래서 동물 등 생명에 굉장히 관대하다는 것이고 나쁜 점은 낮은 카스트 계급의 사람들에게 굉장히 가혹합니다. 부의 편차도 그들은 문제 삼지 않습니다. 왜냐면, 과거의 업적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인도의 경전

인도의 경전은 크게 천계서와 계승서로 나뉩니다. 천계서는 베다로 대표되는데요. 인도인들은 베다는 신의 계시라고 생각해 신성시합니다. 우파니샤드,아란야까 등은 모두 베다의 해설서로 어떻게 하면 베다의 가르침대로 살 수 있는지에 대한 경전들입니다.

이 아란야까와 우파니샤드가 탄생하던 시대는 기존의 경전 위주의 사고에 반해 하던 시기로 극단적 무소유를 지향하는 자이나교, 경전 주의를 반하고 개인의 수행을 강조한 불교가 탄생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 천계서의 시기가 지나 계승서인 푸라냐시대가 신의 형상의 인격화가 일어나는 시기로 우리에게 익숙한, 브라흐만, 비쉬누, 시바 신의 이야기가 나오는 시기입니다. 인도인들에게 가장 유명한 라마야나와 같은 이야기들이 탄생했던 시기이죠. 만약, 인도를 여행하신다면, 이러한 이야기들에 대한 배경지식이 얼마만큼이냐에 따라 인도 여행의 재미가 많이 달라지실 것입니다.

 


마무리

인도의 문화는 아시아에서는 불교문화를 통해서 익숙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문화는 굉장히 독특한데요. 수천 가지의 이름을 가진 하나의 신과 여러 가지 형상을 지닌 하나의 신 융합하면서도 이질적인 그들의 문화는 그들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출처: http://pjw1307.tistory.com/154 [타가의 투자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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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그릇 - 3만 명의 기업가를 만나 얻은 비움의 힘
나카지마 다카시 지음, 하연수 옮김 / 다산3.0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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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옛날에 전쟁 영화를 볼때면 장군들은 참 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한 적이 많습니다. 어릴적의 눈으로는 장군들은 그저 지시만할 뿐 병사들만 죽어난다고 봤기 때문이죠. 물론, 전쟁을 하는 장군은 아니지만, 작게는 학교생활에서 취미생활까지 리더생활을 몇 번 하고 나니 그게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묶어내고 이끌어 나가는 리더의 자리는 어릴적 제가 본 것과 달리 정말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만큼 되기도 어려웠고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도 정말 힘든일입니다.

이 책은 그러한 리더의 자리에 있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도서입니다. 중국 명나라 여곤이 쓴 신음어를 나카지마 다카시라는 일본인 학자가 여곤의 신음어에서 현대에 필요한 부분을 해설하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곤의 신음어

여곤이 살던 시대는 도덕과 법치가 무너진 시대였다고 합니다. 그러한 시대에서 여곤은 스스로 신음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야 하는지 적은 것이 바로 신음어라고 합니다. ( - 그것이 일본인의 손을 거쳐 지금 우리의 앞에 놓여 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일본인들의 기록문화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자세는 정말정말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일본인의 저력입니다. )


어떤 리더가 되야하는가?

어떤 리더가 되야 하는지는 과거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현명하게 처신하고  시대의 변화를 읽고 인재를 중용하면 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탁상공론이 아닌, 현실의 변화를 스슬 겪으면서 배워야 합니다. 타인에게 신뢰받기 위해 그 스스로 높은 도덕적 기준을 지녀야 합니다.

신음어에서 과거에도 관리들이 부정부패에만 눈 떠있고 병사들은 술독을 비우는 것에서 재미를 채우고 있으니 나라가 곧 망할 징조라고 말했다고 하니, 참 많은 것이 변해도 어떤 사람이 유능한 사람인지는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어떤 사람이야 말로 함께하면 되겠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동일한 측면이 있으니까요.


마무리

한 조직에서 리더의 역할은 정말로 막대합니다. 그가 제시하는 비전대로 조직이 움직일 것이고, 그가 가지는 성숙도와 인간성에 따라서 조직의 문화가 결정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내외적으로 힘든 상황입니다. 이럴때 일수록, 유능한 리더가 더더욱 필요한 시점입니다.



출처: http://pjw1307.tistory.com/151 [타가의 투자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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