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버닝 차이나 - 현대 중국정치의 이해
케네스 리버살 지음, 김재관.차창훈 옮김 / 심산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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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중국은 한국에겐 멀면서도 가까운 국가입니다.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를 제외한 모든 외침은 중국으로부터 유래했고, 문화적 영향력도 중국에서 받은것이 굉장히 많습니다. 중국은 청나라 이후, ‘중국식 사회주의’라는 이념아래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어 현대에까지 이르고 있는데요.


오늘은 중국의 근,현대사를 다룬 도서 거버닝 차이나의 내용을 간략하게 다뤄보고자 합니다.


중국의 근,현대사


중국의 근,현대사는 쑨원의 신해혁명부터 많이들 설명합니다. 삼민주의 아래 민족주의노선이 이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중국은 당시 세계정세에 따라 자유진영의 국민당과 사회주의 계열의 공산당이 북쪽과 남쪽을 중심으로 세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북방의 군사세력들을 토벌하던 장제스와 공산당을 이끌었던 마오쩌둥이 각 당을 대표하는 인물들이었습니다. 국민당은 후기로 갈수록 숫자에서나 화력에서나 공산당을 압도했습니다. 특히, 만주사변으로 인해 국공합작이 이루어지고 난 뒤, 공산당은 절대로 국민당을 이길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압도적인 전력이 역으로 국민당의 약점으로 작용하게 되었습니다. 국민당은 부정부패에 빠져들게 되었고, 이러한 부패를 틈타 중국 공산당이 세력을 잡고 중국인민공화국을 설립하기에 이릅니다. 이때, 장제스의 일행은 대만으로 도피해 독자적인 국가를 수립합니다. 마오쩌둥의 사후, 덩샤오핑에 의해 두 국가는 수교 정상화를 이룹니다.


마오쩌둥의 공화국설립 이후, 스탈린 사망으로 소련으로부터 더 이상의 지원이 기대되지 않고 거기에 6.25전쟁으로 미국과도 완전히 척을 지게 된 마오쩌둥은 중국민 스스로 자력으로 경제발전을 이루고자 합니다. 그 스스로가 계획하고 실천하였던 대약진 운동은 철강을 주조하고, 인민공사와 같은 대규모 집단 농업체제를 구축함으로써 농업 생산력과 철강 생산력을 극대화하고자 시도했습니다. 결과는 그의 과학에 대한 무지로 참혹한 실패를 겪습니다.


대약진 운동의 실패로 정권의 일선에서 마오쩌둥은 물러나게 됩니다. 덩샤오핑과 류사오치는 이 때 정권을 잡아 경제 개방화와 사유재산을 인정함으로써 성공적으로 중국의 경제 회복을 꾀하게 됩니다. 마오쩌둥은 이들이 가는 길이 자본주의로 가는 길과 다름없다고 생각해 어린 아이들에게 교주주의 사상을 가르치고 해서파관을 꼬뚜리 잡아 문화대혁명을 일으킵니다.


문화대혁명은 근본적 사회주의로 돌아가자는 운동이었습니다. 모든 과거의 문화유산은 부서졌고, 마오쩌둥에 의해서 육성된 홍위병들은 그들의 스승,형제들을 도륙했습니다. 마오쩌둥은 중국 공산당을 완전히 분해하고 인민해방군을 이끌고 자신이 다시 정권을 주도하게 됩니다. 10년간의 문화대혁명의 시기말 마오쩌둥을 보필하던 저우언라이는 덩샤오핑을 다시 복권시키고 정계에 복귀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줍니다. 마오쩌둥은 죽기 전, 화궈펑에게 모든 전권을 부임하고 사망합니다.


화궈펑은 마오로부터 정권을 물려받았지만, 국가를 경영할 그릇은 되지 못하였습니다. 정치 고단수인 덩샤오핑은 그가 배척하고자 했으나 그는 마오의 상대가 되지 못 했습니다. 11기 3중전대를 계기로 덩샤오핑은 중국 정치복권에 성공합니다. 후샤오방과 자오쯔양의 실천적 이론을 토대로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합니다. 인민공사를 해체하고, 부분적 사유재산을 인정하며 야시장을 개방해 잉여생산물을 교환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외교적으로는 미국,일본,대만과 수교 정상화를 하였고, 영국과는 담판승부를 통해 홍콩의 반환을 약속받았습니다. 연안지방은 경제특구로 지정, 빠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해주었으며 외국인들의 직접투자또한 부분적으로 허용해주었습니다.


그의 사상을 집약해주는 것은 ‘흑묘백묘론’으로 그가 꿈꾸었던 사회주의를 이루기 위해선 그 방법이 어떻게 되더라도 즉, 자본주의와 같은 모습을 보이더라도 상관없다고 덩샤오핑은 생각했습니다. 외부의 모습은 어떻게 보이더라도 그는 근본적으로 사회주의자였습니다. 더 많은 정치적 자유를 요구한 시위에 덩샤오핑은 천안문 사태를 유혈진압함으로써 중국이 가야할 유일한 길은 사회주의라고 세계에 천명하였습니다.


이후, 장쩌민, 후진타오를 지나 현재의 시진핑 국가주석까지 중국의 역사는 이어져 오고 있으며, 그들의 정치체제는 아직도 ‘중국식 사회주의’의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지배구조


중국의 사회 지배구조는 독특합니다. 중국은 그들의 믿음에 따라, 공산당 1당 주도아래, 모든 것이 이루어 집니다. 당이 모든 결정의 핵심이며, 그들의 주도 군대인 인민해방군도 당의 소속입니다. 5년마다 열리는 전국대표대회는 공산당원과 상무위원회를 선발하는 자리로 가장 중요한 자리이자, 모든 핵심적 권력이 정해지는 자리입니다. 5년마다 열리는 이 자리에서 매년 있는 사건들을 다루기 위한 대표단인 상무위원회가 이 전국대표대회에서 승인되는 것입니다.


중국은 매해 전국민인대표대회를 엽니다.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와 더불어 두개의 큰 회의로 불리는 대회로 헌법의 해석, 각종 성급단위의 행정처리등을 처리합니다. 또 이외에 당 총서기, 국가 주석, 군사위원회 주석을 선출합니다.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는 국공합작과 함께 탄생한 기구로 그 때의 전통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중국의 핵심 권력은 당의 총서기이며, 국가 주석은 그 다음의 결론을 가집니다. 당이 당군사위원회를 통해 인민해방군을 지휘하는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물론, 국방부가 있지만, 그 실권은 없습니다. 그들의 이념적 믿음은 공산당의 이상적 지휘아래 모두가 잘 사는 사회주의가 도래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 어떤 표현의 자유가 허용되도 당에대한 비판 자체는 절대로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 점을 이해해야 중국의 행동이 이해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중국을 이끈 두 이데올로기


중국의 근,현대사는 두 명의 인물과 두 개의 이데올로기로 대표됩니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이죠. 마오쩌둥은 중국공산당을 이끈 수장으로 그 자신이 혁명의 수장이었으며, 이념적으로 사회주의에 대한 깊은 갈망을 해왔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일생에 있어서 계급이 발생하는 것을 극도로 혐오했으며, 사람들은 모이기만 해도 계급이 생성되기에 지속적으로 혁명을 이룩해야 한다는 계속혁명을 주창했습니다.


그는 지식이 그 자체로 계급을 형성한다고 믿었기에 지식인들을 배척해왔습니다. 그는 인민들이 힘을모아서 단합하고 인간이 의지력을 가지면 그 어떤 일도 이루어 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사회적 환경의 변화속에서 그는 순수한 사회주의의 실현과 인민들의 잠재력(?)에 대한 믿음으로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물론, 결과 자체는 참패였습니다. 그 자신의 과학지식에 대한 무지로 멀쩡한 쇠들을 모두 망가뜨렸으며, 참새들을 학살해 거꾸로 역병을 일으킨 행동은 마오쩌둥의 큰 실패중에 한 가지입니다. 허나, 그가 그 스스로의 지극히 지고지순하게 믿었던 신념아래서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이 일어난 측면또한 존재합니다.


현재는 경제학자들이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보다 더 우세한 체제라는 것을 선전할 때 사용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어버렸습니다. 공산주의는 체제적으로 일인 혹은 한 당의 계획에 의해 모든 것이 움직이므로 한 명 혹은 한 집단의 잘 못된 선택으로 사회 전체가 망가질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자유-자본주의는 그렇지 않습니다. 공정한 경쟁이 보장된다면, 언제나 대안제가 존재하며 재앙적 사건의 영향이 사회 전체까지 퍼지는 경우는 지극히 제한적입니다.


덩샤오핑또한 혁명의 수장으로 그 자신도 중국 공산당의 대장정을 함께한 동지였습니다. 그는 문화대혁명의 시작과 함께 마오쩌둥에게 숙청당했으며, 노동캠프에서 노동을 하면서 자신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는 마오쩌둥과 함께한 시간동안 총 세번의 숙청을 당했으며, 그 모든 기간동안 살아남은 강인한 사람이었습니다.


대약진운동이후, 잠깐 류사오치와 정권을 잡은 기간이 있지만, 문화대혁명과 함께 다시 자리를 잃습니다. 긴 인고의 시간이 끝난 뒤, 재기한 그를 통해 중국은 완전히 새로운 체제를 맞이하게 됩니다.


덩샤오핑은 중국이 현재 처한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으로 궁핍한 것이며, 이에 대한 해결은 무엇보다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주변에 잘 사는 나라인 자본주의 국가들을 배워 그 체제들을 중국에 적용했습니다. 4개분야인 농업, 국방, 과학기술, 공업의 현대화를 목표로 서구적 자본주의의 체제를 중국 사회주의에 적용했습니다.


허나, 그는 궁극적으로 사회주의가 실현되는 것을 꿈꾼 사회주의자로 그 자신또한 마오쩌둥이 꿈군 ‘중국식 사회주의’를 실현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또 주장했습니다. 앞서 말했듯, 그는 자유경쟁, 사유재산인정, 과학기술 장려를 통해 지금의 중국 경제발전의 방향을 제시했으며, 이전과는 중국을 만들어낸 인물입니다.


마치며


중국의 오늘은 ‘중국식 사회주의’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올바르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금도 그들에게 있어선 혁명의 완수과정으로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는 상황으로 인식됩니다. 물론, 자라나는 중국청년세대에 있어서 그런 이념적인 것은 그렇게 크게 중요한게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이 도서는 중국의 근,현대사를 압축적으로 다루고 있는 도서입니다. 물론, 그 내용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이해하기 쉬운 도서는 아닙니다. 관심있으신 분은 읽어보시면 도움되실 것 같습니다.


출처: http://pjw1307.tistory.com/155 [타가의 투자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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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경전들 - 베다 본집에서 마누 법전까지 살림지식총서 311
이재숙 지음 / 살림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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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인도는 정말 독특한 국가입니다. 동양권에서는 한국도 그렇고 중국도 그렇고 통일왕조를 오랫동안 겪으면서 동일한 문화권을 형성한 반면 인도는 지역마다 너무나 생활양식이 다릅니다. 중국은 진왕조를 겪으면서 도량형과 종교적 통합을 이루고 한국은 통일신라 시대를 겪으면서 그런 반면, 인도는 아리야 이민족들에 의해 통일왕조가 형성되었지만, 기존의 드라비다 족들과 융화하면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였습니다.

인도는 이민족들 간의 통합을 종교를 통해서 이루고자 노력을 한 듯 보입니다. 어찌 되었든, 그들은 힌두교라는 하나의 (비록 신들의 개수가 상상초월이고 해석되는 측면도 다양하지만)  종교를 통해서 단일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으니까요. 오늘은 인도의 종교의 뿌리에 관한 도서에 대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인도의 역사

인도는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로 인더스 문명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기존의 문명을 이룬 종족은 드라비다족으로 힌두교의 독특한 문명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들이 아리야 족들의 침략을 받게 되고 문명이 희석되게 됩니다. 그들의 경전인 베다에는 유목민을 상징하는 신들이 정착민을 상징하는 신들을 정복하는 서술이 많이 나옵니다. 아리야족들의 침략을 정당화하고자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아리야족의 유목민족은 기존의 드라비다족의 문화와 융합하면서 하나의 독특한 문화를 이루어냅니다. 물론, 아직도 인도의 남부와 북부는 다소의 문명적 차이를 보이기는 합니다만 인도의 고대 문명은 이렇게 형성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 베다로 인도 정신문화의 뿌리입니다.

이후, 그들은 몽골인의 후손인 아크바르에 의해서 정복당합니다. 아크바르 대제에 의해서 무굴제국이 꽃 피게 되고 이때 인도 문명의 꽃이 피는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우리가 아는 타지마할, 레드포트 등 인도의 대표적인 건축물들은 모두 이때 건축되게 됩니다.

알다시피, 그다음에는 영국 제국주의의 침략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운동을 통해 인도는 기나긴 식민지 시대를 끝내고 현대의 인도 공화국이 탄생합니다. 종교적인 차이로 인도는 파키스탄과 인도로 분할되어 독립합니다.

이것이 간단한 인도의 역사입니다. 물론, 세세히 보자면, 굽타왕조, 헬레니즘 문화 등 다양한 역사가 있습니다. 


인도의 종교

인도를 여행하면서 크게 놀란 것은 뚜렷한 통일성이 나타나면서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익히 알듯이, 인도에서는 소를 신성시하는데요. 허나, 일부 지역에서는 소고기를 먹습니다. 워낙 다양한 민족들이 섞여서 대륙에서 지내다 보니 힌두교라는 하나의 종교로 통합된 듯합니다. 허나, 그 통합에서 각자마다의 해설의 차이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가장 대표적인 인도인의 종교는 힌두교와 힌두교에서 파생한 자이나교 그리고 이슬람교로 볼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는 아시아권에서 융성했지 인도 자체에서는 인구의 1% 미만만이 불교일 정도로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인도가 불교로 인해 익숙한데요. 대표적으로 불교의 순환론적 세계관과 열반 그리고 자신의 죗값을 받아 다시 환생한다는 사고관은 대표적인 힌두교 사상의 특징입니다. 인도인들은 아직도 우리가 업(業)이라 부르는 ‘카르마’에 따라서 아직도 사고합니다. 긍정적인 면은 그래서 동물 등 생명에 굉장히 관대하다는 것이고 나쁜 점은 낮은 카스트 계급의 사람들에게 굉장히 가혹합니다. 부의 편차도 그들은 문제 삼지 않습니다. 왜냐면, 과거의 업적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인도의 경전

인도의 경전은 크게 천계서와 계승서로 나뉩니다. 천계서는 베다로 대표되는데요. 인도인들은 베다는 신의 계시라고 생각해 신성시합니다. 우파니샤드,아란야까 등은 모두 베다의 해설서로 어떻게 하면 베다의 가르침대로 살 수 있는지에 대한 경전들입니다.

이 아란야까와 우파니샤드가 탄생하던 시대는 기존의 경전 위주의 사고에 반해 하던 시기로 극단적 무소유를 지향하는 자이나교, 경전 주의를 반하고 개인의 수행을 강조한 불교가 탄생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 천계서의 시기가 지나 계승서인 푸라냐시대가 신의 형상의 인격화가 일어나는 시기로 우리에게 익숙한, 브라흐만, 비쉬누, 시바 신의 이야기가 나오는 시기입니다. 인도인들에게 가장 유명한 라마야나와 같은 이야기들이 탄생했던 시기이죠. 만약, 인도를 여행하신다면, 이러한 이야기들에 대한 배경지식이 얼마만큼이냐에 따라 인도 여행의 재미가 많이 달라지실 것입니다.

 


마무리

인도의 문화는 아시아에서는 불교문화를 통해서 익숙합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문화는 굉장히 독특한데요. 수천 가지의 이름을 가진 하나의 신과 여러 가지 형상을 지닌 하나의 신 융합하면서도 이질적인 그들의 문화는 그들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출처: http://pjw1307.tistory.com/154 [타가의 투자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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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그릇 - 3만 명의 기업가를 만나 얻은 비움의 힘
나카지마 다카시 지음, 하연수 옮김 / 다산3.0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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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옛날에 전쟁 영화를 볼때면 장군들은 참 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한 적이 많습니다. 어릴적의 눈으로는 장군들은 그저 지시만할 뿐 병사들만 죽어난다고 봤기 때문이죠. 물론, 전쟁을 하는 장군은 아니지만, 작게는 학교생활에서 취미생활까지 리더생활을 몇 번 하고 나니 그게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묶어내고 이끌어 나가는 리더의 자리는 어릴적 제가 본 것과 달리 정말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만큼 되기도 어려웠고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도 정말 힘든일입니다.

이 책은 그러한 리더의 자리에 있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도서입니다. 중국 명나라 여곤이 쓴 신음어를 나카지마 다카시라는 일본인 학자가 여곤의 신음어에서 현대에 필요한 부분을 해설하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곤의 신음어

여곤이 살던 시대는 도덕과 법치가 무너진 시대였다고 합니다. 그러한 시대에서 여곤은 스스로 신음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야 하는지 적은 것이 바로 신음어라고 합니다. ( - 그것이 일본인의 손을 거쳐 지금 우리의 앞에 놓여 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일본인들의 기록문화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자세는 정말정말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일본인의 저력입니다. )


어떤 리더가 되야하는가?

어떤 리더가 되야 하는지는 과거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현명하게 처신하고  시대의 변화를 읽고 인재를 중용하면 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탁상공론이 아닌, 현실의 변화를 스슬 겪으면서 배워야 합니다. 타인에게 신뢰받기 위해 그 스스로 높은 도덕적 기준을 지녀야 합니다.

신음어에서 과거에도 관리들이 부정부패에만 눈 떠있고 병사들은 술독을 비우는 것에서 재미를 채우고 있으니 나라가 곧 망할 징조라고 말했다고 하니, 참 많은 것이 변해도 어떤 사람이 유능한 사람인지는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어떤 사람이야 말로 함께하면 되겠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동일한 측면이 있으니까요.


마무리

한 조직에서 리더의 역할은 정말로 막대합니다. 그가 제시하는 비전대로 조직이 움직일 것이고, 그가 가지는 성숙도와 인간성에 따라서 조직의 문화가 결정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내외적으로 힘든 상황입니다. 이럴때 일수록, 유능한 리더가 더더욱 필요한 시점입니다.



출처: http://pjw1307.tistory.com/151 [타가의 투자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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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 유성룡이 보고 겪은 참혹한 임진왜란
김기택 옮김, 임홍빈 해설, 이부록 그림, 유성룡 원작 / 알마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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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를 위해서 기록하다

임진왜란 당시 전란을 이끌고 수습하였던 재상 '유성룡'의 이야기다. 다시는 임진왜란과 같은 재난을 후세가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적어 내려간 글이다. 무엇이 잘 못되었고 당시의 상황은 어땠는지에 대해서 담담히 적혀 있다. 슬프게도 조선은 임진왜란 이후, 얼마 뒤 병자호란을 겪었고 또 일제 식민지까지 겪었다.

 

재앙은 예고되어 있었다.

조선은 일본이 전국통일을 한 뒤, 거듭되는 요구로 인해서 수신사를 파견한다. 당시 일본에 파견되어 온 후 수신사의 의견은 전쟁이 날 것이냐 아니냐 에 대해 약간의 의견이 분분함이 있었지만, 거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침략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조선도 나름의 준비를 했다. 성도 쌓고 장수도 새로 임명하고 허나 철저하지 못 했다. 당시 북방을 평정 했던 장수 신립은 일본을 얕잡아 보았고 잘 알지 못했다.

수십년 간의 내란이 정리되었다는 것과 다년간의 전투로 그들이 단련되어 있다는 것. 실제로 도요토미가 명나라를 침략하여 대국을 이루고자 하는 야망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철포라고 하는 신식무기가 있다는 것과 그것이 지니는 살상력과 파급력에 대해서 무지했다. 오래된 평화시대로 위기를 대비하는 것, 전쟁을 대비하는 것이 쓸데없는 일이라는 사고가 팽배해 있었다.(지금의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반성해볼 일이다. 우리의 현재 안보의식은 ..?)

 

준비된 자와 준비되지 못 한자

일본은 상륙이후 파죽지세로 부산을 지나 도성을 점령했다. 또 거기서 나아가 평양성까지 올라갔다. 이렇다할 저항한 번 부딪히지 못 하고 조선은 망국의 직전까지 처했다. 그러나, 전라도 지방에선 이순신이 승승장구하며 일본군을 격퇴하고 있었다. 무엇이 차이를 만들었을까? 이순신은 철저히 전쟁을 대비하고 있었다.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에 전쟁을 기정사실화하여 준비하였다. 일본의 주력이 접근과 백병전이라는 것을 알고 화력과 장거리 전술로 적을 맞아 싸웠다. 철저하게 적에 대해서 조사하고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의 거울로 현재를 비추다

준비된 위기는 위기가 아니다. 생각없이 아무런 준비없이 맞이하게 되는 위기가 진정한 의미의 위기이다. 경제,정치 사회 전반에 걸쳐서 생각해 볼 일이다. 400년전에 우리의 조상이 눈물을 머금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랬던 일은 왜 일어났을까 또 왜 반복되었을까. 과거의 거울로 현재를 비추어 본다.



출처: http://pjw1307.tistory.com/135 [타가의 투자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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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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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의 책이다. 현대사회의 문제점들에 대해서 깊이있게 고민해보고 거기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제시하는 이런 종류의 책들을 나는 굉장히 좋아한다. 그리고 내용 자체도 굉장히 좋았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는 굉장히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더 이상 내일 먹을 먹거리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아도 되며, 불안정하기는 하지만 민주화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나를 포함하여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하루라도 무언가 생산적이고 기업에서 원하는 일을 하지 않았을 때에는 취업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고 방황하고 괴로워 한다. 공부에 있어서도 전혀 쓸모 없다고 생각을 하지만 취업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내일 당장 부족한 것이 없음에도 오늘 하루하루를 즐기기에는 불안에 떨고 있다.


★★★ 


왜 그런 것 일까? 우리는 왜 내일의 일들에 대해서 고민하고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고 방황하는 것 일까? 저자는 그것을 현대 사회의 특징이라고 보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계몽시대 이전에 태어났다고 한다면, 나의 계급이 나를 규정하는 하였을 것이다. 나는 뒷산 앞에 있는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난 농부이고, 거기에는 나의 노력이나 무언가가 들어가지 않은 곳이다. 그냥 농부의 아들이 나이며 그렇기 때문에 농부로 사는 것이 당연한 사회였던 것이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다르다.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났건 집안의 재산이 얼마가 있건 없건 간에 그는 스스로 자신의 운면을 개척할 수 있으며 우리들에게는 비록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계급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있다. 자신을 규정하는 모든 것은 자신의 노력으로 인해서 결정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불안에 떨고 있다. 끊임없이 자기자신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불안한 현대사회를 살고 있으며 어찌보면 현대사회의 이런 정신적인 문제로 인해서 피해를 보는 입장이지만, 이것을 나쁘다고만은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거꾸로 이것이 현대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로 들어서 설명하자면, 나 또한 불안하기 때문에 노력한다. 나의 위치와 내가 원하는 삶들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며 나의 노력에 따라서 변하기 때문에 나는 사회에서 원하는 모습으로 살려고 노력하고 신분사회였다면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할만한 일들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굉장히 불안하다. 나에게 자유가 주어져 있기때문에 불안하며 그것 때문에 고민하며 괴로워 한다.


저자또한 현대사회의 불안에 대해서 진단을 할뿐 거기에 대해서 가타부타 옳다 그르다 논평을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누가 되었던 간에 그것들에 쉽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치 자본주의 사회의 비 인간성에 대해서 고발하고 비판하지만 그렇다고 하여서 자본주의를 대체할 딱히 마땅한 체제가 없는 것처럼 현대사회 또한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을 근원적으로 해결할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비판을 받을 수 있을 지언정 그 안에서 해결될 방법을 찾을 따름이다.


★★★ 


그렇다면 저자는 이런 불안들에 대한 해결책으로 어떤 것들을 제시하였을까? 해결책은 다음과 같다. 종교, 예술, 철학. 그리고 체재내에서의 성공이다. (책을 읽은지 3주정도 지나서 기억이 명확하지는 못하다..) 먼저 종교를 통한 해결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 인가? 하나님에게 귀의하는 것이다. 기독교적인 관점으로 보자면, 세상만사 현실에서의 일들은 한때이고 끝나고 난뒤에 영생을 누리는 사후세계가 존재하니 그 때가 더 중요한 것이니 현세는 어찌 되었든 종교적으로 산다면 현대적 관점에서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상관이 없다는 관점이다. 불교적 관점은 예술적인 관점과 통하는 점이 있는데, 세상만사 무엇을 하든 변하는 것이며 영원한 것은 없으니 덧 없다는 것이다. 덧 없는 것이 인생이니 그저 주어진대로 깨닫고 욕심을 줄이는 것이 불안을 해결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예술적 관점은 불교적 관점과 통하되 조금 다른 점이 있는데, 그것은 '정치는 한때이나, 예술은 영원하다'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모든 것은 영원한 듯 보여도 흥한뒤에는 쇠한다. 그렇기 때문에 덧 없다. 그러나, 인간에 대해서 생각하고 아름다움에 대해서 논하는 에술은 인간이 살아 숨쉬는 한 모든 인간이 지니는 공통된 고민이다. 그렇기 때문에 덧없는 세상 속에서 현대사회의 돈과 명예라는 성공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따라서 산다면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내 친구가 나보다 연봉이 2배가 높던 결국 인생이란 레이스는 끝이나기 마련이고, 그런 것들은 어찌되었든 긴 시간속에서 상관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릴적에는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이러한 덧없는 인생에 대한 깨달음이 많은 사람들이 예술에 빠져드는 이유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을 덧 붙이자면, 예술적인 관점이 나에게 도움이 많이 되었다. 현대사회를 살면서, 나만 굉장히 불행한 시대를 사는 것이 아닌가. 나만 삶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을 가지곤 했었는데,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가지는 고민이었다는 점이 나에게 도움이 되었고, 옛 사람들의 나름대로의 해결책들이 나에게 도움이 많이 되었었다.


세번째는 철학인데 세상사람들이 뭐라고 하더라도 내가 철학적으로 사고해볼때, 내가 옳다면 그 사람들이 잘 못된 것이므로 나는 나를 고칠 필요가 없다.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세상사람들이 말하길 집 한채는 있어야 살만한 삶이라고 하여도, 나의 이성이 말하길 그런것은 상관없다고 말하고 내가 보건데 그것이 합리적이라면, 세상사람들이 잘 못된것이지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철학적 관점이 현실사회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사실 그동안 알지 못했었는데,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정말 강철 정신력을 가지고 살아갈만 하다. 개인적으로 처음 깨달은 사실이라서 놀랍다. 항상, 철학이 모든 것들과 연결되어있는 사고관이라고 중요하다고 했었는데, 잘 깨닫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공이다. 사회가 무엇이든지 간에 거기에서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을 성취한 사람들은 대개 그러지 못한 사람들보다 행복하게 살아간다. 물론, 그것이 항구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든, 성공한 사람은 잠시나마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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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존재는 완벽을 추구하고 무언가를 향해서 나아가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그것을 성취하고 나면 나태해지고 권태가 오면서 지루함을 느끼는 존재이다. 무언가를 가지려 끊임없이 발버둥 치지만 막상 얻고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생각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꿈이라는 것은 성취할 수 없는 것을 꿈꾸어야 하며, 사랑이란 것도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하는 것 같다. 



출처: http://pjw1307.tistory.com/124 [타가의 투자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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