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그릇 - 3만 명의 기업가를 만나 얻은 비움의 힘
나카지마 다카시 지음, 하연수 옮김 / 다산3.0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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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옛날에 전쟁 영화를 볼때면 장군들은 참 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한 적이 많습니다. 어릴적의 눈으로는 장군들은 그저 지시만할 뿐 병사들만 죽어난다고 봤기 때문이죠. 물론, 전쟁을 하는 장군은 아니지만, 작게는 학교생활에서 취미생활까지 리더생활을 몇 번 하고 나니 그게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묶어내고 이끌어 나가는 리더의 자리는 어릴적 제가 본 것과 달리 정말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만큼 되기도 어려웠고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도 정말 힘든일입니다.

이 책은 그러한 리더의 자리에 있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도서입니다. 중국 명나라 여곤이 쓴 신음어를 나카지마 다카시라는 일본인 학자가 여곤의 신음어에서 현대에 필요한 부분을 해설하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곤의 신음어

여곤이 살던 시대는 도덕과 법치가 무너진 시대였다고 합니다. 그러한 시대에서 여곤은 스스로 신음하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야 하는지 적은 것이 바로 신음어라고 합니다. ( - 그것이 일본인의 손을 거쳐 지금 우리의 앞에 놓여 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일본인들의 기록문화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자세는 정말정말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일본인의 저력입니다. )


어떤 리더가 되야하는가?

어떤 리더가 되야 하는지는 과거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습니다. 현명하게 처신하고  시대의 변화를 읽고 인재를 중용하면 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탁상공론이 아닌, 현실의 변화를 스슬 겪으면서 배워야 합니다. 타인에게 신뢰받기 위해 그 스스로 높은 도덕적 기준을 지녀야 합니다.

신음어에서 과거에도 관리들이 부정부패에만 눈 떠있고 병사들은 술독을 비우는 것에서 재미를 채우고 있으니 나라가 곧 망할 징조라고 말했다고 하니, 참 많은 것이 변해도 어떤 사람이 유능한 사람인지는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어떤 사람이야 말로 함께하면 되겠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동일한 측면이 있으니까요.


마무리

한 조직에서 리더의 역할은 정말로 막대합니다. 그가 제시하는 비전대로 조직이 움직일 것이고, 그가 가지는 성숙도와 인간성에 따라서 조직의 문화가 결정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내외적으로 힘든 상황입니다. 이럴때 일수록, 유능한 리더가 더더욱 필요한 시점입니다.



출처: http://pjw1307.tistory.com/151 [타가의 투자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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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 유성룡이 보고 겪은 참혹한 임진왜란
김기택 옮김, 임홍빈 해설, 이부록 그림, 유성룡 원작 / 알마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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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를 위해서 기록하다

임진왜란 당시 전란을 이끌고 수습하였던 재상 '유성룡'의 이야기다. 다시는 임진왜란과 같은 재난을 후세가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적어 내려간 글이다. 무엇이 잘 못되었고 당시의 상황은 어땠는지에 대해서 담담히 적혀 있다. 슬프게도 조선은 임진왜란 이후, 얼마 뒤 병자호란을 겪었고 또 일제 식민지까지 겪었다.

 

재앙은 예고되어 있었다.

조선은 일본이 전국통일을 한 뒤, 거듭되는 요구로 인해서 수신사를 파견한다. 당시 일본에 파견되어 온 후 수신사의 의견은 전쟁이 날 것이냐 아니냐 에 대해 약간의 의견이 분분함이 있었지만, 거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침략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조선도 나름의 준비를 했다. 성도 쌓고 장수도 새로 임명하고 허나 철저하지 못 했다. 당시 북방을 평정 했던 장수 신립은 일본을 얕잡아 보았고 잘 알지 못했다.

수십년 간의 내란이 정리되었다는 것과 다년간의 전투로 그들이 단련되어 있다는 것. 실제로 도요토미가 명나라를 침략하여 대국을 이루고자 하는 야망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철포라고 하는 신식무기가 있다는 것과 그것이 지니는 살상력과 파급력에 대해서 무지했다. 오래된 평화시대로 위기를 대비하는 것, 전쟁을 대비하는 것이 쓸데없는 일이라는 사고가 팽배해 있었다.(지금의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반성해볼 일이다. 우리의 현재 안보의식은 ..?)

 

준비된 자와 준비되지 못 한자

일본은 상륙이후 파죽지세로 부산을 지나 도성을 점령했다. 또 거기서 나아가 평양성까지 올라갔다. 이렇다할 저항한 번 부딪히지 못 하고 조선은 망국의 직전까지 처했다. 그러나, 전라도 지방에선 이순신이 승승장구하며 일본군을 격퇴하고 있었다. 무엇이 차이를 만들었을까? 이순신은 철저히 전쟁을 대비하고 있었다.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에 전쟁을 기정사실화하여 준비하였다. 일본의 주력이 접근과 백병전이라는 것을 알고 화력과 장거리 전술로 적을 맞아 싸웠다. 철저하게 적에 대해서 조사하고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의 거울로 현재를 비추다

준비된 위기는 위기가 아니다. 생각없이 아무런 준비없이 맞이하게 되는 위기가 진정한 의미의 위기이다. 경제,정치 사회 전반에 걸쳐서 생각해 볼 일이다. 400년전에 우리의 조상이 눈물을 머금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랬던 일은 왜 일어났을까 또 왜 반복되었을까. 과거의 거울로 현재를 비추어 본다.



출처: http://pjw1307.tistory.com/135 [타가의 투자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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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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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르의 책이다. 현대사회의 문제점들에 대해서 깊이있게 고민해보고 거기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제시하는 이런 종류의 책들을 나는 굉장히 좋아한다. 그리고 내용 자체도 굉장히 좋았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는 굉장히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더 이상 내일 먹을 먹거리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아도 되며, 불안정하기는 하지만 민주화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나를 포함하여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하루라도 무언가 생산적이고 기업에서 원하는 일을 하지 않았을 때에는 취업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고 방황하고 괴로워 한다. 공부에 있어서도 전혀 쓸모 없다고 생각을 하지만 취업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내일 당장 부족한 것이 없음에도 오늘 하루하루를 즐기기에는 불안에 떨고 있다.


★★★ 


왜 그런 것 일까? 우리는 왜 내일의 일들에 대해서 고민하고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고 방황하는 것 일까? 저자는 그것을 현대 사회의 특징이라고 보았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계몽시대 이전에 태어났다고 한다면, 나의 계급이 나를 규정하는 하였을 것이다. 나는 뒷산 앞에 있는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난 농부이고, 거기에는 나의 노력이나 무언가가 들어가지 않은 곳이다. 그냥 농부의 아들이 나이며 그렇기 때문에 농부로 사는 것이 당연한 사회였던 것이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다르다.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났건 집안의 재산이 얼마가 있건 없건 간에 그는 스스로 자신의 운면을 개척할 수 있으며 우리들에게는 비록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계급으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있다. 자신을 규정하는 모든 것은 자신의 노력으로 인해서 결정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불안에 떨고 있다. 끊임없이 자기자신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불안한 현대사회를 살고 있으며 어찌보면 현대사회의 이런 정신적인 문제로 인해서 피해를 보는 입장이지만, 이것을 나쁘다고만은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거꾸로 이것이 현대사회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로 들어서 설명하자면, 나 또한 불안하기 때문에 노력한다. 나의 위치와 내가 원하는 삶들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며 나의 노력에 따라서 변하기 때문에 나는 사회에서 원하는 모습으로 살려고 노력하고 신분사회였다면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할만한 일들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굉장히 불안하다. 나에게 자유가 주어져 있기때문에 불안하며 그것 때문에 고민하며 괴로워 한다.


저자또한 현대사회의 불안에 대해서 진단을 할뿐 거기에 대해서 가타부타 옳다 그르다 논평을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누가 되었던 간에 그것들에 쉽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치 자본주의 사회의 비 인간성에 대해서 고발하고 비판하지만 그렇다고 하여서 자본주의를 대체할 딱히 마땅한 체제가 없는 것처럼 현대사회 또한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을 근원적으로 해결할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비판을 받을 수 있을 지언정 그 안에서 해결될 방법을 찾을 따름이다.


★★★ 


그렇다면 저자는 이런 불안들에 대한 해결책으로 어떤 것들을 제시하였을까? 해결책은 다음과 같다. 종교, 예술, 철학. 그리고 체재내에서의 성공이다. (책을 읽은지 3주정도 지나서 기억이 명확하지는 못하다..) 먼저 종교를 통한 해결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 인가? 하나님에게 귀의하는 것이다. 기독교적인 관점으로 보자면, 세상만사 현실에서의 일들은 한때이고 끝나고 난뒤에 영생을 누리는 사후세계가 존재하니 그 때가 더 중요한 것이니 현세는 어찌 되었든 종교적으로 산다면 현대적 관점에서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상관이 없다는 관점이다. 불교적 관점은 예술적인 관점과 통하는 점이 있는데, 세상만사 무엇을 하든 변하는 것이며 영원한 것은 없으니 덧 없다는 것이다. 덧 없는 것이 인생이니 그저 주어진대로 깨닫고 욕심을 줄이는 것이 불안을 해결하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예술적 관점은 불교적 관점과 통하되 조금 다른 점이 있는데, 그것은 '정치는 한때이나, 예술은 영원하다'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모든 것은 영원한 듯 보여도 흥한뒤에는 쇠한다. 그렇기 때문에 덧 없다. 그러나, 인간에 대해서 생각하고 아름다움에 대해서 논하는 에술은 인간이 살아 숨쉬는 한 모든 인간이 지니는 공통된 고민이다. 그렇기 때문에 덧없는 세상 속에서 현대사회의 돈과 명예라는 성공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따라서 산다면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내 친구가 나보다 연봉이 2배가 높던 결국 인생이란 레이스는 끝이나기 마련이고, 그런 것들은 어찌되었든 긴 시간속에서 상관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릴적에는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이러한 덧없는 인생에 대한 깨달음이 많은 사람들이 예술에 빠져드는 이유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을 덧 붙이자면, 예술적인 관점이 나에게 도움이 많이 되었다. 현대사회를 살면서, 나만 굉장히 불행한 시대를 사는 것이 아닌가. 나만 삶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을 가지곤 했었는데,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가지는 고민이었다는 점이 나에게 도움이 되었고, 옛 사람들의 나름대로의 해결책들이 나에게 도움이 많이 되었었다.


세번째는 철학인데 세상사람들이 뭐라고 하더라도 내가 철학적으로 사고해볼때, 내가 옳다면 그 사람들이 잘 못된 것이므로 나는 나를 고칠 필요가 없다.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세상사람들이 말하길 집 한채는 있어야 살만한 삶이라고 하여도, 나의 이성이 말하길 그런것은 상관없다고 말하고 내가 보건데 그것이 합리적이라면, 세상사람들이 잘 못된것이지 내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철학적 관점이 현실사회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사실 그동안 알지 못했었는데,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정말 강철 정신력을 가지고 살아갈만 하다. 개인적으로 처음 깨달은 사실이라서 놀랍다. 항상, 철학이 모든 것들과 연결되어있는 사고관이라고 중요하다고 했었는데, 잘 깨닫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공이다. 사회가 무엇이든지 간에 거기에서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을 성취한 사람들은 대개 그러지 못한 사람들보다 행복하게 살아간다. 물론, 그것이 항구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어찌되었든, 성공한 사람은 잠시나마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 


인간이란 존재는 완벽을 추구하고 무언가를 향해서 나아가는 존재이지만, 동시에 그것을 성취하고 나면 나태해지고 권태가 오면서 지루함을 느끼는 존재이다. 무언가를 가지려 끊임없이 발버둥 치지만 막상 얻고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생각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꿈이라는 것은 성취할 수 없는 것을 꿈꾸어야 하며, 사랑이란 것도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하는 것 같다. 



출처: http://pjw1307.tistory.com/124 [타가의 투자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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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80
하인리히 뵐 지음, 김연수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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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람들을 빗대어서 하는 말 중에 '냄비근성'이라는 말이 있다. 냄비처럼 어떤 일에 대해서 엄청나게 들 끓었다가도 이내 식어버리는 한국인의 특성을 비꼬듯이 이야기하면서 나온 이야기이다. 실제로 성격 급하다는 여느 나라들 만큼이나 한국은 여론형성이 쉽사리 되고 쉽게 커지고 쉽게 담론을 만들어 낸다. 그 중에서도 내가 관심있게 바라본 것은 흔히들 말하는 '마녀사냥'에 관한 이야기이다. '누가 무엇무엇을 했다더라.'는 가벼운 이야기에 근거가 그렇게 명확하지도 않은 사진 몇 장이 만약 인터넷에 퍼지게 된다면, 한국 사람들은 그것을 확실하고 자명한 사실이라고 받아들이고 그 사람에 대해서 지탄하고 평가한다. 이 책은 그렇게 형성되는 언론이 한 인간을 어떻게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몰고 갈 수 있나에 대한 현실을 풍자한 소설이다.


★★★ 


카타리나 블룸이라는 한 여인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주인공은 별다를 것 없이 주변에서도 인정할 만큼 성실하게 살아온 여인이었다. 하지만, 첫 번재 결혼에서 실패를 맛보고는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아 홀몸임에도 꾸준히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여인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에게 생각지 못한 일이 일어났는데, 한 남성이 그에게 접근한 것이다. 매혹적이던 그와 그녀는 밤을 지내고 아침에 그 남자는 떠난다. 하지만, 아침에 일어나고 그녀는 상상도 못하는 일을 격게 되는데...그것은 그녀와 지냈던 그 남자가 유명한 살인자였던 것이다. 경찰이 들이닥치고 그녀는 경찰서에 연행되고 어리둥절한 그녀는 이제 살인자를 숨겨둔 여인으로 지목받아 경찰들의 수사를 받는다. 그 속에서 한 경찰은 그녀의 범행을 확실하다고 단정짓고서는 그녀를 범행자로 몰아간다. 그 속에서도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그녀는 자신의 결백을 계속해서 주장한다.


그러는 사이 여론은 그 살인자를 추적하다가 블룸을 의혹넘치는 살인자의 여인으로 보고 그것에 맞추어서 기사를 써내려 간다. 예전에 이혼했던 남편을 찾아가 인터뷰를 하고, 그녀의 아픈 어머니를 찾아가 인터뷰를 하고, 그녀와 가까운 지인을 찾아가 인터뷰를 한다. 그리고, 그들이 한 인터뷰는 각색되어서 사람들에게 퍼져나간다. '단지 조금 서운했을 뿐이다.'라는 이야기는 '항상 서운하게 하고 무언가 기분을 나쁘게 하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하나의 사실은 이야기가 보태어져 블룸의 인격체를 만들어 갔고, 성실하고 조용히 자신의 일을 하던 한 여인은 죄책감없이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양아치'가 되어있었다.


이야기는 흘러흘러 계속해서 블룸과 주변 사람들을 집요하게 괴롭히지만, 결국 범인은 자살로써 이야기가 끝이나고, 블룸은 경찰과 언론들의 의혹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허나, 진실이 드러났다고 한들, 주변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진실은 이미, 사건이 종결되기 전에 만들어진 이미지의 블룸이 그 자체일뿐 전혀 변하지 않았다.


기자는 블룸이 그의 눈앞에 나타나자. 그녀에게 '섹스를 하자.'고 이야기한다. 그 소리에 블룸은 화가나서 기자의 가슴팍에 총을 쏘고 기자는 죽고 블룸은 자수를 하고 이야기는 끝이난다. 기자에게 있어서 블룸은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그저 기사거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녀가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서 어떠한 공감도 하지 못했고, 그에게 있어서 이야기가 끝나고 난 뒤, 블룸은 하나의 유희거리인, 섹스상대에 불과한 것이었다.


★★★ 


놀랍도록, 현실을 반영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블룸의 입장이 되어서 이야기를 읽어내려간다면, 정말 화가 나서나도 블룸처럼 행동했을 것이라고 했겠지만, 또 경찰관의 입장이 되어서이 사건을 바라본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수많은 거짓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적은 정보들이지만, 어느 정도단정 지을 수 있는 사건에서 경찰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것일까. 내가 아마 그 경찰관이었어도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까.. 또, 기자의 입장에서라면..? 기자가 이야기를 과장하고 잘 못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어느 기자들이나 덕목처럼 지니고 있는 특징이 아닌가? 그렇담, 기자란 존재는 없어져야 하는 것일까?. 그렇게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야기와 정보를 원하고 그것을 전달해주는 것이 기자이니까. 또, 자극을 원하는 대중에 입 맞추는 기자가 되었을 때, 그는 기자로써 자질을 입증받는(?) ,주목받는, 상황이 온다. 결국, 이런 상황속에서 내리는 답이라고 한다면, 성숙한 시민의식과 비판적 사고를 강조하면서 끝이나야만 할 것 같다. 어느 언론이나 단편적인 정보들이 대중들을 언도하고 잘 못된 길을 가지 않게 시민들 스스로 깨고, 정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성숙한 사람들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것만이 언론에 휘둘리지 않는 방법이지 않을까...



출처: http://pjw1307.tistory.com/123 [타가의 투자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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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6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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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 철학가의 대가인 알베르 카뮈의 대표작이라고 한다. 독서다이어리에도 읽어보고 싶은 책 목록에는 항상 올라갔으나, 항상 따로 읽지는 않았던 책인데, 이번에 독서토론을 하면서 계기가 되어서 읽어보게 되었다. 실존주의란 무엇인가? 나는 솔직히 사상사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냥 말해보자면,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이 말 한마디로 정리되는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세상에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떨어졌으며, 떨어진 이후의 삶에서 하나하나의 선택이 나를 이루어 나간다는 이야기이다. 거기에는 어떤 초월적인 존재의 의지라든가 어떤 대단하고 놀라운 사건이 개입되어 있지 않다. 나는 그저 주어져있고, 나의 삶을 살아갈 뿐이다.


이방인의 주인공은 거기에 더 나아가서 자신을 규정하는 사회의 규칙들에 대해서 의문을 품은 사람이다 (주인공의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편의상 카뮈라고 부르자..) 그리고 그는 그것들이 굉장히 불 필요한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둘러싼 주변사람들과 환경은 '끊임없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해!'라고 나에게 지시를 내리지만, 나는 별로 그러고 싶지가 않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자신의 마음이 가는대로 행동을하며 살아간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때, 다른사람들은 목놓아 울어야 된다고 그에게 말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단지, 슬펐고, 그것이 전부였다. 그는 자신의 이후의 삶이 더 눈에 들어왔으므로 장례식을 마치고나서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갔다. 이후, 그는 연인과 사랑을 나누고 남들이 어울리지 말라는 포주와도 스스럼없이 어울린다. 그에게 있어서 '포주'라는 사회적인 계급은 아무런 쇠사슬이 되지 못했다. 그는 그 앞에 있는 사람은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해서 계속 어울렸다.


이후, 우연찮게 그의 친구가 아랍인들과 싸움이 붙었다. 그는 싸웠고, 이후에 우연히 다시 아랍인을 마주치자 그를 총으로 쏴죽였다. 책의 표현과 주변의 상황들로 보아서 나는 아랍인이라는 사회적 존재가 나의 존재를 침범하고 영향을 행사하려 하자. 그것을 주인공이 극단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행동으로써 총을 쏜 것 이라고 생각한다. 이후, 그는 경찰서에 끌려가고 재판에 회부된다. 거기에서 그는 별다른 변명을 하지도 않고, 그래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자신이 마음이 약한 사람이고 한 번의 실수로 그렇게 된 것이라고 배심원들에게 호소를 했다면 결과는 달라졌겠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는 그가 한 일이었고, 그것은 그 뿐이었다. 정상참작을 유도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주인공은 사형을 집행당한다. 마지막에 신부가 와서 그에게 고해성사할 것을 말하지만, 그는 거기에 거부하고 자기자신을 드러내고 화를 낸다. 속이 터진듯이 마구마구 쏘아댔다. 그리고 그는 사형장으로 끌려간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끝이난다.


사회는 인간을 규정한다. 인간은 이러이러해야하고 이 나이대에는 이것을 해야하고, 이렇게 살아야 하고 슬플때는 어떻게 해야 하며 기쁠때는 어떻게 해야 하며 결혼은 이런 식으로 해야한다. 끊임없이 개인은 사회가 요구하는 바를 들으며 대부분은 그대로 살아간다. 그것이 문화이고, 사회이다. 작가는 그에 대해 저항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3일장을 지내야만 좋은 아들이며, 슬픈 것은 아니다. 살인을 저질렀지만, 거기에 명백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우발적이라고 했다고 한들, 그것의 이유를 모든 사람들에게 일일이 설명하면서 설득을 할 필요는 없다.


그것이 주인공의 사고관이다. 사회가 무엇이라고 하든지간에 자신이 생각하는대로 살아가는 다소 엉뚱하고 주변에 있다면 돌아버리게 할? 성격의 사람인 것이다.


사회는 모순되었고, 사람들또한 모순되었다. 내가 키우는 오래된 개가 지겨울치만큼 싫어서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지만, 한편으로 그가 없어지면 슬퍼하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나는 주어진 삶을 그대로 영위할 뿐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이방인 것 일까?



출처: http://pjw1307.tistory.com/122 [타가의 투자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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