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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의 전설
미하엘 엔데 지음, 비네테 슈뢰더 그림, 김경연 옮김 / 보림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아우~~늑대의 울음소리와 함께 밤하늘엔 보름달이 떠있고, 우리의 주인공들은 활동을 시작한다. 때론 무덤가에서 공중돌기를 하며 둔갑을 하고, 때론 무서움에 떨며 밤길을 걸어가는 나그네를 홀리기도 한다. 으흐흐~~ 지금 생각해도 '전설의 고향'만큼 무서운 것은 없었다. 엄마뒤에 숨어서 "다 지나갔다"(물론 귀신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서야 고개를 들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러고보면, 나의 어둠과 귀신에 대한 공포의 원형은 거의 '전설의 고향'을 통해서 형성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닌 것 같다. 암튼 묘하게도 심상치 않은 조짐이 있는 날은 어김없이 '보름달'이 휘엉청 떠올라 있는데, 아무래도 보름달에 관한 신화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동안 많은 사람들은 '달'이 인간의 광기에 영향을 주며 범죄와 자살, 재난, 사고, 임신등 많은 부분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믿어왔다. 허나 천문학자들에 따르면 더 연구가 필요하겠으나 대부분이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한다. 과학적으로야 어찌됐든 간에, 밤하늘을 푸르스름하게 만들정도로 환하게 떠오른 보름달을 보고 누근들 가슴이 울렁거리지 않겠는가. 한번쯤은 그리운 사람의 얼굴을 떠올려도 봤을 것이고, 또 한번쯤은 못 다 이룬 꿈에 대해서도 생각해봤을 것이다. 이러한 느낌들이 일부 루나틱에게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달의 신비를 특히 '보름달'의 강력한 힘을 신화로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책 '보름달의 전설'도 그렇게 시작된 것 일지도.....
먼저, 금방이라도 어떤 진실을 들려줄 것만 같은 신비스럽과 환상적인 분위기의 그림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스위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 선정되었던 '악어야 악어야'의 그림을 그린 '비테네 슈뢰더'라는 독일의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이다. 수많은 미사여구에, 식자인척하는 이들의 가벼운 지식에 오염되지 않은 아이들이라면 그들의 익숙한 감각으로, 순수한 마음으로 어느정도의 내용을 짐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보름달의 전설'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그림이다.
애인의 배신과 아버지의 파산으로 절망한 젊은이는 오로지 성서 연구에 몰두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임종 무렵에 쓴, "자신이 쓴 모든 책은 진실로 속이 빈 지푸라기에 지나지 않는다" 는 글을 읽게 된 그는, 당장 자신의 공부방과 책을 버리고 영원을 찾아 정처없이 떠돈다. 그리곤 어느 외진 산골짜기에서 "이곳에 머물라! 내가 여기서 너를 만나고 싶으니라." 라는 계시를 듣고 진정한 은자가 된다. 시간도 잊은 채 약속의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그에게 영혼을 구해줄 이가 나타나는데, 세상에 버림받고 사탄의 삶을 살아온 도둑이었다.
진정한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그토록 도달하고 싶은 득도의 세계는 어떤 것인가? 역시 '전설의 고향'에서 보았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아시다시피 전설의 고향에는 무서운 귀신얘기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린 마음에 너무나 인상적이서 때때로 생각나는 두 명의 수도승에 관한 이야기다. 한 수도승은 조금의 어긋남도 없이 완벽하게 규율을 지키며 득도의 날을 기다렸고, 또 한 수도승은 파계라고 할 만큼 자유분방하게 수도를 한다. 그렇담 그 둘중 누가 먼저 해탈에 이르렀을까?? 짐작과는 달리 파계승이 먼저 득도를 하게 된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어느 날이었다. 산중에 한 여인이 비를 쫄딱맞고 하루 쉬어가기를 청한다. 모범적인 수도승은 자신이 수도를 하는 몸이므로 그 가련한 여인을 받아 줄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수도승은 여인을 받아들이고 심지어는 자신의 체온으로 그녀의 언 몸을 녹여 주기까지 한다. 그런데 바로 그 여인이 부처였던 것이다. 득도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눈 앞에 있는 가련한 이를 진정으로 가련하게 여길 줄 아는 것이 진정한 깨달음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득도라는 것도 한낱 욕심에 불과하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 이야기를 볼 당시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많은 울림을 준다. '보름달의 전설'에 등장하는 은자(사실 그림만 보면 사람인지 괴물인지..) 역시, 너무나 깨끗하게 완벽하게 평화를 실현하며 영원을 향해 정진하지만 그의 노력은 한낱 욕심과 환각으로 전락하고 만다. 참으로 허탈한 일이지만,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우리의 길잡이가 되기도 하지만, 눈 뜬 봉사로 만드는 일도 허다하게 많치 않은가... 이때, 은자의 영혼을 구원해 주는 것은 다름아닌, 어리석고 죄 많은 도둑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미하엘 엔데의 '모모'를 굉장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주변 사람들에게 무지하게 선물했다). 그렇게 화려한 장치없이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인간이 해결해야 할 문제를 잘 꼬집을 수도 없을 것이다. 정말 대단한 소설이고 대단한 작가이다. 그의 책이 새롭게 발간됐다고 하여 곧바로 '자유의 감옥'과 '보름달의 전설' 두 권의 책을 모두 구입했다. 역시 미하엘 엔데의 작품답게 깊게 사색하게 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솔직히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그 안에 담고 있는 메시지는 훌륭하나 어쩐지 새로운 느낌이 없기 때문이다. 어디서라도 흔히 만날 수 있는 구도의 얘기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