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이 속 같은 세상 - 김학철 산문집
김학철 지음 / 창비 / 2001년 6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마음이 맑아지는 산문을 읽고 싶었다. 한참을 기웃기웃 거리다, 푸른빛의 '우렁이 속 같은 세상'을 골라잡고 읽기 시작, 그런데 이게 웬일?? 저자인 김학철 할아버지의 그 고난에 찬 이력을 감안할 때, 그분의 글은 너무나 위트가 넘치는 저절로 미소짓게 하는 것이었다. 젊은이보다 더 젊은 그는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혁명의 시대를 누구보다 열렬히 살아낸 '김학철',  18살의 나이로 독립운동에 투신, 왼쪽다리를 잃고 제국주의 일본의 감옥에서 해방을 맞는다. 이후 1945년 단편소설 <지네>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한 그는, 서울에서 잠시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하다가  1946년 월북해 북한의 '로동신문' 기자로 일했으나 김일성 정권에 환멸을 느껴 1950년 중국으로 망명한다. 하지만 중국에서도 문화혁명을 비판하는 '20세기 신화' 필화사건으로 10년간 옥살이와 강제노역으로 그의 85해 인생 중 금쪽같은 14년을 감옥에서 보내게 된다. 그리고 2001년 9월25일 오후 3시39분 연변병원에서 겨드랑이 종양암으로 '조선의용군 최후의 분대장'의 일생을 마친다. 선생의 유골은 그의 유언에 따라  영안진 앞 두만강가에서 고향인 원산앞바다를 향하여 띄워보내졌다. 아마 지금쯤은 꿈에도 그리던, 죽어서라도 가고 싶었던 선생의 고향에 다다르지 않았을까..

그의 본명은 홍성걸이다.  상하이로 건너가 조선민족혁명당원이 되는 순간부터 가족이나 지인에게 피해가 갈 것을 걱정해 이름을 바꾸어 사용했다고한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해란강아 말하라」(1954·서울 1988) 「격정시대」(1986 ·서울 1988), 소설집 「무명소졸」(서울 1989), 수필집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 (서울 1994), 자서전 「최후의 분대장」 (서울 1995) 등이 있다.  그리고 그의 마지막 책인 '우렁이 속 같은 세상'은 '장백산' '연변일보' 현지 언론에 실었던 자전 수필을 모은 산문집이다.

격동의 세월을 최전선에서 살다간 김학철 할어버지, 푹 꺼진 눈에도, 치아가 온전치 못해 보이는 입가에도 그의 질풍노도같은 삶에는 왠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미소가 너무도 부드럽게 흐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분의 글이 유머러스하고 위트가 넘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귀여운 손녀와의 평등 뽀뽀와 같은 개인적인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1부와는 달리, 2부와 3부에서는 사회와 세태를 비판하는 글이 또 4부에서는 글쓰기에 대한 문인의 입장에서의 고백과 성찰이 담겨져 있다. 이런 날카로운 비판의 글에서 한번 더 그의 강팍한 정신과 삶의 자세 그리고 젊은 영혼많이 가질 수 있는 어떤 용기와 기백, 솔직당당함을 느낄 수가 있다.

'영원한 젊은이'라고 해도 조금의 지나침도 없는 '김학철' 그는 '과소망상증'이라  스스로 표현 할 만큼 철저한 자기비판과 여든이 넘어서도 당신보다 한참 어린 사람들을 웃게만드는 유머와 위트를 지닌 분이다. 내 나이 여든이 되어서도 과연 그와 같을 수 있을까?? 아니, 지금은 어떤가???

 "편안하게 살려거든 불의에 외면하라. 그러나 사람답게 살려거든 그에 도전하라.” 김학철 할아버지의 유언이다. 생각한대로 살아야 한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참 무서운 말이다. 사람이란 이름으로 태어나, 얼마나 사람답게 살고 있는가? 나 역시 편한대로 살고, 사는대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 지 반성해 본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드무비 2005-02-07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처음 나왔을 때 사보려고 수첩에 적어놓고 그냥 넘어간 책이네요.
다시 읽고 싶어졌습니다.
나이 여든에도 유머를 잃지 않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땡스투 누를게요.^^

드팀전 2005-02-07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 책 아주 즐겁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제가 이 책을 보고 얼머지나지 않아 김학철 선생이 돌아가셨는데... 지겨운 감상에 젖어있는 글이 아니라 마른 장작처럼 단단하면서 님의 말씀 처럼 웃음이 묻어나는 좋은 산문이었어요.리뷰도 잘봤습니다.명절 잘 보내시구요.^^

히피드림~ 2005-05-17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김학철 선생의 [최후의 분대장]을 읽었는데 일제시대 다양한 항일혁명가들의 활동을 거의 유일하게 증언해주는 선생의 자서전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학자들이 독립운동사를 복원하는데 있어 선생의 증언과 인터뷰가 중요한 역할을 했죠. 의열단단장 김원봉이 감옥에서 자살한 것을 증언한 것도 이분이었죠. 아, 이 책도 읽고 싶어지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