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고양이들 봄나무 문학선
어슐러 K. 르귄 지음, S.D. 쉰들러 그림, 김정아 옮김 / 봄나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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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날고기의 ‘날’이 아니라 날다람쥐의 ‘날’임!
마치 르 귄 할머니가 화롯불 앞에 둘러앉은 손자손녀들에게 들려주는 듯 소박함과 훈훈함이 느껴지는 동물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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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오울프
닐 게이먼.케이틀린 R. 키어넌 지음, 김양희 옮김 / 아고라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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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선, 이 소설을 읽기 전에 알아두면 좋을 (몰라도 상관은 없을) 사항들.
* 이 소설은 영화 베오울프와 거의 동시에 나온, '무비 타이업' 소설이다.
* 영화의 원작 소설은 아니고, 그렇다고 영화 시나리오를 그대로 소설로 옮긴 것도 아니다.
* 그러나 그 중심 구성은 원전인 고대 서사시 베오울프와 굉장히 흡사하다(의외로 원작에 충실한 셈).
* 그래도 원전과의 결정적 차이점이자 제작진(작가)의 재해석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이, 원작에서는 베오울프가 그렌델과 어미를 물리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 왕이 된 후 용과 싸웠는데 여기서는 적을 물리치고 그대로 그 나라의 왕위를 물려받게 된다는 점이다.
* 이러한 차이점이 원전과 이 소설/영화가 품은 의식, 세계관, 가치관이 송두리째 바뀌게 되는 시발점이 된 셈이다. 원전이 신화, 영웅, 권선징악, 승리와 영광을 이야기한다면 소설은 나약한 인간, 슬픈 괴물, 신화시대의 몰락을 이야기하는 셈이다.
* 유명세 덕분에 닐 게이먼이 전면에 나서긴 했지만, 케이틀린 키어넌의 비중이 만만치 않다. 게이먼은 원작 영화의 시나리오와 설정만 제공하고 키어넌이 실제 소설을 썼을 가능성이 크다. 물론 그렇다고 글이 좋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오히려 더 좋아졌다고 보는 게 맞을지도). 어쨌든 둘의 공동저작이라고 보는 게 맞을 듯.

이 작품은 1권짜리 판타지라는 짧은 분량의 작품이지만 사건 자체의 중량감이 남달라 한 마디로 '굵고 짧은' 이야기가 되었다. 한 마디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해서, 1부와 2부의 사이에 3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는데 구태여 설명하지 않고 자연스레 이해하게끔 만든다.

이런 특징이 우리나라에서는 특이한 위치를 가질 수밖에 없다. 사실상 1~2권짜리 분량의 판타지 소설은 번역작밖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리나라의 판타지 소설은 대하 시리즈화되어 있다. 더구나 환협지니 퓨전이니 게임 판타지니 하여 판타지, 무협을 섞는 건 기본이고 온라인 게임과 밀리터리를 할 수 있는 한 많이 뒤섞고 패러디하고 뒤집어야 새로운 것처럼 여겨지는 흐름, 파티를 구성해서 돌아다니는 모험담에 군사를 이끄는 대규모 전쟁까지 이어지는 구성 속에서 한 영웅의 짧은 두 개의 모험만을 다루는 '심플'함은 오히려 독특해보이기까지 하다.

또한 그리스와 인도의 신이 동시에 등장하는 등 세계 각지의 신과 괴물의 이름을 마구잡이로 갖다 쓰는, 또 그래야 왠지 멋지고 특이해 보일 것만 같은 몰개성적인 퓨전 판타지의 시대에서 오직 북유럽의 세계관 하나만을 깊고 치밀하게 다룬 짧지만 우직한 '왕도' 정통파 판타지 소설이 어떤 위치를 점할지, 앞으로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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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버스터 1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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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는 이제 우리나라에서 무라카미 하루키, 베르나르 베르베르, 폴 오스터, 스티븐 킹 등과 같은 위상에 놓아도 될 정도로 그 인기와 인지도가 급상승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흥행의 보증수표로, 묻지마 출판이 허락되는 인기작가라는 것. 특히 일본소설 붐이다 붐이다 하는 가운데에서도 요즘 가장 많이 그리고 빨리번역소개되고 있는  작가이다.

그 중에서 이 드림버스터는 SF매거진에 연재하고 새로 쓴 부분을 추가하여 내고 있는 작품으로 설정부터 내용까지 만화나 게임의 원작에 적합하다는 느낌을 준다. 또한 원판도 그렇고 번역본마저도 표지를 만화풍 일러스트를 쓰고 있어 겉부터 속까지 라이트 노블의 감수성을 갖고 있다.

대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글을 '감히' 라이트 노블에 비유한다고 화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직접 읽어봐도 이 글은 라이트 노블로 볼 수 있다. 『모방범』이 코발트 문고 같다는 평이 가능하다면 이 작품은 충분히 NT노벨이나 X노벨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SF라는 장르가 책에 붙는 자체가 최근까지 (우리나라에서) 그 책에 대한 폄하나 조롱의 의미로 쓰일 수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그리고 장르와 분류가 작품의 질을 결정해선 안 된다는 개인적인 신념에 비춰봐도 이 작품이 NT노벨로 나왔다고 해서 평가가 높아지거나 낮아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일단 캐릭터가 만화 같고, 특히 젊고 팔팔한 주인공과 떡대에 신중하고 완고한 스승 콤비가 궁합이 맞다. 중간에 개성적인 여성이 하나 더 붙어 '카우보이 비밥' 같기도 하다. 거기에 신나는 액션과 모험이 있고, 사회파 추리소설로 명성을 얻은 작가답게 사회문제도 잘 넣었다(이 부분에 있어선 확실히 보통 라이트 노블보다는 한 수 위라고 해도 좋다). 2권까지 읽어도 아직 이야기의 반도 안 왔다는 느낌이다. 셴은 엄마를 찾을 수 있을지, 셴 엄마가 어떤 잘못으로 범죄자가 되었는지도 궁금하고 폭주사고의 원인이나 셴 아버지의 죽음에도 어떤 비밀이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이 글을 SF로 선전하는 건 자제했으면 좋겠다(다행인지 불행인지 출판사에선 그러지 않고 있는 듯 하다). 순수문학과 장르소설이 만났다는 카피도 영 생뚱맞다(어지간한 판타지가 반지나 해리포터를 들먹이는 것과 비슷하다). 만약 일본의 SF를 내고 싶었다면 코마츠 사쿄, 츠츠이 야스타카, 호리 아키라 등 저명한 작가들의 좋은 작품이 산처럼 쌓여 있다. 지금 일본소설의 출간은 (주로 상을 받은 작품을) 시험적으로 내보고 한 작품이 인기를 얻으면 그 작가의 다른 글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업적이고 단발적인 기획에 의하고 있다. 물론 출판업도 영리행위이므로 상업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은 완결도 되지 않았고 아직 남은 내용이 상당히 많은 것 같은 장편이다. 아무리 봐도 작가의 인기를 뒤쫓아 서둘러 냈다고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다. 맨 처음 말했듯 묻지마로 나오는 있는 인기작가이니 만큼 어쩔 수 없다지만 2001년에 1권이, 2003년에 2권이 나오고 2006년에 3권이 나왔으며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고 호흡이 긴 장편을 벌써 내서 어쩌자는 건지. 3권 번역본이 2007년에 나와도 4권을 보려면 2년은 기다려야 한다. 일본에서야 SF매거진 등에서 연재라도 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속절없이 기다리리란 말밖에는 안 된다.

개인적으로는 영미권의 SF/판타지 걸작이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다고 불평해왔으나, 지금의 일본소설 범람에는 솔직히 위기감을 느낀다. 일본은 이러한 장르를 자기식으로 잘 소화했고 이런 부분이 같은 동아시아인 우리와 정서적 문화적으로 흡사한 부분이 많아서, SF/판타지를 잘 안 읽던 사람도 일본의 장르소설은 읽으며, 우리나라 판타지가 유치하다고 말하는 중고생도 NT노벨/X노벨은 사서 읽는다.

일본의 장르소설이 인기라는 말은 곧 우리식으로 재해석된 장르소설에 대한 수요가 존재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일본의 것을 읽으면 우리 창작물을 구태여 읽을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 장르 창작가 대부분이 아마추어이고 경력이 짧기 때문에, 일본에서 수많은 경쟁을 뚫고 상을 받거나 인기를 얻은 후 우리나라에 수입된, 이른바 검증받은 작가들과 경쟁해서 이기기란 무척 힘들다. 일본소설은 한국소설의 대체재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문학의 위기니 번역물의 증가니 해도 코웃음만 쳤던 내가 처음으로 위기감을 느낀 이유가 된다.

마지막으로 전체적으로 글이 삐딱하게 보인다는 점을 인정해야 겠다. 그건 아마 이 글을 읽기 전에 『취미는 독서』를 읽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마음에 들지 않는 분은 일본소설의 인기에 대한 시샘과 질투의 소산이라고 생각해도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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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자키 리츠코 (Ritsuko Okazaki) - for RITZ
오카자키 리츠코 (Ritsuko Okazaki) 노래 / 이엠아이(EMI)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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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자키 리츠코. 그를 모르는 사람에게, 어떻게 그에 대해 소개해야만 할까. 그저 유명한 일본 만화 몇 편의 주제가를 부른 일본 가수? 그 정도로라도 이름이 알려져 있는 게 다행일 정도로 그는 한국에서 무명의 존재였다. 그런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그와 그의 음악이 세상에 알려지고, 그의 음반이 (유작이라는 선정적인 홍보효과에 힘입어) 한국에 정식으로 발매된 것을 과연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도 가늠할 수 없는 착잡함을 애써 달래며 그의 마지막 음반을 들었다.

오카자키 리츠코의 사망소식을 들은 후 한동안 우울증에 가까운 증세에 시달렸던 적이 있었다. 틈만 나면 밤에 방의 불을 끄고 그의 음악을 들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누군가 봤다면 청승을 떤다고 면박을 주었을지도 모를 시간이 한 달이나 넘게 이어졌다.

그의 음악은 누구보다도 밝고 따스했으며 목소리는 감미롭고 속삭이듯 부드러웠기에, 언제나 삶의 희망을, 사랑의 기쁨을, 작지만 소중한 용기를, 함께 있음의 감사함을 노래하던 그가 병마에 시달리며 고통과 공포 속에서 죽음을 맞아야 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4년 5월 26일, 그의 사망소식이 알려진 직후 나온, 그의 자작곡이 실린 앨범 'RAINBOW(게임 '심포닉 레인'의 보컬 앨범으로 게임의 캐릭터를 맡은 성우들이 불렀으며 이 곡들을 오카자키 리츠코가 직접 부른 것이 'for RITZ'이다)'가 나왔다는 걸 알고 천신만고 끝에 듣게 되었다.

놀랍게도, 그의 음악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 멜로디, 그 분위기는 오카자키 리츠코의 것 그대로였다. 가사는 슬프지만, 어디까지나 받아들이는 사람의 감정에 의해 그렇게 느껴질 뿐이었다. 슬픔을 말해도 희망을 믿는다고 말하고 있는 그의 가사에서 절망은 느껴지지 않았다. 몇 번이나 되풀이되는 '비'의 이미지처럼, 하염없이 비가 내리는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며 언젠가 밝은 햇살이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그의 가사와 멜로디는 변함없었다.

마침내 그 곡들을 리츠코 자신이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그 안에 담긴 가사는 절절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어떤 부분은 마치 자신의 앞날(죽음)을 예견한 듯, 자신의 죽음 앞에 슬퍼할 사람을 위해 남겨둔 유언인 것과도 같이, 앞으로 자신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할 사람에게 바치는 리츠코의 메시지처럼 받아들여졌다.

처음 앨범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리츠코 본인이 부른 그 유언과도 같은 절절한 노래를 들으며 펑펑 울줄 알았는데, 막상 음악을 들으면서 그렇게 슬프진 않았다. 눈가는 자신도 모르게 젖어들어갔지만, 그의 속삭임과도 같은 노래를 들으며 나는 따뜻한 미소로 그를 보내줘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자신의 노래를 듣는 사람에게 원하는 것, 희망이 가득한 미래를 그에게 보여주고 싶어졌다. 이 음반은, 여기에 담긴 노래는 그와 그의 음악을 사랑하고 그의 죽음을 슬퍼한 모든 사람에게 바치는 가장 멋진 리츠코의 답장이었다. 순진할 정도로 단순하면서도, 절망을 겪어본 사람으로서 해줄 수 있는 가장 진실한 메시지, 살아가라는.

수록곡을 'RAINBOW' 앨범과 비교하며 살펴보았다.

01. 空の向こうに (하늘 저편에)
게임 '심포닉 레인'의 테마곡. 'RAINBOW'수록곡과 완전히 같다. 정식 녹음된 곡이라서 리츠코의 보컬도 녹음상태도 좋다. 카사하라 히로코의 가창력은 좋지만 감정이 실리지 않은 그의 크리스털 보이스보다는 떨림이 느껴지는 리츠코의 목소리가 더 마음에 든다.

02. I'm always close to you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추가되어 더욱 깊은 맛이 느껴진다. 녹음상태도 우수. 가사가 가장 마음에 드는 곡으로 실질적으로 오카자키 리츠코의 유언과도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03. 秘密 (비밀)
후반부에 오르간 연주가 추가된 것 외에는 거의 같다. 녹음상태가 안 좋은지 보컬에 이펙트(기술적 용어는 잘 모르지만 reverb인가)를 많이 넣은 것 같다.

04. いつでも微笑を (언제나 환한 미소를)
'RAINBOW'버전에서 초반에 들어간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삭제되고 편곡 자체도 상당히 많이 바뀌었다. 목이 잠겼는지, 아니면 가녹음이라서 무성의하게 부른 것인지 노래는 좀 아쉬운 퀄리티다. 대신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상대방에 속삭이는 듯한 정겨운 느낌이 든다.

05. 雨のmusique (비 내리는 musique)
편곡이 완전히 바뀌었다. 평범한 보사노바였던 곡이 귀재 토리야마 유지의 편곡으로 세련되게 바뀌었다(직접 비교해서 들어보면 쉽게 알 수 있을 듯). 가녹음이지만 녹음 상태도 좋고 리츠코의 노래도 만족스럽다. 중간의 전화기 느낌을 주는 필터(역시 용어는 모름)를 적용한 부분은 놓치지 말 것.

06. メロディ- (멜로디)
같은 MR을 쓴 것 같다. 곡 자체는 변한 게 없다. 녹음상태는 중간 정도?

07. リセエンヌ (lyce enne)
역시 'RAINBOW'와 곡은 같고 녹음상태도 좋다. 개인적으로 이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로 들을 때마다 도입부부터 눈물을 짓게 만들어준다. 초반의 가사처럼 정말 존재감이 없는 학창시절을 보낸 나는 이 가사가 오카자키 리츠코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아닐까 멋대로 상상해보곤 한다. 죽음을 맞이한 이가 말하는 '지금 살아있으니 어떤 내일이 오더라도 두렵지 않다'는 목소리는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그가 남긴 삶에 대한 용기와 희망에 대한 믿음은 앞으로 긴 시간 나를 지탱해줄 것 같다.

08. Hello!
오케스트라가 추가되어 음이 풍부해졌다. 역시 이 음반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의 하나로 마치 뮤지컬의 한 부분인 듯한 가사와 멜로디도 마음데 들고 오리카사 후미코도 꽤 잘 소화해내어 마음에 들지만 역시 리츠코 본인의 목소리가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이다. 마치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처럼 고통을 녹이고 행복을 찾아내는 노래의 힘은 리츠코 자신의 음악에 대한 지향점을 시사하는 것 같아 흐뭇한 마음이 든다.

09. fay
편곡은 같으며 마지막에 코러스가 추가되었다. 남아 있는 이들에게 바치는 밝은 메시지.

10. 淚がほおを流れても (눈물이 흘러내려도)
역시 편곡은 같으며 정식녹음이라 녹음상태도 노래도 만족스럽다. 끝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희망을 잃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작지만 호소력 있는 목소리에 담았다.

11. For フル-ツバスケット (For 후르츠 바스켓)
그의 이름을 알린 가장 큰 계기가 된 곡이지만 싱글에 수록되었던 원곡을 그대로 실은 것은 이 앨범에 대한 거의 유일한 불만사항이다. 비록 생전에 리츠코 자신이 이 곡을 새 앨범에 싣고 싶다고 말했다고 하지만, 편곡을 다르게 하든가 라이브 버전을 싣든가 했으면 좋았다는 아쉬움이 든다. 아니면 싱글로만 발표된 'Morning Grace'와 '나의 사랑은 조그맣지만'도 싣든가. 솔직히 냉정하게 말하자면 'For 프룻츠 바스켓'은 아름다운 가사를 제외하면 단순한 편곡과 평이한 멜로디일 뿐, 리츠코의 디스코그래피 전체를 통털어도 수위에 손꼽히는 미려한 멜로디와 화려한 편곡이 돋보이는 'Morning Grace'쪽이 노래로는 한 수 위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글을 다 적고 난 후 느껴는 푸념 같은 잡상이지만, 억울할 정도로 안타까운 감정을 느껴야 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노래를 남긴 분의 음악을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이용해서 앨범을 홍보해야 한다는 현실 때문에……. 이런 상업적이고 노골적인 수단을 동원하지 않으면 주목을 받을 수 없다는 처절한 현실을 변명으로 삼기엔 자칫 고인께 누를 끼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 죄의식을 조금이라도 떨쳐내고자, 그리고 팬도 아닌데 유작 앨범을 사야 하냐며 망설이고 있는 사람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 앨범은 고인의 유작이라는 이유만으로 판매를 강요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훌륭한 음반이라는 점이다. 그저 우리나라의 두 가지 현실-즉 게임/만화 관련 음악에 대한 무지와 평가절하, 그리고 디지털 복제 및 배포에 있어서는 천국과도 같은 환경-때문에 어떤 수로라도 이 음반을 알리고 판매를 호소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마음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일본인이 부른 혹은 일본어로 된 노래는 죽어도 못듣겠다는 사람을 제외한 모든 이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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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 2005-09-30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글 감사합니다..
덕분에 리츠코씨 노래를 좋아하는 제가 처음으로 음반을구입해봤네요..
 
중음의 꽃
겐유 소큐 지음, 김춘미 옮김 / 열림원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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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제목에 이끌려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중음中陰'이라는 낱말이 눈에 띄었다는 이유로 읽게 되었지만 제목으로 말미암아 품게된 기대와는 상당히 다른 글이었다. 솔직히 제목과 짧은 분량만을 보고 사후세계나 윤회, 해탈과 열반에 대한 무거운 주제를 다룬 선문답처럼 난해한 구도소설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막상 읽어보니 어느 스님의 수필과도 같은 담담하고 잔잔한 이야기였던 것이다(너무 거창한 기대였나보다, 아니면 박상륭의 영향이었을지도).

그래도 나름대로 매우 독특하고 인상깊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현역 스님이 예지력이나 신통력, 영매 등 초자연적인 심령현상에 관심을 갖고 그에 대한 소설을 썼다는 점도 특이하거니와, 일본의 불교가 갖는 독특한 위치를 외지인의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도 주는 것이다.

기독교든 불교든 토착신앙에 흡수하여 버리는 일본의 놀라운 문화는 개별 종교의 순수성을 중시하는 우리의 것과 비교할 때 흥미로운 대상이다. 세습제라든지 결혼하고 아이도 낳을 수 있는 일본의 승려 역시 마찬가지고(사실 본 소설을 읽기 전부터 알고 있었긴 하지만).

특히 승려답지 않게 초자연적 현상에 관심을 가진 주인공 소쿠도의 지극히 세속적인 일상의 모습은 점차 변해가는 일본 불교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솔직히 함께 수록된 단편 「나팔꽃 소리」가 짧으면서도 짜임새가 있고 강렬하여 더 마음에 든다. 상대적으로 외지인에게는 이쪽이 더 받아들이기 쉬운 글일 것 같다. 일본인에게는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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