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생 간담회는 서도(西島)에 있는 학생회관 건물 2층의 대회의실에서 열리고 있었다. 형식적인 행사이긴 했지만 입학식 이전에 하는 유일한 공식 행사기 때문에 반드시 참석해야 한다고 식당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손선지가 특별히 강조하며 말했었다. 그 내용은 섬에 처음 도착한 예비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교장의 간단한 인사와 교무주임에 의한 학교의 소개, 기숙사를 비롯한 건물의 안내, 앞으로의 생활에 대한 주의사항 같은 것을 전달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네 사람이 대회의실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8시 30분 정도 되어서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잡았던 손을 풀고 그 자리에 선 채로 잠시 머뭇거리고 있었는데, 왕님이 총대를 매야겠다고 생각하고 용기를 내어 손등으로 커다란 문을 똑똑 두드렸다. 회의실 문은 커다란 데다가 방음의 목적인지 음악실처럼 가장자리 외에는 인조가죽을 덧씌워놓았고 두 개의 손잡이는 세로로 길쭉한 목재여서 손잡이 바로 옆의 좁은 공간을 두드려야 했다.
처음엔 아무런 반응이 없길래 들리지 않은 건가 싶어서 조금 더 세게 두드려 보았다. 그러자 잠시 후 문이 열렸다. 열림과 동시에 따뜻한 공기가 눈에 보일 듯 묵직하게 번져 나왔고 술렁거리는 소리가 귀에 확 들어와서 회의실의 난방과 방음이 상당히 잘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문을 열어 준 것은 삼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는데 교장 선생님이라기엔 아무래도 너무 젊어 보였다. 앞머리가 잘 펴진 상태로 이마에 착 달라붙은 일명 깻잎머리를 하고 있었고, 테가 가느다란 안경에 짙은 화장을 하고 감색 투피스 정장을 입고 있었다. 수수한 양복에 비해 블라우스는 윤기가 흐르고 목 주위와 손등을 덮은 레이스가 눈에 띄는 등 무척이나 화려했다.
깻잎머리 선생님이 네 사람의 얼굴을 슬쩍 훑어보더니 맨 앞에 서있는 여왕님에게 대표로 물었다.
“아직 오지 않은 건 세 사람인데, 한 명은 누구지?”
“네? 그게요, 얘는 며칠 전에 왔는데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잠깐 누워 있었거든요. 우리가 문병을 하다가 데려다줄 겸 해서 같이 오게 되었습니다.”
손을 들어 뒤쪽을 가리키자 그는 손가락으로 안경을 밀어 올리며 눈길을 돌렸다. 예리한 눈동자가 전신을 빠르게 훑었다.
“그렇다면 네가 마…… 마트……?”
“마트료나입니다.”
조금은 불만 섞인 목소리로 정정했다. 한국에서 보낸 중학교 시절, 그의 별명은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마트였다. ‘너 무슨 마트니? 이 마트니, 저 마트니?’하는 식의 말장난은 한두 번 들은 것이 아니었다.
“그래, 마트료나. 좋아, 간담회에 한 번만 참석하라는 법은 없으니까, 들어와.”
네 사람은 깻잎머리 선생님의 뒤를 따라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호기심에 가득찬 소녀들의 눈동자가 그들을 향했다. 눈썰미 있는 아이들은 그 중에서 세 사람은 제주공항에서부터 자신과 같은 버스와 배를 타고 여기까지 온 신입생임을 기억해내었다. 하지만 나머지 한 명, 호리호리한 체구에 허리까지 오는 갈색머리를 한 저 인형처럼 깜찍한 아이가 누구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맨 앞 좌석에 앉게 되었다. 학생들은 자유롭게 앉도록 하면 으레 맨 뒷자리로 몰려서 앞자리가 비게 마련이다. 그래서 선생님은 지각생들에게 비어 있던 앞자리를 가리켰고,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접이식 의자에 앉고 나니 정면에는 영화궁의 지도가 보였다. 100인치는 될 법한 커다란 벽걸이형 스크린에 빔프로젝터에서 나온 영상을 띄워 놓고 있었다. 그 앞에 선 깻잎머리 선생님이 레이저 포인터를 들고 이곳저곳을 비추면서 건물의 위치 같은 것을 설명했다.
딱히 주의력이 떨어지는 편은 아니었지만 줄곧 찬 바닷바람을 받으며 걸어오느라 기운이 빠지기도 했고 선생님의 사근사근한 목소리와 단조로운 톤의 설명이 지루하기도 해서 여왕님은 괜히 손을 비비고 고개를 까닥거리며 밀려오는 졸음을 쫓는 데에만 열중했다. 몸이 따스한 공기 속에서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모든 중량이 눈꺼풀으로 밀집되는 느낌이었다. 들키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왼쪽으로 최대한 돌리고 늘어지게 하품을 한 후 눈을 뜨니 줄지어 놓은 의자들의 행렬과는 조금 떨어진 가장자리에 의자를 하나 놓고 앉아 있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초등학교 3~4학년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인데 연한 체크무늬가 들어간 회색 아동용 정장을 단정하게 입고 있었고 머리카락도 단발로 깔끔하게 빗어 넘겼으며 광을 들인 듯 반지르르 윤기가 흐르는 검고 굽이 두꺼운 구두를 신고 있었다. 발끝을 세워야 겨우 땅에 닿을 정도의 상태였는데 이럴 경우 보통 아이라면 다리를 흔들 텐데 이 아이는 가정교육을 굉장히 잘 받았는지 눈을 깜빡이는 것 외에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양손을 무릎에 올려놓은 자세로 얌전히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약간 위로 올라간 그 시선은 아마도 깻잎머리 선생님을 향해 있을 것이다.
왕님은 호기심이 발동하여 오던 잠도 잊고 팔꿈치로 옆에 앉은 지란의 팔을 살짝 치면서 속삭이듯 말했다.
“왼쪽에 있는 저 아이 좀 봐. 누굴까?”
“글쎄. 따로 앉아 있는 걸로 봐서 신입생은 아닌 것 같은데. 무엇보다 너무 어리고 말야.”
“내가 보기엔 저 선생님 딸 같은데. 계속 선생님을 보고 있어.”
“그렇게 말하니까 그런 것도 같네. 근데 별로 안 닮았거든?”
통통한 볼살이 귀여운 어린 아이와 광대뼈가 툭 튀어나온 어른의 얼굴을 섣불리 비교해봤자 닮지 않은 게 당연할 것이다. 둘이서 소곤대며 이런저런 의견을 주고받았지만 다 추측이며 상상이니 결국 궁금증만 증폭시킬 뿐이었다. 역시 직접 부딪혀보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선생님의 설명이 일단락되고 있던 참이었다.
“건물은 이 정도로 설명하면 되겠죠? 무엇보다 자신의 발로 걷고 자기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좋은 방법입니다. 혹시 질문하실 것이 있나요? 없겠죠? 그럼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 모두들, 기숙사로 돌아가세요. 참, 내일부터는 지급받은 의복을 착용하셔야 합니다. 내일 일정은 오늘 지급받은 학생수첩에서 알려줄 테니 꼭 확인하세요!”
선생님의 목소리는 ‘마치겠습니다’ 이후로 점점 커지고 있었다. 마친다는 말 한 마디만을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이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제각기 재잘대며 의자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