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시피 미시시피
톰 프랭클린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아르's Review

 

 

 

 

흑과 백이 있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함께 해서는 안된다고 어른들에게 배워왔고 자신의 피부색에 따라 태어나는 순간부터 차이를 안고만 살아야하는 두 소년이 있다. 사람이라는 뿌리는 같으나 그들이 가지고 있던 피부색에 따라 다른 삶을 살기를 강요 받았던 두 소년. 한 명은 흑인이었고 한 명은 백인이었으며 한때는 친구였던 그들이 다시 친구라는 이름으로, 아니 사람과 사람으로 마주하기까지의 2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고 그 세월 동안 한 명은 살인자로 또 다른 한 명은 경찰관으로의 삶을 살게 된다.

 

처음 래리를 보는 순간, 그의 모든 행동들이 철저히 짜여진 눈 속임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 누구보다도 절제하는 삶을 살았고 닭들에게도 '여사님'이라 칭하며 자신이 키우는 닭을 위해서 애쓰는 그를 보면서, 그리고 매달 이달의 책이 소개된 잡지를 구독해서 보는 그를 보면서 나는 그가 살인자라는 것을 덮기 위한, 그야말로 모든 것을 감추고 있는 위장의 대가라고만 믿었던 것이다.

 

 

그러다 합판 상자 위로 허리를 숙이고 훠이훠이 손을 내저어 알을 품은 암탉들을 쫓은 뒤, 닭똥이 군데군데 묻어 있는 갈색 계란을 집어 양동이에 담았다.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여사님들." 래리는 닭장을 나서면서 수도꼭지를 잠그고 문을 닫아 건 사료 주전자를 못에 걸었다. "내일은 나가 봅시다. " -본문

 

 

자신이 기르고 있는 암탉들에게 신선한 풀 숲의 공기를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닭장마저도 개조하고 바람이 부는 날에는 닭장을 들판으로 옮기는 것을 삼가고 '내일은 나가봅시다'라고 말하는 래리를 보면서, 동물을 이토록 사랑하는 사람이 어째서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까? 라고 반문하면서도 그에 대한 어떠한 동정심을 갖는 것도 내 스스로 죄악이라고 믿으며 다시금 단칼에 잘라내곤 했다. 왜냐하면 그는 살인범이었으니까. 비록 그가 살인자라는 명확한 증거는 없었지만 그와 함께 나갔던 신디는 영영 돌아오지 못했고 신디를 마지막으로 본 사람은 래리였으니, 이 책을 함께 하는 동안, 나에게 래리는 살인범이었고 그 어떤 동정도 가져서는 안되는 인물이었다.

 

 

그와 축을 이루는 또 한 명의 소년이 바로 '사일러스'. 흑인이었던 그는 그의 어머니를 따라서 이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 이사라는 단어보다는 도망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리는 탈출을 감행했던 이 도시에서, 그들은 가난한 삶을 살아야 했으며 단 하나의 사진에도 주인공으로 설 수 없는 언제나 누군가를 위한 배경으로서의 살아야만 했다.

"

사랑하는 주님, 당신의 은총에 감사하나이다. 래리에게 특별한 친구를, 래리만을 위한 친구를 보내주시옵소서." -본문

 

 

말을 더듬고 전학생이었던 래리와 갑작스럽게 이사를 오게 된 사일러스. 둘다 이방인이나 마찬가지였던 그들은 백인과 흑인이라는 당시로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묘한 관계이기에 학교에서는 차마 그들의 사이를 드러낼 수 없는 사이가 되지만 숲 속에서는 둘도 없는 친한 친구로서 지내게 된다. 아마도 이것은 래리의 엄마가 그토록 기도 때문에 이뤄진 관계일 것이다. 래리의 엄마인 이나는 래리에게 소중한 친구가 생기길 바랐으니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이들, 그저 소년에 불과하고 그 어떠한 세상의 벽도 없는 그들에게 이 둘은 함께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비단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는데 우정이든 사랑이든 그 어떠한 이유를 불구하고 흑인과 백인은 그들 각자의 세계에서 지내는 것이 허락되었으며 겉으로는 흑인과 백인이 함께 지내고 있는 듯 했지만 그들은 전혀 융화되지 않는 물과 기름처럼, 서로의 삶에 있어서 서로를 투영하기는 커녕 선을 그어 경계하고 있었다.

 

아마도 세상은 그래서 이들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을 것이다. 세상 모두가 금기시 하고 있는 흑인과 백인간의 우정이라니. 이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만남이자 허왕된 꿈이었을 것이다.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그는 래리가 더듬거리면서 했던 "깜둥이"라는 말을 그를 피할 핑계로 삼았다. 올 미스에서, 해군에서, 가끔 집에 올 때도 그는 래리의 안부를 묻지 않았다. -본문

래리의 아버지인 칼은 그들에게 총 한 자루를 두고서 싸움을 벌이게 한다. 그것은 단순히 총을 얻기 위한 남자들간의 다툼이 아닌 그 둘은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의식이었다. 그 자리에서 래리는 사일런스에게 "깜둥이"라는 단어를 내뱉었고 그 후로 25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둘은 영영 다른 세계에서 맴돌고만 있었다.

 

그렇게25년이란 세월이 가는 동안 래리는 '괴물 래리'가 되어 있었고 사일런스는 모든 이들이 좋아하는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

 

그래, 나는 중 후반을 넘는 그 순간까지도 래리를 미워하고 있었다. 아니 경계하고 있었다. 그에 대한 행동에 대해서, 모든 이들이, 심지어 그에게 자동차를 맡기는 이 아무도 없는 살아있는 박물관과 같은 정비소에 매일 똑같이 출근을 하고 그가 전화를 거는 것만으로도 얼굴도 모르는 이들에게 욕을 들어야 했으며 어디선가 나타난 10대 아이들의 폭격을 받는 일도 심심지 않게 일어나고 심지어 우편함을 부스고 달아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 마을에 그가 떠나지 않고 고개를 들고 다닌다는 사실이 그에 대한 분노를 더욱 키우고 있었다. 심지어 마을에는 래리가 저질렀다는 사건과 비슷한 또 다른 사건이 발생했으니 나는 그를 고운 눈길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모르시겠어요? 래리는 평생 동안 형을 산 거라고요." 사일러스가 말했다.
"
아이고, 아주 윤리적으로 나오시는군. 아니면 민법적으로 해석을 하시는 건가? 윤리든 민법이든 다 우리 관할 밖이야. 내 말은 래리 오트가 그 일로 감옥에 간적은 없으니까. 잠자는 사자는 계속 자게 내버려두는게 최선이라는 뜻이다. 우린 현재의 사건에 집중해야겠지. 오트가 이번에도 결백한지 어떤지는 곧 드러나겠지."-본문

 

누군가를 향한 명확하지는 않지만 알 수 없었던, 그러니까 래리를 향한 불신과 분노가 끓어오르는 순간, 진실은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그 진실을 목도하는 순간,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

 

이 모든 사실 앞에서 과연 나는 래리에게 무어라 더 말할 수 있을까. 단 며칠 동안이지만 이 책을 잡고 있는 내내 래리를 그토록 미워하고 증오했으니. 그가 이 마을에 고립되어 살았던 25년의 세월 속에 또 한 명의 감시관이 추가되어 그를 주시하고 있었던 나는 그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이 그저 조용히 페이지만 넘기며 이 아득한 이야기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만 있었다.

 

25년 동안 단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던 래리와 사일러스는 그들 사이에 떨어져 있던 실을 이어붙여 숲 속을 벗어나 이 도시에서 다시금 함께해 나갈 것이다. 그들이 함께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고 너무 오랜 길을 돌아왔으며 그 길 안에서 그들은 서로를 제대로 바라볼 수도, 그들의 진심을 나눌 수도 없었다.

 

축하한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건 적당한 표현이 아닌 것 같고요. 이제까지 당신에게 일어난 일을 생각해보면 말이죠. 당신의 경우는 참 독특한 상황이군요, 오트씨. 지난 세월이 당신에게 어떤 세월이었을지 상상도 못하겠고 그래도 그 몯는 시련이 이젠 끝난 것 같아서 기쁘군요 -본문

 

아마도 이 25년이란 장벽은 래리와 사일러스가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놓은 장벽일 것이다. 모두가 숨기고 가면을 쓰고 살아야했던 그들은 비로소 그들 사이에 가로막혀 있던 진실을 목도하게 된다. 그것은 한 인간에게 씌워진 괴물의 탈을 벗게 했으며 한 인간이 감추고만 살았던 지난날의 고백을 의미했으며 그들에게 가려져 있던 또 하나의 인간의 군상이자 마침내 이들 모두가 감추고자 했던 가족의 이야기였다.

 

긴 세월 체념하며 지내왔던 래리와 그 모든 것들을 안고 외면한 듯 살아왔지만 자신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를 꺼내야만 했던 사일러스를 통해서 모든 진실을 마주한 순간 이 안의 모든 것은 경계를 없애고 사라지게 된다.

 

미시시피 미시시피 속에 담겨 있는 수 많은 것들 중 이제 겨우 몇 가지를 발견해서 마주하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에 담겨 있는 독서가이드와 함께 이야기가 끝난 그 이후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 보고 싶어지는 책이다.

아르's 추천목록

 

속죄 / 이언 매큐언저

 

독서 기간 : 2014.03.19~03.21

 

by 아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길 위의 철학자 - 떠돌이 철학자의 삶에 관한 에피소드
에릭 호퍼 지음, 방대수 옮김 / 이다미디어 / 201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르's Review

 

 

 

   

 철학자, 라는 이름을 마주하게 되면 왠지 모르게 골방에 자리하고서는 하루 종일 상념에 빠져 고뇌에 찬 한 인물이 떠오른다. 세상의 모든 것들과는 차단된 그 곳에서 그는 자신의 뇌리에 스치는 무수한 생각들을 엮는 작업을 통해 세상에는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그 어디서도 드러난 적 없던 것들을 그만의 언어로 만들어 낼 것 같은 사람이다.

 철학자에 대한 어렴풋한 이미지가 위의 내용이었다면 이 책을 통해 처음 마주하게 된 에릭 호퍼는 그 동안 철학자에 대해 생각했던 모습들을 일순간에 뒤집는 인물로서 처음 그의 이야기를 마주하는 그 순간부터 나는 그가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걸어왔던 삶에 대해서 이토록 담대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른바 왕년에라는 수식어로 시작되는 지난 날의 회고는 콩알만한 에피소드를 저 하늘 너머로 두둥실 부풀려 띄우는 것이 대부분이라면 그는 지난 날의 이야기를 마치 제 3자가 이야기하듯 툭툭 던지듯 전해주고 있었다. 아마도 이 모든 것들을 고스란히 지나온, 그러니까 시간들을 오롯이 관통하고 그것을 뛰어 넘었기에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담대히 이야기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라고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사고로 인해 일곱 살 때 시력을 잃었으며 그의 어머니는 이 사고로 2년 뒤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이 흘러 기적적으로 열 다섯 살 때 다시 시력을 회복하게 된 그는 이 순간이 일시적으로 돌아온 잠깐의 축복이라는 생각에 눈을 혹사시킬 정도로 책을 읽었다고 한다. 더 다행스러운 것은 그에게 내려진 이 축복은 그가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이어졌으며 그리하여 그는 그 매 순간의 행복을 책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철학자가 책과 함께 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연계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그가 해온 행보는 낯설다 못해 생경한 느낌이었는데 그는 어느 한 곳에 정착하여 삶을 꾸리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어디로든 움직이고 움직이는. 그야말로 단편적인 시간들로 그의 인생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방랑벽이 있는 것이 아니고서야 안정이나 정착보다는 그저 떠돌며 자신의 발길이 가는 곳으로 향하는 호방한 그를 보고 있노라면 그의 모든 선택들을 이해할 수 만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호퍼 집안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했다. 우리 집안에서는 어느 누구도 50세를 넘긴 이가 없었다.
 
에릭, 앞날에 대해 안달하지 마라. 넌 마흔 살밖에 살지 못할거야
.”
 
그 말은 내 가슴속에 뿌리를 내렸고, 내가 몇 년 동안 노동자로 철 따라 떠돌면서도 마음 편하게 살 수 있게 하는 데 바탕이 되어 주었다. 나는 삶을 여행객처럼 살아왔다. -본문

 

 마르타의 이야기가 그의 가슴 속에 자리해서 였을까. 그는 그야말로 여행객처럼, 지역을 떠돌며 그 순간순간 필요할 때마다 일자리를 구해서 그에게 필요한 것들을 자급자족하고 있었으며 오렌지 장수로서 성공의 기미가 보였던 때는 물론이거니와 헨렌이라는 여인과의 로맨스로 제 2의 삶이 펼쳐질 것만 같던 핑크빛 가득한 미래를 두고서 그는 다시 새로운 곳을 향해 떠나게 된다.

 삶에 대한 안정이 주어진다면 그는 더 깊이 철학적인 문제들을 마음 편히 다룰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의 일상을 쫓다 보며 그에게 묻고 싶은 것 중 하나였는데 그는 왜 그토록 방황, 아니 어디론가 계속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을까? 새로운 곳으로의 동경을 쫓아서라기 보다는 그저 흘러가는 대로 그는 자신의 몸을 맡기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그에게는 대체 어떠한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  

 믿지 않으실 테지만 제 미래는 당신보다 훨씬 더 안전합니다. 당신의 농장이 안전을 보장해 준다고 생각하실 테지만 혁명이 일어나면 당신은 농장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떠돌이 노동자인 저는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죠. 화폐와 사회 제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건 씨 뿌리고 수확하는 일은 계속됩니다. 물론 그 일은 저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고요. 절대적 안전을 원한다면 부랑자 무리에 섞여 떠돌이 노동자로서 생계를 유지하는 법을 배우세요. –본문

 암흑과도 같은 시간을 지내왔다가 다시 세상을 마주하게 된 그에게 있어서 보통 이들이 말하는 안정적인 삶은 어찌 보면 허황된 꿈처럼 보였을 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필요한 것은 부와 명예라는 허울이 아닌 그 안에 살고 있는 이름 모를 사람들의 값진 노동이 이 세상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라 믿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이름 조차도 남아있지 않는 그들은 새로운 아메리카를 구축하고 있었으며 얼마나 더 많은 신세계가 그들의 손에 거쳐서 만들어 졌는지에 대해서는 그들의 손만이 진실을 들려줄 터이니, 그런 의미에서 에릭 호퍼는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삶을 매만지고 더듬어가며 외형의 손은 점점 투박해질 지 언정 그의 손에 담긴 역사는 점점 두툼해지고 있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수용소를 떠날 때 나는 내적으로 새로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외적으로는 여전히 캘리포니아 한쪽 끝에서 다른 끝으로 일거리를 쫓아다니는 떠돌이 군단의 일원이었다. 농장에서 일하고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적응 불능자가 인간 사회에서 맡는 특이한 역할에 대해 골똘히 생각한 뒤 내 머릿속에 숨어 있던 문장으로 그것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인생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본문

파란했던 그의 삶을 쫓아 가다 보면 떠돌이 노동자로 살았던 그가 수 많은 사람들을 마주하고 그 안의 가치를 배워가면서 철학자라는 또 하나의 페르조나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철학자는 철학자의 삶으로, 노동자는 노동자의 삶이 따로 있다는 듯 이 두 개의 조합이 어색하기만 했던 나에게 호퍼는 그의 삶을 통해서 누구나 노동자이며 철학자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생각을 쓰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움직이며 그에게 주어진 삶을 살았던 그를, 이 책의 마지막에 와서야 이해하게 되면서 그가 전해주었던 상념들에 대해 다시금 되새겨 보게 된다.

 

 

아르's 추천목록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 버트런드 러셀저

 

 

독서 기간 : 2014.03.18

by 아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얼마전 월간마음수련이라는 잡지사에서 독자 코너인 <나는 이 책이 좋다>라는 코너의 기고를 요청 받았었는데요.

 잡지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하겠습니다라고 말씀 드리고 나서 이틀 정도 혼자 고심하다가 A4용지 1장 분량으로 글을 작성해서 보내드렸었는데, 이번 4월호에 실리게 되었네요 : )

월간 마음수련 홈페이지 : http://maummonthly.com/

 

 제가 나는 이 책이 좋다 라는 코너에 소개한 책은 <엄마와 집짓기>라는 책이었는데요. 읽으면서 엄마에 대해서 생각도 많이 하게 되고 모녀간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 공감도 많이 되더라고요.

 잡지에 실린 내용은 바로 요 아래의 글 입니다
 

단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지만 혼자서 또 싱글벙글하며 신기해하고 있답니다
 
부족한 글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예쁘게 꾸며주셔서 부족한 점들이 잘 감춰진 것 같아요.

여하튼 다시 한번 이렇게 특별한 경험 할 수 있는 기회 주신 월간 수련마음의 김혜진 에디터님 감사드립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14-03-20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내용도 따뜻하고 감동적이네요...

미라클 2014-03-22 00:52   좋아요 0 | URL
따스함이 흔적님께 전해졌다니, 제가 더 감사할따름이네요 :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만약 당신이 내게 소설을 묻는다면 - 대학교수, 작가, 예술인 50인이 선정한 최고의 소설
장성수.문순태.김춘섭.송하춘.함한희.이남호.정도상 외 43명 지음 / 소라주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아르's Review

 

 

 

 

 

 

 

   

 왜 나는 소설을 좋아할까? 라고 가끔 생각해 보긴 하는데 아마도 내가 알지 못하지만 어딘가에서는 벌어지고 있을 것만 같은 새로운 세상을 책을 통해서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때론 어쩜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라는 작가에 대한 경외심도 느끼게 되니 그 각양각색의 맛을 골라먹는 아이스크림처럼,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를 마주할 수 있을까, 라는 설렘 때문에 나는 소설이 좋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그렇다면 당신이 좋아하는 소설은 무엇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또 혼자 멍하니 시간을 끌고만 있을 것이다. 그 동안 몇 십 권 이상의 소설을 읽기는 했으나 그 중에서 과연 무엇을 내가 읽은 최고의 소설이라 이야기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다. 아니 모를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내가 마라톤을 논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내 스스로 풀지 못하는 궁금증에 대한 답을 얻고자 이 책이 읽고 싶었다. 나는 답할 수 없는 그 질문에 대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배우고 답을 얻고 싶었으니 말이다.

 책을 사랑하다 못해 한 평생을 함께 한 이들이 알려주는 책의 목록을 보노라면 당연히 읽었던 책들보다는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 대부분이었고 책의 제목마저도 생경한 것들이 많이 있었다.

영화 <황진이>의 원작이었다는 홍석중의 <황진이>의 존재를 이 책을 통해서 처음 마주하게 되었으며 내가 알고 있던 황진이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이 작품의 전개를 보면서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양반댁 규수로 자랐던 황진이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양반가에 대한 증오로 자신의 몸을 놈이에게 바친다는 설정은 가히 충격적이면서도 이뤄질 수 없었던 이들의 사랑이 어떻게 담겨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이 일러 이 책 역시도 주문을 해 놓은 상태이다.

자신들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날지언정 진정한 민중이라 할 수 있는 이금이와 괴똥이만큼은 천민으로서 손가락질 당하지 않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바라는 염원이 그 안에 들어있다. 진놈 사랑을 대신할 뿐만 아니라 민중들의 사랑을 대표하는 것으로서의 똥금 사랑이기에 진이와 놈이의 몸과 정성을 바쳐 그들 사랑을 완성해 가는 것이다. –본문

놈이와 진이의 사랑은 이뤄 질 수 없는 것들이라면 그 안의 또 다른 사랑인 똥금 사랑은 행복한 결말로 담겨진다 하는데 하나의 사랑이 이렇게 다른 결말을 내고 있는 것에서 비교 대상이 되면서 이렇게 대조되는 커플의 등장으로 이 소설 속 인물들의 사랑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고 박완서 선생의 <엄마의 말뚝>을 통해서는 신민지를 지나온 시간은 물론이거니와 전쟁과 분단을 겪어야만 했던 우리네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에 이들의 이야기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련해졌다. 엄마를 생애를 3대에 걸쳐서 그려내는 이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그리고 그 안에서 자리마다 각양각색의 모습을 한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파란했던 시절을 살아왔던 모든 엄마의 모습들을 마주하는 듯 해서 왠지 모르게 뭉클해진다. 그리고 그녀 역시 여자로서 딸에게 하는 조언은 지금의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엄마는 아들에게는 돈 잘 버는 직장을 가지고 문안으로 들어가서 버젓한 집을 꾸미고 사는 일을 기대했고, 딸에게는 신여성이 되기를 강조하곤 했다. 아들의 출세는 집안을 일으키는 일이지만, 딸의 출세는 딸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엄마는 강조해 두었다. –본문

 아직 누군가에게 어떠한 책을 권하기에는 부족한 지금 이 시점이, 이 책을 마주한 순간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읽고 배워야 할 것들이 그득하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 안에 있는 책들을 기반으로 또 나는 이 책을 소개해준 이들이 느꼈던 것과 동일하면서도 다른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한 설렘이 그 다음 책들을 읽게 만드는 동기가 되니 말이다.

 어떠한 소설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이 책을 한 번 들여다 볼 것을 추천해주고 싶다. 이 안에는 다양한 색깔의 소설과 그 나름의 이야기가 풍성이 들어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읽고 나면 지갑을 가볍게 만드는 것이 하나의 문제라면 문제이겠지만 책을 사는 것은 그 안의 지혜를 단 돈 몇 푼으로 오롯이 구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소비이니, 나는 이 구매욕을 겸허히 받아드리려 한다.

 

아르's 추천목록

 

『고전의 힘』 / 강명관, 강호영저

 

 

 

 

독서 기간 : 2014.03.16~03.19

by 아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를 지켜낸다는 것 - 칭화대 10년 연속 최고의 명강, 수신의 길
팡차오후이 지음, 박찬철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르's Review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지는 하루 1440.

이렇게 숫자로 마주해 보면 꽤나 많은 시간이기에 그 중 5분 내지 10분 정도 시간을 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새해가 도래하면서 하루의 단 10분이라도 시간을 내서 새해에는 일기를 써보리라 다짐을 했다. 내 스스로 하루를 보낸 것에 대한 기록이면서도 자기 반성의 시간이 될 수도 있고 먼 훗날 되돌아 보았을 때 나의 젊은 나날들에 대한 발자국들이기에 단 몇 줄이라고 써보자고 다짐했던 것이다. 

2014년의 1분기가 지나가려 하고 있는 지금을 돌이켜 보면 다이어리에는 이틀 치의 기록만이 자리하고 있다. 90일 남짓한 나날 중에 단 이틀이라니. 그것도 몇 줄 되지 않는 이 일기를 채우는 대는 10여분 정도도 들지 않았을 텐데 과연 나는 그 시간을 어디로 흘러 보내고 있었던 것일까, 라는 생각에 내 스스로가 처연해지곤 한다.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명확한 잔상도 없지만 이미 시간은 지나가 버린 허무한 나날들을 돌이켜 보며 과연 지금 이 상태가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상념에 빠져보게 된다. 실체를 알 수 없는 그 무언가에 쫓겨서 허둥지둥 오늘로 달려왔지만 과연 무엇을 위한 발버둥이었는지에 대한 아무런 흔적도 없는 지금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의 필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물론 하루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동일한 시간이자 나의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 보았을 때 과연 나는 그 시간 속에 있었는지에 대한 물음에는 당당히 예스라고 답하지를 못하겠다. 내가 사라진 시간 속에서 과연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가 생활 속의 1, 1초를 즐겁게 누려야 하는 이유는, 인생이란 것이 본래 무수한 일상의 순간들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출근할 때나 길을 건너는 매 순간이 다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모두 삶의 풍경이고 생명 속에서 고동치는 음표임을 인식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쁘게 살아가는 이유는 주로 마음에 걱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느긋하게 일을 처리할 시간을 줄여 그 시간에 더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한다고 강박을 느끼는 데에는 중요한 오류가 있습니다. 그러한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면 하나의 일을 끝내는 동시에 또다시 더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한다고 느끼게 되고, 연이은 일에 파묻혀 자신을 잊게 되고 말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생활을 향유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향유할 마음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발걸음을 생명의 리듬에 맡기고 일거수일투족을 그 리듬에 맞추어 살아가야 합니다. –본문

 매일을 허덕이면서 살아가고는 있지만 그 방향을 잃은 듯 헤매고 있는 우리에게 저자는 수신修身이 필요하다고 조언해주고 있다.

 아무리 좋은 것들을 내 안에 담으려 해도 더 담을 여유가 없다면 그것은 나에게는 더 이상 필요 없는 무용지물의 것들이 되고 만다. 정보화 시대를 넘어 일초 단위의 촌각을 다투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걸으면서도 무언가를 배워야 하고, 일 처리를 해야 하기에 스마트폰을 쥐고서는 놓을 수 없으며 잠시 시간이 허락된다고 하더라도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강박증 속에서 살고 있기에 하루 속에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그 찰나의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낭비처럼 느껴진다. 아니, 오히려 나를 위한 시간을 남겨두어야 할 필요조차 못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그 다음에는 무얼 해야 하고 오늘이 지나고 나면 내일은 또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들이 스치면서 이 시간 조차도 오롯이 내 것으로 갖지 못하고 있기에 종종거리고 있는 내게 저자는 단 5분 동안이라도 정좌를 통해 마음의 평온을 가져 볼 것을 권하고 있다.

 

 

 우주와 인생의 가장 심오한 도리는 마음이 평온할 때에야 비로소 느낄 수 있다. 마음이 안정되지 못한 사람은 일평생 몽롱하고 혼란스러워 상태에 빠져, 죽을 때까지도 깨달을 수 없다. 잔잔한 물에서만 반짝이는 달과 별이 보이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이 평온하지 못하다면 어찌 생명의 참뜻을 이해하고 인생의 오묘한 이치를 통찰하여 운명의 깨우침을 얻을 수 있겠는가? –본문

 책을 읽는 도중 잠깐 눈을 감아보았다. 5분이면 별거 아니겠지, 라는 마음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와중에 30초도 안되어 힐끔 시계를 쳐다보고 그러다 다시 감고. 그렇게 몇 번을 하고 나서 5분이란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어찌나 그 5분이 길게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이것은 그 동안 내 스스로에게 평온을 위한 시간들이 얼마나 없었는지에 대한 반증일 것이다. 매일 쫓기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나서 밤이 되면 무너져 내리는 하루 속에서 대체 내가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돌아봄 틈도 없이 그저 앞으로만 내달리곤 했으니, 5분이라는 시간 조차도 나를 위해 쓰는 동안 견디지 못하는 것을 보며 내가 이렇게 살아 왔구나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특히나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부분에 관한 내용들은 흥미로웠는데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이기에 나는 소크라테스의 충고를 진작에 알고 있다고만 생각했었다. 물론 이 책을 읽으며 그저 겉으로만 알고 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진 말이다.

 소크라테스의 친구는 델포이 신전의 신에게 세상에 소크라테스보다 지혜로운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을 하게 된다. 여 사제는 없습니다라는 대답을 하게 되고 이 이야기는 소크라테스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는데, 세상에 자신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지혜롭다고 말한 여 사제의 대답을 도통 이해할 수 없던 그는 한 가지 깨달음을 얻게 된다.

 만약 내가 가장 지혜롭다는 신탁이 정확하다면 단지 한 가지 가능성밖에 없다. 신 앞에서 나와 다른 현인들은 모두 무지한데, 나는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신탁의 진정한 내용이 인간들아! 자신의 지혜가 진정 아무런 가지가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바로 너희들 중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이니라라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명언 너 자신을 알라는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본문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오롯이 내가 주인공이자 모든 것이 나를 위한 것이라는 자만심에 도취되어 있는 나날 속에서 무엇을 모른다고 고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게다. 언제나 내가 보는 것이 옳고 타인이 보고 있는 것이 그르다는 신념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에 나의 내면은 갈수록 기고만장해지고 이해하는 척 하고는 있지만 점점 나라는 철옹성을 쌓으며 혼자만의 성을 쌓고 있으니 말이다. 나를 알라는 것이, 내 안의 내면에 있는 무지함을 가득한 나를 인지하고 그 부족한 것에 대한 배움을 얻으라는 조언을 그저 겉으로 보여지는 것들에만 충실하고 있었다니. 소크라테스와 저자를 통해서 점차 위선으로 가득 차 있던 내가 헐 벗겨지는 느낌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이라고 했거늘 어찌하여 나는 알면 알수록 그것을 드러내기에 급급했는지 모르겠다. 수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는 공자는 향당에 있을 때 말을 못하는 사람처럼 자신을 드러내기 보다는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자그마한 일이라도 그것이 나의 공이라며 드러내기 바빴던 나는 과연 얼마나 작은 그릇 속에 담긴 사람인가에 대해 깨달으며 자연스레 숙연해지고 만다.

 바쁘다는 핑계로 나를 마주하기 보다는 바깥으로만 계속 시선을 두고 있는 동안 내 안의 나는 황망해 져버린 느낌이다. 이 책을 통해서 그가 전해주는 삶의 이치를 마주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흔들리는 갈대보다도 더 출렁거리는 다 잡을 수 없었던 내 마음을 어떻게 조율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변화할 수는 없겠지만 하루 몇 분씩이라고 잠들기 전에 나의 하루하루를 돌아보며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그 짧은 몇 분은 이전의 나와는 다른 나를 만들어 줄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아르's 추천목록

30년만의 휴식 / 이무석저​

 

 

 

독서 기간 : 2014.03.17~03.19

by 아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