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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프랭클린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2월
평점 :
절판


아르's Review

 

 

 

 

흑과 백이 있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함께 해서는 안된다고 어른들에게 배워왔고 자신의 피부색에 따라 태어나는 순간부터 차이를 안고만 살아야하는 두 소년이 있다. 사람이라는 뿌리는 같으나 그들이 가지고 있던 피부색에 따라 다른 삶을 살기를 강요 받았던 두 소년. 한 명은 흑인이었고 한 명은 백인이었으며 한때는 친구였던 그들이 다시 친구라는 이름으로, 아니 사람과 사람으로 마주하기까지의 2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고 그 세월 동안 한 명은 살인자로 또 다른 한 명은 경찰관으로의 삶을 살게 된다.

 

처음 래리를 보는 순간, 그의 모든 행동들이 철저히 짜여진 눈 속임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 누구보다도 절제하는 삶을 살았고 닭들에게도 '여사님'이라 칭하며 자신이 키우는 닭을 위해서 애쓰는 그를 보면서, 그리고 매달 이달의 책이 소개된 잡지를 구독해서 보는 그를 보면서 나는 그가 살인자라는 것을 덮기 위한, 그야말로 모든 것을 감추고 있는 위장의 대가라고만 믿었던 것이다.

 

 

그러다 합판 상자 위로 허리를 숙이고 훠이훠이 손을 내저어 알을 품은 암탉들을 쫓은 뒤, 닭똥이 군데군데 묻어 있는 갈색 계란을 집어 양동이에 담았다. "좋은 하루 보내십시오, 여사님들." 래리는 닭장을 나서면서 수도꼭지를 잠그고 문을 닫아 건 사료 주전자를 못에 걸었다. "내일은 나가 봅시다. " -본문

 

 

자신이 기르고 있는 암탉들에게 신선한 풀 숲의 공기를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닭장마저도 개조하고 바람이 부는 날에는 닭장을 들판으로 옮기는 것을 삼가고 '내일은 나가봅시다'라고 말하는 래리를 보면서, 동물을 이토록 사랑하는 사람이 어째서 그런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까? 라고 반문하면서도 그에 대한 어떠한 동정심을 갖는 것도 내 스스로 죄악이라고 믿으며 다시금 단칼에 잘라내곤 했다. 왜냐하면 그는 살인범이었으니까. 비록 그가 살인자라는 명확한 증거는 없었지만 그와 함께 나갔던 신디는 영영 돌아오지 못했고 신디를 마지막으로 본 사람은 래리였으니, 이 책을 함께 하는 동안, 나에게 래리는 살인범이었고 그 어떤 동정도 가져서는 안되는 인물이었다.

 

 

그와 축을 이루는 또 한 명의 소년이 바로 '사일러스'. 흑인이었던 그는 그의 어머니를 따라서 이 곳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 이사라는 단어보다는 도망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리는 탈출을 감행했던 이 도시에서, 그들은 가난한 삶을 살아야 했으며 단 하나의 사진에도 주인공으로 설 수 없는 언제나 누군가를 위한 배경으로서의 살아야만 했다.

"

사랑하는 주님, 당신의 은총에 감사하나이다. 래리에게 특별한 친구를, 래리만을 위한 친구를 보내주시옵소서." -본문

 

 

말을 더듬고 전학생이었던 래리와 갑작스럽게 이사를 오게 된 사일러스. 둘다 이방인이나 마찬가지였던 그들은 백인과 흑인이라는 당시로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묘한 관계이기에 학교에서는 차마 그들의 사이를 드러낼 수 없는 사이가 되지만 숲 속에서는 둘도 없는 친한 친구로서 지내게 된다. 아마도 이것은 래리의 엄마가 그토록 기도 때문에 이뤄진 관계일 것이다. 래리의 엄마인 이나는 래리에게 소중한 친구가 생기길 바랐으니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이들, 그저 소년에 불과하고 그 어떠한 세상의 벽도 없는 그들에게 이 둘은 함께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것은 비단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는데 우정이든 사랑이든 그 어떠한 이유를 불구하고 흑인과 백인은 그들 각자의 세계에서 지내는 것이 허락되었으며 겉으로는 흑인과 백인이 함께 지내고 있는 듯 했지만 그들은 전혀 융화되지 않는 물과 기름처럼, 서로의 삶에 있어서 서로를 투영하기는 커녕 선을 그어 경계하고 있었다.

 

아마도 세상은 그래서 이들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을 것이다. 세상 모두가 금기시 하고 있는 흑인과 백인간의 우정이라니. 이들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만남이자 허왕된 꿈이었을 것이다.

 

그토록 오랜 세월동안 그는 래리가 더듬거리면서 했던 "깜둥이"라는 말을 그를 피할 핑계로 삼았다. 올 미스에서, 해군에서, 가끔 집에 올 때도 그는 래리의 안부를 묻지 않았다. -본문

래리의 아버지인 칼은 그들에게 총 한 자루를 두고서 싸움을 벌이게 한다. 그것은 단순히 총을 얻기 위한 남자들간의 다툼이 아닌 그 둘은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의식이었다. 그 자리에서 래리는 사일런스에게 "깜둥이"라는 단어를 내뱉었고 그 후로 25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둘은 영영 다른 세계에서 맴돌고만 있었다.

 

그렇게25년이란 세월이 가는 동안 래리는 '괴물 래리'가 되어 있었고 사일런스는 모든 이들이 좋아하는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 있었다

.

 

그래, 나는 중 후반을 넘는 그 순간까지도 래리를 미워하고 있었다. 아니 경계하고 있었다. 그에 대한 행동에 대해서, 모든 이들이, 심지어 그에게 자동차를 맡기는 이 아무도 없는 살아있는 박물관과 같은 정비소에 매일 똑같이 출근을 하고 그가 전화를 거는 것만으로도 얼굴도 모르는 이들에게 욕을 들어야 했으며 어디선가 나타난 10대 아이들의 폭격을 받는 일도 심심지 않게 일어나고 심지어 우편함을 부스고 달아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 마을에 그가 떠나지 않고 고개를 들고 다닌다는 사실이 그에 대한 분노를 더욱 키우고 있었다. 심지어 마을에는 래리가 저질렀다는 사건과 비슷한 또 다른 사건이 발생했으니 나는 그를 고운 눈길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모르시겠어요? 래리는 평생 동안 형을 산 거라고요." 사일러스가 말했다.
"
아이고, 아주 윤리적으로 나오시는군. 아니면 민법적으로 해석을 하시는 건가? 윤리든 민법이든 다 우리 관할 밖이야. 내 말은 래리 오트가 그 일로 감옥에 간적은 없으니까. 잠자는 사자는 계속 자게 내버려두는게 최선이라는 뜻이다. 우린 현재의 사건에 집중해야겠지. 오트가 이번에도 결백한지 어떤지는 곧 드러나겠지."-본문

 

누군가를 향한 명확하지는 않지만 알 수 없었던, 그러니까 래리를 향한 불신과 분노가 끓어오르는 순간, 진실은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그 진실을 목도하는 순간,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

 

이 모든 사실 앞에서 과연 나는 래리에게 무어라 더 말할 수 있을까. 단 며칠 동안이지만 이 책을 잡고 있는 내내 래리를 그토록 미워하고 증오했으니. 그가 이 마을에 고립되어 살았던 25년의 세월 속에 또 한 명의 감시관이 추가되어 그를 주시하고 있었던 나는 그에게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이 그저 조용히 페이지만 넘기며 이 아득한 이야기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만 있었다.

 

25년 동안 단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던 래리와 사일러스는 그들 사이에 떨어져 있던 실을 이어붙여 숲 속을 벗어나 이 도시에서 다시금 함께해 나갈 것이다. 그들이 함께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고 너무 오랜 길을 돌아왔으며 그 길 안에서 그들은 서로를 제대로 바라볼 수도, 그들의 진심을 나눌 수도 없었다.

 

축하한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건 적당한 표현이 아닌 것 같고요. 이제까지 당신에게 일어난 일을 생각해보면 말이죠. 당신의 경우는 참 독특한 상황이군요, 오트씨. 지난 세월이 당신에게 어떤 세월이었을지 상상도 못하겠고 그래도 그 몯는 시련이 이젠 끝난 것 같아서 기쁘군요 -본문

 

아마도 이 25년이란 장벽은 래리와 사일러스가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놓은 장벽일 것이다. 모두가 숨기고 가면을 쓰고 살아야했던 그들은 비로소 그들 사이에 가로막혀 있던 진실을 목도하게 된다. 그것은 한 인간에게 씌워진 괴물의 탈을 벗게 했으며 한 인간이 감추고만 살았던 지난날의 고백을 의미했으며 그들에게 가려져 있던 또 하나의 인간의 군상이자 마침내 이들 모두가 감추고자 했던 가족의 이야기였다.

 

긴 세월 체념하며 지내왔던 래리와 그 모든 것들을 안고 외면한 듯 살아왔지만 자신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를 꺼내야만 했던 사일러스를 통해서 모든 진실을 마주한 순간 이 안의 모든 것은 경계를 없애고 사라지게 된다.

 

미시시피 미시시피 속에 담겨 있는 수 많은 것들 중 이제 겨우 몇 가지를 발견해서 마주하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에 담겨 있는 독서가이드와 함께 이야기가 끝난 그 이후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 보고 싶어지는 책이다.

아르's 추천목록

 

속죄 / 이언 매큐언저

 

독서 기간 : 2014.03.19~03.21

 

by 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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