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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라는 이름을 마주하게 되면 왠지 모르게 골방에 자리하고서는 하루 종일 상념에 빠져 고뇌에 찬 한 인물이 떠오른다. 세상의 모든 것들과는 차단된 그 곳에서 그는 자신의 뇌리에 스치는 무수한 생각들을 엮는 작업을 통해 세상에는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그 어디서도 드러난 적 없던 것들을 그만의 언어로 만들어 낼 것 같은 사람이다.
철학자에 대한 어렴풋한 이미지가 위의 내용이었다면 이 책을 통해 처음 마주하게 된 ‘에릭 호퍼’는 그 동안 철학자에 대해 생각했던 모습들을 일순간에 뒤집는 인물로서 처음 그의 이야기를 마주하는 그 순간부터 나는 그가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걸어왔던 삶에 대해서 이토록 담대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른바 ‘왕년에’라는 수식어로 시작되는 지난 날의 회고는 콩알만한 에피소드를 저 하늘 너머로 두둥실 부풀려 띄우는 것이 대부분이라면 그는 지난 날의 이야기를 마치 제 3자가 이야기하듯 툭툭 던지듯 전해주고 있었다. 아마도 이 모든 것들을 고스란히 지나온, 그러니까 시간들을 오롯이 관통하고 그것을 뛰어 넘었기에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담대히 이야기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라고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사고로 인해 일곱 살 때 시력을 잃었으며 그의 어머니는 이 사고로 2년 뒤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이 흘러 기적적으로 열 다섯 살 때 다시 시력을 회복하게 된 그는 이 순간이 일시적으로 돌아온 잠깐의 축복이라는 생각에 눈을 혹사시킬 정도로 책을 읽었다고 한다. 더 다행스러운 것은 그에게 내려진 이 축복은 그가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이어졌으며 그리하여 그는 그 매 순간의 행복을 책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철학자가 책과 함께 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연계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 그가 해온 행보는 낯설다 못해 생경한 느낌이었는데 그는 어느 한 곳에 정착하여 삶을 꾸리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어디로든 움직이고 움직이는. 그야말로 단편적인 시간들로 그의 인생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방랑벽이 있는 것이 아니고서야 안정이나 정착보다는 그저 떠돌며 자신의 발길이 가는 곳으로 향하는 호방한 그를 보고 있노라면 그의 모든 선택들을 이해할 수 만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호퍼 집안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했다. 우리 집안에서는 어느 누구도 50세를 넘긴 이가 없었다. “에릭, 앞날에 대해 안달하지 마라. 넌 마흔 살밖에 살지 못할거야.” 그 말은 내 가슴속에 뿌리를 내렸고, 내가 몇 년 동안 노동자로 철 따라 떠돌면서도 마음 편하게 살 수 있게 하는 데 바탕이 되어 주었다. 나는 삶을 여행객처럼 살아왔다. -본문
마르타의 이야기가 그의 가슴 속에 자리해서 였을까. 그는 그야말로 여행객처럼, 지역을 떠돌며 그 순간순간 필요할 때마다 일자리를 구해서 그에게 필요한 것들을 자급자족하고 있었으며 오렌지 장수로서 성공의 기미가 보였던 때는 물론이거니와 헨렌이라는 여인과의 로맨스로 제 2의 삶이 펼쳐질 것만 같던 핑크빛 가득한 미래를 두고서 그는 다시 새로운 곳을 향해 떠나게 된다.
삶에 대한 안정이 주어진다면 그는 더 깊이 철학적인 문제들을 마음 편히 다룰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의 일상을 쫓다 보며 그에게 묻고 싶은 것 중 하나였는데 그는 왜 그토록 방황, 아니 어디론가 계속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을까? 새로운 곳으로의 동경을 쫓아서라기 보다는 그저 흘러가는 대로 그는 자신의 몸을 맡기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그에게는 대체 어떠한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
믿지 않으실 테지만 제 미래는 당신보다 훨씬 더 안전합니다. 당신의 농장이 안전을 보장해 준다고 생각하실 테지만 혁명이 일어나면 당신은 농장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떠돌이 노동자인 저는 걱정할 것이 하나도 없죠. 화폐와 사회 제도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건 씨 뿌리고 수확하는 일은 계속됩니다. 물론 그 일은 저 같은 사람을 필요로 하고요. 절대적 안전을 원한다면 부랑자 무리에 섞여 떠돌이 노동자로서 생계를 유지하는 법을 배우세요. –본문
암흑과도 같은 시간을 지내왔다가 다시 세상을 마주하게 된 그에게 있어서 보통 이들이 말하는 안정적인 삶은 어찌 보면 허황된 꿈처럼 보였을 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필요한 것은 부와 명예라는 허울이 아닌 그 안에 살고 있는 이름 모를 사람들의 값진 노동이 이 세상을 구축하고 있는 것이라 믿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이름 조차도 남아있지 않는 그들은 새로운 아메리카를 구축하고 있었으며 얼마나 더 많은 신세계가 그들의 손에 거쳐서 만들어 졌는지에 대해서는 그들의 손만이 진실을 들려줄 터이니, 그런 의미에서 에릭 호퍼는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삶을 매만지고 더듬어가며 외형의 손은 점점 투박해질 지 언정 그의 손에 담긴 역사는 점점 두툼해지고 있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수용소를 떠날 때 나는 내적으로 새로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외적으로는 여전히 캘리포니아 한쪽 끝에서 다른 끝으로 일거리를 쫓아다니는 떠돌이 군단의 일원이었다. 농장에서 일하고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적응 불능자가 인간 사회에서 맡는 특이한 역할에 대해 골똘히 생각한 뒤 내 머릿속에 숨어 있던 문장으로 그것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인생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본문
파란했던 그의 삶을 쫓아 가다 보면 떠돌이 노동자로 살았던 그가 수 많은 사람들을 마주하고 그 안의 가치를 배워가면서 철학자라는 또 하나의 페르조나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철학자는 철학자의 삶으로, 노동자는 노동자의 삶이 따로 있다는 듯 이 두 개의 조합이 어색하기만 했던 나에게 호퍼는 그의 삶을 통해서 누구나 노동자이며 철학자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생각을 쓰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움직이며 그에게 주어진 삶을 살았던 그를, 이 책의 마지막에 와서야 이해하게 되면서 그가 전해주었던 상념들에 대해 다시금 되새겨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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