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와 인생의 가장 심오한 도리는 마음이 평온할 때에야 비로소 느낄 수 있다. 마음이 안정되지 못한 사람은 일평생 몽롱하고 혼란스러워 상태에 빠져, 죽을 때까지도 깨달을 수 없다. 잔잔한 물에서만 반짝이는 달과 별이 보이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이 평온하지 못하다면 어찌 생명의 참뜻을 이해하고 인생의 오묘한 이치를 통찰하여 운명의 깨우침을 얻을 수 있겠는가? –본문
책을 읽는 도중 잠깐 눈을 감아보았다. 5분이면 별거 아니겠지, 라는 마음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와중에 30초도 안되어 힐끔 시계를 쳐다보고 그러다 다시 감고. 그렇게 몇 번을 하고 나서 5분이란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어찌나 그 5분이 길게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이것은 그 동안 내 스스로에게 평온을 위한 시간들이 얼마나 없었는지에 대한 반증일 것이다. 매일 쫓기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나서 밤이 되면 무너져 내리는 하루 속에서 대체 내가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돌아봄 틈도 없이 그저 앞으로만 내달리곤 했으니, 이 5분이라는 시간 조차도 나를 위해 쓰는 동안 견디지 못하는 것을 보며 ‘내가 이렇게 살아 왔구나’ 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특히나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부분에 관한 내용들은 흥미로웠는데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이기에 나는 소크라테스의 충고를 진작에 알고 있다고만 생각했었다. 물론 이 책을 읽으며 그저 겉으로만 알고 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진 말이다.
소크라테스의 친구는 델포이 신전의 신에게 세상에 소크라테스보다 지혜로운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을 하게 된다. 여 사제는 “없습니다”라는 대답을 하게 되고 이 이야기는 소크라테스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는데, 세상에 자신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지혜롭다고 말한 여 사제의 대답을 도통 이해할 수 없던 그는 한 가지 깨달음을 얻게 된다.
‘만약 내가 가장 지혜롭다는 신탁이 정확하다면 단지 한 가지 가능성밖에 없다. 신 앞에서 나와 다른 현인들은 모두 무지한데, 나는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신탁의 진정한 내용이 ‘인간들아! 자신의 지혜가 진정 아무런 가지가 없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바로 너희들 중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이니라’ 라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명언 “너 자신을 알라”는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본문
인생이라는 길 위에서 오롯이 내가 주인공이자 모든 것이 나를 위한 것이라는 자만심에 도취되어 있는 나날 속에서 무엇을 모른다고 고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게다. 언제나 내가 보는 것이 옳고 타인이 보고 있는 것이 그르다는 신념을 기본으로 하고 있기에 나의 내면은 갈수록 기고만장해지고 이해하는 척 하고는 있지만 점점 나라는 철옹성을 쌓으며 혼자만의 성을 쌓고 있으니 말이다. 나를 알라는 것이, 내 안의 내면에 있는 무지함을 가득한 나를 인지하고 그 부족한 것에 대한 배움을 얻으라는 조언을 그저 겉으로 보여지는 것들에만 충실하고 있었다니. 소크라테스와 저자를 통해서 점차 위선으로 가득 차 있던 내가 헐 벗겨지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