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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소설을 좋아할까? 라고 가끔 생각해 보긴 하는데 아마도 내가 알지 못하지만 어딘가에서는 벌어지고 있을 것만 같은 새로운 세상을 책을 통해서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때론 어쩜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라는 작가에 대한 경외심도 느끼게 되니 그 각양각색의 맛을 골라먹는 아이스크림처럼,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를 마주할 수 있을까, 라는 설렘 때문에 나는 소설이 좋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그렇다면 당신이 좋아하는 소설은 무엇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또 혼자 멍하니 시간을 끌고만 있을 것이다. 그 동안 몇 십 권 이상의 소설을 읽기는 했으나 그 중에서 과연 무엇을 내가 읽은 최고의 소설이라 이야기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다. 아니 모를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내가 마라톤을 논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내 스스로 풀지 못하는 궁금증에 대한 답을 얻고자 이 책이 읽고 싶었다. 나는 답할 수 없는 그 질문에 대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배우고 답을 얻고 싶었으니 말이다.
책을 사랑하다 못해 한 평생을 함께 한 이들이 알려주는 책의 목록을 보노라면 당연히 읽었던 책들보다는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 대부분이었고 책의 제목마저도 생경한 것들이 많이 있었다.
영화 <황진이>의 원작이었다는 홍석중의 <황진이>의 존재를 이 책을 통해서 처음 마주하게 되었으며 내가 알고 있던 황진이의 내용과는 전혀 다른 이 작품의 전개를 보면서 이 책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양반댁 규수로 자랐던 황진이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양반가에 대한 증오로 자신의 몸을 놈이에게 바친다는 설정은 가히 충격적이면서도 이뤄질 수 없었던 이들의 사랑이 어떻게 담겨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이 일러 이 책 역시도 주문을 해 놓은 상태이다.
자신들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날지언정 진정한 민중이라 할 수 있는 이금이와 괴똥이만큼은 천민으로서 손가락질 당하지 않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바라는 염원이 그 안에 들어있다. 곧 ‘진놈 사랑’을 대신할 뿐만 아니라 민중들의 사랑을 대표하는 것으로서의 ‘똥금 사랑’이기에 진이와 놈이의 몸과 정성을 바쳐 그들 사랑을 완성해 가는 것이다. –본문
놈이와 진이의 사랑은 이뤄 질 수 없는 것들이라면 그 안의 또 다른 사랑인 똥금 사랑은 행복한 결말로 담겨진다 하는데 하나의 사랑이 이렇게 다른 결말을 내고 있는 것에서 비교 대상이 되면서 이렇게 대조되는 커플의 등장으로 이 소설 속 인물들의 사랑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고 박완서 선생의 <엄마의 말뚝>을 통해서는 신민지를 지나온 시간은 물론이거니와 전쟁과 분단을 겪어야만 했던 우리네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에 이들의 이야기를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련해졌다. 엄마를 생애를 3대에 걸쳐서 그려내는 이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그리고 그 안에서 자리마다 각양각색의 모습을 한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파란했던 시절을 살아왔던 모든 엄마의 모습들을 마주하는 듯 해서 왠지 모르게 뭉클해진다. 그리고 그녀 역시 여자로서 딸에게 하는 조언은 지금의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엄마’는 아들에게는 돈 잘 버는 직장을 가지고 문안으로 들어가서 버젓한 집을 꾸미고 사는 일을 기대했고, 딸에게는 신여성이 되기를 강조하곤 했다. 아들의 출세는 집안을 일으키는 일이지만, 딸의 출세는 딸 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엄마는 강조해 두었다. –본문
아직 누군가에게 어떠한 책을 권하기에는 부족한 지금 이 시점이, 이 책을 마주한 순간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읽고 배워야 할 것들이 그득하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 안에 있는 책들을 기반으로 또 나는 이 책을 소개해준 이들이 느꼈던 것과 동일하면서도 다른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한 설렘이 그 다음 책들을 읽게 만드는 동기가 되니 말이다.
어떠한 소설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이 책을 한 번 들여다 볼 것을 추천해주고 싶다. 이 안에는 다양한 색깔의 소설과 그 나름의 이야기가 풍성이 들어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읽고 나면 지갑을 가볍게 만드는 것이 하나의 문제라면 문제이겠지만 책을 사는 것은 그 안의 지혜를 단 돈 몇 푼으로 오롯이 구 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소비이니, 나는 이 구매욕을 겸허히 받아드리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