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에 미친놈, 신미식 - 나는 좋아하는 일 하면서 먹고 산다
신미식 지음 / 비전과리더십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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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카메라가 세상에 나온 이후 사진이란 것이 대중적이 되면서 참 많은 것들이 변했다. 자기 자신에 대해 더욱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고, 개개인의 다양한 개성이 블로그나 미니홈피 등의 수단을 통해 폭발적으로 분출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연예인 못지않으며 사진작가에 준하는 스타가 된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경제적 가치까지 지니게 되어 적극적인 상업적 전략에 이용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무엇이든 도가 지나치면 탈이 나는 법.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은 어느 순간 잊은 채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여질까 하는 반응에 민감해진 나머지 인터넷 상에서의 모든 소통을 끊고 심지어 현실의 사회생활에까지 영향을 받는 새로운 종류의 환자들도 생기는 시대가 되었다. 이 모든 것이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인해 생긴 21세기의 신 풍속도이다.   

   무슨 일이든 뚜렷하고 분명한 자기 주관과 신념을 가지고 임해야 제대로 된 성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순탄치 않은 삶의 과정을 통과한 끝에 어느 정도 경지에 올랐다 할 수 있는 사진가 신미식 님의 글은 인생의 선배로서, 사진과 관련한 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멘토로서 아주 훌륭한 가르침이 될 것이다. 응용미술을 전공하긴 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막막했던 그는 편집 디자인 일을 하던 중, 보고 느끼는 사진의 매력에 빠지게 된 후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까지 사진인화 작업에 빠지는 열정으로 사진에 대한 애정을 키워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주저하지 않고 무조건 돌진하는 저돌성을 보여준다. 카메라와 단돈 19만원을 가지고 무작정 유럽에서 사진여행을 떠나는 모습이나, 전혀 연줄이 없었던 그가 사이판 관광청에 무조건 찾아가 그곳의 사진을 찍고 싶으니 보내달라고 요청했다가 정중한 거절을 받은 후 우연히 다시 기회를 잡는 사연, 그렇게 쌓인 사진경력으로 저명인사들을 촬영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일, 당시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F1대회를 촬영할 기회를 갖게 된 것 등 모두 용기를 가지고 부딪치다 보면 반드시 기회는 찾아오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오히려 그런 시기와 감성이 풍부하셨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밝고 긍정적이고 세상을 따뜻하게 보는 힘을 배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감성으로 사물을 보고 사람을 사랑하고 사진을 찍고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그의 최고의 삶의 스승은 부족함과 간절함이었던 것이다. 그런 요소들이 신미식 님의 사진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풍부한 감동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사진동호회 같은 곳을 가보면 장비나 사진 외적인 사항에 대해 언급하는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정작 그런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도 강조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신미식 님의 인생그래프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장기매매로 빚을 갚을 생각을 했을 만큼 비참한 시절이 있었는가 하면 그 시절을 극복하고 사진에 대한 깊이도 더해지고 사진집도 출간할 정도로 인정받은 후에도 세금을 내 못할 만큼 초라한 시기를 거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사진을 통해 밑바닥 인생을 살던 사람들이 용기를 얻고 감사해한다는 사실을 전해 들으면서 다시 한 번 희망을 가지고 일어선다. 


   다양한 나라를 여행하고 온갖 시련을 겪는 등 독특한 이력을 가진 그의 사진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 사건이 있었으니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라는 나라를 알게 된 일이다. 그는 순수함과 평화, 아름다움이 충만한 ‘마다가스카르’를 통해 아프리카에 대한 편협한 시선을 깨트리는 사진을 국내에 처음 선보였으며 사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도 더욱 깊어졌다. 두려움과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감동과 위로, 힘과 메시지를 주는 사진, 사진을 찍기 전 대상과의 교감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깨달음, 한 가지의 주제를 정하고 나서 깊이 있게 접근했을 때 그 주제가 확장되면서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고 찍고 싶은 사진을 발견하게 된다는 그만의 사진철학이 완성되어갔다. 


   사진은 그의 운명이었다. 사진을 통해 그는 사람을, 세상을, 그리고 사물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사랑하며 봉사할 수 있는 길을 발견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앞이 보이지 않고 도무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알 수 없어 답답하고 초조해하는 시기가 있을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그 기간이 너무나 길다. 나 역시 아직 그런 단계에서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신미식 님의 글을 읽으면서 내가 지금 주어진 일에 열심히 노력하면서 간절히 바라고 기다린다면 반드시 내 삶의 이유가 되어줄 그 무엇이 나타나 나를 위로하고 힘을 주며,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인생이 될 수 있다는 용기와 확신을 얻게 되었다. 나는 기대한다. 그 수단이 사진이 될지, 글이 될지, 아니면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놀라운 방식으로 이뤄질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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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데르트바서 - 다섯 개의 피부를 지닌 화가왕 Taschen 베이직 아트 (마로니에북스)
피에르 레스타니 지음, 박누리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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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생각에 진정한 예술이란 모든 사람들에게, 그게 힘들다면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유익이란 이 지구 위에 사는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창조성을 발휘하면서 자기만의 개성을 가지는 한편, 그 개성들이 서로 어우러져 하나의 거대하면서도 아름답고 멋진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알 수 없는 자기들만의 담론으로 벽을 둘러친 예술은 오히려 저 끔찍한 자본주의와 같이 사람들을 계급화하고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너무나 중요하고 고상한 나머지 보통 사람들은 쉽게 이해할 수 없지만 궁극적으로는 인류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예술을 하는 분들도 있긴 할 것이다. 하지만 일상의 예술적 삶을 실천하는 분들이 아니라면 예술가란 기본적으로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접점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오스트리아 출신의 화가이자 건축가, 생태주의자인 훈데르트바서는 예술가로서, 실천하는 지성으로서 내 마음을 즐겁고 흡족하게 해주는 멋진 사람이었다. 그의 성장배경과 사상을 설명하는 부분을 보면서 이해하기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무엇보다도 훈데르트바서의 다양한 프로젝트의 결과물들을 보면 난해한 말만 일삼는 여느 예술가들과는 달리 자신만의 명확한 세계를 확립하고 그곳에서 진정한 왕 노릇을 하고 있는 위대한 개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닮고 싶고, 그럴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게 하는 그런 위대한 인물 말이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모습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임을 증명하는 삶을 살았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예술임을 강조했다. 삶의 기술로써의 예술을 실천한 훈데르트바서. 그는 사회,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인위성과 합리성, 획일성으로 점철된 세태를 비판했다. 이같은 요소들은 당장 겉으로는 풍요로워질지 모르나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에게서 삶에 대한 가치나 희망을 시들게 하며 삶 속에서 충분히 발휘될 수 있는 창조성을 말살시켜 결국 아무 것도 남지 않는 파멸에 이르게 할 것이라고 보았다. 기술문명의 진보와 진화가 우주적 섭리에 의해 형성된 자연의 순환과 아름다움을 배제한 채 계속 발전한다면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 사라지면서 종국에는 이룩된 찬란한 업적들마저 사라져버릴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훈데르트바서의 작품들과 건축물들을 보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빈의 시의회가 의뢰하여 완성시킨 공공주택 ‘훈데르트바서하우스’였다. 이곳은 일반 시민들이 사는 주택임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 내에서 손꼽히는 관광명소로도 유명하다. 이 건축물이 지어지는 과정에서 훈데르트바서는 시공하는 각 작업 인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부심을 가지고 그들 스스로의 예술적 영감을 발휘할 수 있도록 리드하였고, 완성된 이후 입주하여 사는 오스트리아 시민들의 삶의 수준이 내외적으로 매우 높아졌다는 사실을 객관적인 증거와 함께 제시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집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까지 살고 있는 사람의 개성과 의지가 반영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훈데르트바서하우스는, 집에 있는 것만으로도 거주자로 하여금 보다 나은 삶의 동기를 일깨우도록 하는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훈데르트바서의 모든 예술적, 사회적 활동이 이 철학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것은 비단 건축만이 아니라 인간이 계획하고 생산할 수 있는 모든 사안들에 적용되어야 할 교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대한 개인이란 어떤 것인지 알고자 한다면 훈데르트바서의 삶과 예술세계를 한번 따라가 볼 것을 권하고 싶다. 그가 이토록 끌리는 이유는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따라 충실하게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살았으며, 또한 그러한 삶의 방식이 자기가 속한 세계와 그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보다 이롭고 가치 있는 것을 제공하려는 노력이기도 했다는 점이 너무나도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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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어준다면
게일 포먼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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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의의 사고로 인해 가족 중 한 사람만 남고 모두 사망한 사건을 가끔씩 뉴스를 통해 들을 때가 있다. 그 당시에는 마음이 아프고 살아남은 한 사람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갖게 된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그런 사건들이 생각보다 매우 많았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이 태어나서 살고 죽는 것은 계절이 변화하는 것처럼 자연의 순리, 만물의 이치이지만 뜻하지 않은 사고로 어떤 일정한 삶의 균형을 깨트리는 죽음은 남아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상처가 되고 한동안의 삶을 우울하게 한다.

   소설은 행복했던 한 가족이 드라이브를 하다 불운의 사고로 모두 죽게 되고 유일하게 살게 될 한 소녀가 육체와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가족과 친구들과의 추억, 자신의 삶에 대해 회상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족들과의 화목하고 행복했던 시간들, 남자친구와의 설레는 사랑, 깊은 우정을 나눈 친구와 처음에는 원수 같았지만 결국 세상에서 가장 친한 사이가 된 추억 등 그 당시에는 잘 느낄 수 없었던 소중한 추억들을 떠올리는 주인공 소녀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만약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나는 어떤 기억들을 떠올릴까 생각해보았다. 나는 워낙 사교성도 부족하고 스스로 모든 것을 완벽히 처리하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는 성격이어서 내가 만약 그런 일을 당하게 된다면 깊은 외로움을 일단 먼저 느낄 것 같다. 하지만 내게도 적으나마 분명히 존재했던 우정을 나눈 지인들, 무뚝뚝하고 평소에 속 깊은 이야기를 마음 편하게 한 적은 많지 않지만 나를 위해 울어줄 친지들을 떠올리고 그들과의 추억을 회상하게 될 것 같다. 하지만 내 영혼이 몸으로 돌아와 회복되고 눈을 떴을 때 밀려올 상실감을 나는 견딜 수 있을까? 주인공 소녀는 많은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있고, 당장 그녀 곁에서 충분한 애정을 전해줄 애인과 친구가 있다 해도 쉽사리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뒷이야기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내년에 영화로 나올 예정이라고 하는데 어떤 식으로 풀어낼지도 자못 궁금하다. 

   아마 이 소설의 후속이 나오게 된다면 역시 친구와 연인의 헌신적인 사랑으로 일어서게 될 소녀의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전해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인생에 있어서 우정과 사랑은 그 사람이 좌절하거나 절망에 빠지지 않고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가장 근본적이고 유일한 것임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소설 속 비극적 사건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따뜻함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하지만 이런 교훈을, 누군가 다치거나 죽는 일로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 건강하게 살아 있을 때 확실히 배울 수 있는 지혜를 신께서 내려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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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밑 남자
하라 코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예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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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이라는 개념은 지구상에서 ‘인류’라는 거대한 인간집단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구성단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날처럼 ‘가족’의 의미와 가치가 퇴색되고 있는 시대가 또 있을까 싶을 만큼 그 원인이 되는 물질에 대한 사람들의 집착은 위험스럽기 짝이 없다. 교육 때문이라지만 결국 훗날의 경제적인 풍요를 위해 생이별을 하는 가족들, 경제적인 부분만 확실히 해결해주면 가족의 행복은 보장될 거라는 집안 가장들의 꿈들이 여지없이 깨져나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이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사람들은 그걸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생각이 만연하다보니 경제적인 이유로 가족 간의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해도 이제는 무감각할 지경이다. 

   책에 수록된 다섯 편의 단편 중 두 편은 직접적으로 가족이 해체되어 가거나 해체된 이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나머지 세 편 역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해체되거나 퇴색된 사람의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작가의 적절한 유머와 풍자로 심각하게만 그려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재미있게 읽고 난 후에 남는 어느 정도의 씁쓸함은 피할 수가 없다. 표제작인 첫 번째 작품 ‘마루 밑 남자’는 가족을 위해 온 시간을 일로 보내는 남편에게 오히려 외로움과 절망을 느낀 부인이 집안에 있는 수수께끼의 남자가 항상 함께 있어준다는 이유로 남편을 버리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진다. 내가 남자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부인의 그런 태도는 정말 짜증스러웠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결국 남편도 부인도 서로 소통이 부재한 것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두 번째 작품인 ‘튀김 학생’은 이 작품집이 2000년 이전에 나온 것을 감안하고 봐야 한다. 본격적인 정보화가 시작될 무렵 아들의 도움으로 기업 정보망의 허점을 이용해 복수를 하는 한 중년 남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세 번째 작품 ‘전쟁관리조합’은 경제 불황기에 기업에서 가장 먼저 해고 대상이 된 종합직 여성들이 남성 중심의 잘못된 세상을 뒤집고자 뭉쳐 사회에 대항한다는 다소 엉뚱한 내용의 이야기다. 이 단편에서 약자에 해당하는 여성들은 다만 여성뿐만이 아니라 원하지 않아도 교묘히 부품화된 사회의 모든 노동자들을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또한 지속적으로 결집하지 못하고 내부에서 붕괴되는 내용 전개가 인상적이었다. 네 번째 작품인 ‘파견사장’은 온전한 정직원은 없고 단 한명의 진짜 사장을 제외한 세상의 모든 회사의 직원들이 파견된 인사들로만 채워져 돌아가는 세상이 온다면 어떻게 될지, 나 한 사람의 편함만 생각한다면 보이지 않을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마지막 작품인 ‘슈샤인 갱’은 경제적 능력과 가족과의 유대를 모두 잃은 한 남자가 역시 비슷한 상황에서 아버지를 여읜 한 소녀와의 기묘한 동업활동을 그리고 있다. 진정한 가족이란 힘들고 슬픈 일 등 모든 것을 함께 나누고 누려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작품이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샐러리맨들의 애환, 가족의 의미와 소중함을 너무 심각하거나 가볍지 않은 접근으로 이야기를 풀어내 오히려 오랜 여운을 남긴 작가 하라 코이치는 처음 접하는데,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그가 재미와 감동을 적절히 전달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오기와라 히로시와 이시다 이라 같은 광고 카피라이터 출신 작가라는 점이었다. 이전 직업의 특성이 소설가라는 직업에 장점으로 발휘된 이들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차기작들이 매우 기대된다. 참, ‘그것과 이것은 다른 문제’라는 식의 문장이 전 작품에 걸쳐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는데, 작가의 버릇인지 의도적으로 그런 것인지 궁금했다. 재미있는 발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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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턴 -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 민음사 모던 클래식 36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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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시대적인 가치관 속에서 고집스럽게 자신의 신념을 지켜온 집사 스티븐슨이 지난 삶의 허망함을 깨닫고 극복하는 과정을 담은 소설 ‘남아 있는 나날’을 통해 처음 가즈오 이시구로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 ‘남아 있는 나날’을 읽으면서 내가 특히 놀랐던 것은 화려하거나 자극적이지 않은, 평범하고 밋밋한 문체와 서술구조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너무나 잘 읽히더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쏠쏠한 재미와 함께 말이다. 나는 이 특별한 재능을 가진 작가에게 단번에 반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어서 바로 만난 작가의 최근작인 ‘녹턴’에서도 그 매력은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었다.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라는 부제를 가진 이 단편집에는 이별을 앞둔 왕년의 유명했던 가수와 그의 젊은 부인, 그리고 이들의 기묘한 이벤트에 뜻하지 않게 참여하게 된 한 연주가의 이야기와 학창시절 단짝이었던 친구부부의 위태로운 결혼생활 가운데 초대받아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사회에 어엿하게 자리 잡지 못한 한 중년 남성의 이야기, 성공한 뮤지션을 꿈꾸고 있지만 당장은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있는 한 청년이 매끄럽지 않은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프로뮤지션 부부를 만나서 겪게 되는 이야기와 출중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외모 때문에 성공하지 못한다는 주변의 설득에 마지못해 성형수술을 하게 된 한 남자가 비슷한 기간에 역시 성형수술을 하고 회복 중에 있는 여배우와 겪는 해프닝, 잘못된 판단으로 허영에 빠져 진정한 첼리스트가 되지 못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살면서 사랑하고 함께 살다가 헤어지고, 멋진 직업을 꿈꾸다 좌절하지만 다시 희망을 갖게 되고, 무엇이 삶 혹은 예술에서 중요한 문제인지 고민하는 등 평범하고 일반적인 소설 내용의 전반에는 클래식에서 재즈, 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들이 배경으로 흐르고 있다. 오직 음악만이 모든 삶의 이야기들을 아우르고 있는 공통분모다. 마치 끊임없이 음악이 흘러나오는 공공장소의 스피커 앞에 앉아 사람들을 보고 있는 듯하다.

   속된 말로 말빨(국어사전에는 ‘말발’이라고 정식으로 나와 있지만)이 좋다거나 화려한 언변을 구사한다 해도 이 사람 말은 정말 듣기 싫다 하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밋밋하고 억양의 높낮이도 없고 어눌하기 짝이 없어도 들을수록 더 듣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은 이를테면 후자에 속하는 느낌이다. 작가는 세계 어디서나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삶의 비전이 담긴, 단순하면서도 인터내셔널한 소설을 쓰고 싶다고 한다. 이 매력적인 단순함을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가즈오 이시구로만큼 잘 구사할 수 있는 작가는 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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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해요 2010-12-20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