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훈데르트바서 - 다섯 개의 피부를 지닌 화가왕 ㅣ Taschen 베이직 아트 (마로니에북스)
피에르 레스타니 지음, 박누리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0년 12월
평점 :
내 생각에 진정한 예술이란 모든 사람들에게, 그게 힘들다면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유익이란 이 지구 위에 사는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창조성을 발휘하면서 자기만의 개성을 가지는 한편, 그 개성들이 서로 어우러져 하나의 거대하면서도 아름답고 멋진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알 수 없는 자기들만의 담론으로 벽을 둘러친 예술은 오히려 저 끔찍한 자본주의와 같이 사람들을 계급화하고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너무나 중요하고 고상한 나머지 보통 사람들은 쉽게 이해할 수 없지만 궁극적으로는 인류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예술을 하는 분들도 있긴 할 것이다. 하지만 일상의 예술적 삶을 실천하는 분들이 아니라면 예술가란 기본적으로 대중들과 소통할 수 있는 접점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오스트리아 출신의 화가이자 건축가, 생태주의자인 훈데르트바서는 예술가로서, 실천하는 지성으로서 내 마음을 즐겁고 흡족하게 해주는 멋진 사람이었다. 그의 성장배경과 사상을 설명하는 부분을 보면서 이해하기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무엇보다도 훈데르트바서의 다양한 프로젝트의 결과물들을 보면 난해한 말만 일삼는 여느 예술가들과는 달리 자신만의 명확한 세계를 확립하고 그곳에서 진정한 왕 노릇을 하고 있는 위대한 개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닮고 싶고, 그럴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게 하는 그런 위대한 인물 말이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모습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임을 증명하는 삶을 살았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예술임을 강조했다. 삶의 기술로써의 예술을 실천한 훈데르트바서. 그는 사회,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인위성과 합리성, 획일성으로 점철된 세태를 비판했다. 이같은 요소들은 당장 겉으로는 풍요로워질지 모르나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에게서 삶에 대한 가치나 희망을 시들게 하며 삶 속에서 충분히 발휘될 수 있는 창조성을 말살시켜 결국 아무 것도 남지 않는 파멸에 이르게 할 것이라고 보았다. 기술문명의 진보와 진화가 우주적 섭리에 의해 형성된 자연의 순환과 아름다움을 배제한 채 계속 발전한다면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 사라지면서 종국에는 이룩된 찬란한 업적들마저 사라져버릴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훈데르트바서의 작품들과 건축물들을 보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빈의 시의회가 의뢰하여 완성시킨 공공주택 ‘훈데르트바서하우스’였다. 이곳은 일반 시민들이 사는 주택임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리아 내에서 손꼽히는 관광명소로도 유명하다. 이 건축물이 지어지는 과정에서 훈데르트바서는 시공하는 각 작업 인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부심을 가지고 그들 스스로의 예술적 영감을 발휘할 수 있도록 리드하였고, 완성된 이후 입주하여 사는 오스트리아 시민들의 삶의 수준이 내외적으로 매우 높아졌다는 사실을 객관적인 증거와 함께 제시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집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까지 살고 있는 사람의 개성과 의지가 반영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훈데르트바서하우스는, 집에 있는 것만으로도 거주자로 하여금 보다 나은 삶의 동기를 일깨우도록 하는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훈데르트바서의 모든 예술적, 사회적 활동이 이 철학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것은 비단 건축만이 아니라 인간이 계획하고 생산할 수 있는 모든 사안들에 적용되어야 할 교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대한 개인이란 어떤 것인지 알고자 한다면 훈데르트바서의 삶과 예술세계를 한번 따라가 볼 것을 권하고 싶다. 그가 이토록 끌리는 이유는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따라 충실하게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살았으며, 또한 그러한 삶의 방식이 자기가 속한 세계와 그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보다 이롭고 가치 있는 것을 제공하려는 노력이기도 했다는 점이 너무나도 매력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