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 밑 남자
하라 코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예담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가족’이라는 개념은 지구상에서 ‘인류’라는 거대한 인간집단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구성단위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날처럼 ‘가족’의 의미와 가치가 퇴색되고 있는 시대가 또 있을까 싶을 만큼 그 원인이 되는 물질에 대한 사람들의 집착은 위험스럽기 짝이 없다. 교육 때문이라지만 결국 훗날의 경제적인 풍요를 위해 생이별을 하는 가족들, 경제적인 부분만 확실히 해결해주면 가족의 행복은 보장될 거라는 집안 가장들의 꿈들이 여지없이 깨져나가는 모습들을 보면서 이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사람들은 그걸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생각이 만연하다보니 경제적인 이유로 가족 간의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해도 이제는 무감각할 지경이다. 

   책에 수록된 다섯 편의 단편 중 두 편은 직접적으로 가족이 해체되어 가거나 해체된 이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나머지 세 편 역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해체되거나 퇴색된 사람의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작가의 적절한 유머와 풍자로 심각하게만 그려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재미있게 읽고 난 후에 남는 어느 정도의 씁쓸함은 피할 수가 없다. 표제작인 첫 번째 작품 ‘마루 밑 남자’는 가족을 위해 온 시간을 일로 보내는 남편에게 오히려 외로움과 절망을 느낀 부인이 집안에 있는 수수께끼의 남자가 항상 함께 있어준다는 이유로 남편을 버리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진다. 내가 남자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부인의 그런 태도는 정말 짜증스러웠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결국 남편도 부인도 서로 소통이 부재한 것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두 번째 작품인 ‘튀김 학생’은 이 작품집이 2000년 이전에 나온 것을 감안하고 봐야 한다. 본격적인 정보화가 시작될 무렵 아들의 도움으로 기업 정보망의 허점을 이용해 복수를 하는 한 중년 남성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세 번째 작품 ‘전쟁관리조합’은 경제 불황기에 기업에서 가장 먼저 해고 대상이 된 종합직 여성들이 남성 중심의 잘못된 세상을 뒤집고자 뭉쳐 사회에 대항한다는 다소 엉뚱한 내용의 이야기다. 이 단편에서 약자에 해당하는 여성들은 다만 여성뿐만이 아니라 원하지 않아도 교묘히 부품화된 사회의 모든 노동자들을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또한 지속적으로 결집하지 못하고 내부에서 붕괴되는 내용 전개가 인상적이었다. 네 번째 작품인 ‘파견사장’은 온전한 정직원은 없고 단 한명의 진짜 사장을 제외한 세상의 모든 회사의 직원들이 파견된 인사들로만 채워져 돌아가는 세상이 온다면 어떻게 될지, 나 한 사람의 편함만 생각한다면 보이지 않을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마지막 작품인 ‘슈샤인 갱’은 경제적 능력과 가족과의 유대를 모두 잃은 한 남자가 역시 비슷한 상황에서 아버지를 여읜 한 소녀와의 기묘한 동업활동을 그리고 있다. 진정한 가족이란 힘들고 슬픈 일 등 모든 것을 함께 나누고 누려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작품이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샐러리맨들의 애환, 가족의 의미와 소중함을 너무 심각하거나 가볍지 않은 접근으로 이야기를 풀어내 오히려 오랜 여운을 남긴 작가 하라 코이치는 처음 접하는데,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그가 재미와 감동을 적절히 전달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 오기와라 히로시와 이시다 이라 같은 광고 카피라이터 출신 작가라는 점이었다. 이전 직업의 특성이 소설가라는 직업에 장점으로 발휘된 이들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차기작들이 매우 기대된다. 참, ‘그것과 이것은 다른 문제’라는 식의 문장이 전 작품에 걸쳐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는데, 작가의 버릇인지 의도적으로 그런 것인지 궁금했다. 재미있는 발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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