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합천을 다녀왔다.

히로시마, 비키니섬, 체르노빌, 후쿠시마, 그리고 합천의 피폭자들과 반핵, 평화를 염원하는 이들이 모인 자리였다.

피폭의 고통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얘기는 하나하나 가슴에 박혔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내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은 하야오 다카노리라는 센다이 출신 남성의 탈출기였다.


그는 후쿠시마에서 발생한 원전 폭발 이후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천천히 진행되는 제노사이드'라고 정의했다. 생명보다 경제와 질서를 우선시하는 일본정부가 이를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규모 재해의 한복판에 있던 그는 오히려 재해의 전반적 상황에 대해 알지 못했으며, 사태의 심각성을 모른 채 사고가 난 다음날에도 아이와 밖에서 하루 종일 놀았다고 한다. 이후 원전 폭발뉴스를 접한 후 '빠져 나갈 수 있을 때 우선 나가기'로 결정하고 아이를 데리고 탈출을 하게 된다. 아이의 초등학교 1학년 생활은 그렇게 끝이 났다(이 대목을 읽을 때 너무 마음이 아팠다. 처음 간 학교, 친구들, 선생님들, 그 모든 것과의 작별이 어린 아이들이 감당하기엔 너무 벅찰 거란 생각에) . 그날 이후 지금까지 아이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땅을 방문하지도, 센다이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만나지 못했다. 아이를 위해 탈출하기로 결정하였으나, 먹을 것도 생필품도 부족한 센다이를 떠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 그의 아내는 그곳에 남았다. 아이와 남편이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던 순간, 아내는 차 한 대 분량의 물자를 사서 센다이로 돌아갔다. 그렇게 그들은 이산가족이 되어 버렸다. 처음 아이는 그와 함께 도쿄에 머물렀으나, 도쿄의 수돗물에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된 후, 교토로 보내져서 양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그의 탈출기는 2011년 4월 씌어진 것이니 2012년 현재 상황은 정확히 알 수 없다.(최근 일본을 다녀온 지인에 의하면, 후쿠시마 사고 후 1년, 원전사고로 인해 발생한 이산가족들 가운데에는 다시 이혼가정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기약없는 생이별과 생계의 어려움이 결국 가정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방사능 오염의 범위와 기간은 그 끝을 알 수 없다.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은 사실상 '포기상태'에 있다고 생각하는 그는, 피난이 유일한 저항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30km 밖에 거주하다 스스로의 판단하에 피난한 사람들은 공식적인 '이재민' 카테고리에 포함되지 않아 공적 주택지원을 받을 수 없다. 지금 그는 뜻있는 이들과 함께 30km 밖에 거주하다 피난한 사람들을 돕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이들은

체르노빌에서도, 후쿠시마에서도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다.

여전히 원자력 발전소를 더 세워야 한다는 이 나라 정부는

생명보다 경제와 질서를 더 우선시하는 일본정부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10km  30km
 고리                   48,540               3,223,919
 월성                   19,400               1,094,738
 영광                   25,690                  145,163
 울진                   19,224                   58,807
 고리-월성 중첩
(울산 중구,남구,동구)
 0                -691,801
 고리-월성 중첩
(울산 북구)
 0                  -68,042
 고리-월성 중첩
(울산 울주군)
 0                  -61,239
 합계                  112,854                3,701,545

*첨부한 두 장의 사진과 표는 에너지정의행동 이헌석씨의 자료 <후쿠시마 핵사고와 한국의 핵발전 정책>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원자료는 에너지정의행동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