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조카는 내게 늘 특별했다.

4살 무렵까지 함께 살아서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렇게 어린 꼬맹이가 대단히 이성적이고 논리적이었기 때문이다. 또래의 아이들보다 점잖고 지적 호기심도 많고, 또 너무 빨리 형이 되어야 했던 아이. 
터울이 별로 없는 아이들을 둔 부모들은 왜 그렇게 한결같이 큰 애에게 형 노릇, 오빠 노릇을 시키는 것인지 모르겠다. 둘째는 10살이 넘어도 여전히 막내 노릇을 하며 땡깡을 부리는데, 첫째는 4살부터 형 노릇을 하며 자랐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새로 맞춘 교복을 입어 보던 날, 괜시리 마음 짠해지고 감동스럽더라. 어느새 이 녀석이 이 만큼 자랐는가 싶어서.
아빠 사랑을 동생에게 죄다 뺏기고 늘 마음 한구석이 허전한 이 아이를 위해 이모가 할 수 있을 만큼 사랑해주려고 한다. 결코 부모 대신은 안되겠지만.

2월부터 한달에 한번씩 큰언니네 집을 찾아 아이들 간식을 챙겨주고 공부도 봐주기로 했다(그러니 이제 겨우 두 달 됐다). 다행히 두 녀석 모두 이모 말을 잘 듣고, 내가 해 주는 모든 음식을 맛있다며 감탄하기까지 한다. 민망하게도. 내가 해 준 건 그저 세 끼 밥과 간식이 전부. 한참 자라는 아이들이 든든했으면 했다.

늦은 밤에 귀가하는 부모들이 아무리 애들에게 게임을 하지 마란다고 들을쏘냐.
숙제하고, 밥 먹고, 치고박고 싸우고, 한 녀석은 삐쳐서 방구석에 틀어박혀도 또 다른 녀석은 컴컴한 거실에 귀신처럼 앉아 모니터에 정신을 빼앗기곤 한다.
스스로 시간을 통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집에 지키고 있을 수도 없고, 그럴 여력도 없으니.

여전히 얄랑꼴랑한 판타지물을 좋아하는 조카에게 중학생이 된 기념으로 책 선물을 했다.

물론 조카가 좋아한 책이 아니었다. --;

이모가 권해준 책을 다 읽고 함께 얘기하자, 그 다음에 네가 원하는 책을 꼭 사주마.


한달 후에 만난 조카는 책을 다 읽었을 뿐 아니라 담담하게 책을 읽은 느낌을 읖조린다.

절대로 공책에 감상물을 적지는 않겠다고 버티면서.^^;

조카가 원하는 대로 했다. 편하게 얘기하면서 느낌을 나누었다.

그리고 조카가 원했던 책을 다음날 서점에 가서 사 주었다.


인권에 대해 가르친다는 것, 깨닫게 한다는 것은 어렵다.

뭔가 어렵고 까다롭게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다.

또 스스로 인권을 소중하게 느끼고 배려받은 경험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서라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주려고 한다.

그리고 가능한 10대의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

로자 파크스보다 앞서 버스에서 벌어지는 차별에 저항하고 아픔도 겪었던 한 10대의 얘기는

시험과 성적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한국의 10대들에게

조금은 힘이 되는 얘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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