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구걸할 때, 사랑을 받는 것으로 여길 때, 내가 준 사랑에 대해 보답을 받으려고 할 때, 사랑은 갈등과 눈물의 씨앗이 된다.

​ 사랑은 시작되는 순간 이미 나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그 사람의 존재에서 느끼는 기쁨을 통해 나는 이미 사랑에 대한 보답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거래를 하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기를 바라고, 그 사람을 소유하고 독점하려고 하며, 그러한 바램이 충족되지 않으면 상대방을 원망한다. 그럼으로써 그 관계는 착취로 변질된다.

​ 사랑이 착취와 거래로 변질되는 이유는 '나'를 지키려는 욕망 때문이다. 지켜야 할 '나'라는 실체가 있다는 착각, 사랑을 받아야만 '나'의 결핍이 채워진다는 착각 때문이다. 내가 상대방을 사랑하는 만큼 상대방도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손해를 본다는 생각 때문이다. '나'는 애초에 지킬 수도 없고 채울 수도 없으며, 누구에게도 의존할 필요가 없이 텅 비었음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질투심은 무명에서 비롯된 어리석은 감정이다.

​ '나'는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고 해서 충족되는 것도 아니고,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결핍되는 것도 아니다. 나는 텅 빈 그 자체로 충만하다. 사랑받고 싶은 이유는 생각과 기억의 다발에 불과한 '나'라는 허상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 허상은 지킬 필요도 없고 채울 필요도 없다. 허상인줄 알면 그뿐이다.

​ 실체 없는 허상인 '나'를 타인의 사랑으로 채우려고 하는 것은 소금물로 갈증을 해소하려고 애쓰는 것과도 같다. 사랑을 갈구하는 한 끝없이 목마르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나'는 텅 빈 피리이기에 어떤 바람도 나를 채울 수 없고 그저 통과하도록 내버려둘 수 있을 뿐임을 모르는 것이다.

​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자립한 사람들이 함께 나누는 것이다. 우리는 의존하지 않고, 아무런 기대와 조건 없이, 지금 여기에서 사랑할 수 있다. 그 사랑을 실체화하여 그것이 영원해야 한다고 고집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립은 사랑의 필수 조건이다. 홀로 설 수 있을 때 비로소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 

출처 : 네이버 미소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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