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명동에서 커피를 마실 때였다. 한 할아버지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Are you Japanese, or Korean?"

 난 당연히 한국인이라 말하며 그분의 질문에 답하였다. 기실 심상한 일이다. 헌데 이 질문에선 묘한 배려가 나타난다. 이러한 배려는 한 나라를 평가하는 우리의 무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기실 할아버지가 내게 Chinese라고 물었다면 기분이 나빴을 테다. 일본은 세련된 이미지고 중국은 낙후된 이미지라는 세간의 인식 때문일 테다. 이런 인식의 부당함을 알고 그 잗다란 폭력을 이겨내려 하지만 여의치 않다. 그저 ‘중국인’으로 불리지 않은 데 대한 안도만 있을 뿐이다.

 사람들은 종종 말을 통해 본인의 무의식 내지는 호오(好惡)를 드러내곤 한다. 그런 무의식은 감추려 할수록 잘 드러나기 마련이다. 용의주도하지 않는 이상 그런 무의식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이러한 표출은 가끔 긴장의 땔감이 되기도 한다.

 얼마 전 선배들과 술자리가 있었다. 2차로 옮기는 과정은 꽤나 지난했다. 옆에 있던 선배에게 다소 동선이 길다는 말을 했다. 말 그대로 사실을 언급한 것이었다. 헌데 선배는 내게 말조심 하라고 했다. 동선이 길다는 말은 너네가 동선을 잘못 짰다는 나무람이 섞인 말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기실 그런 나무람이 들어가 있긴 했다. 다만 선배와 길을 걷다 버성긴 분위기를 참지 못해 ‘사실’을 넌지시 기술했을 따름이었다. 약자이다 보니 그런 에두르는 말로 마음을 눅이려 했거늘 그는 말로 말을 무참하게 만들었다. 말조심은 내 것이 아니 오로지 그의 것이었다.

 기실 이런 무의식을 간파하는 것은 영특하기 보단 자지레한 폭력과 닿아 있다. 숨기고 싶은 타인의 무의식을 끄집어내는 것으로 존재증명을 하는 일은 주위사람을 멀어지게 할 따름이다. 말이 조성한 긴장을 너른 마음으로 감싸 안는 게 정녕 영특한 법이다.

 말조심은 지나치다고 할 만큼 신경을 쓸 부분이다.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항변할 수 있으나, 말이란 화자의 발화의도보다 청자의 받아들임이 더 중요한 법이다. 내 말로 누군가가 상처를 입었다면 그 아픔만은 명징한 것이고 내가 전달하려던 의도는 제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마음은 알아주지 않은 채, 기껏 몇몇의 형태소에 천착하여 말을 왜곡한다 말하는 이는 실로 미욱할 따름이다. 그대의 마음은 보이지 않고 그대의 말은 공기에 울림으로써 실존한다. 제 처신을 잘해야 하는 이유다.

 언어가 지닌 계층의식을 이야기하려다 말이 엇나갔다. 그대의 불민함을 지적하기 보단 내 언어의 나약함을 지적하는 게 옳을 듯하여 글이 이리 맺어진다. 말에 대한 배려와 언어에 대한 고민은 항상 나를 깨어있게 하지만 또 피곤케 한다. 글로 생각을 오롯이 드러내는 건 내 언어 또한 자지레한 폭력에 둔감해질지 모름을 저어해서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그대를 말로써 욕보이는 이가 있다면 마음을 슬며시 닫을 일이다. 사랑은 보이지 않기에 더욱 조심스럽고 볼 수 없기에 더욱 민감한 까닭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10-03-10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바밤바님이 좀 많이 깔끔하게 생기셨나봐요 ^^.
할아버지께서 그렇게 물어보신걸 보면요 ~

언어에 있어서는 언젠가부터 제 스스로 부연설명을 덧붙이는 것이 버릇이 된 것 같습니다. 제가 그리 말이 많은 편이 아니고, 또 솔직한, 때론 농담조로 말해도 "그렇게 안봤는데.." 하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그렇지요. 어쩌면 말씀처럼 제가 사회에서 갖고 있는 상대적 위치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강자는 아니니, 자꾸 부연을 하는 것일지도요.

어쨌거나 글이나 외모 말고, 다른 이에게 제일 직접적이며,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는 건 "말" 일테니 상황이나 분위기를 잘 보고 꺼내야 할 듯 싶습니다. 뭐 완벽함이란 없을테고 다른이는 실제로 그리 대단치 않게 얘기했을 수도 있느니 너무 많이 신경쓰는건 또 아닌것 같고요. ^^


바밤바 2010-03-12 00:02   좋아요 0 | URL
ㅎ 깔끔하게 생기진 않았어요~ ㅎㅎ
말이 어렵다는 걸 절감하는 요즘입니다. 껄껄
그래도 하고픈 말 하면서 사는게 자지레한 고민보다 삶을 더 윤택하게 해줄 것 같습니다~ ㅎ

Mephistopheles 2010-03-11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종의 영향도 있겠지만. 나이와 직책에 따라 혀를 감고 나오는 말도 언변이 늘어나야 한다고 봐요. 그게 안되면 연장자라고 윗사람이라고 인정하고 싶지가 않아지곤 하니까요.

바밤바 2010-03-12 00:0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요즘 버스에서 자리 양보하려고 해도 그런 배려를 당연시하는 어른을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않곤 합니다. 헤헤

페크pek0501 2010-03-11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말로 누군가가 상처를 입었다면 그 아픔만은 명징한 것이고 내가 전달하려던 의도는 제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마음은 알아주지 않은 채, 기껏 몇몇의 형태소에 천착하여 말을 왜곡한다 말하는 이는 실로 미욱할 따름이다. 그대의 마음은 보이지 않고 그대의 말은 공기에 울림으로써 실존한다. 제 처신을 잘해야 하는 이유다. - 이 문단을 가장 좋은 글이라고 뽑습니다. (그럴 자격 없지만 제가 감히...)

지난 6월에 제 블로그에 올린 글 '사유하지 않음은 폭력이 될 수 있다'라는 칼럼이 있는데, 이 글과 비슷한 문제를 다루고 있어요. 어쩌면 정반대의 문제인지... 타인에 대해 사유하지(배려하지) 않음은 폭력이 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님은 나의 말을 잘 알아들어 주시면 좋겠어요, 라는 걸 말했다면, 전 말을 할 땐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기, 입니다. 어쨋든 우린 '말조심'이란 같은 문제를 다뤘네요.ㅋ


바밤바 2010-03-12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재밌네요~ 생각의 뿌리가 같으니 곁가지는 조금 다를뿐일 듯~
그리고 페크님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으십니다. 헌데 자격이란 말이 다소 쑥스럽기도 하네요^^
공부 많이 하셔서 더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ㅎㅎ
 

 

 밤이 깊다. 잗다란 고민이 없으니 마음이 적이 편하다. 겨울처럼 날이 섰던 지난 시간도 적잖이 눅여졌다.

 라디오 헤드의 ‘creep'을 듣는다. 고등학생 시절엔 이런 음악이 좋진 않았다. 자극적이고 기억하기 쉬운 음악에 천착하곤 했다. 지금은 다르다. 이런 무신경한 음악이 좋다. 정녕 사랑스럽다.   

 

 

 

 

 

 

 

 

 

 

 

 

 눈두덩에 그늘진 짙은 다크써클을 바라보며 밥벌이가 녹록지 않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핍진함이 짙게 스민 눈밑 그늘에서 스스로를 다독일 필요성을 느낀다. 견딘다며 보낸 한 달이었지만 내 몸은 그 무게감에 적잖이 기력을 쇠진 한 듯 보인다. 스스로에게 자장가를 불러준다.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내일은 내가 별이다. 외로된 겨울을 이겨 낸 화사한 별이 되길 바란다. 지금 나오는 곡은 스팅의 ‘Shape of my heart'다. 내가 두 번째로 샀던 시디가 스팅 베스트 앨범이었다. 나름 뜻 깊다. 봄의 들머리에 들어도 나쁘지 않다.   

 

 

  

 

 

 

 

 

 참고로 처음 샀던 시디는 야니 베스트 앨범 이었다. 처음 구매한 테입은 이승환 4집 ’휴먼‘이고. 클래식 보단 이런 음반이 나를 더 잘 보여주는 음악이다. 내가 지닌 ’아비투스‘에도 걸맞다. 좋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0-03-07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기억이 맞다면, 레지스 레이블의 리히터 슈베르트 음반에 대한 제목도 보이네요^^
허허. 오늘은 다른 장르로 넘어가셨네요 ㅋ

바밤바 2010-03-07 02:04   좋아요 0 | URL
하하.. 그건 저 영화 제목을 패러디해서 썼었던 건데 기억하고 계시네요. 대단하십니다^^
바람결 님 은근히 늦게 주무시는 듯~ㅎ

Mephistopheles 2010-03-07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그럼요. 무난함과 단조로움이 어쩌면 진리일지도 모르죠...^^

바밤바 2010-03-07 17:4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태극권도 그렇잖아요~ ㅎㅎ

Bongbong 2010-03-10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고등학생때 좋아했는데:) 요즘 다시 찾아서 듣고있어요.
그러고보니, 지난번에 클래식을 좋아하신다고 하셨던 듯~
항상.. 포스팅에서 삶의 미열이 느껴지는, 서..선배님이라 부르고 싶은 팬푸님-T
기운내세요!^ ^

바밤바 2010-03-10 21:16   좋아요 0 | URL
ㅎ 기운은 가득 한데 조금 피곤할 따름이에요~ㅎㅎ
클래식 많이 듣는 편이죠. 요즘은 조금 자제하는 경향이 있고요~
열심히 하셔서 좋은 결과 있길 바라요~ 화이팅!ㅋ
 

 

 서현이 지은 ‘그대가 본 이 거리를 말하라’엔 종삼이란 말이 나온다. 종로 3가를 말하는 것으로 1960년 대 까지만 해도 그곳엔 사창가가 많았다 한다.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선 ‘종삼가자’란 말이 ‘떼씹’ 하러 가잔 말이었다고.

 학교에서 마을버스 2번을 타고 종로로 자주 가는 편이다. 종로 3가 탑골 공원 옆을 종종 지나곤 했다. 예쁜 건물들 속에서 낙원 상가는 흉측해 보였고 탑골공원은 스산했다. 직접 부딪히지 않아서 그런 거부감이 점점 더 농익었을 터다.

 오늘 탑골공원과 종로 3가를 배회했다. 서울의 겉과 달리 그 속살은 여전히 사람으로 북적됐고 향수(鄕愁)라고 하기 뭣한 지친 얼굴로 가득했다.

 11시 경에 당도한 탑골 공원엔 손에 꼽을 정도로 어르신들이 적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정부가 담배도 못 피우게 하고 술도 못 마시게 하여 다들 흩어졌다고 한다. 그 많던 노인들은 종묘공원으로 가거나 복지관에서 밥을 빌어먹는단다. 그래도 밥 때가 되면 원각사에서 운영하는 무료급식에 사람이 몰린다 하니 다행이었다.

 탑골공원 앞 쪽에선 순국선열을 기리기 위해 33인의 유족들을 모셔놓고 3.1절 기념행사를 한다고 분주했다. 탑골공원에 마실 나온 어르신들도 참가할 수 있으나 그들을 위한 다과상은 보이지 않았다.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사람이 너무 몰리면 직접 통제하기도 한단다. 그 묘한 분리됨이 편치 않았다. 과거 사람은 길이길이 기억되고 현재 사람은 쉬이 잊혀지는 구별됨 때문이었다.  

 탑골공원 뒤 켠 식당도 둘러보았다. 순두부찌개와 닭개장이 한 끼에 2000원이었다. 해장국은 1500원이고 이발 비는 3500원 염색 비는 5000원 이었다. 커피는 한 잔에 보통 100원이고 300원 짜리도 있긴 했다. 주인아저씨 말에 따르면 맥스웰 커피가 100원이고 맥심이 300원이라 하셨다. 두 개를 다 마셔보았지만 100원 짜리가 더 맛났다. 내 입맛은 이렇듯 값나가는 것을 구별 못할 정도로 둔감하다.

 식당에 가서 순두부찌개를 시켰다. 김치와 무채가 찬으로 나왔다. 밥은 다소 오래된 듯 했지만 먹을 만했다. 이렇게 팔아도 이윤이 남을까 궁금했지만 영업 비밀까지 캐낼 수는 없었다. 소주 한 병에 2000원이고 반병에 1000원 하는 가격 구조도 신기하였다. 옆 테이블엔 어르신 네 명이 불고기 백반을 나눠 먹고 있었는데 냄비 하나에 15000원 정도 하니 그 동네 어른들 중에선 돈 꽤나 있는 축에 속하는 듯 했다.  

 



  

 

 

 

 

 

 

 

 

  

 낙원 상가 4층으로 발길을 뗀다. 실버 영화관이 있다. 일반은 7000원이고 57세 이상은 2000원만 내면 된다. 영화는 벤허와 같은 오래된 작품이다. 표 끊는 할머니에게 여쭈어보니 어르신이 영화를 보고 돌아갈 땐 공짜 표 하나를 더 준다고 한다. 2000원으로 영화 두 편을 볼 수 있는 구조다. 꽤나 좋지 아니한가.

 헌데 극장 안엔 사람이 세 명밖에 없었다. 노인 분 둘이랑 중년 남자 하나였다. 영화 비는 저렴하나 사람이 오지 않으니 누구를 위한 할인인지 좀 더 곱씹어 볼 일 이다.

 밥을 무료로 준다는 복지관으로 향한다. 하루에 3000분 정도가 여기서 밥을 먹는단다. 나물 두세 개를 얹은 비빔밥이랑 시래기 국 그리고 김치 몇 개가 전부다. 헌데 밥이 꽤나 맛깔나게 보였다. 어르신들이 치우기 힘들다 보니 자원봉사자들이 중간 중간 거들곤 했다. 정겨웠다.

 항상 잘 구획된 곳만 지나다 보니 서울의 속살을 이제야 접한 듯하다.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듯 말끔한 청계천 뒤엔 잡상인들의 울음이 있고 한산한 탑골공원 주위엔 오갈 때 없는 노인이 가득했다.

 생각이 번잡하게 꼬리를 물며 일어났다. 2000원 짜리 밥을 먹으며 내 안에 숨어있는 계급의식에 낯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조금은 지저분한 거리에서 위생(衛生)이란 이름으로 격리된 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향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히틀러는 인종으로 사람을 구획 짓고 한국은 자본으로 사람을 구분 짓는다. 그 구분의 명료함이 어떤 줄서기보다 명쾌했다. 자본주의란 태생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으니 계란으로 바위 치는 말은 삼가려 한다. 이제야 세상을 배워가는 미욱함을 알기에 더더욱 조심스럽다. 정녕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으려나. 몇 시간 후 난 테이크아웃 커피점에서 오늘 식사에 값하는 음료를 마셨더랬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0-03-01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은 시간에 뭔가를 막 남기고 있으시군요 ㅋ
그 Old Man 이 뭘 의미하는 것일까? 하는 물음을 해보는 밤입니다~

바밤바 2010-03-01 01:42   좋아요 0 | URL
낼 출근이라 이 밤의 끝을 잡고 있답니다. 껄껄 ㅎㅎ

Mephistopheles 2010-03-01 0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근래들어 생기기 시작한 서울의 '공원'에 대단한 염증을 느끼고 있는 중이랍죠. 도시 한가운데 녹지공간을 만든다는 취지는 당연히 곱게 받아들여야하지만 녹지라기 보다 위정자들의 선전간판처럼 불편하게 보일 뿐이에요.

결국 뉴욕의 센트럴 파크의 저급한 이미테이션일 뿐이지요.

바밤바 2010-03-01 20:07   좋아요 0 | URL
ㅎ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긴 한데 누구를 위한 좋은 의도인지는 고민이 부족한 듯. 회사 다니면서 이런 관료제의 폐해에 대한 불편함은 조금 무뎌진 듯 합니다. ^^ 껄껄

반딧불이 2010-03-01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밤바님이 돌아온 그 거리가 노인을 위한 거리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두고봐야겠지요. 거기서 더 들어가면 아주 오래된 골목들이 처마를 맞대고 있었습니다. 두사람이 나란히는 도저히 지나갈 수 없는 거리였어요. 화덕에 구어내는 모듬생선과 찌그러진 양재기에 담긴 계란찜도 먹을 수 있답니다.

바밤바 2010-03-01 20:08   좋아요 0 | URL
오.. 삶과 이어진 거리가 되겠네요. 자본으로 구획지어진 벽이 이렇듯 허물어지는 일이 많았으면 합니다. ^^

페크pek0501 2010-03-05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사회에서 노인문제는 따지고 보면 계급문제라는 말이 있습니다. 노인 차별은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돈이 많은 노인에겐 해당되지 않으니까요. 노인문제 해결의 출발점은 바밤바님처럼 이렇게 관심 갖는 일에 있을 듯해요. 우리 모두 늙습니다만 이걸 잊고 사는 것 같아요.

바밤바 2010-03-07 00:31   좋아요 0 | URL
우리 나라의 대부분 사안은 계급문제인 듯 해요. 다들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려 하고 언론 또한 거대담론을 다루기엔 '학술지'가 아니기에 접근을 꺼리는 경향이 있죠.
요즘 미시 폭력에 대한 고민이 많은데 거기서도 계급 문제를 느끼곤 합니다. 아직 젊으니까 힘을 기울여 세상을 좀 더 좋은방향으로 바꾸고 싶어요. 자잘한 불화나 고민을 뛰어넘어서 그들과 제가 함께 힘을 모았으면 합니다. 헤헤

2010-03-05 1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07 0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피 튀기는 장면이 아름답다. 잘 만들었다. 헌데 헐겁다. 라이조의 캐릭터는 공감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사무라이 정신이 극한으로 표출돼 있다. ‘피구왕 통키’와 ‘드래곤볼’을 비판하던 이들이 종종 이야기하던 사무라이 정신 말이다.

 오리엔탈리즘도 함량과잉이다. 총보다 강한 칼로 적을 베어 나간다. 피를 흘려도 참고 뼈가 으스러져도 이겨낸다. 서양이 바라보는 동양의 무술세계는 이렇듯 그저 강함이다. 정신력으로 육체를 보존하고 불가능함을 가능으로 만든다. 이런 암살자에게 인간적 매력은 기대하기 힘들다.

 재미있는 건 후반부다. 특공대의 총이 칼을 이긴다. 사카모토 료마의 말을 되새겨 봐도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다. 바래진 과거를 붙잡으려는 헛된 노력만큼 닌자의 칼은 시대착오적이다. 조금 과하게 해석하자면 동양의 정신이 서양의 물질에 패하는 장면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들이 사는 절벽 사이의 암자 또한 시대와 그들의 불협화음을 나타낸다. 푸치니가 나비부인을 통해 바라본 서양인의 눈에 비친 동양이 여전히 엄전하다. 

 

 

 

 

 

 

 

 

 

 

 

 

 

 

 서양의 암살자는 다르다. 안토니오 반델라스가 ‘어쌔신’에서 보여준 암살자는 열정적이면서도 섹시하다. 그런 열정이 미워할 수 없는 악당을 만들어 낸다. 리차드 기어가 주연한 ‘자칼’에도 암살자가 나온다. 브루스 윌리스다. 그는 특이하다. 아무 감정이 없다. 그가 왜 암살자가 되었는지 영화는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특수부대에서 그 승한 재주가 타인에게 공포를 줬다는 이야기 정도만 슬쩍 흘린다. 이런 서사의 틈은 그에게 사람다움을 부여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된다. 제 가족에겐 자상한 아비이자 지아비일지도 모를 일이기에 살인자 자칼은 여러 자아 중 하나일 따름이다. ‘리플리스 게임’의 존 말코비치는 우아한 암살자의 전형이다. 클래식을 즐기고 상위 문화에 익숙한 그이다. 살인은 그런 삶을 지탱하기 위한 하부구조일 뿐이다. 그 사맛디 아니함이 정녕 매력적이다.

 헌데 비의 캐릭터는 ‘왜 사는가’에 대한 이유가 결여돼 있다. 그의 삶은 지극히 잔인한 투쟁으로 점철돼 있다. 주인공의 아픔을 공감할 수 없으니 칼부림에 흥이 나도 경탄하긴 힘들다. 무엇보다도 아름답지 않다. 육체의 빛남이 사람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결정짓기 힘들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저 잘 만들어진 피조물 같은 이에게 아름답다는 말을 한다는 건 언어가 넘쳐나는 현실의 표식이다. 그래도 그의 겉모습은 지극히 아름답다. 몸짱이 넘쳐나는 시절이라 아름답단 말도 이렇듯 정작으로 미만하다.

 비는 이 영화를 찍고 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종종 했다. 인생의 첫 번째 기회는 박진영을 만난 것이고 두 번째 기회는 스피드 레이서를 통해 워쇼스키 형제를 만난 것이며 세 번째 기회는 닌자 어쌔신을 찍은 거라고. 다들 느꼈겠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 기회는 첫 번째보다 가벼워 보이기에 견주기 멋쩍다. 어린 나이에 삶의 매듭을 스스로 묶어 버리고선 닌자 어쌔신에 대한 애정을 과하게 표하다 보니 생긴 무리수겠다.

 문제는 비의 애정만큼 영화의 만듦새가 곱지 않다는 데 있다. 물론 감독은, 영화를 통해 비의 매력을 잘 뽑아냈다. 헌데 이런 뽑아냄은 채움으로 이어지지 않고 소모로 이어질 듯하다. 라이조의 캐릭터가 너무 강해서이다. 강한 캐릭터는 배우를 죽이고 이미지만 남기곤 한다.

 타인보다 앞서가야 된단 강박을 이겨내지 못하면 비 또한 라이조 같은 괴물이 될지 모른다. 앞서 발언에서 그런 조급함을 읽어냈기에 이런 걱정이 기우(杞憂)는 아닐 테다. 괴물이 되기 싫어 괴물이 되어버린 슬픈 사내의 뒷모습이 스쳐간다. 내 앞가림도 벅차지만 그를 보고 서글퍼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ephistopheles 2010-03-01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메트릭스의 워쇼스키 형제가 만들었다 하더라도 "닌자"가 나오는 영화는 헐리웃에선 2류 영화로 밖에 보이지 않을 껍니다..^^

바밤바 2010-03-01 01:4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시간이 많으면 이연걸의 '로미오 머스트 다이'나 주윤발의 '리플레이스먼트 킬러'와도 비교하려 했는데 오늘 쓰고 싶은 글이 따로 있어 말을 줄였답니다. 이연걸과 주윤발이 아시아권에선 탑스타인데 헐리우드가선 꽤나 힘들어했다는 말을 하고 싶었거든요~ 껄껄
낼 3.1일 절인데 전 출근해야 돼요. ㅠㅠ
우앙~~~~~~~~~~~~~~~~~~~~~~

반딧불이 2010-03-01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몇 편 찜해갑니다.

바밤바 2010-03-01 23:44   좋아요 0 | URL
리플리스 게임이 괜찮았던듯^^
 

 

 사람은 각자 어금니를 꽉 쥐고 살아간다. 발톱도 벼리고 마음도 승하게 하여 거친 세상에 저항하려 한다. 일종의 위악(僞惡)이다. 사회적 진화론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사회는 그런 이들이 살아남기 쉽도록 진화했을 테다.

 협력이 인간의 효용을 증가시키고 사회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기에 선(善)한 사람이 유리하다는 주장이 있긴 하다. 좋은 평판이 개인을 빛나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행동 경제학’ 류의 생각은 사실이긴 하나 불완전하다. 좋은 평판을 가진 이가 선하다는 명제 탓이다. 좋은 평판을 가진 이는 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한 사람이다. 마음이 불편해도 웃어넘기고 제 앞가림보단 나의 앞가림을 위해 애쓴다. 오히려 가련하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부러 사람들 앞에서 강(强)한 척을 할 때가 있다. 누군가가 나를 훑어볼 때 그 불편함을 감내하기 보단 마음을 벼려 그의 눈짐작에 대항한다. 성격이 조금 까칠해지는 면도 없지 않아 있다. ‘아주 사소한 일'에 분노하거나 누군가가 내 나와바리를 침범하다고 생각되면 예전과 달리 나또한 포효하며 밥그릇을 챙기려 한다. 헌데 기분이 나쁘진 않다. 이적지 손해 보며 살아왔기에 그저 깜냥만큼 목소리를 높인다 여기며 자위한다.

 기실 나는 별 생각 없이 멍한 공상을 즐기며 멋대로 살아왔다. 자잘한 일로 어떤 이와 부딪히면 피하고 언쟁이 붙으면 그저 져주곤 했다. 그러다 보니 평판이 나름 좋았다. 영악한 이들은 이러한 온건함을 나약함으로 인식하고선 거친 말로 내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허나 대거리를 하거나 말로 드잡이하는 일의 비루함을 알기에 나를 눅이고 그들의 잗다란 자존감을 세워주곤 했다.

 이젠 유약함과도 바투 이어져있는 이런 온건함을 버리려 한다. 양보와 회피가 남겨준 자잘한 손해를 감내할 만큼 마음이 너그럽지 않기에 그렇다. 기실 이런 다잡음은 어제 나온 전기요금 탓이다.

 계량기 설치가 각각 안 돼 있어 매 달 요금을 옆집과 반으로 나누어 내곤 했다. 헌데 저번 달 요금은 그 전 달 보다 세배 넘게 나왔고 이번 달 요금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두 배 넘게 나왔다. 전기 요금은 누진제라 조금만 사용량이 많아져도 요금 상승폭이 크다. 아무래도 그네가 난방용품을 틀지 않았나 하여 물어보니 그런 일 없단다. 모녀가 같이 사는 그네들은 오히려 한전에 전화를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단다.

 갑자기 요금 체계가 변한 게 없고 나또한 새로운 가전제품을 들여놓은 적이 없기에 그들의 말처럼 요금이 잘못 나왔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헌데 이번 달에도 많은 요금이 나왔다.

 지난달과 달리 사회생활을 하며 좀 더 날카로워지고 제 앞가림에 투철해진 나다. 저번 달 보다 요금이 다소 준 것으로 미뤄 짐작해 보건데 그네가 방한 용품을 과도하게 튼 탓이 분명했다. 아마 저번 달 요금을 보고서 방한용품 사용을 급격히 줄인 탓이리라. 평소 문자로 연락을 주고받았던 터라 ‘분명’ 난방용품 쓴 적 없냐고 따졌다. 그네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자기네가 둘이니 전기를 더 쓰는 것은 당연한지라 어찌하면 좋겠냐 물었다.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닌 에둘러 제 자신을 변호하며 책임을 내게 떠넘긴 말이다.

 그렇다고 말이 아닌 문자로 대거리가 오가니 답이 나올 리 만무했다. 이런 일로 마음을 복잡하게 하기 싫어 그럼 이번 달 요금은 그쪽이 요금을 내고 다음 달부터 반반씩 내자고 했다. 전기를 아껴 쓰자는 말도 덧붙였다. 손해 본다는 생각을 갖고 한 타협안이었다. 헌데 그네는 이번 달 요금 전부가 아닌 제 몫보다 조금 더 내겠다는 ‘후려치기’를 하고선 정말 왜 요금이 더 나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로 일을 덮었다. 말이 덜 통하는 이들이기에 우선 그러자고 하며 다음 달 요금이 나왔을 때 다시금 말을 붙이기로 했다.

 그들의 그런 약사빠름이 오늘까지도 불쾌하다. 물론 내 글에선 그들이 온풍기를 안 쓴다는  거짓부렁을 주워섬긴단 전제가 깔려있다. 헌데 전기요금 체제가 잘못될 리가 정녕 드물고 하필 겨울에 요금이 많이 나왔다는 점, 본인은 일 때문에 집에 있던 적이 거의 드물다는 점에 비추어볼 때 이러한 추측은 어떤 확신같이 다가온다. 무엇보다 그네들은 거짓을 고(告)할 유인동기가 있고 타협안을 ‘후려치기’로 응대한 것으로 볼 때 전기요금 산정기준의 불확실성을 최대한 이용하려는 영악함이 있는 듯하다.

 글을 쓰다 보니 서두와 중간부는 내 억울함을 하소연하기 위한 징검다리에 불과하다. 소심해 보일 각오를 하고 이런 글을 쓴 까닭은 저번 달엔 조금 기분이 나빴을 뿐인 사안이 이번 달엔 어찌 다음 날 아침까지 찜찜함을 만들어 내냐는 의문에서 제기되었다. 그건 온건함만으론 버티기 힘든 세상사 덕에 조금은 달라진 나에 대한 탐구와도 이어져있다. 그리고 페크 님 서재의 글을 보고선 느끼는 바가 있어서이다. 참고로 그 느낌은 착잡함에 가깝다. 황석영의 단편 ‘줄 자’와 김영하의 단편 ‘이사’에서 보았던 어떤 종류의 불편함과도 궤를 같이 한다. 

  

 

 

 

 

 

 

 

 

 

 

 

 

 밥벌이를 하다 마음은 나날이 야위어지고 조금은 황폐해 진 듯하다. 논리적인 생각이 현명함이 아닌 걸 오늘의 글은 말해준다. 그래도 글은 마음의 너울댐을 꽤나 줄여 주었다. 소심한 마음을 낱낱이 토해내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다음 달 전기요금을 봤을 땐 내안의 어떤 자아가 승한 기운을 벌일지 궁금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딧불이 2010-03-01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도요금이 많이 나와서 계량기 검침원과 다툼을 벌이다 제 성질을 못이겨 머리를 깎아버린 김수영이 문득 떠오르는 글이네요. 사실 우리는 큰일 보다도 이렇게 소소한 일상에서 생기는 것들에 더 피곤해하는 것 같아요. 그냥 넘기자니 마음이 까끄럽고 얘기를 하자니 자신이 쫌스럽게 느껴지곤 해서 말이에요. 다음달 전기요금을 봤을 때 바밤바님이 보일 승한 기운 저도 못내 궁금합니다.

바밤바 2010-03-01 23:43   좋아요 0 | URL
음.. 김수영이 그런 적이 있었군요. ㅎ
반디님 말씀처럼 일상의 자잘한 부딪힘이 삶을 더 피곤하게 만드는 듯 합니다. ㅎ
회사에서 얼마나 담금질 되나에 따라서 이번 달 제 모습도 달라질듯^^
혹 제 자신이 소심한게 아닌가 살피고 있었는데 님의 댓글 덕에 마음이 놓이네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