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튀기는 장면이 아름답다. 잘 만들었다. 헌데 헐겁다. 라이조의 캐릭터는 공감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사무라이 정신이 극한으로 표출돼 있다. ‘피구왕 통키’와 ‘드래곤볼’을 비판하던 이들이 종종 이야기하던 사무라이 정신 말이다.

 오리엔탈리즘도 함량과잉이다. 총보다 강한 칼로 적을 베어 나간다. 피를 흘려도 참고 뼈가 으스러져도 이겨낸다. 서양이 바라보는 동양의 무술세계는 이렇듯 그저 강함이다. 정신력으로 육체를 보존하고 불가능함을 가능으로 만든다. 이런 암살자에게 인간적 매력은 기대하기 힘들다.

 재미있는 건 후반부다. 특공대의 총이 칼을 이긴다. 사카모토 료마의 말을 되새겨 봐도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다. 바래진 과거를 붙잡으려는 헛된 노력만큼 닌자의 칼은 시대착오적이다. 조금 과하게 해석하자면 동양의 정신이 서양의 물질에 패하는 장면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들이 사는 절벽 사이의 암자 또한 시대와 그들의 불협화음을 나타낸다. 푸치니가 나비부인을 통해 바라본 서양인의 눈에 비친 동양이 여전히 엄전하다. 

 

 

 

 

 

 

 

 

 

 

 

 

 

 

 서양의 암살자는 다르다. 안토니오 반델라스가 ‘어쌔신’에서 보여준 암살자는 열정적이면서도 섹시하다. 그런 열정이 미워할 수 없는 악당을 만들어 낸다. 리차드 기어가 주연한 ‘자칼’에도 암살자가 나온다. 브루스 윌리스다. 그는 특이하다. 아무 감정이 없다. 그가 왜 암살자가 되었는지 영화는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특수부대에서 그 승한 재주가 타인에게 공포를 줬다는 이야기 정도만 슬쩍 흘린다. 이런 서사의 틈은 그에게 사람다움을 부여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된다. 제 가족에겐 자상한 아비이자 지아비일지도 모를 일이기에 살인자 자칼은 여러 자아 중 하나일 따름이다. ‘리플리스 게임’의 존 말코비치는 우아한 암살자의 전형이다. 클래식을 즐기고 상위 문화에 익숙한 그이다. 살인은 그런 삶을 지탱하기 위한 하부구조일 뿐이다. 그 사맛디 아니함이 정녕 매력적이다.

 헌데 비의 캐릭터는 ‘왜 사는가’에 대한 이유가 결여돼 있다. 그의 삶은 지극히 잔인한 투쟁으로 점철돼 있다. 주인공의 아픔을 공감할 수 없으니 칼부림에 흥이 나도 경탄하긴 힘들다. 무엇보다도 아름답지 않다. 육체의 빛남이 사람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결정짓기 힘들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저 잘 만들어진 피조물 같은 이에게 아름답다는 말을 한다는 건 언어가 넘쳐나는 현실의 표식이다. 그래도 그의 겉모습은 지극히 아름답다. 몸짱이 넘쳐나는 시절이라 아름답단 말도 이렇듯 정작으로 미만하다.

 비는 이 영화를 찍고 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종종 했다. 인생의 첫 번째 기회는 박진영을 만난 것이고 두 번째 기회는 스피드 레이서를 통해 워쇼스키 형제를 만난 것이며 세 번째 기회는 닌자 어쌔신을 찍은 거라고. 다들 느꼈겠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 기회는 첫 번째보다 가벼워 보이기에 견주기 멋쩍다. 어린 나이에 삶의 매듭을 스스로 묶어 버리고선 닌자 어쌔신에 대한 애정을 과하게 표하다 보니 생긴 무리수겠다.

 문제는 비의 애정만큼 영화의 만듦새가 곱지 않다는 데 있다. 물론 감독은, 영화를 통해 비의 매력을 잘 뽑아냈다. 헌데 이런 뽑아냄은 채움으로 이어지지 않고 소모로 이어질 듯하다. 라이조의 캐릭터가 너무 강해서이다. 강한 캐릭터는 배우를 죽이고 이미지만 남기곤 한다.

 타인보다 앞서가야 된단 강박을 이겨내지 못하면 비 또한 라이조 같은 괴물이 될지 모른다. 앞서 발언에서 그런 조급함을 읽어냈기에 이런 걱정이 기우(杞憂)는 아닐 테다. 괴물이 되기 싫어 괴물이 되어버린 슬픈 사내의 뒷모습이 스쳐간다. 내 앞가림도 벅차지만 그를 보고 서글퍼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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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0-03-01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메트릭스의 워쇼스키 형제가 만들었다 하더라도 "닌자"가 나오는 영화는 헐리웃에선 2류 영화로 밖에 보이지 않을 껍니다..^^

바밤바 2010-03-01 01:40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시간이 많으면 이연걸의 '로미오 머스트 다이'나 주윤발의 '리플레이스먼트 킬러'와도 비교하려 했는데 오늘 쓰고 싶은 글이 따로 있어 말을 줄였답니다. 이연걸과 주윤발이 아시아권에선 탑스타인데 헐리우드가선 꽤나 힘들어했다는 말을 하고 싶었거든요~ 껄껄
낼 3.1일 절인데 전 출근해야 돼요. ㅠㅠ
우앙~~~~~~~~~~~~~~~~~~~~~~

반딧불이 2010-03-01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몇 편 찜해갑니다.

바밤바 2010-03-01 23:44   좋아요 0 | URL
리플리스 게임이 괜찮았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