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이 지은 ‘그대가 본 이 거리를 말하라’엔 종삼이란 말이 나온다. 종로 3가를 말하는 것으로 1960년 대 까지만 해도 그곳엔 사창가가 많았다 한다.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선 ‘종삼가자’란 말이 ‘떼씹’ 하러 가잔 말이었다고.
학교에서 마을버스 2번을 타고 종로로 자주 가는 편이다. 종로 3가 탑골 공원 옆을 종종 지나곤 했다. 예쁜 건물들 속에서 낙원 상가는 흉측해 보였고 탑골공원은 스산했다. 직접 부딪히지 않아서 그런 거부감이 점점 더 농익었을 터다.
오늘 탑골공원과 종로 3가를 배회했다. 서울의 겉과 달리 그 속살은 여전히 사람으로 북적됐고 향수(鄕愁)라고 하기 뭣한 지친 얼굴로 가득했다.
11시 경에 당도한 탑골 공원엔 손에 꼽을 정도로 어르신들이 적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정부가 담배도 못 피우게 하고 술도 못 마시게 하여 다들 흩어졌다고 한다. 그 많던 노인들은 종묘공원으로 가거나 복지관에서 밥을 빌어먹는단다. 그래도 밥 때가 되면 원각사에서 운영하는 무료급식에 사람이 몰린다 하니 다행이었다.
탑골공원 앞 쪽에선 순국선열을 기리기 위해 33인의 유족들을 모셔놓고 3.1절 기념행사를 한다고 분주했다. 탑골공원에 마실 나온 어르신들도 참가할 수 있으나 그들을 위한 다과상은 보이지 않았다.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사람이 너무 몰리면 직접 통제하기도 한단다. 그 묘한 분리됨이 편치 않았다. 과거 사람은 길이길이 기억되고 현재 사람은 쉬이 잊혀지는 구별됨 때문이었다.
탑골공원 뒤 켠 식당도 둘러보았다. 순두부찌개와 닭개장이 한 끼에 2000원이었다. 해장국은 1500원이고 이발 비는 3500원 염색 비는 5000원 이었다. 커피는 한 잔에 보통 100원이고 300원 짜리도 있긴 했다. 주인아저씨 말에 따르면 맥스웰 커피가 100원이고 맥심이 300원이라 하셨다. 두 개를 다 마셔보았지만 100원 짜리가 더 맛났다. 내 입맛은 이렇듯 값나가는 것을 구별 못할 정도로 둔감하다.
식당에 가서 순두부찌개를 시켰다. 김치와 무채가 찬으로 나왔다. 밥은 다소 오래된 듯 했지만 먹을 만했다. 이렇게 팔아도 이윤이 남을까 궁금했지만 영업 비밀까지 캐낼 수는 없었다. 소주 한 병에 2000원이고 반병에 1000원 하는 가격 구조도 신기하였다. 옆 테이블엔 어르신 네 명이 불고기 백반을 나눠 먹고 있었는데 냄비 하나에 15000원 정도 하니 그 동네 어른들 중에선 돈 꽤나 있는 축에 속하는 듯 했다.
낙원 상가 4층으로 발길을 뗀다. 실버 영화관이 있다. 일반은 7000원이고 57세 이상은 2000원만 내면 된다. 영화는 벤허와 같은 오래된 작품이다. 표 끊는 할머니에게 여쭈어보니 어르신이 영화를 보고 돌아갈 땐 공짜 표 하나를 더 준다고 한다. 2000원으로 영화 두 편을 볼 수 있는 구조다. 꽤나 좋지 아니한가.
헌데 극장 안엔 사람이 세 명밖에 없었다. 노인 분 둘이랑 중년 남자 하나였다. 영화 비는 저렴하나 사람이 오지 않으니 누구를 위한 할인인지 좀 더 곱씹어 볼 일 이다.
밥을 무료로 준다는 복지관으로 향한다. 하루에 3000분 정도가 여기서 밥을 먹는단다. 나물 두세 개를 얹은 비빔밥이랑 시래기 국 그리고 김치 몇 개가 전부다. 헌데 밥이 꽤나 맛깔나게 보였다. 어르신들이 치우기 힘들다 보니 자원봉사자들이 중간 중간 거들곤 했다. 정겨웠다.
항상 잘 구획된 곳만 지나다 보니 서울의 속살을 이제야 접한 듯하다. 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듯 말끔한 청계천 뒤엔 잡상인들의 울음이 있고 한산한 탑골공원 주위엔 오갈 때 없는 노인이 가득했다.
생각이 번잡하게 꼬리를 물며 일어났다. 2000원 짜리 밥을 먹으며 내 안에 숨어있는 계급의식에 낯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조금은 지저분한 거리에서 위생(衛生)이란 이름으로 격리된 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향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히틀러는 인종으로 사람을 구획 짓고 한국은 자본으로 사람을 구분 짓는다. 그 구분의 명료함이 어떤 줄서기보다 명쾌했다. 자본주의란 태생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으니 계란으로 바위 치는 말은 삼가려 한다. 이제야 세상을 배워가는 미욱함을 알기에 더더욱 조심스럽다. 정녕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으려나. 몇 시간 후 난 테이크아웃 커피점에서 오늘 식사에 값하는 음료를 마셨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