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었다. 희붐히 날이 밝았다. 어둑새벽은 가뭇없이 제 자리를 내주었다. 자잘한 걱정으로 끌탕 중이었던 터라 아침 바람이 제법 소슬하게 느껴졌다. 어디선가 아릿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아랫집에서 아침을 하는 중이었나 보다. 돌아가신 아비의 모습이 방불하게 눈앞에 떠올랐다. 마음이 푼푼하지 못한 탓이다. 서울의 아침 냄새는 아직 어색하다. 홀로 객수(客愁)에 젖어 우두커니 허공을 응시한다.  

 여전히 현실을 옳게 보지 못하고 에돌아 가는 요즘은, 시름도 나름 운치있는 터였다. 그리고선 고리삭은 샌님 같이 다시 눕는다. 잔약한 신경을 이겨내지 못한 탓이다. 공부를 해야 하는데 이렇듯 해찰을 부린다. 오디오에 바투 다가앉아 시디를 고른다. 음악에 미혹된 허랑한 생활도 이젠 그 종착점이 보이는 터. 여투어 둔 용돈으로 사 모은 시디가 꽤나 많아 나름 안식을 준다. 홀로 입술을 감빨며 손 가는데로 시디를 집는다.  

 슈만이다. 슈만 교향곡 3번. 라인. 실질적으로 마지막 교향곡이었다 한다. 도입부부터 심상찮다. 슈만이 정신병과 꽤나 씨름할 때 만들어진 이 곡은, 그래서인지 연민을 느끼게 하는 매력이 있다. 잘 듣던 시디가 튄다. 구입한지 한달도 안된 오디오가 말썽이다. 싼 게 비지떡이다. 여투어 둔 돈으로 산 오디오였다. 역시 메이커가 좋다는 생각을 한다. 다시 오디오를 사야 하나. 고민이다. 시나브로 핍진해져 가는 지갑이 자뭇 깊은 고민을 하게 한다. 서툰 취미마저 헤살 놓는 오디오가 지극히 얄밉다. 눈을 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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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도 바람은 거셌다. 말은 낯설었고 날씨는 짓궂었다. 발은 붓고 발바닥은 헤졌다. 그렇게 제주도 올레길을 걸었다. 사람은 좋았다. 다들 길을 가르쳐 준다며 말을 걸었다. 밥집에선 뭐가 맛있는지 친절히 설명해 주더랬다. 5일을 짧고 하루는 길었다. 지친 몸은 경치 감상을 사치로 만들고 무거운 가방은 제 몸하나 건사하기 힘들게 했다. 그래도 좋았다.  

 거센 바람은 땀을 식혀줬다. 낯선 말은 마음을 다습게 했다. 짓궂은 날씨는 풍경에 새로운 옷을 입혔다. 어느새 도시의 삶이 익숙해진 몸은 쉬이 노곤해졌지만 마음만은 활기찼다. 바다 냄새는 연인의 아찔한 향내보다 더 진한 울림을 줬고 바다 소리는 여인의 간지런 속삭임 보다 더 황홀했다. 셋이 간 여행이었지만 난 항상 혼자이고 싶었고 또 홀로 걷는 길이 많았다. 서울에서 넘쳤던 말이 제주에선 궁핍했고 그래서 마음은 넉넉했다.  

 얼굴과 팔은 검게 변하고 눈두덩의 다크써클은 진해졌다. 기분은 삶아 빤듯 하얘지고 둔탁했던 머리는 너른 제주의 거리마냥 훨씬 한가해졌다. 괜시리 마음만 번잡했던 서울살이에 쉼표 하나 찍으려 떠났던 제주. 마음을 비워내고 그만큼 마음을 채웠으니 이제 다시 봄날이다. 조금은 튼실해진 다리가 사진이 아닌 몸으로 추억을 증명한다. 아로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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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7-13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올해초 올레길을 혼자 걷고 왔습니다.
참 좋지요 ^^
사진도 몇 장 올려주시지 그랬어요..
(지도 귀찮아서 안하면서 ㅎㅎㅎ)

바밤바 2009-07-13 23:24   좋아요 0 | URL
디카를 들고 간 이가 제가 아니라서.. ㅎ
아마 제주도 사진 보려면 좀 있어야 할 듯
친구한테 파일 받으면 그때 올리도록 하죠. 잘 나온 것 위주로 ㅋ
 

 

 그의 꿈은 소박했다. 극장 배우와 결혼하는 것. 하지만 그녀는 마음을 열지 않았다. 슬픔은 컸다. 자살을 기도하며 약을 먹었다. 그리고선 잠이 들었다. 죽음과 맞닿은 꿈은 환상적이었다. 깨고 싶지 않은 몽환이었다. 눈을 떴다. 자살 실패였다. 그래도 꿈은 생생했다. 악상이 샘솟았다. 악보에 꿈을 그렸다. 5악장으로 이뤄진 교향곡이 만들어졌다. 그때서야 사람들은 그를 칭송했다. 몇몇은 지나치게 열광했다. 유명한 교향곡 작곡가가 없는 프랑스에서 제일가는 음악가가 되었다. 배우인 그녀와 결혼도 했다. 최초의 표제음악이라 불리는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 탄생 비화다.

 죽음을 꿈꾸다 낙원에 닿았다. 명성도 부도 넘쳤다. 관현악을 잘 다루는 천재란 찬사가 잇달았다. 하지만 그만의 베아트리체와 속살이 닿자 심장이 식어 버렸다. 둘은 헤어졌다. 그의 작품 또한 점점 범작에 가까워진다. 환상 교향곡의 명성으로 근근이 버티는 정도였다. 타나토스(죽음의 충동)에 의지했던 전도유망한 작곡가의 명성은 시나브로 옅어져 간다. 환상 교향곡을 제외하곤 괴테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파우스트의 겁벌’ 정도만이 후세에 회자된다. 결국 그는 표제음악의 창시자로만 이름을 남긴다. 모든 게 한바탕 꿈같다.

 그들의 꿈도 나름 소박하다. 경제적 안정을 얻는 것. 하지만 세상은 쉬이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아픔은 컸다. 방황하기 시작한다. 몇몇은 자살을 꿈꾼다. 하지만 두터운 현실은 자살마저 용납지 않는다. 소수를 제외하곤 모두가 패잔병이다. 다들 환상을 꿈꾼다. 죽음의 충동을 이기기 위한 현실 도피다. 그리고선 그들 각자의 환상 교향곡을 연주한다. 지휘자가 누군지는 모른다. 세기말적 불안이 가득한 뭉크의 그림처럼 핍진한 얼굴이 거리에 가득하다. 반전은 없다. 거친 삶의 무한 반복이다.

 환상 교향곡만으론 세상을 표현하기 버겁다. 점점 레퀴엠(진혼곡)에 자리를 내줘야 할 지  모른다. 모두가 낙원에 닿을 순 없다. 혹 낙원의 속살에 다다른다 해도 쉬이 질려버릴지 모른다. 거친 불꽃은 쉬이 사위어드는 법이기에 그렇다. 타나토스가 아닌 에로스가 답이다. 긍정의 힘 말이다.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 같은 희망의 선율이 필요하다. 설렘을 주는 엘가의 사랑의 인사도 좋다. 현실 도피의 환상 교향곡이 아닌 현실을 수긍하고 연대하는 합창 교향곡을 부를 때다.   

 모든 게 한바탕 꿈이었으면 할 정도로 힘든 청춘도 있을 테다. 제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세상에 독설을 내 뱉는 젊음도 있을 것이다. 비루한 현실은 쉬이 바뀌지 않는다. 제 깜냥에 맞춰 꿈을 낮추거나 실력을 키울 수밖에 없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그의 저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말하지 않았나. ‘위대함이란 다른 길을 찾는 게 아니라 익숙한 길을 다른 눈으로 보는 것’이라고. 질식할 만큼 세상이 팍팍하진 않다. 전체 5악장 중 이제 2악장 전개부에 다다른 젊음이다. 남은 악장이 어떠한 선율을 만들어낼 지 아직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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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7-06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엔 환상교향곡의 4악장이 너무 좋았는데 점점 5악장이 좋게 들립니다. 뭐랄까.. 머릿속을 마구 휘젓는 느낌이랄까요? 그림 그리면서 듣기가 아주 좋습니다.
봄에 더 끌리는 곡인데.. 생각난김에 오늘 좀 끄적이면서 다시 한번 들어봐야겠네요 ㅋ

그나저나 마르셀 프루스트도 "눈" 에 대해 얘기했군요..ㅎ

바밤바 2009-07-11 22:19   좋아요 0 | URL
ㅎ 댓글이 늦었네요~ 제주도 올레길 다녀온다고 어젯 밤에 서울 도착했어요 ㅎ
환상 교향곡은 카라얀 께 좋더라구요. 다른거 많이 듣진 않았지만서도 ㅎ
 

 

 주말에 산에 갔다. 학교 뒤 북악산. 하지만 가다, 중지 곧 할 수밖에 없었다. 3시 이후엔 출입이 통제되기 때문이었다. 청와대 뒷산이다 보니 군인이 가로 막았다. 삼청공원으로 빠져 나왔다. 그리고선 친구와 연대를 가기로 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사는 곳과 연대가 얼마나 떨어졌는지 궁금했다. 삼청동 맛 집을 지나 경복궁을 에둘렀다. 그리고선 놓인 길을 줄곧 걸었다. 터널 하나를 지나자 독립문이 나왔다. 주위 공사를 한다고 번잡했다. 프랑스의 개선문을 따라한 모양새가 왠지 초라해 보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차가 가는 길은 있되 사람이 가는 길이 없었다. 터널을 지나려면 산을 넘어야 할 듯했다. 길가 옆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다. 그리고선 계속 위로 올랐다. 샛길이 보이며 유레카를 외쳤다. 하지만 군사훈련지역이라며 둘러 가는 길을 강요했다. 도리가 없었다. 능선을 타고 계속 돌았다. 중간에 비도 조금 오곤 했다. 신발이 불편했는지 발뒤꿈치는 까졌다. 욱신거리며 걸었다. 50여분을 걷자 주택 단지가 나왔다. 무작정 내려갔다. 산을 하나 넘은 듯했다. 북아현동이란 표시가 눈에 띄었다. 헌데 연대와 반대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길 가던 아줌마에게 길을 여쭙고 난 뒤 다시 제 방향으로 틀었다. 여전히 연대는 멀었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생각났다. 나의 고도는 기다리는 게 아니라 다가가는 것이었다. 별 의미도 없어 보이는 고도를 향해 그렇게 우두커니 걷고 걸었다. 산을 에두르며 내려오자 서구식 건물이 보였다. 연대인줄 알았으나 이대였다. 이대 건물이 참 좋다는 생각을 했다. 던킨에 가서 스무디와 도넛을 먹고 다시 연대를 찾아 나섰다. 헌데 연대는 지척에 있었다.

 세브란스 병원을 지나 연대 정문에 닿았다. 산을 넘는데 만 한 시간 반이 걸렸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다. 왠지 모를 성취감이 들었다. 이런 성취감마저 사치가 될지 모를 어른의 시간이 지척에 있어서인지 쾌감이 더 컸다. 집으로 갈 때 버스를 탔다. 버스는 한 시간 반의 산행이 한 정거장에 불과함을 보여줬다. 그 짧은 거리를 닿기 위해 나의 발은 까지고 다리는 아렸다.

 그렇게 한 편의 부조리극이 끝났다. 찰나의 시간도 분화해서 튼실하게 자신을 갈고 닦아야 생존하는 시절. 아무의미 없는 부조리극이야 말로 삶의 속살에 더 가까이 데려다 주지 않을까. 유달리 후덥지근하던 며칠 전 주말은 내가 얼마나 가치 없는 일에 매진할 수 있는지 알게 해줬다. 좀 더 무용한 일을 찾아 매진하고 싶다. 그래야 뭐든지 중요한 자잘한 일상이 가벼워 보일 듯하다. 내 마음을 부유하는 무거운 공기 또한 제 본래 모습을 찾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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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7-01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 기회가 되면 그 길을 같이 걸어도 좋을텐데~ 전 지름길을 알고 있답니다 ㅎㅎ

바밤바 2009-07-01 19:17   좋아요 0 | URL
오? 진짜요? 진짜 같이 가요~ 시간내주세요^^ㅋ

2009-07-02 14: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03 2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학교를 졸업하려면 워드 1급을 따야 된다. 학교가 실시하는 삼품제 때문이다. 삼품은 인성품, 국제품, 정보품으로 이뤄졌다. 그 중 정보품이 내겐 버겁다.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하기에 그렇다. 그나마 워드 1급을 따면 정보품 인증을 해준다기에 2주 전 필기 시험을 봤다. 다들 기출문제만 시험 전 날 보고 들어가면 합격한다 그랬다. 공부 하나도 안하고 땄다는 형도 있었다. 근데 떨어졌다. 그리고선 우울해졌다. 

 이번 금요일에 다시 시험을 봐야 한다. 졸업을 해야 하기에 그렇다. 아니면 유예생이 된다. 학생인 것도 학생이 아닌 것도 아닌 주변인이 돼 버린다. 원서는 하반기에 넣을 작정이니 직장인이 되기에도 아직 이르다. 2주 전 우울이 가슴에 멍울지려 한다. 

 주위에 바지런 떨며 살았던 아해들은 다들 제 밥벌이를 하는 듯하다. 나처럼 밥벌이에 무심하고 고급문화에 취해 있는 한량들은 절반 정도 밥벌이를 한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제목처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대한 얕은 고민도 들기 시작한다. 김훈 선생 또한 밥벌이는 지겹다며 기자질 하기 싫었던 젊은 시절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지 않았나. 어쩌면 밥벌이를 해야 하는 생활을 유예 시키기 위해서 나름 현실도피에 전념하던 1년이 아니었나 한다. 

 덕분에 박학다식해지고 심미안은 깊어졌다. 글은 더 간소해지고 말은 다소 누그러졌다. 어미는 아들을 근심하고 아들은 어미를 달랜다. 밥은 여전히 달고 닳고 닳은 인연들은 무람없이 포근하다. 다만 관자놀이가 아파 올 때가 있으니 사람 구실을 어서 해야 한다는 조급증이 들 때다. 이런 안빈낙도도 하루 이틀이지 올해를 넘기면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주위의 형들 마냥 심신이 핍진해 질 것이 분명할 터. 마음을 다잡고 살아야겠다는 반성없는 울림만 가슴에 여울진다. 

 나보다 3살 어린 기집애는 나이 들고 보면 지금의 번민도 다 아름다울 거라는 선문답 같은 소릴 했더랬다. 소설가 황석영이 자서전 같은 소설 '개밥바라기 별'에서 '대위'라는 인물을 통해 말하지 않았나.   

 '사람은 오늘은 산다고' 

 친구들이 종종 몽상가로 치부하는 나는 과거에 몸을 두고 내일을 살았다. 삿된 말이 귓가를 간지럽히니 아직 수련이 덜 된 모양이다. 이 글도 내일 읽으면 부끄러운 허황된 수사일 터. 하지만 나 또한 오늘을 살아야겠기에 내일의 나를 개의치 않는 오늘의 내가 돼야 할 듯하다. 말이 말로써 근심을 이어나가니 술을 권해 줄 친구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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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7-01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다보니 '김훈' 과 '직장인' 이라는 단어가 눈에 콕 박히네요. 김훈의 글가운데 밥벌이에 관해 아들에게 하는 얘기가 생각납니다. 대략 줄이면 "나는 내가 벌테니, 너는 네가 벌어라" 일텐데요. 꽤 오래 전에 읽었지만 그 구절들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그리고 직장인.. 부디 음악, 책들이 주는 여유가 계속 함께 하셨음 좋겠습니다. ㅋ



바밤바 2009-07-01 16:1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써클님 ㅋ 김훈 씨 글 참 좋죠~~ ㅎ

무해한모리군 2009-07-01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 짝에 소용도 없는 걸 하라고 하는군요 거 참!!

바밤바 2009-07-01 19:15   좋아요 0 | URL
그런게 인생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이고 있답니다.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