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산에 갔다. 학교 뒤 북악산. 하지만 가다, 중지 곧 할 수밖에 없었다. 3시 이후엔 출입이 통제되기 때문이었다. 청와대 뒷산이다 보니 군인이 가로 막았다. 삼청공원으로 빠져 나왔다. 그리고선 친구와 연대를 가기로 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사는 곳과 연대가 얼마나 떨어졌는지 궁금했다. 삼청동 맛 집을 지나 경복궁을 에둘렀다. 그리고선 놓인 길을 줄곧 걸었다. 터널 하나를 지나자 독립문이 나왔다. 주위 공사를 한다고 번잡했다. 프랑스의 개선문을 따라한 모양새가 왠지 초라해 보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차가 가는 길은 있되 사람이 가는 길이 없었다. 터널을 지나려면 산을 넘어야 할 듯했다. 길가 옆 아파트 단지로 들어섰다. 그리고선 계속 위로 올랐다. 샛길이 보이며 유레카를 외쳤다. 하지만 군사훈련지역이라며 둘러 가는 길을 강요했다. 도리가 없었다. 능선을 타고 계속 돌았다. 중간에 비도 조금 오곤 했다. 신발이 불편했는지 발뒤꿈치는 까졌다. 욱신거리며 걸었다. 50여분을 걷자 주택 단지가 나왔다. 무작정 내려갔다. 산을 하나 넘은 듯했다. 북아현동이란 표시가 눈에 띄었다. 헌데 연대와 반대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길 가던 아줌마에게 길을 여쭙고 난 뒤 다시 제 방향으로 틀었다. 여전히 연대는 멀었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생각났다. 나의 고도는 기다리는 게 아니라 다가가는 것이었다. 별 의미도 없어 보이는 고도를 향해 그렇게 우두커니 걷고 걸었다. 산을 에두르며 내려오자 서구식 건물이 보였다. 연대인줄 알았으나 이대였다. 이대 건물이 참 좋다는 생각을 했다. 던킨에 가서 스무디와 도넛을 먹고 다시 연대를 찾아 나섰다. 헌데 연대는 지척에 있었다.
세브란스 병원을 지나 연대 정문에 닿았다. 산을 넘는데 만 한 시간 반이 걸렸다는 걸 그제서야 알았다. 왠지 모를 성취감이 들었다. 이런 성취감마저 사치가 될지 모를 어른의 시간이 지척에 있어서인지 쾌감이 더 컸다. 집으로 갈 때 버스를 탔다. 버스는 한 시간 반의 산행이 한 정거장에 불과함을 보여줬다. 그 짧은 거리를 닿기 위해 나의 발은 까지고 다리는 아렸다.
그렇게 한 편의 부조리극이 끝났다. 찰나의 시간도 분화해서 튼실하게 자신을 갈고 닦아야 생존하는 시절. 아무의미 없는 부조리극이야 말로 삶의 속살에 더 가까이 데려다 주지 않을까. 유달리 후덥지근하던 며칠 전 주말은 내가 얼마나 가치 없는 일에 매진할 수 있는지 알게 해줬다. 좀 더 무용한 일을 찾아 매진하고 싶다. 그래야 뭐든지 중요한 자잘한 일상이 가벼워 보일 듯하다. 내 마음을 부유하는 무거운 공기 또한 제 본래 모습을 찾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