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평온함 혹은 불필요하지만 감미로운 그 무엇이 내 존재의 밑바닥까지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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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린 머리에게 물어봐 - The Gorgon's Look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0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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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추리소설만 읽는다. 간만에 의지가 솟아나니, 이런때 또 바짝 읽어주어야지.

 

<잘린 머리에게 물어봐>의 특색은 예술과 살인의 조합인데, 사실 이런 조합도 흔치 않은 건 아니다. 일본소설에서는 많이 보지 못했지만.

 

라이프캐스팅(?)이라는 방법이 사람의 눈을 석고로 뜰수 없기 때문에 눈을 감은 작품만 만들 수 있고 그 결과로 종교적인 색채를 보인다는 건 처음 알았다. 이 부분에 착안하여 머리를 도난당한 석고상과 그 모방살인으로 연결한 부분이 특히 좋았다. 예술이 현실의 정교한 모방에 머물러선 안되고 한발 더 나아가 새로운 세계를 보여줘야 하니 참 어려운 작업이지 싶다. 잘라간 석고상 머리를 추적하다보면 왜 머리만 잘라갔는지 의미가 밝혀진다. 잘린 머리의 의미는 과거의 진실과 연결되고 모든 비밀이 풀리면서 사건이 해결된다. 

 

정교하게 짜여진 이야기라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두께는 좀 있는 편이지만 추천할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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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여관 - 아리스가와 아리스 미스터리 단편집 작가 아리스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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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가와 아리스는 전에 <쌍두의 악마>를 보다 지겨워서 그만뒀던터라 다시 읽을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신간을 슬쩍 열어보니 단편집이라 도전했다.

 

역시 단편집 추리소설은 심심풀이로 재밌게 읽을 수 있어서 좋다. 이번 책을 통해서 아리스가와 아리스에 대한 인식을 조금 바꾸게 된 것도 좋은 점.

 

표제작 <어두운 여관>도 나쁘지 않지만, <호텔 라플레시아>가 내 스타일. 오키나와에 대한 로망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ㅋㅋ

 

이국적인 남쪽 섬의 호텔에서 머무르면서 추리게임에 참가하는 것, 생각만 해도 좋구나.

<이상한 손님>도 괜찮았는데 <201호실의 재난>는 상대적으로 좀 별로였다.

 

탐정 캐릭터인 히무라 히데오의 성격은 여느 추리소설의 주인공과 비슷하게 꼼꼼하고 비사교적이고 조금은 잘난체한다. 첫 만남인데 이미 알던 사이같이 친근하다. 이런 점도 식상하다기보단 그냥 정겹다.

다른 단편도 있으면 찾아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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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머리 가문의 비극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이든 필포츠 지음, 이경아 옮김 / 엘릭시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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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에서 명민한 주인공은 이야기의 진행을 결정하고 범인을 밝혀내 독자에게 통쾌함을 준다. 뒤팽과 셜록홈즈, 포아로부터 샘 스페이드, 필립 말로까지 얼마나 많은 탐정들이 깔끔하게 사건을 해결했던가? 그들의 회색 뇌세포를 따라가다보면 어느덧 범죄자의 꼬리를 밟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명민한 주인공들이 사건을 해결해 줄 것을 알기에 미스터리가 깊어져도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둔한 탐정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감정에 휘말려 사건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고 믿는 그런 사람 말이다.

 

 

<붉은 머리 가문의 비극>의 주인공 마크 브렌던은 젊은 나이에 빠른 승진을 한 런던경시청 형사다. 그가 범죄수사에 주로 사용하는 방법은 '연역법'으로, 사건현장을 과학적으로 검증한 후 첫 현장을 토대로 사건개요를 추적해나가는 방식이다. 스스로를 '일과 결혼한 남자'라고 말하며 일에만 몰두하던 그도 어느덧 35세가 되니 결혼을 통해 인생에 빛을 더하고 싶어진다. 그런 중에 떠난 여름휴가 장소에서 레드메인 사건을 맡게 되어 그의 삶은 사적으로도 공적으로도 복잡해진다.

 

 

그가 맡은 사건은 타오르는 듯한 붉은 머리를 가진 것이 특성인 레드메인가의 막내아들 로버트 레드메인이 자신의 조카사위인 마이클 펜딘을 살해하고 도주하여 발생한다. 소설에서 색과 이미지가 효과적으로 쓰이고 있는데 붉은 머리는 시각적으로도 눈에 띄여 범인을 특정하는 단서가 되는 한편, 등장인물들의 충동적이고 정력적인 성향을 드러낸다. 형사 마크가 사랑에 빠지는 미스터리한 여인 '제니 펜딘'은 레드메인가의 마지막 후손이며 역시 타는 듯한 붉은 머리를 가진 엄청난 미인이다. 그녀는 막내 외삼촌인 '로버트 레드메인'이 남편인 '마이클 펜딘'을 죽였다는 사실에 좌절하며 마크의 도움을 청한다. 마크는 전쟁 후 정신적 외상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로버트 레드메인이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레드메인을 추적,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두지만, 정작 그가 긴 시간동안 발견되지 않고 시체도 찾지 못해 사건은 흐지부지 되버린다.

 

 

이 작품이 추리소설로서 가지는 특색 중 다른 하나는 형사가 2명 등장하고 바통을 넘겨주는 식으로 수사가 진행된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반은 마크가 중심이 되어 수사를 진행하고, 후반에는 미국인 형사인 '피터 건스'가 등장하여 사건을 진행한다. 전반에선 마이클 펜딘의 죽음이 해결되지도 않은 채 제니의 둘째 외삼촌인 또다른 레드메인이 살해되고, 제니가 이탈리아인 주제페 도리아와 결혼을 하면서 마크의 짝사랑도 좌절된다. 

 

 

후반은 둘째 레드메인도 살해한 것으로 '피터 건스'가 등장하면서 점점 미스터리가 해결되고 마크가 수사를 하면서 어떤 오류를 범했는지 밝혀진다. 피터 건스는 은퇴한 미국형사로 모든 현상을 면밀히 관찰하여 종합적인 결론을 내리는 '귀납법'에 가까운 추리를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마크의 연역법이 대전제의 오류를 인지하지 못하는 이상 영원히 진실에 도달할 수 없음을 알려주고 처음부터 제니에 대한 사랑이 그의 판단력을 얼마나 흐려놓았는지 비판한다. '피터 건스'는 명민한 두뇌를 사용해 사건을 해결하지만 마지막까지도 마크가 실수를 해 레드메인가의 비극은 완성되고 만다.

 

 

그래서 이 책은 한 형사의 성장기(?)이기도 하고 한 여자의 죽음까지 불사한 로맨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마크와 제니- 도리아의 삼각관계는 사건의 핵심적인 부분이고, 특히 마크의 편향된 판단의 원인이 제니에 대한 사랑에 있는만큼, 로맨스가 위주가 되는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사람이 겉보기와는 달리 얼마나 알 수 없는 존재인지, 우리의 판단은 얼마나 감정에 의존하는지 생각해 볼 문제다.

 

 

등장인물들 중 가장 흥미로운 사람은 단연 '제니'다. 그녀는 어떤 이유로 일가를 모두 죽이고도 결국 남편을 대신해 죽는가? 은밀한 계획을 세워 타인을 죽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궁극의 희생을 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미인'이라는 그녀의 이미지는 등장인물 모두에게 소진되고 있지만, 정작 그녀의 심리상태는 밝혀진바가 없다. 추리소설 속 여주인공들은 아름다운 팜므파탈 또는 순수한 피해자 중 하나로서만 존재할 수 있는가. 사건의 핵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받는 여자'로서만 기능한 그녀의 역할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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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희망이다 - 혼돈의 시대, 한국의 지성 12인에게 길을 묻다
김수행 외 지음 / 시사IN북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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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필요한 사람이 많지 싶다. 나 역시도 지금 당장 다가온 2013년엔 좀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현실은 녹록치 않아 지금 절망하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안다. 12월을 거칠게 내뱉은 말과 한숨으로 보내고 나니 신년은 더욱 추워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암담하다.

 

그래도 어쩌리, 희망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수 밖에.

<거꾸로 희망이다>는 MB정권을 어떤 희망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시사인에서 이뤄진 강연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강연을 듣는 듯이 좀 더 이해하기 쉬운편이긴 하지만, 각 꼭지별로 주제를 심오하게(?) 담아내기는 무리가 있다. 원래 여러 목소리를 묶어서 '이런 생각과 방식도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게 이 책의 목적이라고 생각해서 두루두루 힐끗 보는 것으로 만족하며 재밌게 읽었다.

 

'생태적 상상력'은 <녹색평론>의 발행인인 김종철 씨가 새로운 시대에는 '환경'이 아닌 '생태'로 주변의 아픔에 공감하고 소박하게 살아가야 함을 얘기한다. 과연 귀농을 한다면 지금 현실에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면서 나만의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걸까? 지금처럼 모두가 하나의 삶을 이상형으로 삼아 살아가는 시대에 최소한은 맞춰갈 정도로 농촌에서 자본 창출이 가능한 걸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체적으로 살아야 하는 것인가.

 

서울시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박원순 시장의 '대안경제' 부분도 좋았다. 사회적 기업을 상상하는 것, 이윤보다 더 중요한 내실있는 삶을 추구하는 것. 지역 경제를 발전 시키는 방향. 창의력을 키울 것.

 

역사문제는 이제 다시한번 조명받고 있다. 서중석씨의 뉴라이트와 건국절 논란, 현대사의 역진 현상에 대한 분석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최근 내가 너무 역사에 무지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 책을 좀 읽어보고 있는데 보면 볼수록 역사는 반복되는 것 같다. 과거의 오류에서 무언가를 배우지 못한다면 또 다시 당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한 순간의 분노나 절망에 휘말리지 말고 좀더 냉정하게 큰 시각으로 역사의 흐름을 읽고 다가올 미래를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희망을 버리는 건 그 이후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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