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한참이나 왔다갔다 노닥거리다 철지나고 길잃은 신문 한 장을 만났다.

지난 7월의 신문 한 장이 어떻게 해서 내 곁으로 날아왔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 순간 이상하다 싶을만큼 삽입된 그림에 마음을 빼앗겼다.
워낙 문외한이라 제목도 화가도 매우 낯설었다.
조르조 데 키리코의  '거리의 신비와 우울' .

문득 몹시 책이 그리웠고 이 곳, 알라딘 서재도 와락 생각이 났다.

오랜만에 가 본 병원은 역시 신비하고도 우울하며 멀미나는 곳이었다.
아빠가 다리를 다치셨고 반백수인 내가 간병인 비스무리가 되었다.

하는 일 없이 왔다갔다하며 굴러다니는 신문지 쪼가리나 들여다보고 앉아 있을 거라면
책을 읽거나 책을 읽거나 또 책을 읽거나 그게 안된다면
이 곳 서재에 와서 친밀한 교분을 쌓아도 훨씬 더 영양가 있을텐데,
나는 뇌가 없는 허수아비인지 심장이 없는 양철나무꾼인지 그저 월월거리는 토토인지
그저 허벌나게 왔다갔다만 한다. 도무지 아무 것도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그러고보니 정말로 나는, 어디에도 없었구나.
미안해요, 걱정해 주신 분들.

그리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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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icare 2004-10-26 0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남희의 소설집중 하나가 저 키리코의 그림이었습니다.그림도 멋지지만 제목은 한 수 위라는 생각과 함께 늘 저 그림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녹스는데 녹슬지 않는 피로와 환청이 들리는 듯 했습니다.얼른 달려와 보니 병원에 계셨군요.병원이란 곳. 안 가면 안 갈수록 좋은 곳.부친의 쾌유를 빕니다.힘드셨겠군요.

물만두 2004-10-26 0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님의 쾌휴를 빕니다. 힘 내세요. 아자아자 화이팅!!! 부모님 살아 생전 섬기기를 다하여라를 생각하시길...

플레져 2004-10-26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에도님! 많이 궁금했었어요.
어디에도님 건강도 챙기세요. 아셨죠? ^^
아버님의 쾌유를 빕니다!

로드무비 2004-10-26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그랬군요.
반백수로 친척들 아프면 간병인 내지는 파출부로 불려 다니던 지난날이 생각나는군요.
보람은 있었지만 좀 슬프고 외로웠죠.
아버지 빨리 쾌차하시길...어디에도님 빨리 병원에서 풀려나시길 바랍니다.
(저도 예전 저 그림 처음 봤을 때 가슴이 철렁했답니다.)

2004-10-26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urblue 2004-10-26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병원 다니면서 책 읽고 하는 거 쉽지 않죠.
마음이라도 편하게 가지세요.
아버님 쾌차하시기를 바랍니다.
천천히 돌아오세요.

반딧불,, 2004-10-26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하십니다.
꼭 쾌차하시길 빌구요.


하얀마녀 2004-10-26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따님이시군요. 하루빨리 기쁜 결과를 안고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chika 2004-10-26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홧팅!!!
건강하세요. 간병인노릇하려면 건강해야된다구요.

2004-10-27 0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10-29 0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완성 2004-10-29 0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에도님 잘 계신 거예요?
저는 병원 근처만 가도 기운이 쭉 빠지는 타입인데 어디에도님은 그렇지 않길 바래요..
간병인을 한다는 게 쉽지 않다고 하던데...잘 견디고 계신지.
꼭 건강하시구 나중에 또 뵈어요ㅡ.
힘내세요!

어디에도 2004-10-29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흑흑
정말로 모두 고맙습니다. 아부지는 뭐, 같은 병실의 할아버지들과 사이좋게
아아아아주 잘 지내고 계시구요, 저는 여전히 머엉 하지만 님들이 해주신 말씀을 생각하며
힘을 내고 있어요. 흐흣
많이 다치신 건 아닌데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시니 뼈가 잘 말을 안 듣나 봐요.
그래도 그만하시기 다행이라고 모두 생각한답니다.(교통사고였거든요)
저도, 날씨가 더 추워지기 전에... 알라딘 목도리를 두르고 싶어요! ^^

2004-10-29 2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10-30 2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