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대환의 시민을 위한 한국현대사
주대환 지음 / 나무나무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화 <1987>을 봤다. 1987이 가능했던 건 그저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는 평범한 사람들, 각자 자신이 있는 곳에서 원칙에 충실한 직장인들이 있었던 탓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김정남, 이부영 같은 인물들이 뭔가를 끊임없이 조직한 결과인 듯도 보였다. 무슨 일이 있었지? 난 그저 선배들의 영웅담으로 1987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이 이야기 한 신발무덤, 최루탄 가스, 백골단의 사나움....

 <주대환의 시민을 위한 한국 현대사>를 읽었다. 역사나 정치 같은 것이 중요한 건 알겠는데 나에게는 열공이나 탐닉의 대상이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그저 의무감으로 공부해야지.... 그러다가 금새 흥미를 잃게 되는. 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 아마도 영화 탓이 크리라. 역사는 결국 해석이나 중요한 것은 관점이다.

 민주주의라는 형식이 많은 변화를 가능하게 했음을 절감한다. 왕정이면 절대 불가능한.... 그래서 민주주의 시대의 역사는 당연히 시민들의 역사이다. <1987>도 시민들의 역사이다. 영웅이 만들어내는 역사가 아니라. 그걸로 되었다. 내가 소중한 만큼 타인들도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역사.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세상을 향한 소망을 가진 사람들의 헌신이 빛나는 그런 세상, 을 우린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런 희망으로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는 사실 내가 역사에 그닥 큰 관심이 없다는 걸 확인했다.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왜 그럴까? 그것이 책의 내용과 상관없이 나의 큰 의문이다. 역사는 결국 팩트의 편집과 해석이라면 서술된 역사서는 그 사람의 역사 해석 아닌가. 나의 역사 해석을 위해서 나는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아주 예전에 아마도 막 대학에 입학했을 때 쯤으로 기억한다. 친구와 오대산을 갔다. 죽을 듯이 힘든 길을 따라 헉헉거리며 올라갔다. 정말 대청마루 같은 반듯한 바닥에 누워 시원한 물 한잔 벌컥벌컥 들이키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던 그 무렵 딱 나타났던 휴게소. 거기서 대청마루 대신 편의점 의자에 앉아 마셨던 사이다 맛이 기가막혔다.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냉장고며 가구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차도 못 들어오는 이 길에 어떻게 이런 걸 갖고 오셨어요?"

 질문이 절로 나왔다. 휴게소 아저씨는 날 빙그레 웃으며 쳐다보더니 말했다.

 "한발 한발 걸어오면 되지."

 그 아저씨는 청소부 베포 아저씨와 같은 철학을 가지고 계셨다. 언제 저 길을 다 쓸지? 그러면서 한숨 쉬고, 쫓기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눈 앞에 벌어진 그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어느 새 그 일을 해 내고, 그 곳에 가 있는 것이다.

 시간의 주인이 되는 것의 의미를 무엇이라고 생각했던가? 아주 예전에 읽었을 때는 모모라는 아이가 갖는 어린아이의 순수성에 끌렸던 것 같다. 나이 들어 다시 읽으니 청소부 베포에게 끌린다. 자신의 시간을 갖고 살다가 자신의 친구에게 전심으로 자신의 시간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

 뭔가를 이룬다는 것, 때문에, 뭔가를 이루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뭔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 때문에 내 시간의 주인이 되지 못한 채 시간의 가장자리를 돌며 마음 졸이지 않았나.... 닿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곳,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지금 그 순간이 그 곳으로 향하고 그것을 위해 쓰여진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행복하다는 것을 <모모>를 통해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 아름다운 삶을 위한 철학의 기술
빌헬름 슈미트 지음, 장영태 옮김 / 책세상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호퍼는 왜 하필이면 엉덩이를 내놓고 돌아누운 여자와 고개 숙인 남자가 한 침대에 있는 그 장면에 <철학으로의 소풍>이라는 제목을 달았을까? 사랑 이후인지 혹은 사랑이전인지 알 수는 없으나 쾌락 뒤에 찾아오는 헛헛함, 거기에서 사유가 시작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라고 빌헬름 슈미트는 말한다. 철학이란 이렇게 멈추어 서서, 혹은 주저 앉아서 나에게 벌어진 일, 내가 했던 일들의 의미를 곰곰 따져 보는 것이다.

 지금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묻고, 그것이 내가 선택한 것이라면 그 근거가 무엇인지 스스로 묻는 과정이 철학이다. 우리의 삶에서 철학이 필요한 이유는 삶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여러 연관 속에서 나는 삶의 주체로서 삶을 살아가며 선택을 한다. 이런 선택의 이면에는 '나는 누구인가'하는 질문이 깔려 있다. 삶을 위해 철학이 필요한 이유는 사유를 통해 자신의 현재를 자신의 문제를 자신의 선택의 의미를 찾고 해석하기 위해서다.

 아름다운 삶, 풍요로운 삶을 위한 성찰, 그것이 철학이다. 라고 저자는 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지막 잎새 펭귄클래식 98
0. 헨리 지음, 최인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단편소설의 묘미는 반전에 있다. 인상적인 반전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그리고 필연적으로 그려내느냐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리고 그 안에 자칫 거북스러울수도 있는 메시지를 담아 내는 것. 기억 속의 오 핸리의 단편은 마지막 잎새와 크리스마스 선물. 중간 중간 변사가 읊어주듯 작가가 개입하여 해설해 주는 대목이 무척 많다는 것도 이번에 새로 알았다. 아래 층 화가가 잎새를 그리고 난 뒤 죽는 것, 머리카락과 시계줄, 그들이 각자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서로를 위해 팔게 되어 산 것이 이제는 서로에게 없는 것을 위한 거라는 것. 사실 다른 작품들에서도 이 비슷한 우연들이 반복된다. 화려한 여름 휴가에서 서로에게 끌린 두 사람이 사실은 여자가 할부로 산 옷 매장의 수금원이었다는 것. 음악과 미술을 전공하는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여 결혼했으나 현실의 가난 속에서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 그런데 그들은 알고보니 1층의 세탁소와 지하의 보일러실에서 일하고 있었다는 것. 이렇게 가난과 허세와 사기와  환상들이 뒤섞여 인상적인 반전들을 만들어 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려라, 토끼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7
존 업다이크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에 해리가 집에서 뛰쳐나왔을 때는 그래도 이해하고 싶었다.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을까,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런데 그렇게 집을 나와 대책없는 동거생활을 하는 것이 영 불편하기 시작했다.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정말이지, 꼭 그래야 했을까.

해리의 문제는 무엇이지?

이렇게 살기 싫어! 라는 외침만 가득한데, 어떻게 살고 싶다는 선택과 결단은 보이지 않는다.

60년대의 답답하기 짝이 없는 미국 젊은이의 이야기라지만 가슴 속에 가득 차오르는 답답함은 그것이 단지 수십년전 딴나라의 어떤 골빈 젊은이의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토끼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기 싫은데, 이렇게 다람쥐 쳇바퀴 돌듯 별다른 비전이나 희망없이 매일매일 비슷한 삶을 살면서 그렇게 정해진 길을 숙제하듯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다 인 그런 삶을 살기 싫은데 달리 대안이 없다. 그러다 어쩌다 누군가 일탈을 하면 그 일탈을 때로는 부러운 듯 때로는 한심한 듯 때로는 염려스럽게 바라본다. 목사 에클스가 그러했던 것 같다. 해리를 바라보는 심정이 아주 다층적인 듯 하다. 멋대로 집을 나온 것에 대한 찬사와 불안과 질책이 한꺼번에 섞여 있다.

모두들 불안하고 삐걱거리는 삶을 살고 있다. 해리는 그저 과거의 영광에 매여 현재의 불안을 섹스로 잊으려고 한다. 재니스도 루스도 왜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지, 아닌 걸 요구하는 남자를 거절하고 왜 죄책감에 휩싸이는지... 떠난 남자를 왜 또 기다리고, 기다리는지.... 재니스의 부모는 자식에게 물려줄 재산이 있다. 하지만 정신적 유산은 없다.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들이 그러하다. 모두들 재산을 물려주려고 하지만 어떤 정신을 물려주어야 할지에 대해서는 깊게 고민하지 않는다.

그렇게 과거에 매달려 현재를 감각적 쾌락으로 잊으려 하는 해리는 여럿을 불행하게 만든다. 에클스도, 재니스도, 루스도, 그리고 새로 태어난 자식도. 그리고 그의 부모와 재니스의 부모도. 하지만 그렇게 해리 발 불행에 감염된 그들 모두는 각자 자신의 불행에 책임이 없는 건가. 그렇지는 않은 듯 하다 그들은 모두 그렇게 살아지는 대로 살았다. 그러나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한 신념으로 살아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들이 져야 할 책임이다. 의지를 가지고 살아내지 못한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