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토끼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7
존 업다이크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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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해리가 집에서 뛰쳐나왔을 때는 그래도 이해하고 싶었다.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을까,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런데 그렇게 집을 나와 대책없는 동거생활을 하는 것이 영 불편하기 시작했다.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정말이지, 꼭 그래야 했을까.

해리의 문제는 무엇이지?

이렇게 살기 싫어! 라는 외침만 가득한데, 어떻게 살고 싶다는 선택과 결단은 보이지 않는다.

60년대의 답답하기 짝이 없는 미국 젊은이의 이야기라지만 가슴 속에 가득 차오르는 답답함은 그것이 단지 수십년전 딴나라의 어떤 골빈 젊은이의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토끼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기 싫은데, 이렇게 다람쥐 쳇바퀴 돌듯 별다른 비전이나 희망없이 매일매일 비슷한 삶을 살면서 그렇게 정해진 길을 숙제하듯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다 인 그런 삶을 살기 싫은데 달리 대안이 없다. 그러다 어쩌다 누군가 일탈을 하면 그 일탈을 때로는 부러운 듯 때로는 한심한 듯 때로는 염려스럽게 바라본다. 목사 에클스가 그러했던 것 같다. 해리를 바라보는 심정이 아주 다층적인 듯 하다. 멋대로 집을 나온 것에 대한 찬사와 불안과 질책이 한꺼번에 섞여 있다.

모두들 불안하고 삐걱거리는 삶을 살고 있다. 해리는 그저 과거의 영광에 매여 현재의 불안을 섹스로 잊으려고 한다. 재니스도 루스도 왜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지, 아닌 걸 요구하는 남자를 거절하고 왜 죄책감에 휩싸이는지... 떠난 남자를 왜 또 기다리고, 기다리는지.... 재니스의 부모는 자식에게 물려줄 재산이 있다. 하지만 정신적 유산은 없다.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들이 그러하다. 모두들 재산을 물려주려고 하지만 어떤 정신을 물려주어야 할지에 대해서는 깊게 고민하지 않는다.

그렇게 과거에 매달려 현재를 감각적 쾌락으로 잊으려 하는 해리는 여럿을 불행하게 만든다. 에클스도, 재니스도, 루스도, 그리고 새로 태어난 자식도. 그리고 그의 부모와 재니스의 부모도. 하지만 그렇게 해리 발 불행에 감염된 그들 모두는 각자 자신의 불행에 책임이 없는 건가. 그렇지는 않은 듯 하다 그들은 모두 그렇게 살아지는 대로 살았다. 그러나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한 신념으로 살아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들이 져야 할 책임이다. 의지를 가지고 살아내지 못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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