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신은
한스 라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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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믿는 사람은 믿어지니까 믿는 거고, 믿지 못하는 사람은 믿어지지 않으니 믿지 않는거다.

믿어지는 이유는, 알 수 없다. 믿어지지 않는 이유는 수없이 많다.

나는 믿어지지는 않으나 있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은 한다.

그런데 이렇게 고군분투 하는 신이라면 정말이지 믿고 싶어진다.

전지전능, 무소불위의 신이 아니라 외로움도 많이 타고, 도박도 좋아하고, 걱정도 많고, 좌절도 쉽게 하지만, 사랑도 많은 그런 신이다. 신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사랑때문이다. 내가 보아온 인간들은 사랑없이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사랑없이 살 수 없는 존재인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랑의 신이 반드시 필요하다. 신이 없다면 인간은 인간에게 당한 배신과 상처를 극복하기 힘들 것이다. 신은 그래서 있어야만 한다. 인간을 위해....

 한 사람이 한 사람으로 온전히 자라기 위해 부모가 필요하듯 인간이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신의 사랑이 필요하다. 신의 사랑을 받은 인간은 다른 인간을 사랑할 수 있다. 부모의 사랑을 잘 받은 사람이 누군가를 진짜 사랑할 수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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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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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의 스케일과 몰입력이 대단하다. 상당한 분량인데도 한번 손에 잡으면 놓을 수가 없다. 새로운 사건들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그것도 뭔가 몽환적이면서도 환상적이면서도 뻥이라고 소리치고 싶다가도 침을 꼴깍이며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눈을 반짝이게 된다. 소설이라는 이름에 딱 어울릴 것 같은 소설이다. 약간 백년동안의 고독과 비슷한 느낌도 난다.

 금복은 어렸을 때 들었던 옆동네 언니 이야기와 비슷하다. 일면식은 없지만 하루에 버스 한번 들어오는 그런 동네에 누군가 학교 안 보내 준다고 떼쓰던 열댓살 언니가 한밤에 보따리를 싸서 없어졌다는 이야기. 그런데 알고보니 언젠가 읍내에 어떤 사내랑 같이 다니더라는 그런 이야기. 그 사내는 시골을 돌며 장사를 하는 남자라는. 현실의 이야기는 대부분 거기서 끝나지만 금복은 사내를 따라 나선 길에서 고래를 보았다. 그리고 크고 생경하지만 매혹적인 고래와 같은 삶이 시작되었다. 금복이 만나는 대상, 금복이 끌리는 대상은 대략 그러하다. 크고, 생경하고, 매혹적인.... 걱정도 그랬고, 코끼리를 키우던 쌍둥이 자매도 그렇고, 수현은 크진 않았지만 매혹적이었다.

 춘희는 아니었다. 금복은 춘희를 좋아하지 않았다. 자식에 대한 사랑은 본능이라지만 실은 그렇지도 않다. 자신에 대한 사랑이 충족되지 않은 사람은 자식도 제대로 사랑하기 힘들다. 사람은 무엇보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자신이 않은 아이를 사랑하고.... 거기까지는 다들 자연스럽게 되는 듯 하다. 그런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식도 기꺼이 아끼고 사랑하지 못한다. 금복에게 사랑은 동물적이면서도 이기적이었다. 

 사랑은 물과 같다. 비어있고 모자란 부분에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가 평평하게 채우는 물과 같다. 물과 같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비어있고 모자란 부분에 엿처럼, 혹은 찰흙처럼 붙어 옴짝달싹 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욕심이고 욕망일뿐. 욕심에서 벗어나 사랑이 가능하다. 진짜 사랑이. 진짜 사랑을 해야 외롭지 않다.

 금복은 가짜 사랑과 진짜 사랑의 그 중간에서 욕심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삶을 산 것 같다. 질펀하게 살다가 한순간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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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잎새 펭귄클래식 98
0. 헨리 지음, 최인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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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의 묘미는 반전에 있다. 인상적인 반전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그리고 필연적으로 그려내느냐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리고 그 안에 자칫 거북스러울수도 있는 메시지를 담아 내는 것. 기억 속의 오 핸리의 단편은 마지막 잎새와 크리스마스 선물. 중간 중간 변사가 읊어주듯 작가가 개입하여 해설해 주는 대목이 무척 많다는 것도 이번에 새로 알았다. 아래 층 화가가 잎새를 그리고 난 뒤 죽는 것, 머리카락과 시계줄, 그들이 각자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서로를 위해 팔게 되어 산 것이 이제는 서로에게 없는 것을 위한 거라는 것. 사실 다른 작품들에서도 이 비슷한 우연들이 반복된다. 화려한 여름 휴가에서 서로에게 끌린 두 사람이 사실은 여자가 할부로 산 옷 매장의 수금원이었다는 것. 음악과 미술을 전공하는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여 결혼했으나 현실의 가난 속에서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 그런데 그들은 알고보니 1층의 세탁소와 지하의 보일러실에서 일하고 있었다는 것. 이렇게 가난과 허세와 사기와  환상들이 뒤섞여 인상적인 반전들을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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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토끼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7
존 업다이크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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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해리가 집에서 뛰쳐나왔을 때는 그래도 이해하고 싶었다.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을까,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런데 그렇게 집을 나와 대책없는 동거생활을 하는 것이 영 불편하기 시작했다.

그럴 수 있지. 하지만, 정말이지, 꼭 그래야 했을까.

해리의 문제는 무엇이지?

이렇게 살기 싫어! 라는 외침만 가득한데, 어떻게 살고 싶다는 선택과 결단은 보이지 않는다.

60년대의 답답하기 짝이 없는 미국 젊은이의 이야기라지만 가슴 속에 가득 차오르는 답답함은 그것이 단지 수십년전 딴나라의 어떤 골빈 젊은이의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토끼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기 싫은데, 이렇게 다람쥐 쳇바퀴 돌듯 별다른 비전이나 희망없이 매일매일 비슷한 삶을 살면서 그렇게 정해진 길을 숙제하듯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다 인 그런 삶을 살기 싫은데 달리 대안이 없다. 그러다 어쩌다 누군가 일탈을 하면 그 일탈을 때로는 부러운 듯 때로는 한심한 듯 때로는 염려스럽게 바라본다. 목사 에클스가 그러했던 것 같다. 해리를 바라보는 심정이 아주 다층적인 듯 하다. 멋대로 집을 나온 것에 대한 찬사와 불안과 질책이 한꺼번에 섞여 있다.

모두들 불안하고 삐걱거리는 삶을 살고 있다. 해리는 그저 과거의 영광에 매여 현재의 불안을 섹스로 잊으려고 한다. 재니스도 루스도 왜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지, 아닌 걸 요구하는 남자를 거절하고 왜 죄책감에 휩싸이는지... 떠난 남자를 왜 또 기다리고, 기다리는지.... 재니스의 부모는 자식에게 물려줄 재산이 있다. 하지만 정신적 유산은 없다.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들이 그러하다. 모두들 재산을 물려주려고 하지만 어떤 정신을 물려주어야 할지에 대해서는 깊게 고민하지 않는다.

그렇게 과거에 매달려 현재를 감각적 쾌락으로 잊으려 하는 해리는 여럿을 불행하게 만든다. 에클스도, 재니스도, 루스도, 그리고 새로 태어난 자식도. 그리고 그의 부모와 재니스의 부모도. 하지만 그렇게 해리 발 불행에 감염된 그들 모두는 각자 자신의 불행에 책임이 없는 건가. 그렇지는 않은 듯 하다 그들은 모두 그렇게 살아지는 대로 살았다. 그러나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한 신념으로 살아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들이 져야 할 책임이다. 의지를 가지고 살아내지 못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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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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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를 정하려고 하니 난감하다. 소설도 동화도 아닌데 그렇다고 논픽션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하여간 팩트를 기본으로 한 픽션이니 논팩션 이라고 해야 하나. 1700년대 초반 부터 후반까지 살았던 이른바 실학을 받아들인 학구파들의 삶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이덕무인듯 하나 이덕무가 주인공이라기 보다는 그저 화자에 가깝다.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 홍대용, 박지원.... 그들이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교류했으며 시대 속에서 무엇을 고민했는지를 팩트를 중심으로 심리적인 것 까지 그려내고자 했다.

 그런데 그게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다. 정말이지 그들 이제 막 시대적인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 그 시절에 그들을 짓누르던 운명의 무게가 조금씩 들썩이던 그 때 그 사람들의 절박함을 지금 제대로 상상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혹은 그렇게 글을 썼기에 이런 생각조차 가능한 일인지....

 불편한 재미라고 해야 하나... 온전히 내 맡기고 따라가야 할 일인지, 어느 정도 까지 믿어야 할 일인지 끊임없이 생각해야 했다. 서자라는 출신성분 때문에 옴짝달싹 못하는 아픔은 알 것 같다. 선택지가 없는 삶이란게 얼마나 갑갑한 노릇일지 말이다.

 한편으로는 운명의 무게 때문에 좋은 친구들과 무리 지어 살면서 서로를 충분히 인정하면서 밀어주고 당겨주는 그 재미가 더욱 더 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더 읽어야 겠다. 그리고 역사를 공부해야 겠다. 책장을 덮으면서 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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