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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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의 스케일과 몰입력이 대단하다. 상당한 분량인데도 한번 손에 잡으면 놓을 수가 없다. 새로운 사건들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그것도 뭔가 몽환적이면서도 환상적이면서도 뻥이라고 소리치고 싶다가도 침을 꼴깍이며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눈을 반짝이게 된다. 소설이라는 이름에 딱 어울릴 것 같은 소설이다. 약간 백년동안의 고독과 비슷한 느낌도 난다.

 금복은 어렸을 때 들었던 옆동네 언니 이야기와 비슷하다. 일면식은 없지만 하루에 버스 한번 들어오는 그런 동네에 누군가 학교 안 보내 준다고 떼쓰던 열댓살 언니가 한밤에 보따리를 싸서 없어졌다는 이야기. 그런데 알고보니 언젠가 읍내에 어떤 사내랑 같이 다니더라는 그런 이야기. 그 사내는 시골을 돌며 장사를 하는 남자라는. 현실의 이야기는 대부분 거기서 끝나지만 금복은 사내를 따라 나선 길에서 고래를 보았다. 그리고 크고 생경하지만 매혹적인 고래와 같은 삶이 시작되었다. 금복이 만나는 대상, 금복이 끌리는 대상은 대략 그러하다. 크고, 생경하고, 매혹적인.... 걱정도 그랬고, 코끼리를 키우던 쌍둥이 자매도 그렇고, 수현은 크진 않았지만 매혹적이었다.

 춘희는 아니었다. 금복은 춘희를 좋아하지 않았다. 자식에 대한 사랑은 본능이라지만 실은 그렇지도 않다. 자신에 대한 사랑이 충족되지 않은 사람은 자식도 제대로 사랑하기 힘들다. 사람은 무엇보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자신이 않은 아이를 사랑하고.... 거기까지는 다들 자연스럽게 되는 듯 하다. 그런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식도 기꺼이 아끼고 사랑하지 못한다. 금복에게 사랑은 동물적이면서도 이기적이었다. 

 사랑은 물과 같다. 비어있고 모자란 부분에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가 평평하게 채우는 물과 같다. 물과 같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비어있고 모자란 부분에 엿처럼, 혹은 찰흙처럼 붙어 옴짝달싹 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욕심이고 욕망일뿐. 욕심에서 벗어나 사랑이 가능하다. 진짜 사랑이. 진짜 사랑을 해야 외롭지 않다.

 금복은 가짜 사랑과 진짜 사랑의 그 중간에서 욕심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있는 삶을 산 것 같다. 질펀하게 살다가 한순간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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