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나만 미워해 이야기 보물창고 12
이금이 지음, 이영림 그림 / 보물창고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동화를 읽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세월이 지나 입는 옷도 쓰는 물건도 사는 곳도 다 달라졌지만 그래도 사람은 크게 안 변하는 구나. 다 고만할 때는 고만한 대로 느끼는 뭔가가 있구나. 그래서 갑자기 나 1학년 때 생각이 났다. 그 때 그 학교 전교생이 60명도 채 안되는 아주 아주 작은 시골학교였다. 우리반도 10명이 안 되었던 것 같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학교. 그 작은 학교에 들어서면서 어찌나 가슴이 벌렁거리던지. 학교가 어찌나 커 보이던지. 교실은 책상은 선생님은 또 얼마나 큰지. 나는 또 얼마나 작은지.  

1학년이 그런 마음이구나.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 벌렁거리는 심장 때문에 자꾸 손수건에 손이 가던 그 때 그 마음을 참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동화는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어린 시절을 살살 깨워준다. 그 어린시절이 깨어나 내가 어느 순간 한방에 커버린게 아니라 켜켜이 쌓인 시간들 속에서 오늘의 내가 존재한다는 걸 알려준다. 변하면서도 변하지 않은 나의 모습이 어떤 건지 생각하게 해준다. 

짧은 글 안에 반전이 깔끔하다. 캐릭터들이 너무 깎은 듯 하다고 해야 하나. 군더더기 없는, 상상의 여지가 덜한 캐릭터가 조금 아쉬운 듯 하지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클라리스 빈의 우승컵 구출 작전 클라리스 빈의 학교생활 2
로렌 차일드 지음, 김난령 옮김 / 국민서관 / 200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르고 그냥 읽었는데, <걱정하지마> 보다 먼저  이 책을 읽었어야 했다. 등장인물 소개도 루비 레드포드 시리즈 소개도 이 책에서 제대로 하고 있다. 얼렁 <영어시험탈출>도 읽어야 겠다. 

 클라리스가 현실적으로 겪는 핵심적인 사건은 학교에서 하는 독서대회이고 또 하나의 이야기는 책속의 책 루비의 이야기다.  

 독서대회, 학교에서 요구하는 독서대회는 교육적인 것이다. 클라리스는 루비 시리즈를 읽고 거기서 얻은 지혜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한다. 하지만 선생님들 눈에는 그것은 교육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무엇이 교육적이란 말인가? 책을 읽고 그것을 현실에 적용하여 문제를 해결하였다면 그것이 최고의 교육 아닌가?  

 독서대회에 참여하면서 클라리스는 평소에 싫어하던 칼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한다. 그리고 단짝친구가 된다. 물론 이 때문에 베티와 갈등도 겪었지만 베티 역시 칼을 알게 되면서 칼과 친하게 된다. 알려고 노력하는 것이, 알고자 하는 것이 관계를 형성하고 풀어나가는데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겠다. 누군가를 오해하기는 쉬워도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누군가를 이해하는 순간, 진실한 관계가 맺어지고 이를 통해 나는 더욱 확장된다. 이것이 우리가  평생 이루어나가야 하는 과업이며 특히 청소년기에 갈고 닦아야 하는 중요한 삶의 태도이다.  

 클라리스가 루비 시리즈에서 배운 것은 태도이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는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제를 둘러싼 여러 측면에 대해 신중하고 진지하게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클라리스는 생각을 했고, 자신의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 그 가운데 친구를 얻고, 그 가운데 문제가 해결되었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책을 통해 우리의 삶이 더욱 풍부해 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 책이 어떤 장르이든. 클라리스는 루비 시리즈를 통해 삶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클라리스 빈, 걱정하지마! 클라리스 빈의 학교생활 3
로렌 차일드 지음, 김난령 옮김 / 국민서관 / 200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서관 서가에서 우연히 겉장이 유난히 너덜거리는 책을 보았다. 겉표지에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여자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토마토 싫어의 롤라 아냐?' 집어 들었더니 로렌 차일드의 동화란다. 로렌 차일드가 장편 동화도 썼네?  

 읽기 시작하자 마자 쉬지 않고 끝까지 읽어 내렸다. 아이들의 소소한 심리상태, 거기다가 곳곳에 숨어있거나 넘치는 유머, 걱정은 어디서 시작되는 걸까? 클라리스 빈은 이 걱정, 저 걱정으로 머리가 맑은 날이 없다. 그 가운데 위로가 되는 건 루비 레드포트 시리즈. 어린 여자 아이가 탐정인 시리즈 동화다. 사실 추리 소설을 읽다보면 걱정 같은 건 잊게 된다.  

 빈의 걱정이 어디서 시작되는지는 루비 시리즈 제목이 알려준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방법! 사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기에 걱정이 시작된다. 정확하게 알기 위해 노력하면 되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기에 걱정이 끊이질 않는다. 집 수리 문제도, 엄마, 아빠의 이혼 문제도, 그리고 새로 전학 온 스웨덴 친구 문제도.  

빈은 그걸 알았을까? 아무것도 모를 때는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를 분명히 알고, 모르는 걸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걱정이 끊이지 않을 때는 걱정에 대해 생각하면 된다. 걱정이 진짜 걱정인지 아님 사서 걱정인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꾸로 목사님 열린어린이 창작동화 10
로알드 달 지음, 쿠엔틴 블레이크 그림, 장미란 옮김 / 열린어린이 / 200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거꾸로 목사님. 오랫만에 읽은 로알드 달의 작품이다.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건, 유머이다. 유머는 하나의 사실이나 상황을 보는 보다 여유있는 시선에서 나온다. 유머 넘치는 작품을 쓰는 작가들은 분명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지닌 작가이다. 그 가운데 로알드 달의 유머는 그 짜릿함이나 깊이가 남다르다. <멍청씨 부부 이야기> 처럼 어린이들을 위한 글을 쓴다고 공히 내놓고 이야기 하는 작가가운데 이렇게 갈때까지 가는 걸 그려내는 작가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난독증에서 착안한 단어를 거꾸로 말하는 목사님이라는 캐릭터는 엄격하고 진지해야 할 설교의 장면을 유머러스하게 만든다. 설교가 꼭 딱딱해야 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달 할아버지의 전언이다. 뭐라고 꼭 정해놓은 대로 세상을 보고, 정해놓은 대로 살아야 할 이유는 없지 않겠느냐고, 우리 모두 다르니까 그게 더욱 우리 세상을 재미있게 만드는 거 아니냐고 그렇게 빙그레 웃으며 이야기 하고 있다.  

 웃으며 사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웃으며 살기 위해서는 삶의 곳곳에서 웃을 수 있는 포인트를 찾아야 한다. 웃음은 새롭고, 신기하고, 비일상적인, 즐거운 경험에서 비롯된다. 웃는다는 건 삶을 새롭고, 신기하고, 즐겁게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 목사님이 거꾸로 목사님 처럼 설교한다면 잠이 확 깰것이다.  

달라야 웃음이 나온다. 매냥 똑같다면 새롭고, 신기하고, 즐거울 것이 뭐 있겠는가. 다른 것에 대한 관용, 그게 유머의 시작이고, 그게 스스로를 개방한다는 지표이며 이런 개방성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보다 행복하고 충일하게 만드는 것임을 달 할아버지는 애즈녁에 알고 있었음을 나는 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1-08-08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로알드 달 오늘 꼭 다시 읽어야겠어요 :)

지나가다가 반가운 작가 이름이 보여서 슬쩍 읽고 갑니다!
자기소개 글이 참으로 멋지네요. 정말 그게 행복의 길인 것 같아요.
비가 많이 오네요. 비조심하시길 ^^
 
놀기 과외 난 책읽기가 좋아
로리 뮈라이유 글, 올리비에 마툭 그림, 최윤정 옮김 / 비룡소 / 199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먼 프랑스의 이야기지만, 우리 곁에는 라디슬라스들이 넘쳐 난다. 라디슬라스의 부모님들도. 뭐든 다 잘해야 마음이 놓이는, 스스로 하기 보다는 뭐든 돈을 내고 배워야 최선인 줄 아는 라디슬라스와 그 부모들. 아이들은 놀면서 배우는 건데, 아이들의 놀이가 곧 학습인데, 그런데 이걸 잘못 받아들이는 부모들은 멀쩡한 아이들의 놀이마저 빼앗아 놀이로 포장한 학습의 장으로 만든다.  

놀게 해 준다고, 몇만원씩 내고, 밀가루를 뒤집어쓰질 않나, 놀게 해 준다고 또 몇만원씩 내고 흙을 밟게 해 준다. 노는 것 마저 구조화되고, 상업화되고, 시간이 정해져 있다. 어디서든 스스로에게 충분히 침잠할 시간을 주질 않는다. 

왜 노는 것 마저 돈을 지불하고 배워야 하는 세상이 되었을까? 라디슬라스의 부모님은 왜? 라디슬라스가 모든 걸 돈을 내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라디슬라스는 자신이 배우는 것이 나중에 어떤 쓸모가 있는지를 조목조목 얘기할 줄 안다. 예를 들어 영어를 배우는 것이 미래의 직업 선택에 어떤 도움이 될지, 첼로를 하는 것이 미래의 자기 인생에 어떤 유익을 줄지.... 라디슬라스가 현재 배우는 건 미래를 위해서다. 우리의 아이이들이 현재 공부에 내몰리고, 이것저것 배우러 다니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을 잘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의 삶을 준비하는 것이다. 12년동안 대학을 준비하고, 대학 생활 또한 직업을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결국 좋은 직업을 갖고 돈을 많이 벌고 잘 살기 위해서 어렸을 때 부터 돈을 많이 쓰면서 배운다.  

오지않는 미래를 준비하다 보니 사실 좀 불안하다. 말로는 이것이 꼭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그 결과가 어떨지는 잘 모른다. 그래서 학원을 보낸다. 얼마나 효율적으로 잘 배우는 가도 중요하지만 일단 학원을 보내면 부모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책임을 덜 수 있다. 학원을 보내서 결과가 신통치 않으면 학원 선생을 탓하면 되니까.  

부모들이 많은 돈을 써서 뭔가를 가르치는 건, 아이가 자라서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욕망과 뭐든 돈을 씀으로 인해 자신의 책임을 조금은 덜고자 하는 자신없음과 불안의 표현은 아닐까. 

라디슬라스와 라디슬라스의 아빠, 그리고 우리 곁의 라디슬라스와 그 부모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