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기 과외 난 책읽기가 좋아
로리 뮈라이유 글, 올리비에 마툭 그림, 최윤정 옮김 / 비룡소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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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먼 프랑스의 이야기지만, 우리 곁에는 라디슬라스들이 넘쳐 난다. 라디슬라스의 부모님들도. 뭐든 다 잘해야 마음이 놓이는, 스스로 하기 보다는 뭐든 돈을 내고 배워야 최선인 줄 아는 라디슬라스와 그 부모들. 아이들은 놀면서 배우는 건데, 아이들의 놀이가 곧 학습인데, 그런데 이걸 잘못 받아들이는 부모들은 멀쩡한 아이들의 놀이마저 빼앗아 놀이로 포장한 학습의 장으로 만든다.  

놀게 해 준다고, 몇만원씩 내고, 밀가루를 뒤집어쓰질 않나, 놀게 해 준다고 또 몇만원씩 내고 흙을 밟게 해 준다. 노는 것 마저 구조화되고, 상업화되고, 시간이 정해져 있다. 어디서든 스스로에게 충분히 침잠할 시간을 주질 않는다. 

왜 노는 것 마저 돈을 지불하고 배워야 하는 세상이 되었을까? 라디슬라스의 부모님은 왜? 라디슬라스가 모든 걸 돈을 내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라디슬라스는 자신이 배우는 것이 나중에 어떤 쓸모가 있는지를 조목조목 얘기할 줄 안다. 예를 들어 영어를 배우는 것이 미래의 직업 선택에 어떤 도움이 될지, 첼로를 하는 것이 미래의 자기 인생에 어떤 유익을 줄지.... 라디슬라스가 현재 배우는 건 미래를 위해서다. 우리의 아이이들이 현재 공부에 내몰리고, 이것저것 배우러 다니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을 잘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의 삶을 준비하는 것이다. 12년동안 대학을 준비하고, 대학 생활 또한 직업을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결국 좋은 직업을 갖고 돈을 많이 벌고 잘 살기 위해서 어렸을 때 부터 돈을 많이 쓰면서 배운다.  

오지않는 미래를 준비하다 보니 사실 좀 불안하다. 말로는 이것이 꼭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실제로 그 결과가 어떨지는 잘 모른다. 그래서 학원을 보낸다. 얼마나 효율적으로 잘 배우는 가도 중요하지만 일단 학원을 보내면 부모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책임을 덜 수 있다. 학원을 보내서 결과가 신통치 않으면 학원 선생을 탓하면 되니까.  

부모들이 많은 돈을 써서 뭔가를 가르치는 건, 아이가 자라서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욕망과 뭐든 돈을 씀으로 인해 자신의 책임을 조금은 덜고자 하는 자신없음과 불안의 표현은 아닐까. 

라디슬라스와 라디슬라스의 아빠, 그리고 우리 곁의 라디슬라스와 그 부모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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